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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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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簒賊
8. 찬적簒賊
진동호晉董狐제태사서조돈齊太史書趙盾최저시군이불은崔杼弑君而不隱, 사씨지정법야史氏之正法也.
가 임금을 弑害한 사실을 기록하고 숨기지 않았으니 史氏의 正法이다.
정여춘추로군피시正如春秋魯君被弑, 즉서훙이이부지저지則書薨而以不地著之.
예를 들어 《춘추春秋》에서 나라 임금이 시해되면 이라 쓰고 지명地名을 드러내어 말하지 않은 경우이다.
개신자은휘지의蓋臣子隱諱之義, 성인지미의야聖人之微意也.
이는 신하로서 숨기려는 의리이자 성인聖人미의微意이다.
전세사관前世史官, 수기修其朝之史者, 다취춘추지법多取春秋之法. 연이비사법然已非史法.
전세前世사관史官으로 그 본조本朝의 역사를 기술하는 자가 《춘추》의 법을 많이 취하였으나 이미 사법史法이 아니다.
우황후세지인수전대지사又況后世之人修前代之史, 내역유위지은휘乃亦有爲之隱諱, 이사난신적자지죄불백어세인지이목자而使亂臣賊子之罪不白於世人之耳目者, 즉어의하소당호則於義何所當乎.
하물며 후세 사람이 전대前代의 역사를 기술할 때 또한 숨기는 것을 두어서 난신적자亂臣賊子가 세상 사람들의 이목耳目에 명백히 드러나게 하지 않는다면 의리에 어떻게 합당하게 하겠는가.
통감소서通鑑所書, 이혁차폐已革此弊. 연역유미심절자然亦有未深切者.
자치통감資治通鑑》에 기록한 것은 이미 이러한 폐단을 혁파하였으나 또한 깊이 절실하지 않은 것이 있다.
금파정지여좌今頗正之如左, 관자상지觀者詳之.
지금 자못 아래와 같이 바로잡았으니 보는 사람은 자세히 살피라.
凡正統, 周秦以前列國弑君, 微者曰盜殺某君某注+楚君當之類.. 史失賊, 曰某國弑其君某注+鄭君之類.. 賊可見者曰某弑其君某注+韓嚴遂之類..
무릇 정통正統나라와 나라 이전의 열국列國에서 임금을 시해한 경우, 미천한 자가 죽였으면 “모군某君 도살盜殺하였다.[盜殺某君某]”注+이다.라 하였고, 역사서에 (시해한 자)을 알지 못하면 “모국某國이 그 임금 를 시해하였다.[某國弑其君某]”注+이다.라 하였고, 을 알 수 있으면 “가 그 임금 시해弑害하였다.[某弑其君某]”注+이다.라 하였다.
君失名則不名注+韓哀侯之類.. 賊官可見者竝著之注+秦庶長改之類.. 弑君而及其親屬者, 幷書之注+秦出公及其母..
임금이 실명失名을 하였으면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고注+이다., 적관賊官을 알 수 있으면 모두 드러내었고注+이다., 임금을 시해하고 그 친속親屬까지 미쳤으면 모두 기록하였다.注+이다.
君出走而弑之, 曰某君出走某弑之注+淖齒之類.. 弑其君之父母者, 隨事書之注+秦魏冉弑惠文后, 趙李兌弑主父之類..
임금이 도망하였는데 시해되었으면 “모군某君이 도망갔는데 가 시해하였다.[某君出走 某弑之]”注+이다.라 하였고, 그 임금의 부모父母를 시해한 경우는 사건에 따라 기록하였다.注+이다.
秦以後以兵弑者, 天子則曰某人弑帝于某注+如趙高之類, 書地以著其實.. 僭國無統, 則曰某國某人弑其君于某注+如魏司馬昭之類..
나라 이후에 병기兵器로 시해된 자가 천자天子이면 “모인某人에서 황제皇帝를 시해하였다.[某人弑帝于某]”注+⑨ 예를 들면 라 하였고, 참국僭國무통無統이면 “모국某國 모인某人이 그 임금을 에서 시해하였다.[某國某人弑其君于某]”注+⑩ 예를 들면 이다.라 하였다.
凡以毒弑者, 加進毒字而不地注+不可得而地, 故加進毒以著其實. 如莽‧冀之類, 霍顯又加使醫字..
무릇 을 써서 시해한 경우는 ‘진독進毒(毒을 올리다)’ 2자를 추가하되 누가 하였는지는 구분하지 않았다.注+①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진독進毒’ 2자를 추가하여 그 사실을 드러내었다. 예를 들면 이다.
疑者, 曰中毒崩注+如晉惠帝之類. 史言或曰司馬越之鴆, 而通鑑不著其語. 今但如此, 書以傳疑, 而著史家本語於其下..
의심스러운 경우는 ‘중독붕中毒崩(中毒되어 하였다)’注+② 예를 들면 이다. 사가史家가 혹 “사마월司馬越짐독鴆毒을 사용하였다.”라고 말하였으나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그 말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제 다만 이와 같이 하여 의 예로 기록하고 사가史家의 원래 말을 그 아래 주석에 나타내었다.이라 하였다.
凡事義不同者, 隨事異文注+如呂后廢少帝幽殺之之類. 少帝本非孝惠子, 特呂后所自立而殺之, 故不得以弑書. 若少帝眞當立之人, 無可廢之罪, 則婦人之義, 夫死從子, 況天下之主乎. 雖其主母, 亦不得免弑君之名矣. 元魏馮后‧顯祖之事, 當以此裁之..
무릇 사의事義가 같지 않은 것은 사안에 따라 문례文例를 달리하였다.注+① 예를 들면 이다. 소제少帝는 본래 효혜제孝惠帝의 아들이 아닌데 특별히 여후呂后가 임금으로 세우고 죽였으므로 시해弑害하였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만일 소제少帝가 참으로 임금으로 세워야 될 사람이고 폐위시킬 만한 죄가 없다면, 부인婦人의 도리상 남편이 죽은 뒤에는 자식을 따라야 하는데 하물며 천하의 주인이겠는가. 비록 여후가 주모主母(太后)라 하더라도 또한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오명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은 이 논리로 재단하였다.
凡簒國, 其事不同, 故隨事異文, 而尤謹其始注+如田氏幷齊, 三晉分地, 秦人入寇之類. 至王莽‧董卓‧曹操等自其得政‧遷官‧建國, 皆依范史, 直以自爲自立書之. 革命則曰稱帝而不曰受禪. 封其故君則曰廢而不曰奉. 其弑之者, 自加弑例..
무릇 찬국簒國은 그 사안事案이 같지 않으므로 사안에 따라 문례文例를 달리하되 더욱 그 처음을 신중하게 하였다.注+① 예를 들면 , , 이다. 왕망王莽, 동탁董卓, 조조曹操 등이 스스로 그 정권을 잡고, 벼슬을 올리고, 나라를 세웠는데 모두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에 의거하여 그대로 “스스로 하고 스스로 섰다.[自爲自立]”라고 기록하였다. 혁명革命을 하였으면 ‘칭제稱帝’라고 하고 ‘수선受禪(禪讓을 받다)’이라 하지 않았으며, 그 옛 임금을 봉하였으면 ‘’라 하고 ‘’이라 하지 않았다. 시해한 경우는 자연히 앞의 를 붙인 범례凡例를 따랐다.
凡殺他國之君, 亦隨事而異文注+魏殺衛君之類. 其因戰而殺之, 見征伐例..
무릇 다른 나라의 임금을 살해한 경우도 또한 사안에 따라 문례文例를 달리하였다.注+이다. 전쟁으로 인하여 죽이는 것은 정벌征伐범례凡例에 보인다.
역주
역주1 晉나라……正法이다 : 董狐는 춘추시대 晉나라 史官이다. 동호는 “趙盾이 임금 靈公을 죽였다.”라고 史策에 直書하였다. 이에 대해 孔子는 “동호는 옛날의 훌륭한 사관이었다. 그의 書法은 숨기는 일이 없었다.”라고 평하였다.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宣公 2년에 나온다.
太史는 춘추시대 齊나라 사관이다. “崔杼가 그 임금을 시해하였다.”라고 기록하니 최저가 그를 죽였다. 이어 그 아우가 그 사실을 기록하여 또 죽임을 당하였다. 다시 그 아우가 또 기록하니 최저가 죽이지 않고 놓아주었다.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襄公 25년에 나온다.
역주2 趙盾 : 조돈
역주3 崔杼 : 최저
역주4 (不)[本] : 底本에는 ‘不’로 되어 있으나, 《朱子全書》의 《資治通鑑綱目》과 《四庫全書》의 《御批資治通鑑綱目》에 근거하여 ‘本’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楚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己卯(B.C. 402) 周 威烈王 24년에 “楚나라 임금 當을 盜殺하였다.[盜殺楚君當]”라 하였다.
역주6 鄭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乙酉(B.C. 396) 周 安王 6년에 “鄭나라가 그 임금 駘를 시해하였다.[鄭弑其君駘]”라 하였다.
역주7 韓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戌(B.C. 371) 周 烈王 5년에 “韓나라 嚴遂가 그 임금을 시해하였다.[韓嚴遂弑其君]”라 하였다.
역주8 韓나라……경우 : 嚴遂가 韓나라 哀侯를 시해하였는데, 《資治通鑑綱目》에서 庚戌(B.C. 371) 周 烈王 5년에 “韓나라 엄수가 그 임금을 시해하였다.[韓嚴遂弑其君]”라 하였고, 乙巳(B.C. 376) 周 安王 26년에 애후가 즉위할 때도 성명을 기록하지 않았다.
역주9 秦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丙申(B.C. 385) 周 安王 17년에 “秦나라 庶長 改가 그 임금과 임금의 어머니를 시해하였다.[秦庶長改弑其君及其君母]”라 하였다.
역주10 秦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丙申(B.C. 385) 周 安王 17년에 “秦나라 庶長 改가 그 임금과 임금의 어머니를 시해하였다.[秦庶長改弑其君及其君母]”라 하였는데, 서장 개가 죽인 임금과 그 어머니는 出公과 출공의 어머니이다.
역주11 淖齒의 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丁丑(B.C. 284) 周 赧王 31년에 “齊나라 임금 地가 달아나자 齊나라 재상 淖齒가 그를 죽였다.[齊君地出走 其相淖齒殺之]”라 하였다.
역주12 秦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魏冉의 경우는 丙辰(B.C. 305) 周 赧王 10년에 “秦나라 魏冉이 그 임금의 적모를 시해하였다.[秦魏冉弑其君之嫡母]”라 하였고, 李兌의 경우는 丙寅(B.C. 295) 周 赧王 20년에 “마침내 主父를 沙丘에서 시해하였다.[遂弑主父於沙丘]”라 하였다.
역주13 趙高의……드러내었다 : 《資治通鑑綱目》에서 甲午(B.C. 207) 秦 二世 3년에 “趙高가 望夷宮에서 황제를 시해하였다.[趙高弑帝于望夷宮]”라 하였다.
역주14 魏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辰(260) 蜀漢 後主 景耀 3년에 “魏나라 司馬昭가 그 임금 曹髦를 남궐 아래에서 시해하였다.[魏司馬昭弑其主髦於南闕下]”라 하였다.
역주15 王莽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乙丑(5) 漢 平帝 元始 5년에 “겨울 12월에 安漢公 王莽이 황제를 시해하였다.[冬十二月 安漢公莽弑帝]”라 하였고, 丙戌(146) 後漢 質帝 本初 원년에 “대장군 梁冀가 독을 올려 황제를 시해하였다.[大將軍冀進毒弑帝]”라 하였다.
역주16 霍顯은……추가하였다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戌(B.C. 71) 漢 宣帝 本始 3년에 “대장군 霍光의 처 霍顯이 황후 許氏를 시해하였다.[大將軍光妻顯弑皇后許氏]”라 하여 범례와 달리 ‘使醫’를 넣지 않았다.
역주17 晉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丙寅(306) 晉 惠帝 光熙 원년에 “11월 황제가 중독되어 崩하였다.[十一月 帝中毒崩]”라 하였다.
역주18 傳疑 :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스러운 대로 전한다는 뜻이다. 《春秋穀梁傳》 桓公 5년조에 “《春秋》의 의리는 미더운 것은 미더운 대로 전하고,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스러운 대로 전하는 것이다.[春秋之義 信以傳信 疑以傳疑]”라고 하였다.
역주19 呂后가……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丁巳(B.C. 184) 漢 高皇后 呂氏 3년에 “少帝를 폐하고 가두었다가 죽였다.[廢少帝 幽殺之]”라 하였다.
역주20 元魏의……일 : 元魏는 拓跋珪가 세운 北魏(386~534)로 後魏라고도 한다. 馮后(441~490)는 北魏 文成帝의 부인으로 文成文明皇后이다. 顯祖는 北魏 獻文帝(재위 466~471)의 廟號이다. 《資治通鑑綱目》에서 辛亥(471) 北魏 孝文帝 延興 원년에 “8월에 魏나라 임금 拓跋弘이 태자 拓跋宏에게 전위하고 스스로 태상황제라 칭하였다.[八月 魏主弘傳位於太子宏 自稱太上皇帝]”라 하였다.
역주21 田氏가……합병하고 : 《資治通鑑綱目》에서 壬寅(B.C. 379) 周 安王 23년에 “齊侯 貸가 졸하니 자식이 없었다. 田氏가 마침내 齊나라를 겸병하였다.[齊侯貸卒無子 田氏遂幷齊]”라 하였다.
역주22 三晉이……나누고 : 《資治通鑑綱目》에서 乙巳(B.C. 376) 周 安王 26년에 “三晉이 함께 그 임금 俱酒를 폐위시켜서 가인으로 만들고 그 땅을 나누어 가졌다.[三晉共廢其君俱酒爲家人而分其地]”라 하였다.
역주23 秦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乙巳(B.C. 256) 周 赧王 59년에 “秦나라가 韓나라와 趙나라를 정벌하자 왕이 제후들에게 명하여 秦나라를 토벌하게 하였다. 秦나라가 마침내 周나라를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니 왕이 秦나라에 들어가 周나라의 땅을 바치고 돌아와 卒하였다.[秦伐韓趙 王命諸侯討之 秦遂入寇 王入秦 盡獻其地 歸而卒]”라 하였다.
역주24 魏나라가……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己酉(B.C. 252) 秦 昭襄王 59년에 “魏나라 사람이 衛나라 임금을 시해하고 그 동생을 세웠다.[魏人殺衛君而立其弟]”라고 하였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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