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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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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亥年(159)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1권 하
한 환제漢 桓帝 연희延熹 2년(159)~한 환제漢 桓帝 연희延熹 9년(166)
기해년己亥年(159)
◑二年이라 春二月 鮮卑寇雁門하다
나라 효환황제 연희孝桓皇帝 延熹 2년이다. 봄 2월에 선비鮮卑안문雁門을 침략하였다.
蜀郡夷寇蠶陵注+蠶陵縣, 屬蜀郡.하다
촉군蜀郡의 오랑캐가 잠릉蠶陵을 침략하였다.注+잠릉현蠶陵縣촉군蜀郡에 속하였다.
】 3월에 자사刺史이천석二千石이 삼년상을 행하는 것을 다시 금하였다.
○夏 大水하다
】 여름에 홍수가 졌다.
◑秋七月 皇后梁氏崩하다
】 가을 7월에 황후 양씨皇后 梁氏하였다.
梁后恃姊兄勢하여 奢靡妬忌注+姊, 順烈皇后. 兄, 大將軍冀也.하고 寵衰無子하니 宮人孕育 鮮得全者 帝益疏之하니 憂恚而崩하다
양후梁后는 언니와 오라비의 권세를 믿고서 사치하고 낭비하며 투기妬忌가 심하였다.注+언니는 순열황후順烈皇后(양태후梁太后)이고, 오라비는 대장군 양기大將軍 梁冀이다. 총애가 하여 자식이 없으니, 궁인宮人이 아이를 낳아 기를 적에 온전한 자가 드물었다. 황제가 더욱 그녀를 소원히 하니, 근심하고 분노하다가 하였다.
의헌황후懿獻皇后(양후梁后)를 의릉懿陵에 장례하였다.
】 8월에 대장군 양기大將軍 梁冀복주伏誅되고, 태위 호광太尉 胡廣사도 한연司徒 韓縯사공 손랑司空 孫朗이 모두 죄로 면직되고 서인庶人이 되었다.
梁氏七侯, 三后, 六貴人, 二大將軍, 卿, 將, 尹, 校 五十七人注+冀祖雍封乘氏侯, 冀封襄邑侯, 及嗣乘氏侯, 又封其子胤襄邑侯, 弟不疑潁陽侯, 蒙西平侯, 不疑子馬潁陰侯, 胤子桃城父侯, 是七封侯也. 三后, 恭懷․順烈․懿獻也. 卿, 九卿也. 將, 中郞將也. 尹, 河南․京兆尹也. 校, 諸校尉也.이라 冀專擅威柄하여 凶恣日積하고
양씨梁氏는 7명의 봉후封侯, 3명의 황후皇后, 6명의 귀인貴人, 중랑장中郞將교위校尉가 57명이었다.注+양기梁冀의 할아버지 양옹梁雍승씨후乘氏侯(승지후)에 해졌고 양기는 양읍후襄邑侯에 봉해졌는데, 양기가 승씨후乘氏侯의 뒤를 잇게 되자 또 그 아들 양윤梁胤양읍후襄邑侯로 봉하였으며, 아우 양불의梁不疑영양후潁陽侯, 양몽梁蒙서평후西平侯, 양불의梁不疑의 아들 양마梁馬영음후潁陰侯, 양윤梁胤의 아들 양도梁桃성부후城父侯이니, 이들이 7명의 봉후封侯이다. 3명의 황후는 공회황후恭懷皇后순열황후順烈皇后의헌황후懿獻皇后이다. 은 9, 중랑장中郞將, 하남윤河南尹경조윤京兆尹, 는 여러 교위校尉이다. 양기梁冀는 위엄과 권력을 제멋대로 전횡專橫하여 흉포함과 방자함이 날로 쌓였고,
宮衛近侍 幷樹所親하여 禁省起居 纖微必知注+樹, 置也. 四方貢獻 皆先輸上第於冀하고 乘輿 乃其次焉注+上第, 第一也.이라
을 호위하는 자와 황제를 가까이 모시는 자를 모두 자기와 친한 사람으로 두어서 금성禁省(황궁)의 기거起居를 세미한 것도 반드시 알았다.注+는 둠이다. 사방에서 바치는 공물은 모두 먼저 상등上等을 양기에게 보내고, 승여乘輿(황제)에게는 차등次等을 보냈다.注+상제上第”는 상등上等이다.
百官遷召 皆先到門謝恩然後 敢詣尙書러라
백관百官들이 승진하여 소대召對할 때에도 모두 먼저 양기의 집에 가서 은혜를 감사한 뒤에 감히 상서尙書에 나아갈 수 있었다.
吳樹爲宛令하여 之官할새 辭冀하니 冀以賓客爲託이어늘 樹曰 小人姦蠧 比屋可誅注+比, 連次也.
오수吳樹완현령宛縣令이 되어 관사로 부임할 적에 양기梁冀에게 하직인사를 하니, 양기가 완현宛縣에 있는 자신의 빈객賓客을 청탁하였다. 오수가 말하기를 “간사하여 백성들을 해치는 소인小人들을 줄줄이 다 주벌해야 마땅합니다.注+는 연속됨이다.
明將軍 處上將之位하니 宜崇賢善以補朝闕注+補朝闕, 謂補朝政之闕也.이어늘 自侍坐以來 未聞稱一長者하고 而多託非人하니 非樹所敢聞也로이다
현명하신 장군將軍께서 상장군上將軍의 지위에 계시니, 마땅히 어질고 한 자를 높여서 조정의 정사에 잘못됨을 바로잡게 해야 하는데注+보조궐補朝闕”은 조정의 정사에 잘못됨을 바로잡음을 이른다., 〈제가 하직인사를 드리려고〉 장군을 모시고 앉은 이래로 한 명의 장자長者도 칭찬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고 나쁜 사람들을 많이 청탁하시니, 이 오수가 감히 따를 바가 아닙니다.” 하였다.
到縣하여 遂誅冀客數十人이러니 後還謁冀한대 冀鴆之하여 死車上하다
에 부임하여 마침내 양기의 문객 수십 명을 주살하였다. 뒤에 돌아와 양기를 뵈었는데, 양기가 그에게 짐독鴆毒을 먹여서, 오수는 나오자마자 수레 위에서 죽었다.
安帝嫡母耿貴人이어늘 冀從其從子하여 求珍玩이라가 不得하고하여 族其家하다
안제安帝적모嫡母경귀인耿貴人하자, 양기梁冀가 그녀의 종자從子(조카)에게 진기한 완상품玩賞品을 달라고 했다가 얻지 못하고는, 노하여 그 집안을 멸족시켰다.
崔琦作外戚箴하여 以風한대 冀怒注+風, 讀曰諷.어늘 琦曰 管仲 樂聞譏諫之言하고 蕭何 乃設書過之吏注+吏, 當作史.하니이다
최기崔琦가 〈외척잠外戚箴〉을 지어 넌지시 풍자하자, 양기가 노하였다.注+(풍자하다)은 으로 읽는다. 최기가 말하기를 “관중管仲은 권면하고 간쟁하는 말을 듣기 좋아하였고, 소하蕭何는 자신의 과오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을 두었습니다.注+는 마땅히 가 되어야 한다.
今將軍 不能結納貞良하여 以救禍敗하고 反欲鉗士口하여 蔽主聽하여 使馬鹿易形乎잇가 冀殺之注+馬鹿易形, 指趙高秦二世之事.하다
지금 장군이 바르고 어진 사람들을 사귀고 받아들여서 재화災禍실패失敗를 바로잡지 못하고, 도리어 하니, 양기가 그를 죽였다.注+마록역형馬鹿易形”은 조고趙高나라 이세황제二世皇帝의 일을 가리킨 것이다.
冀秉政幾二十年 以私憾殺人 甚衆하니 威行內外하여 天子拱手러라
양기가 정권을 잡은 지 거의 20년에 사사로운 원한으로 죽인 사람이 매우 많으니, 위엄이 궁궐의 안팎에 행해져서 천자天子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
鄧香妻宣 生女猛注+香, 和熹皇后從兄子.이러니 香卒 更適孫壽舅梁紀注+更適, 猶言改嫁也.하니 壽引猛入掖庭하여 爲貴人하다
등향鄧香의 아내 이 딸 등맹鄧猛을 낳았는데注+등향鄧香화희황후和熹皇后(화제和帝황후 등씨皇后 鄧氏)의 종형從兄의 아들이다., 등향이 죽자 손수孫壽의 시아버지인 양기梁紀에게 다시 시집가니注+경적更適”은 개가改嫁라는 말과 같다., 손수가 등맹을 액정掖庭(궁중)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귀인貴人으로 삼았다.
冀因認爲己女하고 遣客殺宣할새 登屋欲入이러니 宣家覺之하고 馳入白帝注+通鑑 “冀欲認猛爲其女, 易猛姓爲梁. 冀恐猛姊壻議郞邴尊, 沮敗宣意, 遣客刺殺之, 又欲殺宣. 宣家與中常侍袁赦, 相比, 冀客登赦屋, 欲入宣家, 赦覺之, 鳴鼓會衆以告宣, 宣馳入白帝.”하니
양기梁冀는 이로 인하여 등맹을 자기 딸로 삼고자 해서 자객을 보내 을 죽이려 하였다. 자객이 지붕에 올라가 방으로 들어가려 하였는데, 의 집에 발각되어 이 궁중에 달려 들어가 황제에게 아뢰었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양기梁冀등맹鄧猛을 자기 딸로 삼고자 해서 등맹의 을 바꾸어 이라 하였다. 양기는 등맹의 자서姊壻(자형)인 의랑 병존議郞 邴尊의 뜻을 저지할까 두려워해서 자객을 보내 그를 찔러 죽이고 또 을 죽이고자 하였다. 의 집은 중상시 원사中常侍 袁赦의 집과 서로 나란히 있었는데, 양기의 자객이 원사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의 집으로 들어가려 하다가 원사에게 발각되었다. 원사가 북을 울려 사람들을 모으고서 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이 궁중으로 달려 들어가 황제에게 아뢰었다.” 하였다.
帝大怒하고 因如厠하여 獨呼小黃門史唐衡하여 問左右與外舍不相得者誰乎注+小黃門史, 小黃門之掌書者也. 左右, 謂宦官也. 外舍, 謂皇后家也.
황제가 크게 노하여 측간에 간다고 핑계하고서 홀로 소황문사小黃門史당형唐衡를 불러서 좌우左右의 신하 중에 외사外舍(양기의 집안)와 사이가 좋지 않은 자가 누구인지를 물으니注+소황문사小黃門史소황문小黃門 중에 서사書寫를 관장하는 자이다. “좌우左右”는 환관을 이르고, “외사外舍”는 황후皇后의 집안을 이른다.,
衡對호되 單超, 左悺 與梁氏有隙하고 徐璜, 具瑗 亦忿疾之注+單, 音善, 姓也.하니이다
당형이 대답하기를 “선초單超좌관左悺양씨梁氏와 원한이 있고, 서황徐璜구원具瑗도 양씨에 대해 노여워하고 미워합니다.”注+이니, 이다. 하였다.
於是 帝呼超, 悺하여 入室定議하고 帝齧超臂하여 出血爲盟하니
】 이에 황제는 선초單超좌관左悺을 불러 방으로 들어오게 해서 〈양기梁冀를 주살하기로〉 의논을 정하고, 황제가 선초의 팔뚝을 깨물어 피를 내어 맹세하였다.
冀心疑之하고 使中黃門張惲으로 入宿以防其變注+使惲入禁中直宿, 以防超等, 而無上旨, 徑使惲入, 自恃威行宮省, 故敢然.이러니 收惲하여 請帝御前殿하여
양기는 마음속으로 황제를 의심하고 중황문中黃門장운張惲으로 하여금 금중禁中에 들어가 숙직하면서 그 변고를 막게 하였는데注+양기梁冀장운張惲으로 하여금 금중禁中에 들어가 숙직을 하면서 선초單超 등을 방비하게 하였는데, 이때 황제의 허락 없이 곧바로 장운으로 하여금 들어가게 하였으니, 스스로 위엄을 믿고 황궁을 드나들었으므로 감히 그렇게 한 것이다., 구원具瑗이 장운을 체포하고서 황제에게 정전正殿으로 납시라고 청하였다.
使尙書令尹勳으로 持節하여 勒丞, 郞以下하여 皆操兵守省閤注+丞․郞, 尙書左右丞及尙書郞也.하고 斂諸符節하여 送省中하고
〈황제가〉 상서령 윤훈尙書令 尹勳으로 하여금 을 잡고서 이하를 무장시켜 모두 병기를 잡고 궁문을 지키게 하고注+상서좌승尙書左丞상서우승尙書右丞상서랑尙書郞이다., 여러 부절符節을 거두어 성중省中(금중禁中)으로 보내게 하였다.
使瑗으로 將廐騶, 虎賁, 羽林, 都候劍戟士合千餘人注+騶, 騎士也. 續漢志 “左․右都候各一人, 秩六百石, 主劍戟士, 徼循宮中, 及天子有所收考, 屬衛尉.”하여 與司隷張彪 共圍冀第하여 收大將軍印綬하니 冀, 壽皆自殺이어늘
또 구원으로 하여금 구추廐騶호분虎賁, 우림羽林, 도후都候으로 무장한 병사 도합 1,000여 명을 거느리고注+기사騎士이다. ≪속한지續漢志≫에 “우도후右都候는 각각 한 사람으로 육백석六百石인데, 으로 무장한 병사가 궁중을 순행하고, 천자가 죄인을 체포하여 고문하는 일이 있으면 이를 주관하니, 위위衛尉에 속한다.” 하였다. 사례교위 장표司隷校尉 張彪와 함께 양기의 집을 포위해서 대장군大將軍인수印綬를 거두게 하니, 양기와 손수孫壽가 모두 자살하였다.
悉收梁氏, 孫氏하여 無長少 皆棄市하다 胡廣, 韓縯, 孫朗 皆坐阿附로되 減死免爲庶人하고
양씨梁氏손씨孫氏 집안의 사람들을 모두 체포해서 어른과 어린이를 막론하고 모두 기시棄市하였다. 호광胡廣한연韓縯손랑孫朗은 모두 양기에게 아부阿附한 죄에 걸렸는데 사형에서 감면되어 면직되고 서인庶人이 되었으며,
故吏賓客免黜者 三百餘人이라 朝廷 爲空하니 百姓稱慶注+爲, 去聲.하니라
양기의 옛 관리와 빈객賓客으로서 파면되고 내침을 당한 자가 300여 명이었다. 조정朝廷이 이로 인하여 텅 비니, 백성들이 축하하였다.注+(때문에)는 거성去聲이다.
收冀財貨하여 縣官斥賣하니 合三十餘萬萬이라 以充王府用注+句.하고 減天下稅租之半하고 散其苑囿하여 以業窮民注+斥, 棄也, 不用也. 謂不用而賣之.
양기梁冀재화財貨를 거두어서 현관縣官(황제)이 쓰지 않고 내다 파니, 도합 30여억 이었다. 이로써 왕부王府의 비용을 충당하고注+여기에서 를 뗀다. 천하의 조세의 반을 경감하였으며, 양기의 원유苑囿(동산)를 곤궁한 백성들에게 흩어주어서 생업으로 삼게 하였다.注+은 버림이요 쓰지 않음이니, 〈“척매斥賣”는〉 쓰지 않고 팖을 이른다.
立貴人鄧氏하여 爲皇后하고 追廢梁后하여 爲貴人하다
귀인 등씨貴人 鄧氏를 세워서 황후皇后로 삼고 양후梁后추폐追廢(죽은 사람이 생전에 갖고 있던 봉작封爵을 없애는 것)하여 귀인貴人으로 삼았다.
◑封宦者單超等五人하여 爲列侯하다
환자 선초宦者 單超 등 다섯 사람을 하여 열후列侯로 삼았다.
世謂之五侯注+單超新豊侯, 徐璜武原侯, 具瑗東武陽侯, 左悺上蔡侯, 唐衡汝侯也.라하니라
】 세상에서는 이들을 오후五侯라고 칭하였다.注+〈“오후五侯”는〉 선초單超신풍후新豊侯, 서황徐璜무원후武原侯, 구원具瑗동무양후東武陽侯, 좌관左悺상채후上蔡侯, 당형唐衡여양후汝陽侯이다.
  范滂 范滂
以黃瓊爲太尉하다
황경黃瓊(황경)을 태위太尉로 삼았다.
新誅梁冀하니 天下想望異政이라 首居公位하여 乃擧奏州郡貪汙하여 死徙十餘人하다
】 이때에 막 양기梁冀를 주살하니, 천하가 특별한 선정善政을 생각하고 바랐다. 황경黃瓊의 자리에 첫 번째로 있으면서 마침내 주군州郡의 탐욕스러운 자들을 적발하여 아뢰어서, 죽거나 귀양 간 자가 10여 명이었다.
辟汝南范滂하니 少厲淸節이라 嘗爲淸詔使하여 按察冀州注+使, 疏吏切. 蓋三公府, 有淸詔員, 以承詔使也. 時, 冀州飢荒, 盜賊群起, 以滂爲淸詔使, 按察之.할새 登車攬轡하여 慨然有澄淸天下之志하니
〈황경은〉 여남汝南 사람 범방范滂을 불러 등용하였는데, 범방은 젊어서부터 청백한 절개에 힘썼다. 일찍이 청조사淸詔使가 되어서 기주冀州안찰按察할 적에注+使(사자使者)는 소리疏吏이다. 삼공부三公府에는 청조원淸詔員이 있어서 조사詔使(황제가 파견한 특사特使)의 명을 받들었다. 이때 기주冀州에 흉년이 들어 굶주리자 도적이 떼를 지어 일어났으므로 범방范滂청조사淸詔使로 삼아 안찰按察하게 한 것이다.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서 개연慨然히 천하를 깨끗이 하려는 뜻을 품었다.
守令臧汙者 皆望風解印綬去러라 奏權豪之黨二十餘人한대 尙書責滂所劾猥多注+猥, 猶濫也.어늘
수령守令 중에 〈직권을 이용하여〉 장물贓物을 받은 자들이 모두 그의 기세를 바라보고 인수印綬를 풀고 떠나갔다. 〈범방이〉 권세를 믿고 강포한 짓을 하는 무리 20여 명을 아뢰자, 상서尙書가 범방의 탄핵한 바가 지나치게 많다고 책망하였다.注+(지나치다)는 과 같다.
對曰 臣之所擧 自非叨穢姦暴하여 深爲民害 豈以汙簡札哉注+叨, 與饕同.리오
이에 범방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이 적발한 자가 만일 탐욕스럽고 비루하며 간사하고 포악하여 백성의 큰 폐해가 되는 자가 아니라면 어찌 이들로써 간찰簡札을 더럽히겠습니까.注+(매우 탐욕스럽다)는 와 같다.
間以會日迫促이라 先擧所急이요 其未審者 方更參實注+會日, 謂三府掾屬, 會于朝堂之日也. 參實, 謂參考以究其實也.하노이다
근간에 삼공부三公府에서 회의할 날이 촉박하다고 하므로 먼저 급한 바를 적발한 것이요, 사실을 확실하게 규명하지 못한 자는 참고하여 사실을 규명하고 있습니다.注+회일會日”은 삼공부三公府의 관리들이 조당朝堂에서 모이는 날을 이른다. “참실參實”은 참고하여 사실을 규명함을 이른다.
臣聞農夫去草 嘉穀必茂하고 忠臣除姦이면 王道以淸이라하니 若臣言有貳 甘受顯戮호리이다 尙書不能詰하다
이 듣건대, 농부農夫가 잡초를 제거하면 아름다운 곡식이 반드시 무성하고, 충신忠臣이 간신을 제거하면 왕도王道가 깨끗해진다고 하니, 만약 의 말에 잘못이 있으면 사형死刑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상서尙書는 더 이상 힐책하지 못하였다.
처사處士서치徐穉, 강굉姜肱, 원굉袁閎(원굉), 위저韋著, 이담李曇(이담)을 불렀는데, 모두 오지 않았다.
尙書令陳蕃 薦五處士어늘 以安車玄纁으로 徵之러니 不至하다
徐穉徐穉
상서령 진번尙書令 陳蕃이 다섯 명의 처사處士를 천거하자, 으로 불렀는데, 오지 않았다.
豫章人이라 家貧하여 常自耕稼하여 非其力이면 不食하며 恭儉義讓하니 所居 服其德이라
서치徐穉예장豫章 사람이다. 집이 가난하여 항상 스스로 농사를 짓고 곡식을 심어서 자기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먹지 않았으며 공손하고 검소하고 의롭고 겸양하니, 그가 거주하는 곳의 사람들이 그의 에 감복하였다.
屢辟不起러니 爲太守하여 以禮請署功曹한대 穉旣謁而退하다
여러 번 불러도 응하지 않았는데, 진번陳蕃태수太守가 되어 로써 초청하여 공조功曹를 임명하자, 서치는 배알하고서 물러갔다.
性方峻하여 不接賓客注+方峻, 端方峻急也.호되 穉來 特設一榻하고 去則縣之注+榻, 坐榻也, 亦謂之牀. 縣讀曰懸.러라 後擧有道하여 家拜太原太守호되 皆不就注+擧, 察擧也. 家拜, 就家而拜之也.러라
진번은 성품이 방정하고 준엄하여 빈객賓客을 접대하지 않았으나注+방준方峻”은 단정하고 준엄함이다., 서치가 오면 특별히 걸상 하나를 비치해두었다가 그가 가면 매달아놓았다.注+(걸상)은 앉는 이니, 이라고도 한다. (걸다)은 으로 읽는다. 서치는 뒤에 가 있는 사람으로 천거되어 사자使者가 직접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서 태원태수太原太守를 제수하였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注+는 천거함이다. “가배家拜”는 직접 집에 가서 제수하는 것이다.
穉雖不應諸公之辟이나 然聞其死喪하면 輒負笈赴弔
서치는 비록 여러 들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으나 그들이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번번이 책상을 짊어지고 가서 조문하였다.
常豫炙一鷄하고 以酒漬綿一兩하여 暴乾裹之注+漬, 浸也, 暴, 日曬也. 乾, 音干. 裹, 謂裹鷄也.하여 到冢隧外하여 以水漬綿하고 白茅藉飯하고 以鷄置前하여
이때 항상 미리 닭 한 마리를 굽고, 술로 솜 한 을 적셔서 햇볕에 말리고는 이것을 싸 가지고注+는 적심이요, 은 햇볕에 말리는 것이다. (건조하다)은 이다. 는 닭을 싸는 것을 이른다. 묘도墓道 밖에 이르러 물로 솜을 적시고, 흰 띠풀에 밥을 깔고 닭을 앞에 놓고서 술을 따라 올렸다.
醊畢 留謁하고 不見喪主而行注+隧, 墓道也. 藉, 薦也, 藉以白茅, 取其潔也. 醊, 株衛切, 酹酒也. 何休云 “謁, 謂以札書姓名, 若今通刺也.”하니라
술을 올리기를 마치면, (명함)을 남겨두고 상주喪主를 만나보지 않고 떠나갔다.注+묘도墓道이다. 는 깖이니, 흰 띠풀로 까는 것은 그 깨끗함을 취한 것이다. 주위株衛이니, 술을 땅에 따르는 것이다. 하였다.
彭城人이라 與二弟仲海, 季江으로 俱以孝友著聞하니 常同被而寢注+聞, 音問.이라
강굉姜肱팽성彭城 사람이다. 두 아우인 중해仲海계강季江과 함께 모두 효성과 우애로 이름이 알려졌는데, 형제가 항상 한 이불을 덮고 잤다.注+(알려지다)은 이다.
嘗俱詣郡이라가 夜遇盜어늘 殺之한대 肱曰 弟年幼하고 父母所憐이요 又未聘娶하니 願殺身濟弟하노라
일찍이 〈강굉과 강계강이〉 함께 에 가다가 밤에 도둑을 만났는데, 도둑이 이들을 죽이려 하였다. 강굉이 말하기를 “아우는 나이가 어리고 부모가 사랑하시며 또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으니, 이 몸을 죽이고 아우는 살려주기를 원한다.” 하였다.
季江曰 兄 年德在前하니 家之珍寶 國之英俊이라 乞自受戮하여 以代兄命하노라 盜兩釋焉하고 但掠奪衣資而已러라
강계강이 말하기를 “형은 나이와 덕망이 나보다 훌륭하니, 집안의 진귀한 보물이요 나라의 영준英俊이다. 내가 죽임을 당하여 형의 목숨을 대신하기를 원한다.” 하니, 도둑이 두 사람을 다 놓아주고 옷과 물건만을 약탈하였다.
旣至郡中 見肱無衣服하고 怪問其故하니 託以他辭하고 終不言盜
이들이 에 이르자, 〈의 관원이〉 강굉이 의복衣服이 없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었는데, 강굉은 다른 말로 핑계 대고 끝내 도둑맞은 일을 말하지 않았다.
盜聞而感悔하여 就肱하여 叩頭謝罪하고 還所掠物하니 不受하고 勞以酒食而遣之하다
도둑이 이 말을 듣고 감동하고 후회하여 강굉에게 찾아가서 머리를 땅에 두드려 사죄하고 자기가 약탈한 물건을 돌려주니, 강굉은 받지 않고 술과 밥을 주어 위로하고 보내었다.
旣徵不至어늘 詔圖其形狀한대 臥於幽闇하고 以被韜面하여 言眩疾畏風이라하니 竟不得見注+韜, 藏也. 眩, 目無常主也.하니라
국가에서 불렀는데도 강굉이 오지 않자, 조령詔令을 내려 화공畵工에게 그의 얼굴을 그리게 하였다. 그러나 강굉은 침침하고 어두운 방에 누워 이불로 얼굴을 가리고서 “눈앞이 아찔하고 어지러운 병이 있어 바람을 피해야 한다.”라고 말하니, 화공은 끝내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注+는 감춤이다. 은 눈에 초점이 없는 것이다.
汝南人이니 安之玄孫也 苦身修節하여 以耕學爲業하니라
원굉袁閎여남汝南 사람이니 원안袁安현손玄孫이다. 몸을 수고롭게 하고 절개를 닦아서 밭을 갈고 배우는 것을 으로 삼았다.
京兆人이니 隱居講授하니라 潁川人注+曇, 徒含切.이니 繼母酷烈이어늘 奉之謹하니라
위저韋著경조京兆 사람이니, 은거하여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담李曇영천潁川 사람이니注+도함徒含이다., 계모繼母가 성품이 혹독하고 사나웠는데도 이담은 삼가 잘 받들었다.
帝又徵安陽魏桓注+安陽縣, 屬汝南郡.하니 其鄕人 勸之行이어늘 桓曰 夫干祿求進 所以行其志也
】 황제가 또 안양安陽 사람 위환魏桓을 부르니注+안양현安陽縣여남군汝南郡에 속하였다., 고을 사람들이 그에게 서울로 갈 것을 권하였다. 위환이 말하기를 “녹봉을 바라고 벼슬에 나아가기를 구하는 것은 자기 뜻을 행하려는 것이다.
今後宮千數 其可損乎 廐馬萬匹 其可減乎 左右權豪 其可去乎 皆對曰 不可하니이다
지금 후궁後宮 1,000명을 줄일 수 있겠는가? 마구간의 말 10,000필을 줄일 수 있겠는가? 군주의 좌우左右에서 권세를 믿고 강포한 짓을 하는 자들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하니, 모두 대답하기를 “불가합니다.”라고 하였다.
乃慨然嘆曰 使桓生行死歸 於諸子 何有哉注+若忤時强諫, 死而後歸, 於諸勸行者, 復何益也.리오하고 遂隱身不出하다
위환은 마침내 서글피 탄식하기를 “만약 내가 살아서 갔다가 죽어서 돌아오면, 그대들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注+〈“사환생행사귀 어제자使桓生行死歸 於諸子 하유재何有哉”는〉 만약 세상을 거스르고 억지로 간쟁하다가 죽어서 돌아오면, 서울로 가라고 권한 여러분들에게 다시 무슨 유익함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몸을 숨기고 나오지 않았다.
황후皇后의 오라비의 아들인 등강鄧康과 환관인 후람侯覽 등을 봉하여 열후列侯로 삼고, 백마령 이운白馬令 李雲홍농연 두중弘農掾 杜衆을 죽였다.
帝旣誅梁冀 故舊恩私 多受封爵이라 封后兄子康秉하여 皆爲列侯하고 宗族皆列校, 郞將이요 賞賜鉅萬注+列校, 謂北軍五校尉. 郞將, 卽三署中郞將.이라
】 황제가 양기梁冀를 주벌하고 나자, 지난날에 총애를 받았던 사람들이 많이 봉작封爵을 받았다. 황후의 오라비의 아들 양강梁康양병梁秉을 봉하여 모두 열후列侯로 삼고 종족宗族을 모두 교위校尉낭장郞將으로 삼고, 으로 하사한 재물이 거만鉅萬이었다.注+열교列校”는 북군北軍의 다섯 교위校尉를 이르고, “낭장郞將”은 바로 삼서三署중랑장中郞將이다.
侯覽 上縑五千匹한대 封高鄕侯注+侯覽傳 “連歲征伐, 府帑空虛, 乃假百官奉祿․王侯租稅, 覽亦上縑五千匹.”하고 又封小黃門八人하여 爲鄕侯하니 自是 權勢專歸宦官矣
후람侯覽이 비단 5,000을 올리자 고향후高鄕侯를 봉하고注+후한서後漢書≫ 〈후람전侯覽傳〉에 “몇 년 동안 정벌하여 창고와 내탕고內帑庫가 텅 비자, 마침내 백관百官들의 녹봉과 왕후王侯들의 조세租稅를 차출하니, 후람侯覽 또한 비단 5,000필을 올렸다.” 하였다., 또 소황문小黃門 8명을 봉하여 로 삼으니, 이로부터 권세가 오로지 환관에게 돌아갔다.
하니 時災異數見이러라
오후五侯가 더욱 탐욕스럽고 방종하여 내외內外를 진동하게 하니, 당시에 재이災異가 자주 나타났다.
白馬令李雲 露布上書하여 移副三府曰注+白馬縣, 屬東郡. 露布, 謂不封之也. 移副三府, 幷以副本上三公府也. 梁冀雖持權專擅하여 虐流天下 今以罪行誅 猶召家臣搤殺之耳注+家臣, 猶古之家相也. 搤, 乙革切, 捉也.어늘
백마현령 이운白馬縣令 李雲노포露布상서上書하면서 부본副本삼공부三公府로 보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注+백마현白馬縣동군東郡에 속하였다. “노포露布”는 봉함하지 않은 문서를 이른다. “이부삼부移副三府”는 부본副本도 아울러 삼공부三公府에 올린 것이다.양기梁冀가 비록 권력을 잡고 전횡專橫하여 천하에 포악한 짓을 자행하였으나, 지금 로 주벌을 당함에 마치 가신家臣을 불러다가 목 졸라 죽이는 것처럼 쉽게 하였을 뿐입니다.注+가신家臣”은 옛날의 가상家相(대부大夫의 집안을 다스리는 사람)과 같다. 을혁乙革이니, 잡음이다.
而猥封謀臣萬戶以上注+謂單超等五侯也.하시니 高祖聞之 得無見非注+謂高祖之約, 非有功不侯. 西北列將 得無解體注+列將, 謂皇甫規․段熲等. 解體, 如四支解析, 無所統一也.리잇가
그런데 주벌을 도모한 신하들에게 1만 이상을 지나치게 봉하시니注+〈“외봉모신猥封謀臣”은〉 선초單超오후五侯를 이른다., 고조高祖께서 들으시면 잘못이라고 하지 않겠으며注+〈“고조문지 득무견비高祖聞之 得無見非”는〉 고조高祖의 약속에, 이 있는 자가 아니면 로 삼지 않는다고 한 것을 이른다., 서북西北 지방의 여러 장수들의 마음이 이산離散되지 않겠습니까.注+열장列將”은 황보규皇甫規단경段熲 등을 이른다. “해체解體”는 사지四肢가 나뉘어 풀려 통일統一된 바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帝者 諦也 今官位錯亂하고 小人諂進하며 財貨公行하고 政化日損하니 是帝欲不諦乎注+諦, 音帝, 審也.잇가 帝怒하여 逮雲送獄하여 使管霸考之하다
는 살펴본다는 뜻입니다. 이제 관직과 지위가 잘못되어 혼란하고 소인小人들이 아첨하여 등용되며,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정치와 교화가 날로 손상되니, 황제께서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注+이니, 살펴봄이다. 황제는 노하여 이운을 체포해서 으로 압송하여 관패管霸로 하여금 고문하게 하였다.
弘農掾杜衆 傷雲以忠諫獲罪하고 上書하여 願與雲同死한대 帝愈怒하여 幷下之獄하니
홍농연 두중弘農掾 杜衆이운李雲충간忠諫으로 를 얻은 것을 서글퍼하고 상서上書하여 이운과 함께 죽을 것을 원하자, 황제가 더욱 노하여 함께 하옥下獄하였다.
大鴻臚陳蕃 太常楊秉 洛陽市長沐茂 郞中上官資 幷上疏爲請호되 皆坐免黜注+漢官曰 “洛陽市長, 秩四百石, 屬大司農.” 沐茂, 姓名也.하다
대홍려 진번大鴻臚 陳蕃태상 양병太常 楊秉, 락양시장 목무洛陽市長 沐茂, 낭중 상관자郞中 上官資가 공동으로 상소上疏하여 〈이들을 용서할 것을〉 청하였으나 모두 죄에 걸려 면직되고 축출되었다.注+한관의漢官儀≫에 “락양시장洛陽市長사백석四百石이니 대사농大司農에 속했다.” 하였다. 목무沐茂는 사람의 성명姓名이다.
管霸亦言 雲, 衆 狂戇하니 不足加罪라한대 帝曰 帝欲不諦 是何等語완대 而常侍欲原之邪아하니 遂皆死獄中하다
관패管霸 또한 말하기를 “이운과 두중은 광망狂妄하고 우직하니, 처벌할 만한 죄가 되지 못합니다.”라고 하자, 황제가 말하기를 “‘황제가 자세히 살펴보고자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어떤 말인데, 상시常侍가 그를 용서하고자 하는가?” 하였다. 두 사람은 마침내 모두 옥중에서 죽었다.
黃瓊 稱疾不起하고 上疏曰 陛下卽位以來 未有勝政注+言政事未有以勝於前朝也.이요 諸梁秉權하고 豎宦充朝하니이다
황경黃瓊이 병을 칭탁하여 나오지 않고는,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폐하陛下께서 즉위한 이래로 지난날보다 나은 정사가 있지 않고注+〈“미유승정未有勝政”은〉 정사政事전조前朝보다 나은 점이 있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여러 양씨梁氏가 권력을 잡고 있으며, 환관들이 조정에 가득합니다.
李固, 杜喬旣以忠言으로 橫見殘滅하고 而李雲, 杜衆 復以直道 繼踵受誅하니
이고李固두교杜喬충언忠言을 하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이운李雲두중杜衆이 또 정직한 로 뒤이어 주벌을 받으니,
海內傷懼하여 益以怨結하여 朝野之人 以忠爲諱하니이다 尙書周永 素事梁冀하고 黃門 與冀共構姦軌라가
해내海內가 서글퍼하고 두려워하던 터에 더욱 원망이 쌓여 조야朝野에 있는 사람들이 충언忠言하는 것을 기피합니다. 상서 주영尙書 周永은 평소 양기梁冀를 섬겼고, 황문黃門(환관)은 양기와 함께 간사한 짓을 도모하였습니다.
臨冀當誅하여 乃陽毁示忠하여 以要爵賞注+陽毁梁氏, 以示忠於帝室.하고 復與忠臣으로 幷時顯封하니 四方聞之하고 莫不憤歎이니이다 書奏 不省하다
그러다가 양기가 주살당할 때를 당하여 마침내 겉으로 양기를 비방하여 충성스러움을 보여서 관작과 을 구하고注+〈“양훼시충陽毁示忠”은〉 겉으로 양씨梁氏를 비방하여 황실皇室에 충성을 보이는 것이다. 다시 충신忠臣들과 동시에 드러나게 봉해지니, 사방四方에서 그 말을 전해 듣고는 분노하고 한탄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글을 아뢰었으나 황제는 살펴보지 않았다.
】 겨울 10월에 환관 선초單超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삼았다.
◑燒當羌이어늘 校尉段熲 擊破之하다
소당강燒當羌이 배반하자, 교위 단경校尉 段熲이 이들을 격파하였다.
◑以陳蕃爲光祿勳하다
진번陳蕃광록훈光祿勳으로 삼았다.
封賞踰制하고 內寵猥盛이라 上疏曰 夫하고 蕃屛上國이어늘
】 이때 봉훈封勳이 제도를 넘고 내총內寵(황제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 지나치게 많았다. 이에 진번陳蕃이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제후諸侯는 위로 28宿를 본뜨고 상국上國(천자국天子國)의 울타리가 되는데,
而左右以無功傳賞하여 至乃一門之內 侯者數人이라 緯象失度하고 陰陽謬序注+上象四七, 謂二十八宿, 各主諸侯之分野. 緯象, 躔次也.니이다
좌우左右들이 이 없이 을 받아서 심지어는 한 가문 안에 가 된 자가 여러 명이나 됩니다. 그러므로 위상緯象이 도수를 잃고 음양陰陽의 순서가 잘못되는 것입니다.注+상상사칠上象四七”은 28宿를 이르니, 〈이 28宿가〉 각각 제후諸侯의 분야를 주관한다. 위상緯象전차躔次(해와 달과 별의 운행하는 차례)이다.
又采女數千 食肉衣綺하며 脂油粉黛 不可貲計 鄙諺 言 盜不過五女門이라하니 以女貧家也일새니이다
채녀采女 수천 명이 고기를 먹고 비단옷을 입으며 화장하고 장식하는 비용을 이루 다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 속담에 말하기를 ‘다섯 딸을 둔 집에는 도둑이 들지 않는다.’ 하니, 이는 딸이 집을 가난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今後宮之女 豈不貧國乎注+采, 擇也. 采女, 以因采擇而立名. 皇后紀曰 “光武中興, 六宮稱號, 唯皇后․貴人. 貴人, 金印紫綬, 奉不過粟數十斛. 又置美人․宮人․采女三等, 幷無爵, 歲時賞賜充給.” 今采女數千, 女寵盛矣. 貲, 量也.잇가 帝頗采其言하여 爲出宮女五百餘人하고 封侯者 降爲鄕侯하다
지금 후궁後宮의 여인들이 어찌 나라를 가난하게 하지 않겠습니까.”注+는 가림이니, 채녀采女채택采擇됨으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후한서後漢書≫ 〈황후기皇后紀〉에 “광무光武중흥中興함에 의 칭호는 오직 황후皇后귀인貴人만 사용하였는데, 귀인貴人금인金印에 붉은 인끈이고 봉급은 곡식 수십 에 불과하였다. 또 미인美人궁인宮人, 채녀采女 세 등급을 두었는데 모두 작위가 없고 세시歲時으로 내려지는 재물이 지급되었다.” 하였다. 그런데 지금 채녀采女가 수천 명이니, 총애하는 여인이 너무 많은 것이다. 는 헤아림이다. 황제는 그의 말을 대부분 채택하여 궁녀宮女 500여 명을 내보내고 로 봉했던 자들을 로 낮추었다.
以楊秉爲河南尹이러니 尋坐論作左校하다
양병楊秉하남윤河南尹으로 삼았는데, 얼마 후 죄에 걸려 논죄論罪를 당하고서 좌교左校에서 노역을 하였다.
單超兄子匡 爲濟陰太守하여 負勢貪放이어늘 兗州刺史第五種 使從事衛羽 案之注+從事, 刺史屬官, 職參謀議. 衛羽, 其姓名.하여 得臧五六千萬하여 奏幷劾超하다
선초單超의 형의 아들 단광單匡제음태수濟陰太守가 되어 권세를 믿고 탐욕스럽고 방자하였다. 연주자사 제오종兗州刺史 第五種종사 위우從事 衛羽로 하여금 조사하게 하여注+종사從事자사刺史의 속관이니, 직책이 모의謀議에 참여하였다. 위우衛羽는 그의 성명姓名이다. 장물贓物로 받은 5, 6천만 전千萬 錢을 찾아내어 아뢰면서 선초도 함께 탄핵하였다.
賂客刺羽한대 羽覺之하고 捕繫雒陽하니 密令突獄亡走注+匡慮楊秉窮竟其事.하다
선광이 자객에게 뇌물을 주어 위우를 찔러 죽이려 하였는데, 위우가 이것을 발각하고 자객을 체포하여 낙양雒陽에 가두니, 선광이 은밀히 자객에게 을 뚫고 도망가라고 하였다.注+〈“밀령돌옥망주密令突獄亡走”는〉
尙書詰秉한대 對曰 乞檻車徵匡하여 考覈其事하면 則姦慝蹤緖 必可立得注+蹤緖, 蹤跡端緖也.이니라
상서尙書양병楊秉을 힐책하자, 양병이 대답하기를 “함거檻車로 선광을 불러와서 이 일을 자세히 살펴 조사하기를 바라니, 이렇게 하면 그의 간특한 종적과 단서를 반드시 당장 알 수 있을 것이다.”注+종서蹤緖”는 종적과 단서이다. 하였다.
竟坐論作左校하고 亦以他罪徙朔方하다 倫之曾孫也
그러나 양병은 끝내 죄에 걸려 논죄論罪를 당하여 좌교左校에서 노역을 하고, 제오종 또한 다른 죄로 삭방朔方으로 귀양 갔다. 제오종은 제오륜第五倫증손曾孫이다.
以爰延爲五官中郞將하다
원연爰延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으로 삼았다.
帝問侍中爰延호되 何如主 對曰 陛下爲漢中主注+爰, 姓也. 中主, 爲中材之主, 言可以上, 可以下, 顧輔佐者何如耳.니이다
】 황제가 시중 원연侍中 爰延에게 묻기를 “은 어떠한 군주인가?” 하자, 원연이 “폐하陛下께서는 나라의 중주中主(중간쯤 되는 군주)가 됩니다.”注+이다. “중주中主”는 중간 재질의 군주를 이른 것이니, 위로 올라갈 수도 있고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데, 다만 보좌하는 자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帝曰 何以言之 對曰 尙書令陳蕃 任事則治하고 中常侍, 黃門 與政則亂이라
황제가 “어찌하여 그렇게 말하는가?”라고 묻자, 원연이 말하기를 “상서령 진번尙書令 陳蕃이 정사를 맡으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중상시中常侍황문黃門이 정사에 관여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지니,
是以 知陛下可與爲善이요 可與爲非니이다 帝曰 敬聞闕矣라하고 拜五官中郞將하다
이 때문에 폐하陛下는 더불어 선행善行을 할 수도 있고 더불어 비행非行을 할 수도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였다. 황제는 “나의 잘못을 공경히 들었다.” 하고는, 그를 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으로 제수하였다.
客星 經帝座注+帝座一星, 在太微宮中.어늘 帝密以問延한대 延曰 天子動靜以禮 則星辰順序하고 意有邪僻이면 則晷度錯違하나니
】 마침 객성客星제좌성帝座星을 지나가자注+제좌성帝座星 안에 있다. 황제가 은밀히 원연爰延에게 물으니, 원연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천자天子동정動靜로써 하면 별들이 차례를 순히 따르고, 마음에 간사함이 있으면 해 그림자의 도수가 어긋납니다.
陛下以鄧萬世有龍潛之舊라하여 封侯引見하시고 與之對博하사 上下媟黷하여 有虧尊嚴注+萬世, 遵之子也, 鄧后從父. 龍潛之舊, 謂帝封蠡吾侯時, 與萬世有舊契也. 博, 局戱也.이니이다
폐하陛下께서는 등만세鄧萬世의 옛 친분이 있다 하여 로 봉하여 인견하시고 그와 더불어 장기를 두셔서 상하上下가 지나치게 가깝고 무례하여 존엄한 체통을 훼손하고 있습니다.注+등만세鄧萬世등준鄧遵의 아들이니, 등후鄧后종부從父이다. “용잠지구龍潛之舊”는 황제가 여오후蠡吾侯(여오후)로 봉해졌을 때에 등만세와 옛 친분이 있었음을 이른다. 은 장기판으로 놀이하는 것이다.
夫愛之則不覺其過 惡之則不知其善이라 王者賞必酬功하고 爵以甄德注+甄, 明也.이니이다
사랑하면 그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미워하면 그의 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왕자王者을 줄 때에 반드시 이 있는 사람에게 내리고 작위爵位를 내릴 때에 을 밝게 드러내는 것입니다.注+은 밝힘이다.
善人同處 則日聞嘉訓하고 惡人從游 則日生邪情하며 邪臣惑君하고 亂妾危主하나니
선인善人과 함께 거처하면 날마다 아름다운 교훈을 듣고 악인惡人을 따라 놀면 날마다 간사한 마음이 생기며, 간사한 신하는 군주를 미혹하고 음란한 은 주군을 위태롭게 합니다.
惟陛下 遠讒諛之人하고 納謇謇之士하시면 則災變可除니이다 帝不能用하니 稱疾免歸하다
바라건대 폐하陛下께서는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강직하고 직언直言하는 선비를 받아들이소서. 그리하시면 재변災變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황제가 그의 말을 쓰지 못하니, 원연은 병을 칭탁하여 면직하고 돌아갔다.
역주
역주1 復斷刺史二千石行三年喪 : “安帝 때에 일찍이 大臣이 三年喪을 행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썼다가 6년에 다시 금하였다고 썼고, 桓帝 때에도 刺史와 二千石이 삼년상을 행하는 것을 다시 허락했다고 썼다. 이때 이르러 역시 6년이 지났을 뿐인데 또다시 금했다고 썼으니, 어찌 古禮를 회복하는 것이 이처럼 어렵단 말인가. 人心의 不肖함이 슬퍼할 만하다. 그러므로 ≪資治通鑑綱目≫에서 이것을 다 쓴 것이다.[安帝嘗書聽大臣行三年喪矣 六年而書復斷 桓帝亦書復聽刺史二千石行三年喪矣 至是亦六年耳 又以復斷書 豈古禮之難復哉 人心之不肖 可悲矣 故綱目悉書之]다” ≪書法≫
역주2 葬懿獻皇后于懿陵 : “后의 장례에 땅을 쓰지 않는데, 여기서 懿陵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합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땅을 쓴 것이다. 后의 장례에 땅을 쓴 것은 모두 마땅히 합장해야 하는데 합장하지 않은 경우가 아니면, 합장해서는 안 되는데 합장한 경우이다. 그렇지 않으면 陵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데 능이라고 한 경우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后의 장례에 땅을 쓴 것이 일곱 번이니, 모두 비난한 것이다.[后葬不地 此其書懿陵 何 不以合葬也 故地 凡后葬書地 非宜合而不合 則不宜合而合者也 否則不宜陵而陵者也 終綱目 后葬書地七 皆譏也]다” ≪書法≫
역주3 大將軍梁冀伏誅……皆以罪免爲庶人 : “이때 梁冀의 집을 포위하자 양기가 자살하였는데, 伏誅되었다고 쓴 것은 그 죄를 바로잡은 것이다. 무릇 위에 사건을 쓰고 아래에 관직을 쓴 것은 그 일을 좋게 여겨 賞으로 관직을 준 것이요, 위에 사건을 쓰고 아래에 죄를 쓴 것은 그 일을 죄준 것이다. 양기는 伏誅되었다고 썼고 胡廣 등은 죄로 면직되었다고 썼으니, 이들이 梁氏의 黨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三公이 모두 梁氏의 黨이었으니, 漢나라가 위태롭지 않음은 요행이다.[於是 圍冀第 冀自殺 書伏誅 正其罪也 凡上書事 下書官 官其事也 上書事 下書罪 罪其事也 冀書伏誅 廣等書以罪免 其爲梁氏之黨明矣 三公皆黨梁氏 漢之不危 幸哉]” ≪書法≫ “梁冀가 죽은 것은 황제가 다만 그의 방자하고 횡포한 짓에 노여워해서 죽였을 뿐, 능히 죄가 있음을 따져서 王法으로 마땅히 주벌해야 할 죄를 바로잡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양기가 권력을 專橫할 때를 당해서는 진실로 이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들이 함께 쇠망할 즈음에 미쳐서는 다시 돌아보고 염려할 것이 없는데도, 漢나라 조정의 여러 사람들이 어찌 조정에 申告하여 양기가 본래 鴆毒으로 황제를 시해한 화를 들어 大義를 분명하게 밝혀 그의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따져서 그 몸을 죽이고 그 집을 웅덩이로 만들지 않았는가. 이렇게 하였더라면 거의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가 천하에 분명히 드러났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렇게 할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에 ≪資治通鑑綱目≫에 伏誅라고 쓰면서 그의 관직을 제거하지 아니하여 겨우 竇憲과 똑같은 類의 죄를 주고 王莽, 董卓과 같은 급의 죄를 주지 않았으니, 이는 漢나라 사람들이 역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것을 비난한 것이다. 아래에 胡廣 등이 모두 죄로 면직되었다고 썼으니, 그렇다면 온 조정이 역적에게 아부한 죄가 더욱 분명하다. 아, 逆臣을 주벌할 때에는 반드시 그 黨을 다스려서 역적을 토벌하는 것보다 급하게 하여야 하니, 역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것을 폄하한 것이다. 그래서 書法이 이와 같은 것이니, 반역을 한 자에게 어찌 발을 붙일 땅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資治通鑑綱目≫이 편수되자 亂臣賊子가 두려워했다.’ 한 것이다.[梁冀之死滅 帝特以恣橫 怒而殺之爾 非能討有罪而正王誅也 然當冀擅權之時 誠未有易然者 迨其相斃 無復顧慮 漢朝諸人 盍亦申告于朝 糾擧本初鴆毒之禍 顯明大義 討其不赦之罪 殘其身 汙瀦其宮 庶幾討賊之義暴白於天下 而當時則弗暇也 是以綱目書伏誅 而不去其官 僅與竇憲同科 而不與莽卓比者 譏漢人之失賊也 下書胡廣等皆以罪免 則擧朝阿附逆賊之罪 尤曉然矣 嗚呼 誅逆臣 必治其黨 急於討賊 則以失賊爲貶 而書法若此 爲逆者 豈有容足之地哉 故曰綱目修而亂臣賊子懼]” ≪發明≫
역주4 2명의 大將軍 : 梁冀와 양기의 부친 梁商이다.
역주5 선비들의……하십니까 : 秦나라의 간신 趙高가 권력을 독단하기 위하여 二世皇帝를 기롱한 ‘指鹿爲馬’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조고가 이세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말하자 이세황제가 신하들에게 물었는데, 사슴이라고 옳게 말하는 자도 있었고 조고의 비위를 거스르기 어려워 침묵을 지키거나 말이라고 대답하는 자도 있었다. 그 후 조고가 사슴이라고 말한 자를 골라 은밀히 제거하니, 이후로 신하들은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하는 자가 없게 되었다.(≪史記≫ 권6 〈秦始皇本紀〉)
역주6 (賜)[陽] : 저본에는 ‘賜’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陽’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徵處士徐穉……皆不至 : “梁冀가 비록 주살을 당하였으나 조정에 간사하고 총애를 받는 자들이 가득하였으니, 이 어찌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때이겠는가. 諸賢들이 오지 않은 것이 마땅하다. 차례대로 나열하여 쓴 것은 이들을 모두 인정한 것이다.[梁冀雖誅 而姦倖充斥 此豈可爲之時 諸賢不至宜矣 列敍書之 皆予之也]” ≪發明≫
역주8 安車에 玄纁 : 安車는 老人들이 타기 편리하도록 수레바퀴에 부들자리를 단 낮은 수레이며, 玄纁은 검은색과 붉은색의 비단인바, 옛날 폐백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역주9 何休가……같다 : 何休는 後漢 사람으로 字가 邵公인데 ≪春秋公羊傳≫에 註를 단 사람이다. 札은 작은 종이로, 이 내용은 司馬貞의 ≪史記索隱≫에 보인다.
역주10 封皇后兄子鄧康……弘農掾杜衆 : “皇后의 오라비의 아들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사사로움을 비난한 것이다. 황후의 오라비의 아들인데 환관과 나란히 쓴 것은 그를 매우 천하게 여긴 것이다. 이 때문에 만약 사사로움에서 나왔으면 비록 大將軍의 子弟라도 환관과 나란히 쓰고(建和 元年(147)) 비록 황후의 오라비의 아들이라도 환관과 나란히 쓰니, 이는 모두 천하게 여긴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봉하고 이러한 사람을 죽였으니, 桓帝의 상벌을 알 수 있다. 令과 掾에게 관직을 갖추어 쓴 것은 정직한 신하임을 인정한 것이다.[皇后兄子 何 譏私也 皇后兄子而與宦者幷書 賤之甚矣 是故苟出於私 雖大將軍子弟 與宦者幷書(建和元年) 雖皇后兄子 與宦者幷書 皆所以賤之也 封若而人 殺若而人 桓之刑賞 可知矣 令掾具官 予直臣也]” ≪書法≫ “그 봉한 자가 저와 같고 그 죽인 자가 이와 같으니, 漢나라의 國事를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어찌 董卓과 曹操를 기다린 뒤에 알 수 있겠는가. 이것을 책에 쓴 것은 우선 나라가 멸망할 조짐을 드러낸 것이다.[其所封者如彼 其所殺者如此 則漢事從可知矣 何待董卓曹操而後見哉 書之于冊 姑以著滅亡之漸爾]” ≪發明≫
역주11 鄕侯 : 後漢代에는 列侯가 분화되어 縣侯, 鄕侯, 亭侯로 명칭과 지위가 나뉘어졌으며 後漢末에는 縣侯, 鄕侯, 都鄕侯, 都亭侯, 亭侯로 분화하였다.
역주12 五侯尤貪縱 傾動內外 : 五侯는 單超, 徐璜, 貝瑗, 左悺, 唐衡으로 자세한 내용은 본서 90쪽에 보인다.
역주13 以宦者單超爲車騎將軍 : “전에 單超를 侯로 봉할 적에 宦者라고 쓴 것은 처음 나타났기 때문이요, 이때 두 번 나타났는데 다시 환자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車騎將軍을 애석하게 여긴 것이다. 환자를 거기장군으로 삼아서 환자의 기세가 더욱 성하게 되었으니, 환자가 將軍이 된 것은 桓帝로부터 시작하였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환자가 장군이 되었다고 쓴 것이 일곱 번인데, 悖義將軍(北魏의 符承祖)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장군을 시킨 것은 너무 지나치고, 司空(北魏의 劉騰, 唐나라의 李輔國)을 시킨 것은 너무 심하다.[超前封侯 書宦者 以始見也 於是再見 復書宦者 何 爲車騎惜也 以宦者爲車騎將軍 而宦官之勢益盛矣 宦者爲將軍 自桓帝始 終綱目 書宦者爲將軍七 悖義將軍不與焉(符承祖) 將軍過矣 司空甚哉(劉騰, 李輔國)]” ≪書法≫ “單超를 宦者라고 쓴 것이 이미 앞에 보이는데 중복됨을 혐의하지 않은 것은 그를 미워하여 심하게 여긴 것이요, 또 車騎將軍의 직책에 그가 적임자가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超書宦者 已見於前 而不嫌於重複者 惡而甚之 且以著車騎之職非其人也]” ≪發明≫
역주14 鄕侯 : 본서 96쪽 역주 11)에 보인다.
역주15 諸侯 上象四七 : 四七은 28宿을 이른다. 사방에 각 일곱 별자리가 있어 四七이라 한 것이다. ≪後漢書≫ 〈劉瑜傳〉에 “제후의 자리는 위로 28宿를 본떴다.[諸侯之位 上法四七]” 하였다.
역주16 六宮 : 여섯 개의 宮으로 正寢이 하나이고 燕寢이 다섯인데 皇后 이하가 거처하는 곳인바, 정침을 大寢, 연침을 小寢이라 하기도 한다.
역주17 單匡이……것이다 : 雒陽의 獄은 河南尹 楊秉의 소관이었으므로 單匡은 그가 이 사건을 끝까지 조사할까 염려한 것이었다.
역주18 龍潛 : 龍은 제왕을 상징하는바, 황제가 즉위하기 이전을 이른다. ≪周易≫ 乾卦 爻辭에 初九를 潛龍(못 속에 숨이 있는 용)이라 하고, 九五를 飛龍(하늘을 나는 용)이라 하였는데 初六은 신분이 미천한 文人을, 九五는 제왕을 비유한다. 이에 따라 太子의 宮을 潛邸라 칭한다.
역주19 太微宮 : 太微는 太微垣에 딸린 별자리 이름으로 북두칠성의 남쪽에 있는바 “五帝가 거처하고 열두 제후의 부서가 있다.” 하여 황제가 있는 대궐을 상징한다. 太微垣은 三垣의 하나로 태미원, 紫微垣, 天市垣을 三垣이라 하는데 맨 위에 있는 태미원은 별이 10개이고 자미원은 15개, 천시원은 22개이며, 五帝의 帝座星이 그 안에 있어 바깥은 담[垣]과 같고, 宮과 같다 하여 垣․宮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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