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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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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申年(60)
경신년庚申年(60)
三年이라 春二月 太尉憙 司徒訢하니 以郭丹爲司徒하고 虞延爲太尉하다
나라 현종 효명황제顯宗 孝明皇帝 영평永平 3년이다. 봄 2월에 태위 조희太尉 趙憙사도 이흔司徒 李訢이 면직되니, 곽단郭丹사도司徒로 삼고 우연虞延태위太尉로 삼았다.
◑立貴人馬氏하여 爲皇后하고 子炟爲皇太子하다
귀인 마씨貴人 馬氏를 세워 황후皇后로 삼고, 아들 유달劉炟(유달)을 황태자皇太子로 삼았다.
援之女也 光武時 以選入太子宮이러니 能奉承陰后하고 傍接同列하여 禮則修備하니
황후皇后마원馬援의 딸이다. 광무제光武帝 때에 뽑혀 태자궁太子宮에 들어왔는데, 음후陰后를 잘 받들어 섬기고 동렬同列들과 두루 사귀어 예와 법칙을 닦아 구비하니,
上下安之하여 遂見寵異러니 及帝卽位 爲貴人하다 后前母姊女賈氏 亦以選入하여 生皇子炟注+炟, 丁達切.하니
상하가 그녀를 편안히 여겨서 마침내 태자太子의 총애와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황제가 즉위하자 귀인貴人이 되었는데, 이때에 마황후馬皇后의 전 어머니의 언니의 딸인 가씨賈氏도 뽑혀 들어와서 황자 유달皇子 劉炟을 낳았다.注+정달丁達이다.
帝以后無子라하여 命養之하고 謂曰 人未必當自生子 但患愛養不至耳라하니
황제는 마황후가 아들이 없다 하여 유달을 기르도록 명하고, 이르기를 “반드시 자신이 직접 아들을 낳을 필요는 없다. 다만 사랑하여 기르는 것이 지극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하니,
后於是 盡心撫育하여 勞悴 過於所生이라 太子亦孝性淳篤하여 母子慈愛하여 始終無纎介之間注+間, 隙也.이러라
황후가 이에 마음을 다하여 어루만지고 돌보아 자신이 낳은 자식보다 더 수고롭게 길렀다. 태자太子 또한 효성이 순수하고 돈독해서, 모자가 서로 사랑하여 시종 조금의 틈도 없었다.注+은 틈이다.
后常以皇嗣未廣이라하여 薦逹左右호되 若恐不及하고 後宮有進見者어든 每加慰納하며
】 황후는 항상 황제의 아들이 많지 못하다 하여 좌우의 여인(후궁後宮)들을 천거하되 혹시라도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였고, 후궁 중에 나아가 황제를 뵌 자가 있으면 매번 위로하고 잘 받아주었으며,
若數所寵引이면 輙增隆遇러라 及有司奏立長秋宮 帝未有所言이러니
만약 황제에게 여러 번 총애를 받아 들어간 자에게는 번번이 융숭한 대우를 더하였다. 유사有司을 세울 것을 아뢰자, 황제가 아직 말씀한 바가 없었는데,
皇太后曰 馬貴人 德冠後宮하니 卽其人也라하다
황태후皇太后(음후陰后)가 말하기를 “마귀인馬貴人후궁後宮 중에 으뜸이니, 그 사람이 바로 적임자이다.” 하였다.
后旣正位宮闈 愈自謙肅하고 好讀書하며 常衣大練하고 裙不加緣注+大練, 大帛也, 卽厚繒也. 緣, 兪絹切, 衣純也.이라
】 황후는 궁위宮闈(궁궐)에서 자리를 바로잡자 더욱 겸손하고 엄숙하고 독서하기를 좋아하였으며, 항상 대련大練(거친 명주)을 입고 치마에 선을 두르지 않았다.注+대련大練대백大帛이니 바로 두꺼운 비단이다. 유견兪絹이니 옷에 선을 두름이다.
朔望 諸姬主朝請할새 望見后袍衣疎麤하고 以爲綺縠이러니 就視하고 乃笑어늘 后曰 此繒 特宜染色故 用之耳라하니라
초하루와 보름에 여러 후궁과 공주가 조청朝請할 적에 황후의 포의袍衣가 거친 것을 보고 기곡綺縠(무늬가 있는 얇고 고운 비단)이라고 여겼는데, 가까이 가서 보고 마침내 웃으니, 황후는 말하기를 “이 명주비단이 특별히 염색에 좋으므로 이것을 쓴다.” 하였다.
群臣奏事 有難平者注+平, 音病.어든 帝數以試后하면 后輙分解趣理하여 各得其情이라
여러 신하들이 일을 아뢸 적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注+(공평하게 처리하다)은 음이 이다. 황제가 자주 황후에게 시험하여 물었는데, 그때마다 황후가 번번이 취지와 조리를 분명하게 해석하여 각기 그 실정에 맞았다.
이나 未嘗以家私干政事하니 帝由是寵敬하여 始終無衰焉하니라
그러나 일찍이 친정 집안의 사사로움을 가지고 정사에 관여하지 않으니, 황제가 이 때문에 총애하고 공경하여 시종 쇠함이 없었다.
圖畫中興功臣於雲臺하다
운대雲臺중흥공신中興功臣의 화상을 그렸다.
帝思中興功臣하여 乃圖二十八將於南宮雲臺할새 以鄧禹爲首하고 次馬成, 吳漢, 王梁, 賈復, 陳俊, 耿弇,
】 황제가 중흥공신中興功臣을 생각하여 28명의 장군의 화상을 남궁南宮운대雲臺에 그릴 적에, 등우鄧禹를 첫 번째로 삼고 다음은 마성馬成, 오한吳漢, 왕량王梁, 가복賈復, 진준陳俊, 경엄耿弇(경감),
杜茂, 冦恂, 傅俊, 岑彭, 堅鐔, 馮異, 王霸, 朱祜, 任光, 祭遵, 李忠, 景丹, 萬修, 蓋延, 邳肜, 銚期, 劉植,
두무杜茂, 구순冦恂, 부준傅俊, 잠팽岑彭, 견심堅鐔(견담), 풍이馮異, 왕패王霸, 주호朱祜, 임광任光, 제준祭遵(채준), 이충李忠, 경단景丹, 만수萬修, 개연蓋延(갑연), 비융邳肜, 요기銚期(요기), 유식劉植,
耿純, 臧宮, 馬武, 劉隆이요 又益以王常, 李通, 竇融, 卓茂하여 合三十二人이라 馬援 以椒房之親이라하여 獨不與焉하다
경순耿純, 장궁臧宮, 마무馬武, 유융劉隆의 순서였고, 또 여기에 왕상王常, 이통李通, 두융竇融, 탁무卓茂를 더하여 모두 32명이었다. 이라 하여 홀로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夏六月 有星孛于天船北注+天船九星, 在大陵北, 爲水. 彗出之, 爲大水, 一曰舟星.하다
】 여름 6월에 패성孛星천선天船 북쪽에 나타났다.注+천선天船의 9개의 별은 대릉성大陵星 북쪽에 있으니, 물을 주관하는 별이다. 혜성彗星이 거기에 나타나면 홍수가 지니, 일설에는 주성舟星이라 한다.
북궁北宮을 크게 일으켰는데, 얼마 후에 파하였다.
天旱이어늘 尙書僕射鍾離意 詣闕하여 免冠하고 上疏曰
】 이때에 가뭄이 들자, 상서복야 종리의尙書僕射 鍾離意가 대궐에 나와 관을 벗고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成湯遭旱 以六事自責注+成湯大旱七年, 齋戒, 翦髮斷爪, 以己爲犧牲, 禱於桑林之社, 以六事自責曰 “政不節邪. 使民疾邪. 宮室營邪. 女謁盛邪. 苞苴行邪. 讒夫昌邪. 何不雨之極也.” 言未已而天大雨.하니이다 切見北宮大作하여 民失農時
“옛날에 성탕成湯은 가뭄을 만났을 적에 여섯 가지 일로써 자책하셨습니다.注+성탕成湯이 큰 가뭄이 7년 동안 이어지자, 재계하고 머리를 깎고 손톱을 잘라 자신을 희생犧牲으로 삼아서 상림桑林에 기도하였다. 이때 여섯 가지로써 자책하며 말씀하기를 “정사政事에 절도가 없는가. 백성을 부리기를 지나치게 하는가. 궁실을 경영하는가. 궁녀宮女들의 청탁이 성행하는가. 포저苞苴(뇌물)가 행해지는가. 참부讒夫(남을 참소하는 사람)가 많은가. 어찌 비가 오지 않음이 이렇게 지극한가.” 하였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비가 내렸다. 삼가 보건대, 북궁北宮을 크게 일으켜서 백성들이 농사철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自古 非苦宮室小狹이요 但患民不安寧하니 宜且罷止하여 以應天心하소서
예로부터 궁실宮室이 협소한 것이 걱정이 아니라 다만 백성들이 안녕安寧하지 못한 것이 걱정이니, 우선 중지하여 천심天心에 응하소서.”
帝策詔報曰 湯引六事 咎在一人하니 其冠履하고 勿謝注+策詔者, 書詔於策也.하라
황제가 조서詔書로 답하기를 “탕왕湯王이 여섯 가지 일을 이끌어 자책할 적에 허물이 유독 군주 한 사람에게 있었으니, 그대는 관과 신을 착용하고, 사죄하지 말라.”注+책조策詔”는 조령詔令에 쓴 것이다. 하고,
又勅大匠하여 止作諸宮하고 減省不急하고 詔因謝公卿百僚러니 遂應時澍雨注+澍, 音注, 雨所以澍注萬物, 故曰澍.하다
대장大匠에게 명하여 여러 을 짓던 일을 중지시키고 급하지 않은 일을 줄였으며, 조서를 내리면서 공경公卿백료百僚들에게 사과하였는데, 마침내 때에 맞게 큰비가 내렸다.注+(단비)는 음이 이니, 비는 만물을 적시는 것이므로 ‘’라 한 것이다.
帝性褊察하여 好以耳目隱發爲明注+褊, 狹也. 隱者, 人耳目之所不及. 帝好以耳目窺其隱而發之.하니 公卿大臣 數被詆毁하고 近臣尙書以下 至見提曳注+提, 大計切, 擲物以擊之也. 曳, 讀曰拽, 奚結切, 拖也, 引也. 一說 “提曳, 讀皆.”
】 황제의 성품이 협소하고 꼼꼼하여 직접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아 숨겨진 일을 적발하여 밝히는 것을 좋아하니注+은 협소한 것이다. 은 사람의 이목이 미치지 않은 것이니, 〈“호이이목은발위명好以耳目隱發爲明”은〉 황제가 귀와 눈으로 숨겨진 일을 엿보아서 적발하기를 좋아한 것이다., 공경公卿대신大臣들은 자주 꾸짖음과 견책을 받고, 상서尙書 이하의 근신近臣들이 던지는 물건에 맞고 끌려 나가기까지 하였다.注+대계大計이니, 물건을 던져 공격하는 것이다. 로 읽으니, 해결奚結로 끎이다. 일설에 “제예提曳(제예)는 모두 본음대로 읽는다.” 하였다.
常以事怒郎藥崧하여 以杖撞之注+常, 通鑑, 作嘗. 藥崧, 姓名.한대 走入牀下어늘 帝怒甚하여 疾言曰 郎出하라
일찍이 일 때문에 낭관郎官약숭藥崧(약숭)에게 노하여 지팡이로 때리자注+(일찍이)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으로 되어 있다. 약숭藥崧은 사람의 성명姓名이다., 약숭이 달아나 아래로 숨었다. 황제가 더욱 노하여 소리치기를 “낭관은 나와라!” 하자,
乃曰 天子穆穆이요 諸侯皇皇注+記曲禮之文. 穆穆, 幽深和敬之貌, 皇皇, 壯盛顯明之貌.이니 未聞人君 自起撞郎이니이다 帝乃赦之하다
약숭이 말하기를 “천자天子목목穆穆하고 제후諸侯황황皇皇해야 하니注+〈“천자목목 제후황황天子穆穆 諸侯皇皇”은〉 ≪예기禮記≫ 〈곡례曲禮〉의 글이다. 목목穆穆은 그윽하고 깊고 온화하고 공경하는 모양이고, 황황皇皇은 장성하고 밝게 드러난 모양이다., 군주가 직접 일어나 낭관을 친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였다. 황제가 그제야 그를 용서하였다.
是時 朝廷 莫不悚慄하여 爭爲嚴切以避誅責이로되 唯鍾離意獨敢諫爭하고 數封還詔書하며 臣下過失 輙救解之하다
】 이때 조정이 모두 두려워하여 다투어 준엄하고 박절하게 해서 황제의 주벌과 견책을 피하였으나, 오직 종리의鍾離意는 홀로 과감하게 간쟁하고 자주 조서詔書를 봉함하여 반환하였으며, 신하들의 과실을 번번이 구원하고 해명해주었다.
連有變異어늘 上疏曰 陛下畏敬鬼神하고 憂恤黎元이로되 而天氣未和하고 寒暑違節者
마침 연달아 재변災變가 있자,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폐하께서 귀신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백성들을 걱정하고 긍휼히 여기시는데도, 천기天氣(일기日氣)가 조화롭지 못하고 추위와 더위가 절기에 맞지 않습니다.
咎在群臣 不能宣化治職하고 而以苛刻爲俗하여 百官無相親之心하고 吏民無雍雍之志하여 至於感逆和氣하여 以致天災注+雍雍, 和也.니이다
이는 그 허물이 군신群臣이 황제의 교화를 베풀지 못하고 직책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까다롭고 각박함을 풍속으로 삼아서 백관百官들이 서로 친애하는 마음이 없고 관리와 백성들이 화목한 뜻이 없어서 화기和氣를 거슬려서 하늘의 재앙을 불러온 것에 있습니다.注+옹옹雍雍”은 함이다.
百姓 可以德勝이요 難以力服이니 鹿鳴之詩 必言燕樂者 以人神之心洽然後 天氣和也니이다
백성은 으로써 이길 수 있고, 힘으로써 복종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시경詩經≫ 〈녹명鹿鳴〉의 에 반드시 잔치하고 즐거워함을 말한 것은 사람과 귀신의 마음이 화합한 뒤에야 천기天氣하기 때문입니다.
願陛下垂聖德하사 緩刑罰하고 順時氣하여 以調陰陽하소서 帝雖不이나 然知其至誠하여 終愛厚之하니라
원컨대 폐하께서는 성스러운 덕을 드리우시어 형벌을 늦추고, 철의 기운에 순응하시어 음양을 조화롭게 하소서.” 황제는 비록 제때에 그의 말을 따르지는 못하였으나, 그의 지극한 정성을 알아서 끝내 사랑하고 후대하였다.
秋八月晦 日食하다
】 가을 8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詔曰 昔 楚莊無災 以致戒懼하고 魯哀禍大 天不降譴注+楚莊王時, 國無天變, 莊王戒懼曰 “天不見妖, 天其忘予歟.” 禍大, 謂削弱也. 魯哀公禍大而天不降災, 是天棄之也.이라
】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렸다. “옛날 초 장왕楚 莊王은 재앙이 없자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극히 하였고, 노 애공魯 哀公은 나라에 가 큰데도 하늘이 견책을 내리지 않았다.注+초 장왕楚 莊王 때에 나라에 천재天災의 변고가 없자 장왕이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하늘이 요망함을 보이지 않으니, 하늘이 아마도 나를 잊었는가 보다.” 하였다. “화대禍大”는 영토가 깎이고 국력이 약해짐을 이른다. 노 애공魯 哀公은 나라에 가 큰데도 하늘이 재앙을 내리지 않았으니, 이는 하늘이 그를 버린 것이다.
今之動變 儻尙可救 有司勉思厥職하여 以匡無德하라
지금 일어나는 재변(일식)은 혹여 구원할 수가 있을 것이니, 유사有司는 힘써 그 직책을 다할 것을 생각해서 이 없는 나를 바로잡아라.”
冬十月 帝奉皇太后하여 如章陵하다
】 겨울 10월에 황제가 황태후皇太后를 모시고 에 갔다.
車駕 從皇太后하여 幸章陵이러니 荆州刺史郭賀 官有殊政이라
거가車駕황태후皇太后를 따라 장릉章陵에 행차하였는데, 형주자사 곽하荆州刺史 郭賀가 관직에 있으면서 특별한 공적이 있었다.
賜以三公之服黼黻冕旒注+東漢之制, 冕冠垂旒, 前後邃延. 三公ㆍ諸侯, 七旒, 靑玉爲珠.하고 勅行部 去襜帷하여 使百姓見其容服하여 以章有德注+襜, 蚩占切. 襜帷者, 車之前帷也, 今勅令廵行所部郡縣時, 可除去之.케하다
은 그에게 삼공三公의 의복인 보불黼黻(보불)과 면류冕旒(면류)를 하사하고注+동한東漢의 제도는 면류관에 술[]을 드리워서 관의 앞뒤로 길게 늘어뜨렸다. 삼공三公제후諸侯는 면류관의 술이 7개이고 푸른 옥으로 관자[]를 만들었다., 칙명으로 그가 부내部內를 순행할 적에 수레에 휘장을 제거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그의 용모와 의복을 보게 해서, 이 있는 사람을 표창하였다.注+치점蚩占이다. “첨유襜帷”는 수레의 앞 휘장이니, 지금 칙령을 내려서 그가 관할한 군현郡縣을 순행할 적에 이것을 제거하게 한 것이다.
大水하다
】 홍수가 졌다.
역주
역주1 長秋宮(황후) : 漢나라의 궁전 이름으로, 高祖가 거처하다가 뒤에 皇后가 거처하였는데, 이로 인해 황후를 직접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
역주2 馬援은……친척 : 椒房은 后妃를 일컫는 말로, 그 친척은 곧 황제의 姻戚이 되는바, 馬皇后가 馬援의 딸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3 大起……罷之 : “宮을 건축한 일을 쓴 적은 있었는데, 武帝의 明光殿에 이르러 처음 ‘起’라고 썼으나 ‘大起’라고는 쓰지 않았으니, ‘大起’라고 쓴 것은 비난한 것이 아니겠는가. 明帝가 막 北宮을 〈건축하는 공사를〉 크게 일으켰다가 얼마 되지 아니하여 鍾離意의 한 상소문 때문에 당장 파하였으니, 허물을 고침에 인색하지 않다고 이를 만하다. 위에서는 ‘大起’라고 쓰고 아래에서는 ‘旣而罷之’라고 쓴 것은 용감하게 간언을 따름을 나타낸 것이다.[書築宮 有之矣 至武帝明光 始書起 未書大起也 書大起 非譏歟 帝方大起北宮 未幾 以鍾離一疏而立罷 可謂改過不吝矣 上書大起 下書旣而罷之 所以見其從諫之勇也]다” ≪書法≫
역주4 如字 : 한 글자에 여러 독음이 있는 경우 본음대로 읽으라는 것이다.
역주5 (時能)[能時] : 저본에는 ‘時能’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能時’로 바로잡았다.
역주6 章陵 : 章陵縣으로 舂陵鄕을 높인 것이다. 舂陵은 광무제의 고향으로 광무제 四親의 묘가 있다.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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