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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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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卯年(B.C. 138)
계묘년(B.C. 138)
三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건원建元 3년이다.
冬十月 中山王勝 來朝하다
겨울 10월에 중산왕中山王 유승劉勝이 와서 조회하였다.
議者 多寃鼂錯之策注+言錯策是, 枉見殺也.하여 務摧折諸侯王하여數奏暴其過惡하여 吹毛求疵하니 諸侯王 莫不悲怨注+暴, 謂披布之. 疵, 才斯切, 病也, 瑕也.이러니
[目] 의논하는 자들이 을 많이 원통하게 여겨서,注+조조鼂錯의 계책이 옳았는데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음을 말한 것이다. 제후왕을 억압하는 데 힘써서 온갖 방법으로 허물을 찾아내어 자주 제후왕들의 잘못을 아뢰어 드러내자, 제후왕 중에 서글퍼하고 원망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注+(폭)은 드러내는 것이다. 재사才斯이니, 결점이 있고 하자가 있다는 뜻이다.
至是置酒 聞樂聲而泣이어늘 問其故한대
이때에 무제武帝가 술자리를 마련하자 중산왕中山王 유승劉勝이 음악을 듣고서 눈물을 흘리니, 이 그 연고를 물었다.
具以吏所侵聞注+聞, 聞於帝也.하니 乃厚諸侯之禮하여省有司所奏諸侯事하고 加親親之恩焉注+省, 減也.이러라
유승劉勝이 〈천자국天子國의〉 관리가 침해하는 일을 가지고 자세히 아뢰니,注+은 황제에게 아뢰는 것이다.이 이에 제후들을 우대하여 담당 관리가 제후의 일을 아뢴 것을 생략하고(세세히 따지지 않고), 제후왕들을 친족으로 대우하는 은전을 더 베풀었다.注+하는 것이다.
注+平原, 本齊地, 高祖置郡. 禹疏九河, 皆在平勃海郡界.하다
[綱] 하수河水평원平原으로 범람하였다.注+평원平原은 본래 나라 땅인데, 고조高祖을 설치하였다. 우왕禹王구하九河를 소통시킨 곳이 모두 평원군平原郡발해군勃海郡의 경계에 해당한다.
[綱] 큰 기근이 들어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 秋七月 有星孛于西北하다
[綱] 가을 7월에 패성孛星이 서북쪽에 나타났다.
[綱] 민월閩越동구東甌를 공격하자, 사신을 보내 군대를 징발하여 구원하고, 마침내 장강長江회수淮水 사이에 동구東甌의 백성들을 이주시켰다.
閩粤 發兵圍東甌注+七國之敗也, 吳王子駒, 亡走閩越, 怨東甌殺其父, 常勸閩越擊東甌, 閩越從之.하니 東甌使人告急이어늘
[目] 처음에 민월閩粤(민월閩越)이 군대를 징발하여 동구東甌를 포위하니,注+ 등 7이 패했을 적에 오왕吳王(유비劉濞)의 아들 유구劉駒민월閩越로 도망갔었는데, 유구劉駒는 자기 부친을 살해한 동구를 원망하여 늘 민월에게 동구를 공격할 것을 권하니, 민월이 그의 말을 따른 것이다. 동구가 사람을 보내서 위급함을 고하였다.
天子問田蚡한대 對曰 越人相攻擊 固其常이요 又數反覆하여 自秦時棄不屬하니 不足以煩中國往救也注+棄不屬, 謂久已棄之, 不臣屬於中華.니이다 莊助曰
천자天子전분田蚡에게 묻자, 전분이 대답하기를 “나라 사람들이 서로 공격하는 것은 진실로 늘 있었던 일이고, 게다가 자주 번복하여 나라 때부터 버려두어 복속시키지 않았으니, 중국中國을 번거롭게 하면서 구원할 필요가 없습니다.注+기불속棄不屬”은 오랫동안 버려두어서 중국에 복속시키지 않았음을 이른다.” 하니, 장조莊助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小國以窮困來告急이어늘 天子不救하시면 又何以子萬國乎注+子, 謂畜爲臣子也.잇가
소국小國이 곤궁한 사정을 가지고 와서 위급함을 알렸는데, 천자께서 구원하지 않으시면 또 어떻게 만국萬國을 자식처럼 돌볼 수 있겠습니까.注+는 신하와 자식처럼 기름을 이른다.
且秦 擧咸陽而棄之하니 何但越也注+擧, 摠也. 言摠天下乃至京師, 皆棄之.릿고
나라는 도성都城함양咸陽까지도 모두 버렸으니, 어찌 나라만 버렸을 뿐이겠습니까.”注+는 모두라는 뜻이니, 〈“거함양이기지擧咸陽而棄之”는〉 천하를 위시하여 경사京師에 이르기까지 다 버림을 말한 것이다.
上曰 太尉不足與計로다
그러자 이 말하기를 “태위太尉(전분田蚡)와는 함께 일을 계획할 수 없구나!
吾新卽位하니 不欲出虎符發兵郡國이라하고 乃遣助하여 以節發兵會稽注+會稽, 東南邊越.하다 會稽守欲距法不爲發注+以法距之而不發兵, 爲無虎符驗也. 爲, 去聲.이어늘
내가 새로 즉위하였으니, 호부虎符(병부兵符)를 내어 군국郡國에서 군대를 징발하기를 원치 않는다.” 하고, 마침내 장조를 파견하여 부절符節을 가지고 회계會稽에서 군대를 징발하게 하였는데,注+회계會稽는 동남쪽으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회계태수會稽太守가 불법이라고 거부하고 징발하려 하지 않았다.注+〈“거법불위발距法不爲發”은〉 법을 근거로 거부하고 병력을 징발하지 않은 것이니, 이는 〈황제의 명령을〉 증명하는 호부虎符가 없었기 때문이다. (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助乃斬一司馬하고 喩意注+謂曉喩以天子不欲出虎符之意.하고 乃發兵浮海하여 救東甌러니
그러자 장조는 사마司馬 한 명을 참수하고 천자가 호부虎符를 내고자 하지 않은 뜻을 알려주고,注+〈“유의喩意”는〉 천자가 호부虎符를 내고자 하지 않은 뜻을 말해준 것을 이른다. 이에 군대를 징발하여 바다를 건너서 동구를 구원하였다.
未至 閩越 引兵罷하고 東甌請擧國內徙어늘
구원병이 도착하기 전에 민월은 병력을 이끌고 퇴각하였고, 동구는 온 나라 사람들을 중국 안으로 이주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다.
乃悉擧其衆來하여 處於江淮之間하다
이에 그 무리들을 모두 데리고 와서 장강長江회수淮水 사이에 거주하게 하였다.
九月晦 日食하다
[綱] 9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가 처음 미행微行을 하고 마침내 상림원上林苑을 만들었다.
招選天下文學材智之士하여 簡拔其俊異者하여 寵用之하니 莊助, 朱買臣, 吾丘壽王, 司馬相如, 東方朔, 枚皐, 終軍等 竝在左右注+吾, 音虞. 吾丘, 復姓, 或作虞丘. 壽王, 名. 東方, 復姓. 朔, 名. 枚‧終, 皆姓也.하여
[目] 이 천하에 문학과 재지才智를 간직한 선비들을 불러서 선발한 다음 그중에서 뛰어난 자들을 뽑아서 총애하니, 장조莊助, 주매신朱買臣, 오구수왕吾丘壽王(우구수왕), 사마상여司馬相如, 동방삭東方朔, 매고枚皐, 종군終軍 등이 모두 황제의 좌우에 있었다.注+는 음이 이다. 오구吾丘복성復姓이니, 혹 우구虞丘로도 쓴다. 수왕壽王은 이름이다. 동방東方복성復姓이고 은 이름이다. 은 모두 이다.
每令與大臣辯論 中外相應以義理之文하니 大臣數屈焉注+中, 謂天子之賓客, 若莊助之輩也. 外, 謂公卿大夫也. 數屈, 每屈服也. 이러라
은 매번 이들로 하여금 대신들과 변론하게 하였는데 (빈객賓客)과 (공경대부公卿大夫)가 의리를 밝힌 글을 가지고 서로 응대하니, 대신들이 자주 굴복하였다.注+은 천자의 빈객賓客을 이르니 장조莊助와 같은 무리들이요, 공경대부公卿大夫를 이른다. “수굴數屈”은 매번 굴복한 것이다.
이나 相如 特以辭賦得幸하고 朔皐 不根持論하여 好詼諧하니 上以俳優畜之注+不根持論, 謂論議委隨, 不能持正, 如樹木之無根柢也. 詼, 音恢, 謿戲也. 諧者, 和韻之言也. 俳, 音排, 雜戲也. 優, 音憂, 調戲也. 俳優, 卽伶人調戲者.로되
그러나 사마상여는 특별히 사부辭賦로써 총애를 받았고 동방삭과 매고는 논의가 나약해서 지론持論을 내세우지 않고 해학을 좋아하니, 이 배우(광대)로 대하였다.注+불근지론不根持論”은 논의가 나약해서 지론持論을 내세우지 않음을 이르니, 마치 나무에 뿌리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니 희롱하는 것이다. 음조音調가 조화로운 말이다. 이니 잡희雜戲(우스갯짓함)이고, 이니 조희調戲(희롱함)이다. 배우俳優는 바로 영인伶人(악인樂人)으로 희롱하는 자이다.
朔時直諫하여 有所補益注+通鑑時字下, 又有時字.이러라
그러나 동방삭은 때때로 직간直諫을 하여 도움이 되는 바가 있었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시자時字 아래에 또 자가 있다.
是歲 始爲微行注+若微賤者之所爲, 故曰微行.하여 與左右能騎射者 期諸殿門하여 常入南山下射獵하여 馳騖禾稼之地하니 民皆號呼罵詈注+終南山, 橫亘關中南面, 西起秦‧隴, 東徹藍田. 凡雍‧岐‧郿‧鄠‧長安‧萬年, 相去且八百里, 而連綿峙據其南者, 皆此一山也. 射, 食亦切. 騖, 音務. 直騁曰馳, 亂馳曰騖. 號, 音豪. 呼, 火故切.
[目] 이해에 이 처음 미행微行을 하여注+행색을 미천한 자처럼 꾸미기 때문에 미행微行이라 한 것이다. 좌우에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는 자들과 전문殿門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고 늘 남산南山 아래에 와서 활을 쏘아 사냥을 하면서 곡식을 가꾸는 농지農地에서 말을 달리니, 백성들이 모두 욕을 하였다.注+종남산終南山관중關中남면南面을 가로지르는데 서쪽으로 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남전藍田에 이르기까지 무릇 장안長安만년萬年과 서로 거리가 거의 800리이고, 그 남쪽에 연결되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모두 이 한 (남산南山)이다. (활을 쏘아 맞히다)은 식역食亦이다. (달리다)는 음이 이다. 곧장 달리는 것을 라 하고, 어지럽게 달리는 것을 라 한다. (부르짖다)는 음이 이다. (부르짖다)는 화고火故이다.
鄠杜令 欲執之어늘 示以乘輿物하여 乃得免注+鄠, 音戶. 班志 “鄠縣, 屬扶風. 杜縣, 屬京兆. 宣帝更爲杜陵.” 令, 猶長也. 乘輿物, 謂天子所用器物.하다
호현鄠縣두현杜縣현령縣令이 이들을 잡으려고 하자, 천자가 사용하는 물건을 보여주어 모면하였다.注+는 음이 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호현鄠縣부풍扶風에 속하고 두현杜縣경조京兆에 속했는데, 선제宣帝가 다시 두릉杜陵으로 고쳤다.” 하였다. 과 같다. “승여물乘輿物”은 천자가 쓰는 기물을 이른다.
又嘗夜至柏谷逆旅하니 主人 疑爲姦盜하여 聚少年하여 欲攻之注+柏谷, 塢名也. 逆旅, 客舍也.러니
또 한번은 밤에 백곡柏谷의 객사에 이르니, 주인이 간악한 도적이라고 의심하여 청년들을 모아서 공격하고자 하였다.注+백곡柏谷”은 마을 이름이고, “역려逆旅”는 객사客舍이다.
主人嫗 睹上狀貌而異之하여 止其翁호되 不聽이어늘 飮翁以酒하여 醉而縛之하니 少年 皆散走注+飮, 於禁切.
주인의 아내가 의 모습을 보고는 기이하게 여겨 남편을 말렸지만 듣지 않자, 남편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포박하니, 청년들이 모두 흩어져 도망하였다.注+(마시다)은 어금於禁이다.
乃私置更衣十二所注+更衣, 爲休息易衣之處.하고 又使吾丘壽王으로 除上林苑하여屬之南山注+除, 治也. 上林, 在渭水南, 地方三百里. 初漢嘗令民得入田, 今除治爲苑. 屬, 音燭, 連也. 苑東南至藍田‧宜春‧鼎湖‧御宿昆吾, 旁南山而西, 至長楊‧五柞, 北繞黃山, 瀕渭水而東.하다
뒤에 옷을 갈아입는 곳 12곳을 은밀히 설치하고注+경의更衣”는 휴식하고 옷을 갈아입는 곳이다. 오구수왕吾丘壽王으로 하여금 상림원上林苑을 다스려서 남산과 연결하게 하였다.注+는 다스림이다. 상림上林위수渭水의 남쪽에 있으니, 땅이 사방 300리이다. , 지금 그 지역을 정리하여 을 만든 것이다. 은 음이 이니, 연결한다는 뜻이다. 상림원 동남쪽으로는 남전藍田의춘宜春정호鼎湖어숙곤오御宿昆吾에 이르고, 남산 옆으로 서쪽으로 가면 장양궁長楊宮오작궁五柞宮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황산黃山이 둘러싸고 동쪽으로는 위수渭水에 접해 있다.
東方朔 進諫曰
[目] 동방삭東方朔이 나아가 간하였다.
夫南山 天下之阻 陸海之地也注+高平曰陸, 關中地高, 故稱之耳. 海者, 萬物所出, 言關中山川物産饒富. 是以謂之陸海也.
남산南山은 천하의 험한 곳이고, 평야와 바닷가처럼 물산이 풍요로운 곳입니다.注+높고 평탄한 곳을 ‘’이라 하니, 관중關中은 지대가 높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바다는 만물이 나오는 곳이니, 관중의 산천에는 물산이 풍요함을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 ‘육해陸海’라 이른 것이다.
山出玉石金銀銅鐵良材하여 百工所取給이요 萬民所卬足也注+卬, 古仰字. 卬足, 資仰給足也.니이다
산에서는 석재石材, , , 좋은 목재木材가 나와서 백공百工들이 취하여 공급받고 만민萬民이 의존하여 넉넉히 생활하는 곳입니다.注+고자古字이니, “앙족卬足”은 〈산에서〉 공급받고 〈물산이〉 풍족한 것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又有秔稻梨栗桑麻竹箭之饒하며 土宜薑芋하고 水多䵷魚하니 貧者得以給足하여 無饑寒之憂注+秔音庚. 有芒之穀, 總稱曰稻. 秔, 其不黏者也. 芋音于, 草名. 其葉, 似藕荷而長, 不圓, 其根, 大者爲芋魁, 其小者附麗甚衆, 白膩可食. 䵷, 與蛙同, 似蝦蟆而小, 長脚, 蓋人亦取食.
게다가 메벼와 벼, 배와 밤, 뽕과 삼, 왕대와 조릿대의 풍요로움이 있으며, 땅은 생강과 토란이 잘 자라고, 물에는 개구리와 물고기가 많으니, 가난한 자들이 이를 얻어 생활이 풍족해서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근심이 없습니다.注+(메벼)은 음이 이다. 까락이 있는 곡식을 총칭하여 ‘’라 하니, 은 그중에 끈기가 없는 메벼이다. (토란)는 음이 이니, 풀 이름이다. 그 잎은 연잎과 비슷한데 길고 둥글지 않으며, 그 뿌리는 큰 것은 밑동이 되고 작은 것은 붙어 있는 것이 매우 많은데 희고 매끄러워 먹을 수 있다. 와 같으니 하마蝦蟆(개구리)와 유사하나 작고 다리가 긴데, 사람들이 또한 잡아서 먹는다.
酆鄗之間 號爲土膏하니 其賈畮一金注+鄷, 通作豐. 鄗, 通作鎬. 班志 “豐水, 出鄠縣東南, 鎬水, 上承鎬池水於昆明池北, 皆在上林苑中.” 膏, 脂也, 喩肥饒. 賈讀曰價.이어늘 今規以爲苑하여 絶陂池水澤之利而取民膏腴之地하여 上乏國用하고 下奪農業하니 其不可一也注+陂, 音碑, 澤障曰陂.
그러므로 풍수酆水(풍수豐水)와 호수鄗水(호수鎬水) 사이의 지역은 ‘토양이 비옥한 곳’으로 이름나서, 1에 값이 인데,注+과 통용되고 와 통용된다.《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풍수豐水호현鄠縣의 동남쪽에서 발원하고, 호수鎬水는 위로 곤명지昆明池 북쪽에서 호지수鎬池水를 이어받으니, 모두 상림원上林苑 안에 있다.” 하였다. 는 기름진 것이니, 비옥함을 비유한다. (값)는 로 읽는다. 이제 구획하여 동산을 만들어서 수택水澤(호수湖水소택沼澤)의 이익을 끊고 백성들의 비옥한 땅을 차지하여 위로는 국가의 재정을 부족하게 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농업을 빼앗으니, 이것이 첫 번째 불가한 이유입니다.注+는 음이 이니, 못의 제방을 ‘’라 한다.
盛荊棘之林하고 大虎狼之虛하여 壞人冢墓하고 發人室廬하니 其不可二也注+虛, 讀曰墟, 下同.
가시나무 숲을 무성하게 기르고 호랑이와 이리의 서식지를 넓히고자 하여 사람의 무덤을 파괴하고 사람의 집을 들어낼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불가한 이유입니다.注+(구릉)는 로 읽으니, 아래도 같다.
垣而囿之하여 騎馳車騖 有深溝大渠
담을 쌓고 동산을 만들어서 말과 수레가 치달릴 적에 깊고 넓은 도랑이 있을 것입니다.
夫一日之樂 不足以危無隄之輿하니
하루 동안 사냥하는 즐거움이 어떠하기에 제어 장치가 없는 수레를 위태롭게 타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其不可三也注+輿, 乘輿也, 不敢斥天子, 故言輿也. 言一日田獵之樂能幾何, 足以此而危殆無所隄障之車輿哉. 一說 “隄, 限也. 無隄之輿, 謂天子富貴無隄限也.”니이다
이것이 세 번째 불가한 이유입니다.注+輿승여乘輿(수레)이니, 천자天子를 감히 지척하여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輿라고 한 것이다. 하루 동안 사냥의 즐거움이 어떠하기에 제어 장치(브레이크)가 없는 위태로운 수레를 타고 다닐 수 있느냐고 말한 것이다. 일설에, “는 한계이니, 무제지여無隄之輿천자天子부귀富貴가 한계가 없음을 이른다.” 하였다.
且殷作九市之宮而諸侯畔注+紂於宮中, 設九市.하고 靈王起章華之臺而楚民散注+楚靈王, 作章華之臺, 納亡人以實之, 卒有乾谿之禍.하고 秦興阿房之殿而天下亂하니이다
나라가 궁궐에 구시九市(아홉 개의 시장)를 짓자 제후들이 배반하였고,注+주왕紂王궁중宮中구시九市를 설치하였다.나라 영왕靈王장화대章華臺를 짓자 나라 백성들이 이산하였고,注+나라 영왕靈王장화대章華臺를 지어, 죄를 짓고 도망한 사람들을 받아들여 누대를 채웠는데, 끝내 가 있었다.나라가 아방궁阿房宮을 짓자 천하가 혼란하게 되었습니다.
糞土愚臣 逆盛意하니 罪當萬死로소이다
비천하고 어리석은 이 성대한 뜻을 거스르니, 죄가 만 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乃拜朔爲太中大夫給事中하고 賜黃金百斤이라이나 遂起上林苑注+給事中, 秦官, 漢因之. 掌侍從左右, 無正員加官也. 以日有事殿中, 故曰給事中.하니라
이 이에 동방삭을 태중대부太中大夫급사중給事中에 제수하고 황금 100근을 하사하였으나 끝내 상림원上林苑을 만들었다.注+급사중給事中나라의 관직이니, 나라가 그대로 따른 것이다. 임금 곁에서 시종하는 사람들을 관장하니 정원正員이 없는 이다. 매일 전중殿中에 사무가 있기 때문에 급사중給事中이라 하였다.
又好自擊熊豕野獸어늘 司馬相如諫曰
[目] 이 또 직접 곰과 돼지 같은 야수野獸들을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니,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다음과 같이 간하였다.
陛下好陵險阻, 射猛獸하시니 卒然遇逸材之獸 駭不存之地하여 犯屬車之淸塵하면 輿不及還轅이요 人不暇施巧注+不存, 猶言不慮也. 塵, 謂行而起塵也. 言淸者, 尊貴之意也. 轅, 車前曲木, 上勾衡者.리니
“폐하께서 험한 곳에 오르고 맹수를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시니, 갑자기 매우 힘이 센 짐승이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말을 놀라게 하여 성상聖上이 타신 수레를 덮치는 상황을 만난다면, 수레는 미처 수레의 끌채를 돌리지 못하고 사람은 기교를 부릴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注+부존不存”은 불려不慮(생각하지 못함)라는 말과 같다. 은 지나가면서 먼지가 일어남을 이른다. 이라고 말한 것은 높이고 귀하게 여기는 뜻이다. 은 수레 앞에 달린 굽은 나무이니, 위로 가로 댄 나무에 거는 것이다.
雖有烏獲逢蒙之技 不得用이요 枯木朽株 盡爲難矣注+逢, 音龐, 姓也. 難, 去聲, 患也.리이다
비록 오획烏獲봉몽逢蒙(방몽)의 기교가 있더라도 쓸 수 없어서 고목과 썩은 나무 그루터기조차 모두 환난이 될 것입니다.注+은 음이 이니 이다. 거성去聲이니 환난患難의 뜻이다.
雖萬全而無患이라도 然本非天子之所宜近也注+近, 去聲.니이다
비록 모든 것이 완전하여 환난이 없더라도 천자께서 가까이 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注+(가까이하다)은 거성去聲이다.
且夫淸道而後行하여 中路而馳라도 猶時有銜橛之變이어든
〈폐하께서 거둥하실 때〉 길을 깨끗이 치운 뒤에 행차하여 길 가운데로 달리더라도 오히려 때로 말의 재갈이 끊어지거나 구심목鉤心木이 빠지는 변고가 생길 수 있습니다.
況乎涉豐草, 騁丘虛하여 前有利獸之樂而內無存變之意하니 其爲害也 不難矣注+銜, 馬勒銜也. 橛, 鉅月切, 車之鉤心也. 銜橜之變, 言馬銜或斷, 鉤心或出, 則致傾敗而傷人也. 豐草, 茂草也.니이다
그런데 하물며 우거진 초목의 사이를 지나가고 구릉을 달려서 앞에는 짐승을 쫓는 즐거움이 있고 안에는 변고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없을 것이니, 그 폐해가 되기 쉬울 것입니다.注+은 말의 재갈이다. 거월鉅月이니 수레의 구심목鉤心木이다. “함궐지변銜橛之變”은 말의 재갈이 끊어지거나 구심목이 빠지면 위급한 상황이 벌어져서 사람을 상하게 함을 말한다. “풍초豐草”는 풀이 무성하다는 뜻이다.
夫輕萬乘之重하여 不以爲安注+句.하고 樂出萬有一危之塗하여 以爲娛하시니 竊爲陛下不取하노이다
만승천자萬乘天子지중至重함을 가볍게 여기시어 편안하게 거처할 것을 생각하지 않으시고,注+여기서 를 뗀다. 만의 하나라도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길로 나가 오락거리로 삼는 것을 즐거워하시니, 신은 삼가 폐하를 위해 좋게 여기지 않습니다.
蓋明者 遠見於未萌하고 而知者 避危於無形注+知, 讀曰智.하나니 禍固多藏於隱微而發於人之所忽者也
[目] 눈이 밝은 자는 일이 싹트기 전에 멀리 내다보고, 지혜로운 자는 일이 드러나기 전에 위험을 피하니,注+(지혜)는 로 읽는다. 재앙은 진실로 대부분 은미한 곳에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소홀히 여길 때에 나타납니다.
鄙諺 曰 家累千金이면 坐不垂堂이라하니 此言 雖小 可以喩大니이다
그러므로 속담에 ‘집안에 천금을 쌓아두면 〈기와가 떨어져 자신을 다치게 할까 걱정이 되어〉 처마 밑에 앉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 말이 비록 사소하나 큰 것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善之하다
이에 이 훌륭하게 여겼다.
역주
역주1 鼂錯(조조)가……일 : 漢나라 景帝 때 鼂錯는 제후왕의 힘이 강성해지자 “지금 吳나라의 영토를 떼어내도 반란하고 떼어내지 않더라도 또한 반란할 것인데, 封地를 떼어내면 반란은 빨라도 禍가 작고 떼어내지 않으면 반란은 더디나 화가 클 것입니다.” 하고, 제후들의 封地를 깎을 것을 청하였다. 이후 吳‧楚 등 7國이 반란을 일으켜서 조조의 목숨을 요구하자, 경제는 吳나라 정승 袁盎의 말에 따라 조조를 죽였는데, 이 일을 가리킨다.
역주2 河水 溢于平原 : “‘황하가 넘침[河溢]’을 쓴 것이 이때 처음 시작되었다.[書河溢 始此]” 《書法》
역주3 (源)[原] : 저본에는 ‘源’으로 되어 있으나, 綱에 의거하여 ‘原’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大饑 人相食 : “漢나라 초기에 ‘關中 지방에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關中饑人相食]’고 썼는데, 이때에 다시 보인다.[漢初書關中饑 人相食矣 於是再見]” 《書法》
역주5 秋七月……遂徙其衆於江淮間 : “孛는 병란이 일어날 象이다. 《綱目》에서 위에는 星孛를 쓰고 아래에는 군대를 동원하여 東甌를 구원한 일을 썼다. 비록 閩越에 일이 있었으나 쓰지 않았으니, 그 뜻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遂’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구원함은 옳지만 그 백성을 옮긴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孛 兵象也 綱目上書星孛 下書發兵救東甌 雖閩有事不書 意可見矣 然則書遂 何 救之 可也 徙其衆 過矣]” 《書法》
역주6 帝始爲微行 遂起上林苑 : “盧生이 秦나라 始皇帝에게 미행하도록 가르친 것을 〈《資治通鑑綱目》에서〉 쓰지 않았는데, 이때 처음 썼으니, 처음 미행한 것이 아닌데 ‘처음[始]’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武帝가 종신토록 미행했다는 말이다. 무제가 재위한 것이 50여 년이었는데, 卽位한 지 겨우 3년에 이와 같았으니, 모두 쓸 수가 없어서 그 처음만 썼을 뿐이다.[盧生敎始皇爲微行 不書 於是始書 非創也 則其書始 何 終身之辭也 帝在位五十餘年 甫三年 已若此矣 以爲不可勝書 書其始而已]” 《書法》
“武帝가 즉위한 지 오래지 않아 경거망동함이 이미 여기에서 보인다. 人君은 嫡子로서 帝位를 잇고 종묘를 받들어서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하여 출입할 적에 경호하고 辟除하며 길을 깨끗이 치운 뒤에 出行하니, 어찌 몸이 가벼움을 자랑하여 몸소 匹夫의 행실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柏谷의 주인이 武帝를 도둑이라고 여겨 공격하려던 계책이 행해졌다면 그 위태로움이 어찌 심하지 않겠는가. ‘처음 미행했다.’고 썼으면 종묘를 가볍게 여기고 神器(황제의 자리)를 하찮게 여겨서 萬乘의 존엄함을 버리고 人君의 체통을 잃은 것이 모두 여기에서 나타난다. 더구나 또 이것을 인하여 苑囿의 부역을 일으켰으니, 말할 것이 있겠는가.[武帝踐祚未久 輕擧妄動 已見於此 夫人君繼體承祧 所繫甚重 出警入蹕 淸道後行 烏可肆其輕佻 身爲匹夫之擧 向使柏谷主人之計得行 其危豈不甚哉 書始爲微行 則輕宗廟 䙝神器 棄萬乘之尊 失人君之體 具見於此 況又因之起苑囿之役乎]” 《發明》
역주7 처음에……하였는데 : 漢 高祖 때 相國 蕭何가 上林苑 가운데 空閒地를 백성들에게 농사를 짓도록 건의했다가 하옥된 내용이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3권 중 漢 高祖 12년조에 보인다.
역주8 1金 : 《史記》 〈平準書〉에 “秦나라는 1鎰(24냥)을 1金이라 하고, 漢나라는 1斤을 1金이라 하였다.” 하였고, 《漢書》 〈食貨志〉에 “秦나라는 金이 두께가 1寸, 무게가 1斤인 것을 鎰이라 하였는데, 漢나라는 周나라 제도를 회복하여 1斤을 1金이라 하였다.” 하였다.
역주9 乾谿의 禍 : 楚 靈王이 사치하여 乾谿에 章華臺를 건설하고는 죄인들이 장화대로 도망해 들어오면 잡지 못하게 하였으며, 자신이 죽인 사람의 아들에게 國都의 수비를 맡기기도 하였다. 그 후 영왕이 건계에 머물면서 사치를 부리자, 蔡나라 사람이 반란을 일으켜 국도를 함락시키자 영왕은 떠돌며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자살하였다. 《國語 楚語》
역주10 加官 : 본래의 官職 외에 다른 관직을 더해주는 것으로, 列侯 이하 郞中까지는 모두 散騎ㆍ中常侍를 가관으로 하였다. 《漢書 百官公卿表》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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