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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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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辰年(B.C. 221)
경진년(B.C. 221)
秦始皇帝二十六年이라
[綱] 나라 시황제始皇帝 26년이다.
王賁 襲齊한대 王建이어늘 遂滅齊하다
왕분王賁나라를 습격하였는데, 나라 왕 전건田建이 항복하자 마침내 나라를 멸망시켰다.
초楚나라 멸망시기도초楚나라 멸망시기도
齊君王后事秦謹하고 與諸侯信하고 齊亦東邊海上이라
[目] 처음에 나라의 나라 섬기기를 공경히 하고 제후들과 우호하기를 신뢰로써 하였으며, 나라는 또한 동쪽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日夜攻五國이어든 五國 各自救하니
나라가 밤낮으로 다섯 나라를 공격하자 다섯 나라는 각자 자신들을 구원하였다.
以故 王建 立四十餘年 不受兵이러라
이런 까닭으로 나라 왕 전건田建이 즉위한 지 40여 년 동안 병화病禍를 입지 않았다.
君王后且死 戒建曰 群臣之可用者某니라 取筆牘受言注+牘, 音讀, 木簡也.한대 后曰 已忘之矣로라
군왕후가 죽으려고 할 때에 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신하들 가운데 쓸 만한 사람은 아무개이다.” 하니, 왕이 붓과 목간木簡을 가져다 놓고 말을 들었는데,注+은 음이 이니, 목간木簡이다. 군왕후가 이미 “이름을 잊었다.”고 말하였다.
君王后死어늘 后勝 相齊注+后勝, 姓名, 勝, 音升.하야 與賓客多受秦間金하고 勸王朝秦하야 不修戰備하며 不助五國攻秦하니
군왕후가 죽자 후승后勝나라의 재상이 되어注+후승后勝은 성명이고, 은 음이 이다. 빈객들과 함께 나라 첩자의 금을 많이 받고 왕에게 나라에 조회하도록 권하고, 전쟁의 방비를 하지 않았으며, 다섯 나라가 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돕지 않았다.
秦以故 得滅五國하니라
나라가 이러한 까닭에 다섯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齊王 將入秦이러니 雍門司馬前하야注+雍, 於用切. 雍門, 齊城門也. 司馬主武事. 宮垣內, 兵衛所在, 四面皆有司馬. 所爲立王者 爲社稷邪注+爲, 去聲, 下同. 王曰 爲社稷이니라
[目] 나라 왕이 장차 나라로 조회하러 들어가려고 하였는데, 옹문雍門 사마司馬가 왕에게 나아가 아뢰기를注+(가려 막다)은 어용於用이다. 옹문雍門나라 성문城門이다. 사마司馬군사軍事를 주관한다. 사마문司馬門은 궁궐 담장 안의 위병衛兵이 있는 곳이니, 궁궐의 사면에 모두 사마司馬가 있다. “왕을 세우는 것은 사직을 위해서입니까?”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아래도 같다. 하니, 왕이 “사직을 위해서이다.”라고 답하였다.
司馬曰 爲社稷而立王인대 則王 何以去社稷而入秦 乃還이어늘
사마가 아뢰기를 “사직을 위해서 왕을 세웠는데, 왕께서는 어찌 사직을 버리고 나라로 들어가십니까?” 하니, 왕이 이에 돌아왔다.
卽墨大夫聞之하고 見王曰 齊地方數千里 帶甲 數百萬이요
즉묵대부卽墨大夫가 그 소식을 듣고 왕을 만나 아뢰기를 “나라는 영토가 사방 수천 리이고 군사가 수백만입니다.
今三晉大夫不便秦而在阿鄄之間者百數이니 收而與之數萬之衆하야 使收晉故地하면 卽臨晉之關 可入矣注+晉兵, 自東攻秦, 則入臨晉關. 正義 “臨晉關, 卽蒲津關.” 在馮翊臨晉縣, 因名焉.
지금 삼진三晉대부大夫로서 나라를 마땅하게 여기지 않아 사이에 와서 있는 자가 백여 명이니, 왕께서 그들을 거두어 보살피고 그들에게 수만의 군사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삼진三晉의 옛 땅을 수복하게 하신다면 바로 임진관臨晉關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注+삼진三晉의 병사를 수합하여 하동河東으로부터 나라를 공격하면 임진관臨晉關으로 들어간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임진관臨晉關은 바로 포진관蒲津關이다.”라고 하였는데, 풍익馮翊 임진현臨晉縣에 있으며, 이로 인해 명칭을 삼았다.
鄢郢大夫不欲爲秦而在城南下者百數注+城南下, 卽南城之下也. 南城, 齊威王使檀子所守者.이니 收而與之數萬之衆하야 使收楚故地하면 卽武關 可入矣注+楚攻秦, 自南陽入武關.리니
언영鄢郢대부大夫로서 나라의 신하가 되고 싶지 않아 남성南城의 아래에 와서 있는 자가 백여 명이니,注+. 왕께서 그들을 거두어 보살피고 그들에게 수만의 군사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나라의 옛 땅을 수복하게 하신다면 바로 무관武關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注+나라가 나라를 공격할 때에 남양南陽으로부터 무관武關으로 들어간다.
如此則齊威可立이며 秦國 可亡이니 豈特保其國家而已哉리오 不聽하다
이렇게 하면 나라의 위엄을 세울 수 있을 것이고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국가를 보전할 수 있을 뿐이겠습니까.” 하였는데, 왕이 말을 듣지 않았다.
至是하야 王賁 自燕南攻齊하야 猝入臨淄하니 民莫敢格者注+格, 止也, 鬪也.
[目] 이때에 이르러 왕분王賁나라 남쪽으로부터 나라를 공격하여 졸지에 임치臨淄에 진입하니, 감히 나라 군대에 맞서는 백성들이 없었다.注+은 막다는 뜻이고, 싸운다는 뜻이다.
遂降이어늘 遷之共하야 處之松栢之間하니 餓而死注+共, 音恭. 班志 “河內郡有共縣.”하다
전건田建이 마침내 나라에 항복하자, 나라가 그를 으로 옮겨 소나무와 잣나무 숲 사이에 살게 하였는데, 굶어 죽었다.注+은 음이 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하내군河內郡공현共縣이 있다.”고 하였다.
齊人 怨建 聽姦人賓客하야 不蚤與諸侯合從하야 以亡其國하야 歌之曰 松邪栢邪
나라 사람들이 전건이 간신과 빈객의 말만 듣고 제후들과 진작 합종하지 않아서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을 원망하여 노래 부르기를 “소나무여, 잣나무여!
住建共者客邪아하니 疾建用客之不詳也注+客, 謂陳馳也. 一說 “齊人疾王建聽信姦人賓客, 不與諸侯合從, 以亡其國, 不專指陳馳也.”러라
전건을 에 살게 한 것은 빈객이었다네.” 하였으니, 전건이 빈객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등용했던 것을 미워한 것이다.注+빈객은 진치陳馳를 말한다. 일설에는 “나라 사람들이 왕 전건田建이 간신과 빈객의 말을 믿고 따라서 제후와 합종하지 않아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을 미워한 것이지, 진치만을 가리킨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司馬公
[目]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從衡之說 雖反覆百端이나 然合從者 六國之利也
“합종과 연횡의 설이 비록 변화가 매우 많았지만, 합종하는 것이 여섯 나라에게 이익이었다.
曏使六國能以信義相結이면 則秦雖彊暴 烏得而亡之哉리오
만약 여섯 나라가 신의로써 서로 결집하였더라면, 나라가 비록 강포하였지만 어떻게 여섯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었겠는가.
蓋以三晉而攻齊楚 是自絶其根柢也注+柢, 音帝, 亦根也. 以齊楚而攻三晉 是自撤其藩蔽也注+撤, 音轍, 去也.
대개 삼진三晉으로 나라와 나라를 공격하게 한 것은 자신의 뿌리를 스스로 잘라버리는 짓이었고,注+는 음이 이니, 또한 뿌리이다.나라와 나라로 삼진三晉을 공격하게 한 것은 자신의 울타리를 스스로 철거하는 짓이었다.注+은 음이 이니, 제거한다는 뜻이다.
烏有撤其藩蔽以媚盜曰 盜將愛我而不攻이리오
어떻게 자신의 울타리를 철거하여 도적에게 아양을 떨면서 ‘도적이 나를 사랑해서 공격하지 않을 거야.’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豈不悖哉
어찌 사리에 어긋나지 않겠는가.”
初幷天下하야 更號皇帝하다
秦 始皇帝秦 始皇帝
[綱] 왕이 처음으로 천하를 겸병하여 호칭을 고쳐 황제라고 하였다.
初幷天下注+幷, 去聲.하야 自以爲德兼三皇하고 功過五帝라하야 乃更號曰皇帝注+三皇, 謂天皇‧地皇‧人皇. 五帝, 謂伏羲‧神農‧黃帝‧堯‧舜. 更, 平聲. 帝者, 天之一名, 所以名帝. 帝者, 諦也. 言天蕩然無心, 忘於物我, 公平通遠, 擧事審諦, 故謂之帝也. 帝號同天, 名所莫加, 而稱皇者, 以皇是美大之名, 言大於帝也.라하고 命爲制하고 令爲詔하고 自稱曰朕注+天子之言, 一曰制書, 二曰詔書. 制書, 謂其制度之命也. 詔, 告也. 朕, 我也. 古者, 上下共稱之, 至秦然後, 唯天子獨稱之.이라하고 追尊莊襄王하야 爲太上皇注+太上, 無上也, 極尊之稱. 始皇自號曰始皇帝, 故追尊其父爲太上皇. 不言帝, 非天子也.하다
[目] 왕이 처음으로 천하를 겸병하여注+(겸병하다)은 거성去聲이다.삼황三皇을 겸하고 오제五帝를 능가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여 이에 호칭을 고쳐 황제皇帝라고 하고,注+삼황三皇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을 말한다. 오제五帝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 을 말한다. (고치다)은 평성平聲이다. 라는 것은 하늘의 다른 이름이므로 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라는 것은 자세하다는 뜻이다. 하늘은 전혀 사심이 없어 객체와 주체를 잊으니 공평하게 멀리 통하고 일을 행함에 밝고 자세하므로 라고 이름을 말한다. 라는 호칭은 하늘과 같아서 명칭이 더할 나위가 없는데, 이라고 호칭한 것은 이 크고 아름다운 이름이어서 보다 큼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고, 라고 하고, 스스로 칭하기를 이라고 하고,注+천자의 말은 첫째 제서制書라 하고 둘째 조서詔書라고 한다. 제서制書는 제도에 대한 명령을 말한다. 는 알린다는 뜻이다. 은 나이니, 옛날에 상하가 모두 호칭하는 말이었는데, 나라 이후로 천자만이 홀로 호칭하였다.장양왕莊襄王을 추존하여 태상황太上皇으로 삼았다.注+태상太上은 위가 없다는 뜻이니, 가장 높은 호칭이다. 시황始皇이 스스로 시황제始皇帝라고 호칭하였으므로 자신의 부친을 추존하여 태상황太上皇으로 삼은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천자가 아니다.
胡氏曰
[目] 호씨胡氏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古之聖人 應時稱號하시니 非帝貶於皇이며 王貶於帝也어늘
“옛 성인은 시세에 맞게 호칭하였으니, 보다 못한 것이 아니고 보다 못한 것이 아니었다.
後世不知此義하야 遂以皇帝自居而以王封其臣子하니 失之甚矣니라
후세에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하여 마침내 황제皇帝로 자처하고 으로 신하를 봉하였으니, 매우 잘못한 일이다.
王之爲名 繼天撫世之謂
이라는 명칭은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曾是而可使臣子稱之乎
본래 이러한데, 신하로 하여금 왕을 칭하게 할 수 있겠는가.
孔子作春秋 尊周立號하야 繫王於天하시니 其禮隆矣
공자孔子께서 《춘추春秋》를 지으시며 나라를 높여 호칭을 제정하여 에다 붙여서 〈천왕天王이라〉 쓰셨으니, 그 예법이 성대한 것이었다.
有天下者以是爲法하야 而列爵 自公以降이면 則名正言順하야 百世以俟而不惑矣리라
천하를 소유한 자가 이것으로 법을 삼아 작위를 나눔에 으로부터 〈으로〉 내려가게 하면 명칭이 바르고 말이 이치에 맞게 되어 백세 이후에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의혹하지 않을 것이다.”
除諡法하다
[綱] 시법諡法을 없앴다.
制曰 死而以行爲諡 則是 子議父 臣議君也 甚無謂注+行, 去聲. 諡, 音示. 周公作諡法, 緣行之美惡以立諡. 無謂者, 失於事宜, 不可以訓.하니
[目] 제서制書를 내리기를 “죽고 나서 행적으로 시호를 정하면 이것은 자식이 아비를 의논(논평)하는 것이고 신하가 군주를 의논하는 것이니 어이없는 일이다.注+(행적)은 거성去聲이다. (시호)는 음이 이다. 주공周公시법諡法을 지어 행적의 선악에 따라 시호諡號를 정하였다. “무위無謂”는 사리에 어긋나 교훈으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自今以來 除諡法하야 朕爲始皇帝하고 後世以計數하야 二世三世至于萬世하야 傳之無窮注+數, 色主切.하라
지금 이후로 시법諡法을 없애 시황제始皇帝로 하고, 후세는 차례로 세어 이세二世, 삼세三世에서 만세萬世에 이르도록 전하여 다함이 없게 하라.”注+(차례)는 색주色主이다. 하였다.
胡氏曰
[目] 호씨胡氏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子議父臣議君而非其禮 罪不容誅矣어니와 考德行之實하야 而天以誄之 臣子亦安得而私之哉注+禮記 “賤不誄貴, 幼不誄長, 禮也. 惟天子稱天以誄之.” 註 “誄, 累也. 累列生時行迹, 讀之以作諡. 諡當由尊者成, 天子稱天, 以其無尊焉.” 在天子上者, 唯天耳.리오
“자식이 아비를 의논하고 신하가 군주를 의논하면서 예법대로 하지 않는다면 죄가 죽음을 당해도 용서될 수 없는 것이고, 덕행의 실제를 살펴서 하늘을 칭탁하여 시호를 지었으니 신하가 또한 어찌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注+예기禮記》 〈증자문曾子問〉에 “천한 자는 귀한 자의 시호諡號를 짓지 않고 어린 자는 어른의 시호를 짓지 않는 것이 예이다. 천자天子에 대해서는 하늘을 칭탁하여 시호를 지어준다.”라고 하였는데, 그 에 “는 모은다는 뜻이니, 살았을 때의 행적을 모아 나열하고 그것을 읽고서 시호를 짓는다. 시호는 마땅히 존귀한 자가 지은 것을 따라야 하는데, 천자의 경우에 하늘을 칭탁하는 것은 천자보다 높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천자의 위에 있는 것은 오직 하늘뿐이다.
然後世諡法 雖存이나 而公道不暢하야 爲臣子者往往加美諡於君親하야 使死受所不當得하야 取世訕笑하니 則又不若不諡之爲愈矣니라
그러나 후세에 시법諡法이 비록 남아 있었으나, 공도公道가 펴지지 못하여 신하된 자들이 왕왕 군주에게 좋은 시호를 올려서 죽은 자로 하여금 얻어서는 안 되는 시호諡號를 받게 함으로써 세상의 질책과 비웃음을 사게 되었으니, 또한 시호諡號를 짓지 않는 것이 나음만 못하다.”
定爲水德하고 以十月爲歲首하다
[綱] 수덕水德으로 정하고, 10월을 세수歲首로 삼았다.
齊人鄒衍 論著終始五德之運이러니
[目] 처음에 나라 추연鄒衍오덕五德이 끝나고 시작하는 을 논하여 저술하였다.
始皇 采用其說하야 以爲周得火德이러니 秦代周라하야
시황始皇이 그의 설을 채용하여 “나라가 화덕火德으로 천하를 얻었는데, 나라가 나라를 대신하였다.”고 하여
從所不勝하야 爲水德注+勝, 申證切. 所謂終始五德之運者, 伏義以木德王. 木生火, 故神農以火德王. 火生土, 故黃帝以土德王. 土生金, 故少昊以金德王. 金生水, 故顓頊以水德王. 水生木, 故帝嚳又以木德王. 木又生火, 故帝堯以火德王. 火又生土, 故帝舜以土德王. 土又生金, 故夏以金德王. 金又生水, 故商以水德王. 水又生木, 故周以木德王. 此五德之終而復始也. 鄒衍以爲周得火德, 蓋以火流王屋爲周受命之符, 且服色尙赤故也. 就衍之說以爲終始, 秦當以土爲行. 今始皇以水勝火, 自以水爲行, 所謂推五勝也. 漢初以土爲行, 蓋亦祖衍之說也.하고 始改年注+句.하야 朝賀 皆自十月朔注+夏以建寅之月爲歲首, 殷以建丑之月爲歲首, 周以建子之月爲歲首, 今始皇以建亥之月爲歲首, 是改年也.하고 衣服旌旄節旗 皆尙黑하고 數以六爲紀注+旌, 分析鳥羽爲之, 所以精進士卒也. 旄, 幢也, 以旄牛尾箸竿頭. 節, 猶信也, 行者所執之信也. 熊虎爲旗, 與民期之於下也. 水屬北方, 故尙黑. 水成數六, 故以六爲紀. 如六寸爲符, 六尺爲步之類.하고
화덕火德이 이기지 못하는 것을 따라서 나라는 수덕水德으로 정하고,注+(이기다)은 신증申證이다. 이른바 오덕五德이 끝나고 시작하는 이라는 것은 복희伏羲목덕木德으로 왕이 되었고, 를 낳으므로 신농神農화덕火德으로 왕이 되었고, 를 낳으므로 황제黃帝토덕土德으로 왕이 되었고, 을 낳으므로 소호少昊금덕金德으로 왕이 되었고, 를 낳으므로 전욱顓頊수덕水德으로 왕이 되었고, 을 낳으므로 제곡帝嚳은 다시 목덕木德으로 왕이 되었고, 은 다시 를 낳으므로 제요帝堯화덕火德으로 왕이 되었고, 는 다시 를 낳으므로 제순帝舜토덕土德으로 왕이 되었고, 는 다시 을 낳으므로 나라는 금덕金德으로 왕이 되었고, 은 다시 를 낳으므로 나라는 수덕水德으로 왕이 되었고, 는 다시 을 낳으므로 나라는 목덕木德으로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덕五德이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추연鄒衍나라가 화덕火德을 얻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는 나라가 천명을 받은 증거로 삼았고, 또 복색에 붉은색을 숭상하였기 때문이다. 추연의 설을 가지고 시작과 끝을 삼는다면 나라는 마땅히 로써 을 삼아야 하는데, 지금 시황始皇를 이긴다 하여 스스로 로써 을 삼았으니, 이른바 “오행五行이 서로 이기는 것을 미루었다.”라는 것이다. 나라 초에 로써 을 삼았으니, 이 또한 추연의 설을 근거한 것이다.
처음으로 해를 바꾸어注+여기서 를 뗀다. 조회와 하례를 모두 10월 초하루부터 시작하고注+나라는 인 음력 1월을 세수歲首로 삼고, 나라는 건축월建丑月인 음력 12월을 세수로 삼고, 나라는 건자월建子月인 음력 11월을 세수로 삼았는데, 지금 시황始皇건해월建亥月인 음력 10월을 세수로 삼았으니, 이것이 해를 바꾸는 것이다.의복衣服, 정모旌旄, 절기節旗를 모두 검은색을 숭상하고, 숫자는 6을 단위로 삼았다.注+은 새 깃털을 갈라서 만드니, 사졸을 고무시키는 물건이다. 는 깃발이니, 들소의 꼬리를 깃대 끝에 매단 것이다. 증빙證憑과 같다. 길을 가는 자가 가지고 가는 증빙이다. 곰과 호랑이를 그린 것이 이니, 백성들과 그 아래에서 기약하는 것이다. 북방北方에 속하므로 검은색을 숭상한다. 성수成數는 6이므로 6을 단위로 삼았으니, 예를 들면 6촌을 1부로 하고 6척을 1보로 한 것 따위이다.
以爲水德之始 剛毅戾深이라하야 事皆決於法하고 刻削毋仁恩和義然後 合於五德之數注+水主陰, 陰主刑殺, 故急法刻削.라하야 於是 急於法하고 久不赦하다
과감하고 각박한 정치를 행하여야 한다고 하여 일이 모두 법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가혹하고 사랑과 관용이 없는 정치를 행한 뒤에야 오덕五德에 부합한다고 하여注+을 주로 하고 은 형벌로 죽이는 것을 주로 하므로 법을 엄격히 적용하여 가혹하게 다스린다. 이에 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오랫동안 사면하지 않았다.
分天下爲三十六郡하고 銷兵器一法度하고 徙豪傑於咸陽하다
[綱] 천하를 나누어 36개 으로 만들고, 병기를 녹이고, 법도法度를 통일하고, 호걸(재산이 많고 세력이 큰 사람)들을 함양咸陽으로 이주시켰다.
丞相綰等 言燕齊荊 地遠하니 請立諸子爲王以塡之注+綰, 烏板切. 綰, 姓王. 塡, 通作鎭.하야지이다 始皇 下其議한대
[目] 승상 왕관王綰 등이 아뢰기를 “나라, 나라, 나라(나라)는 거리가 머니, 아들들을 왕으로 세워 진무하소서.”注+오판烏板이다. 은 성이 이다. (진정하다)은 과 통용하여 쓰인다. 하니, 시황이 이 일을 논의에 부쳤다.
廷尉斯曰注+廷尉, 官名. 聽獄, 必質諸朝廷, 與衆共之. 兵獄同制, 故稱廷尉. 一說 “廷, 平也, 治獄貴平, 故以爲號.” 斯, 李斯也. 周封子弟同姓 甚衆이나 然後屬 疏遠하야 相攻擊如仇讐호대 天子弗能禁하니
정위廷尉 이사李斯가 아뢰기를注+정위廷尉는 관직명이다. 옥사獄事를 다스릴 때에 반드시 조정에 물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다스린다. 군사軍事옥사獄事는 제도를 함께하므로 정위廷尉라 부른다. 일설에 “은 공평하다는 뜻이니, 옥사를 다스림에 공평함을 귀하게 여기므로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라고 한다. 이사李斯이다.나라가 봉한 자제子弟동성同姓들이 매우 많았으나, 후대의 친속이 소원해져서 서로 원수처럼 공격하였는데, 천자가 막을 수 없었습니다.
今海內賴陛下神靈하야 一統하야 皆爲郡縣하니
지금 사해 안이 폐하의 신령스러움에 힘입어 통일되어 모두 군현郡縣이 되었습니다.
諸子功臣 以公稅賦 重賞賜之 甚足이요 易制 天下無異意 則安寧之術也
아들과 공신에게 공가公家부세賦稅로 후하게 상을 하사하시면 매우 풍족해지고 제어하기 쉬울 것이며, 천하 사람들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게 되면, 이것이 편안할 수 있는 방책입니다.
置諸侯不便하니이다
제후를 두는 것은 불편합니다.” 하였다.
始皇曰 天下共苦戰鬪不休 以有侯王이니
시황始皇이 말하기를 “천하가 함께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고통을 겪었던 것은 후왕侯王이 있었기 때문이다.
賴宗廟하야 天下初定이어늘 又復立國이면 樹兵也 而求其寧息 豈不難哉리오
종묘의 보우에 힘입어 천하가 처음 평정되었는데, 다시 제후의 나라를 세우면 이것은 전란을 야기하는 것이니, 편안히 쉬기를 바라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겠느냐.
廷尉議是注+樹, 立也.라하고
정위廷尉의 의론이 옳다.”注+는 세운다는 뜻이다. 하고는
分天下하야 爲三十六郡하고 郡置守尉監注+三川‧河東‧南陽‧南郡‧九江‧鄣郡‧會稽‧潁川‧碭郡‧泗水‧薛郡‧東郡‧琅邪‧齊郡‧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代郡‧鉅鹿‧邯鄲‧上黨‧太原‧雲中‧九原‧雁門‧上郡‧隴西‧北地‧漢中‧巴郡‧蜀郡‧黔中‧長沙, 凡三十五郡, 與內史爲三十六郡, 守‧尉‧監, 皆官名. 郡守掌治其郡, 郡尉掌佐守典武職甲卒, 監御史掌監郡. 尉監之監, 去聲. 監郡之監, 平聲.하다
천하를 나누어 36개 으로 만들고 마다 , , 을 두었고,注+삼천군, 하동군, 남양군, 남군, 구강군, 장군, 회계군, 영천군, 탕군, 사수군, 설군, 동군, 낭야군, 제군,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 대군, 거록군, 한단군, 상당군, 태원군, 운중군, 구원군, 안문군, 상군, 농서군, 북지군, 한중군, 파군, 촉군, 검중군, 장사군이니 모두 35개 군이고, 와 더불어 36개 이다. , , 은 모두 관직명이다. 군수郡守는 해당 군을 다스리는 일을 맡는다. 군위郡尉는 군수를 도와 무관武官병사兵士를 담당하는 일을 맡는다. 감어사監御史는 군을 감시하는 일을 맡는다. 위감尉監(관직명)은 거성去聲이고, 감군監郡(감시하다)은 평성平聲이다.
收天下兵하야 銷以爲鐘鐻金人하야 置宮庭中注+鐻, 音巨, 通作虡. 所以懸鐘, 橫曰筍, 植曰虡. 是年有大人十二見於臨洮, 身長五丈, 足履六尺, 皆夷狄服. 始皇以爲瑞, 乃銷兵器, 鑄爲金人象之. 各重千石, 坐高二丈, 號曰翁仲.하고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 녹여 종과 종을 매다는 틀, 금인金人을 만들어 궁정 가운데 두었고,注+는 음이 이니, 와 통용하여 쓰인다. 종을 거는 것이니, 가로로 된 틀을 이라 하고 세로로 된 틀을 라고 한다. 이해에 거인巨人 12명이 임조臨洮에 나타났는데, 신장이 5이고 발이 6이었으며, 모두 오랑캐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 시황始皇이 길조로 여겨 이에 병기를 녹여 금인金人을 주조하여 그 모양을 본떴다. 각각의 무게가 천 석이고, 앉은 높이가 2이었는데, 옹중翁仲이라고 불렀다.
一法度衡石丈尺注+百二十斤爲石, 十尺爲丈, 十寸爲尺.하고 徙天下豪傑於咸陽十二萬戶注+豪桀, 謂豪富桀黠之士.하다
을 통일하였으며,注+120이 1이고, 10이 1이며, 10이 1이다. 천하의 호걸 12만 호를 함양咸陽으로 이주시켰다.注+호걸豪桀은 세력과 돈이 있고 사나우면서 교활한 사람을 말한다.
胡氏曰注+胡氏, 名宏, 寅之弟也.
[目] 호씨胡氏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注+.
聖人理天下 以萬物各得其所 爲極至하시니
성인聖人이 천하를 다스림에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찾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다.
封建也者 帝王所以順天理承天心公天下之大端大本也 郡縣也者 霸世暴主之所以縱人慾悖天道私一身之大孽大賊也
봉건封建이라는 것은 제왕帝王천리天理를 따르고 천심天心을 받들어서 천하를 공평하게 하는 큰 단서요 큰 근본이고, 군현郡縣이라는 것은 세상을 제패한 포악한 군주가 인욕人慾을 부리고 천리天理를 어겨서 일신만을 이롭게 하는 큰 재앙이고 큰 도적이다.
分天下有德有功者以地 而不敢以天下自私
천하를 나누어 이 있고 이 있는 자에게 땅을 주어야지, 감히 천하를 개인의 소유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於是 有百里七十里五十里不能五十里邦國之制焉注+記王制 “公侯田方百里, 伯七十里, 子男五十里. 不能五十里者, 不合於天子, 附於諸侯曰附庸.”하며 於是 有君朝卿大聘大夫小聘王巡守侯述職之禮樂法度焉注+公羊傳注 “諸侯卽位, 比年使大夫小聘, 三年使上卿大聘, 四年又使大夫小聘, 五年一朝, 因助祭以述職.” 記王制 “天子五年一巡守.”하며 於是 有千雉百雉三之一五之一高城深池焉注+左傳 “大都不過參國之一, 中五之一, 小九之一.” 註 “方丈曰堵, 三堵曰雉. 一雉, 長三丈高一丈. 天子千雉, 侯‧伯三百雉. 大都三分國城之一, 不過百雉, 中都五分之一, 不過六十雉, 小都九分之一, 不過三十三雉.”하며 於是 有井邑丘甸縣都之夫數焉注+禮地官小司徒 “九夫爲井, 四井爲邑, 四邑爲丘, 四丘爲甸, 四甸爲縣, 四縣爲都, 以任地事而令貢賦, 凡稅斂之事.” 群書考索曰 “周禮所謂夫家之數者, 一夫受田百畝, 家出一夫而巳. 其合居者, 亦惟計其丁壯而用之, 與別居者無異.”하며 於是 有十乘百乘千乘萬乘之車數焉注+禮地官小司徒註 “司馬法曰 ‘畝百爲夫, 夫三爲屋, 屋三爲井, 井十爲通, 通十爲成, 革車一乘. 十成爲終, 革車十乘. 十終爲同, 革車百乘.’” 諸侯大國, 一封三百六十六里, 兵車千乘. 天子畿內方千里, 兵車萬乘.하며 於是 有伍兩卒旅師軍之制焉注+禮地官小司徒 “五人爲伍, 五伍爲兩, 四兩爲卒, 五卒爲旅, 五旅爲師, 五師爲軍. 以起軍旅, 以作田役.”하며 於是 有鄕大夫司徒樂正取士之法焉注+禮 “鄕大夫受敎法于司徒, 退而頒之于其鄕吏. 三年則大比, 考其德行道藝, 而興賢者能者.” 記王制 “命鄕論秀士, 升之司徒曰選士. 司徒論選士之秀者, 升之學曰俊士. 樂正順先王詩書禮樂以造士.”하니라
그러므로 100리, 70리, 50리, 50리가 못 되는 방국邦國의 제도가 있으며,注+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녹전祿田이 사방 100리이고, 은 70리이고, 은 50리이다. 50리가 못 되는 자는 천자에 직접 소속되지 않고 제후에 소속되는데, 부용附庸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임금은 조회하고 대빙大聘하고 대부大夫소빙小聘하고 하고 제후諸侯하는 예악과 법도가 있으며,注+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제후가 즉위하여 매년 대부大夫를 천자에게 보내 소빙小聘을 하고, 3년마다 상경上卿을 보내 대빙大聘을 하고, 4년마다 다시 대부大夫를 보내 소빙小聘하고, 5년마다 1번 조회하는데, 제사를 돕는 일을 통해 술직述職한다.”고 하였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천자는 5년에 한 번 순수巡守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1,000, 100, 도성 1/3, 1/5 높이의 높은 성곽과 깊은 해자가 있으며,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대도大都국도國都의 3분의 1, 중도中都국도國都의 5분의 1, 소도小都국도國都의 9분의 1을 넘지 못한다.”고 하였고, 그 주에 “사방 1라 하고, 3도를 라 하는데, 1치는 길이가 3장이고 높이가 1장이다. 천자의 성은 1,000치이고, 후와 백의 성은 300치이다. 대도大都국성國城의 3분의 1이니 100치를 넘을 수 없고, 중도中都국성國城의 5분의 1이니 60치를 넘을 수 없고, 소도小都는 9분의 1이니 33치를 넘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 , , , , 부수夫數(세대수)가 있으며,注+주례周禮》 〈지관地官 소사도小司徒〉에 “9가 1이 되고, 4정이 1이 되고, 4읍이 1가 되고, 4구가 1이 되고, 4전이 1이 되고, 4현이 1가 되는데, 농사를 맡겨 공물과 부역을 내게 하고 모든 세금과 관련된 일을 담당한다.”고 하였다. 에 “《주례周禮》에서 말한 부가夫家의 수라는 것은 1가 100의 토지를 받으니, 한 집에서 1를 낼 뿐이다. 같이 사는 경우에는 또한 단지 장정壯丁의 수를 계산하여 쓰니, 따로 사는 경우와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십승十乘, 백승百乘, 천승千乘, 만승萬乘거수車數가 있으며,注+주례周禮》 〈지관地官 소사도小司徒〉의 주에 “《사마법司馬法》에 이르기를 ‘100가 1가 되고 3부가 1이 되고, 3옥이 1이 되고, 10정이 1이 된다. 10통이 1이 되는데, 1성에는 혁거革車 1이 난다. 10성이 1이 되는데, 혁거 10승이 난다. 10종이 1이 되는데, 혁거 100승이 난다.’ 하였다.”고 하였다. 제후로서 큰 나라는 하나의 봉지가 366리이니, 병거 1,000승이 난다. 천자의 기내는 사방 1,000리이니, 병거 10,000승이 난다. 그러므로 , , , , , 의 제도가 있으며,注+주례周禮》 〈지관地官 소사도小司徒〉에 “5이 1가 되고, 5오가 1이 되고, 4냥이 1이 되고, 5졸이 1가 되고, 5려가 1가 되고, 5사가 1이 된다. 이들로써 군대를 일으키고, 이들로써 사냥 때에 부역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향대부鄕大夫, 사도司徒, 악정樂正이 선비를 취하는 법이 있는 것이다.注+주례周禮》 〈지관地官 소사도小司徒〉에 “향대부鄕大夫사도司徒에게 교법을 받고 물러나와 그 향리에게 반포한다. 3년이 되면 시험을 시행하여 덕행과 학문을 살펴 어진 자와 재능이 있는 자를 추천한다.”고 하였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향관鄕官에게 우수한 선비를 논하여 사도司徒에게 올리게 하니 이를 선사選士라고 부른다. 사도는 선사 가운데 우수한 자를 시험하여 국학國學에 올리게 하니 이를 준사俊士라고 부른다. 악정樂正은 선왕의 , , , 에 따라 선비를 성취시킨다.”고 하였다.
邦國之制廢而郡縣之制作矣 郡縣之制作而世襲之制亡矣 世襲之制亡而數易之弊生矣 數易之弊生而民無定志矣니라
방국邦國의 제도가 폐지되자 군현郡縣의 제도가 만들어졌고, 군현의 제도가 만들어지자 세습世襲의 제도가 없어졌으며, 세습의 제도가 없어지자 수령守令을 자주 바꾸는 폐단이 발생했고, 수령을 자주 바꾸는 폐단이 발생하자 백성들에게 안정된 마음이 없어졌다.
巡守述職之禮廢則上下之情 不通하야 考文案而不究事實하며 信文案而不信仁賢이라 其弊有不可勝言者矣
순수巡守술직述職의 예가 없어지니, 윗사람과 아래 사람의 마음이 통하지 않게 되어 문서만 살필 뿐 사실을 구명하지 않게 되었으며, 문서만 믿을 뿐 어진 사람도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니, 그 폐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게 되었다.
城池之制廢而禁禦暴客威服四夷之法 亡矣 夫家之法 廢而民數 不可詳矣 民數 不可詳而車乘 不可出矣 車乘 不可出而軍師不隱於農矣 軍師不隱於農하야 坐食者衆而公私困窮矣니라
성곽과 해자의 제도가 없어지자 사나운 도적을 막고 사방의 오랑캐를 굴복시킬 방법이 없어졌고, 부가夫家의 법이 없어지자 백성의 수를 자세히 알 수 없어졌고, 백성의 수를 자세히 알 수 없게 되자 병거兵車를 낼 수 없게 되었고, 병거를 낼 수 없게 되자 , 군사가 농사에 숨어 있을 수 없게 되자 일하지 않고 먹는 자가 많아져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곤궁해졌다.
世儒不知王政之本하야 反以亡秦爲可法이라하고 所謂明君良臣者 亦未免以天下自私하야 無意於裁成輔相하야 使萬物各得其所하니 所以歷千五百餘歲로대 未有能復之者也니라
세상의 선비들은 왕도정치王道政治의 근본을 몰라서 도리어 망한 나라를 본받을 만한 것으로 여기고, 이른바 명철한 군주와 어진 신하도 천하를 개인의 소유로 만드는 것을 면치 못하여, 하여 만물로 하여금 각기 제자리를 찾게 하는 것에는 뜻을 두지 않으니, 1,500여 년 동안에 이것을 회복한 자가 있지 않았다.
聖人制四海之命하사 法天而不私하며 盡制而不曲防하야 分天下之地以爲萬國하야 而擧英才共焉하시니
성인聖人이 사해의 명을 제어하여 하늘을 본받고 사사롭게 하지 못하게 하며, 제도를 다하고 천하의 땅을 만 개의 제후국으로 나누어 영재英才를 등용하여 함께 다스렸다.
非後世擅天下者以大制小하며 以彊制弱之謀也 誠盡制而已矣니라
이는 후세에 천하를 독점한 자가 큼으로써 작음을 제어하고 강함으로써 약함을 제어하는 계책이 아니라, 진실로 제도를 다하였던 것이다.
是以 虞夏商周傳於長久 皆千餘載하니 論興廢則均有焉이로대 語絶滅則至暴秦郡縣天下然後極也니라
그러므로 나라, 나라, 나라, 나라가 장구하게 왕위를 전하여 모두 천여 년을 누렸으니, 성쇠盛衰를 논한다면 모두 논할 만한 점이 있으나, 끊어져 없어진 것으로 말한다면 포악한 나라가 천하를 군현郡縣으로 만든 뒤에 극에 달하였던 것이다.
自秦滅先王之制 海內蕩然하야 無有根本之固하니 有今世王天下而繼世無置錐之地者하며 有今年貴爲天子而明年欲爲匹夫不可得者하니
나라가 선왕先王의 제도를 없앤 이후로 사해 안에 근본의 견고함이 깡그리 없어졌으니, 당대에는 천하에서 왕 노릇을 하다가 다음 세대에는 송곳을 꽂을 땅조차 없는 자가 있었으며, 당년에는 천자天子가 되었다가 다음 해에는 필부匹夫가 되고자 해도 될 수 없었던 자가 있었다.
天子 尙然이온 況其下者乎
천자도 오히려 그러한데, 그 아래에 있는 자들은 어떠하겠는가.
物有其根則常而靜하고 安而久 常靜安久則理得其終하며 物遂其性하나니
사물은 근본이 있으면 꾸준하고 조용하며 편안하고 오래가니, 꾸준하고 조용하며 편안하고 오래가면 이치는 규명되고 사물은 본성에 순응하게 된다.
封建者 政之有根者也
봉건封建이라는 것은 근본이 있는 정치이다.
故上下辨하며 民志定하며 敎化行하며 風俗美
그러므로 상하가 분별되고 백성의 마음이 안정되며, 교화가 행해지고 풍속이 아름다워진다.
理之易治하고 亂之難亡하며 扶之易興하고 亡之難滅하나니
다스리면 쉽게 다스려지고 혼란시켜도 망하기 어려우며, 도와주면 쉽게 일어나고 없애려 해도 없애기 어렵다.
郡縣 反是니라
군현郡縣은 이것과 반대이다.”
築宮咸陽北阪上하다
[綱] 함양咸陽의 북쪽 산비탈 위에 궁궐을 지었다.
諸廟及章臺上林 皆在渭南注+上林, 苑名.이러니 及破諸侯하얀 寫放其宮室하야 作之於咸陽北阪上하야
[目] 처음에 여러 종묘와 장대궁章臺宮, 상림원上林苑이 모두 위남渭南에 있었는데,注+상림上林은 정원의 이름이다. 제후들을 격파했을 때에 그들의 궁실을 모방하여 함양咸陽의 북쪽 산비탈 위에 궁궐을 지었다.
南臨渭注+寫, 摹畫也. 放, 讀曰倣, 效也. 咸陽北阪, 漢武帝別名渭城阪, 卽九嵕諸山麓也.하니 自雍門以東으로 殿屋複道周閣 相屬注+三輔黃圖曰 “長安城西出北頭第一門曰雍門, 本名西城門.” 但長安本秦離宮, 秦之咸陽, 則漢扶風之渭城也. 渭城與長安相去雖不遠, 然秦時長安未有十二門也. 豈作史者, 因漢之雍門而書之歟. 複道, 閣道也. 上下有道, 故謂之複. 考異 “漢書曰 ‘複道則築起爲道, 不與民庶相雜, 天子自行其上. 有私路處, 則作穴竇如城門, 百姓在彼中往來也.’” 周閣, 周馳架木爲棚而行, 名曰閣道.이러라
남쪽으로 위수渭水를 내려다보고,注+는 베껴 그리는 것이다. 으로 읽으니, 본받는다는 뜻이다. 함양咸陽 북쪽 산비탈은 나라 무제武帝위성판渭城阪이라고 따로 이름을 붙인 곳이니, 바로 구종산九嵕山 여러 봉우리의 기슭이다.옹문雍門으로부터 동쪽으로 전각殿閣, 복도複道, 주각周閣이 서로 이어졌다.注+삼보황도三輔黃圖》에 이르기를 “장안성長安城에서 서쪽으로 나가 북쪽 머리의 첫 번째 문이 옹문雍門인데, 본래의 이름은 서성문西城門이다.” 하였다. 그런데 장안長安은 본래 나라의 이궁離宮이고, 나라의 함양咸陽나라 부풍扶風위성渭城이다. 위성渭城장안長安은 거리가 비록 멀지 않지만, 나라 때에 장안에는 12문이 없었으니, 아마도 역사를 기술한 사람이 나라의 옹문雍門을 착각하고 기록한 것인 듯하다.
복도複道각도閣道이다. 위와 아래에 길이 있어서 이라고 하였다. 《자치통감고이資治通鑑考異》에 “《한서漢書》에 이르기를 ‘복도複道는 높다랗게 길을 만들어 백성들과 섞이지 않게 하고 천자는 홀로 그 위로 다닌다. 사사로이 갈 곳이 있으면 성문처럼 굴을 만들어 백성들이 그 안으로 왕래하게 한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주각周閣은 사방을 둘러 나무를 설치하여 잔도棧道를 만들어 다니는 것이니, 각도閣道라고 한다.
所得諸侯美人鐘鼓 以充入之하다
노획한 제후의 미인, 종, 북으로 그곳을 채웠다.
역주
역주1 君王后 : 太史敫의 딸로, 齊나라 襄王의 왕비이며, 齊나라 왕 田建의 생모이다.
역주2 [司馬門者] : 저본에는 없으나, 《史記集解》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 (二)[三] : 저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의 註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可)[河] : 저본에는 ‘可’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의 註에 의거하여 ‘河’로 바로잡았다.
역주5 城南下는……곳이다 : 齊나라 威王과 魏나라 惠王이 만났을 때에 위왕이 자신의 나라에서 보배로 여기는 것은 구슬 같은 패물이 아니라 4명의 신하라고 하면서, 그중의 한 명인 檀子에게 南城을 지키게 하니 楚나라 사람들이 동쪽을 침범하지 못하였다고 자랑하였다. 《史記 권46 田敬仲完世家》‧《資治通鑑綱目 제1권 상 周 顯王 14년조》
역주6 水德의……삼음에 : 《史記》 〈秦始皇本紀〉에는 “黃河를 德水라고 호칭을 바꾸고, 이것으로 水德의 기원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역주7 왕의……것 : 周나라 武王이 孟津에서 군대를 지휘할 때에 무왕이 머무는 집 지붕으로 불길이 흘러왔다가 붉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尙書大傳 권2》
역주8 建寅月 : 이를 月建 또는 斗建이라고 하는데 북두성의 자루가 회전하면서 달마다 가리키는 방위(地支)를 이른다. 북두선의 자루가 寅方을 가리키는 달을 ‘建寅之月’이라 한 것이다.
역주9 法度……尺 : 法度는 법령제도이고, 衡은 저울, 石은 重量의 단위이며, 丈과 尺은 길이의 단위이다. 따라서 법령과 度量衡의 제도를 뜻한다.
역주10 내사 : 秦나라의 內史는 京師를 다스리는 관직이며, 내사가 京畿 부근도 다스렸기 때문에 이를 따라 경기 지방도 ‘내사’라 하였다.
역주11 巡守 : 천자가 제후들을 직접 방문하여 직무를 돌아보는 것이다.
역주12 述職 : 제후가 천자에게 자신의 직무를 보고하는 것이다.
역주13 군사가……되었고 : 유사시에 종군하고 무사할 때 농사짓지 못함을 뜻한다.
역주14 裁成輔相 : 《周易》 泰卦 〈象傳〉에 나오는 말로, 지나친 것을 억제하고 모자란 것을 보충해서 천지간에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돕는 聖人의 일을 말한다.
역주15 제방을……하여 : 《孟子》 〈告子 下〉에 “제방을 굽게 쌓지 말라.[無曲防]”는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해 朱熹의 주석에 “제방을 굽게 쌓지 말라는 것은 굽게 제방을 만들어서, 샘을 막고 흐르는 물을 막아 작은 이익을 독점함으로써 이웃 나라에 피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역주16 胡氏는……동생이다 : 胡宏은 宋나라 사람으로 胡安國의 아들이다. 그의 학문은 아버지와 程明道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性無善惡說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주희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胡寅은 호안국의 조카로 그의 양자가 되었다. 그는 관직에 올라 宋나라가 金나라와 和議하는 데에 반대하였으며, 楊時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역주17 群書考索 : 일명 《山堂考索》이라 한다. 南宋 章如愚가 편찬한 類書로 원본은 100권이나 元明 시기 증보되었다. 經史百家의 말을 널리 취하여 정치제도를 논하였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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