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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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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卯年(B.C. 90)
신묘년(B.C. 90)
三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정화征和 3년이다.
春正月 匈奴寇五原, 酒泉이어늘 二月 遣李廣利等하여 將兵擊之하다
봄 정월에 흉노匈奴오원五原주천酒泉으로 침입하자, 2월에 이광리李廣利 등을 보내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공격하게 하였다.
〇 夏하다
[綱] 여름에 사면赦免하였다.
〇 發西域兵하여 擊車師하여 盡得其王民衆而還注+時, 馬通與李廣利等, 將兵擊匈奴, 道過車師北, 漢恐遮馬通兵, 遣將擊之.하다
[綱] 서역西域의 군대를 징발하여 차사국車師國을 공격하게 해서 그 과 백성의 무리를 모두 사로잡아 돌아왔다.注+이때 마통馬通이광리李廣利 등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흉노匈奴를 공격하였는데 길이 차사국車師國의 북쪽을 지나게 되니, 나라에서는 거사국에서 마통의 군대를 가로막을까 염려하여 장수를 보내어 공격한 것이다.
◑ 六月 하고 李廣利妻子下吏러니 廣利降匈奴어늘 詔族其家하다
[綱] 6월에 승상丞相 유굴리劉屈氂기시형棄市刑을 당하고 이광리李廣利처자妻子옥리獄吏에 회부되었는데, 이광리가 흉노匈奴에 항복하자 조령詔令을 내려 그의 종족宗族을 멸하였다.
貳師之出也 丞相劉屈氂 爲祖道하여 送至渭橋注+爲, 去聲. 祖者, 送行之祭. 黃帝子纍祖, 好遠遊而死於道, 故後人以爲行神, 出行者祭之, 作一土壘, 置牛羊其上, 祭畢, 以車碾從上過, 則無難險. 因以胙肉食之, 謂之餞.한대 廣利曰 願君侯 早請昌邑王爲太子하라
[目] 처음에 이사장군貳師將軍(이광리李廣利)이 출전할 적에 승상丞相 유굴리劉屈氂조도祖道(노제路祭)를 지내주고 전송하러 위교渭橋에까지 이르렀는데,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는 길을 떠나는 사람을 전송하는 제사이다. 황제黃帝의 아들 유조纍祖(누조)가 멀리 유람하기를 좋아하다가 도로에서 죽었으므로 후인後人들이 그의 영혼을 행신行神(노신路神)으로 삼아 길을 떠나는 자가 제사하였는데, 흙으로 한 보루堡壘를 만들어 그 위에 소와 양을 올려놓고 제사 지낸 다음, ‘수레로 그 위를 짓밟고 지나가면 먼 길을 감에 험난함이 없어진다.’ 하였다. 인하여 제사한 고기를 먹고 이것을 이라 하였다. 이광리가 당부하기를 “원컨대 군후君侯께서는 속히 창읍왕昌邑王(유하劉賀)을 태자太子로 삼도록 청하십시오.
如立爲帝 君侯長何憂乎리오 屈氂許諾하니
만일 창읍왕이 황제가 된다면 군후君侯는 영원히 무슨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유굴리가 허락하였다.
昌邑王者 貳師女弟李夫人子也 貳師女爲屈氂子妻 共欲立焉하니라
창읍왕은 이사장군의 여동생인 이부인李夫人의 아들이었는데, 이사장군의 딸이 유굴리의 며느리가 되었으므로 함께 창읍왕을 세우고자 한 것이었다.
貳師出塞하여 破匈奴兵於夫羊句山하고 乘勝追北하여 至范夫人城注+夫羊, 地名. 句, 音鉤. 句山, 西山也. 范夫人城, 本漢將築此城, 將亡, 其妻率餘衆完保之, 因以爲名.이러니
이사장군이 변방으로 출동하여 흉노匈奴의 군대를 부양夫羊구산句山에서 격파하고, 승세를 타고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범부인성范夫人城에 이르렀다.注+부양夫羊지명地名이다. 는 음이 이니, 구산句山서산西山이다. 범부인성范夫人城은 본래 나라 장수가 이 을 쌓았는데, 장수가 도망하자 그 아내가 남은 병력을 거느리고 이 성을 완전히 지켰으므로 인하여 범부인范夫人을 성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有告丞相夫人祝詛上하고 及與貳師共禱祠하여 欲令昌邑王爲帝라한대 按驗하여 罪至大逆不道
이때 마침 승상丞相부인夫人을 저주하고 또 이사장군과 함께 기도하고 제사해서 창읍왕을 황제가 되게 하려고 했다고 고발한 자가 있었는데, 조사하여 죄가 대역무도大逆無道함에 이르렀다.
六月 屈氂要斬東市하고 貳師妻子亦收하다
그리하여 6월에 유굴리는 동쪽 시장에서 요참형腰斬刑을 당하고, 이사장군의 처자 또한 구속되었다.
貳師聞之하고 憂懼하여 遂深入要功하여
이사장군은 이 말을 듣고 근심하고 두려워해서 마침내 깊이 적지에 쳐들어가 을 세워 속죄하려고 하였다.
北至郅居水上하여 逢左賢王, 左大將하여 合戰一日 殺左大將하고 虜死傷甚衆이러니
이에 북쪽으로 질거수郅居水 물가에 이르러 흉노의 좌현왕左賢王좌대장左大將을 만나 하루 동안 회전會戰한 결과 흉노의 좌대장을 죽였고 오랑캐의 사상자가 매우 많이 발생하였다.
還至燕然山注+燕, 音煙, 燕然山, 在匈奴速邪烏地中, 稽落山之北. 單于自將五萬騎하여 遮擊貳師할새 夜塹漢軍前後數尺하여 從後急擊之하니 大亂敗하여 貳師遂降이라
이사장군이 회군하여 연연산燕然山에 이르렀는데,注+은 음이 이다. 연연산燕然山흉노匈奴속사오速邪烏 지역 가운데 있으니, 계락산稽落山의 북쪽이다.선우單于가 직접 5만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이사장군을 가로막고 공격할 적에 밤중에 나라 군대의 앞뒤로 몇 자[]의 참호를 파놓고 뒤에서 맹렬히 공격하니, 나라 군대가 크게 혼란에 빠져 패해서 이사장군이 마침내 항복하였다.
單于以女妻之하니 宗族 遂滅하다
선우가 이사장군에게 딸을 시집보내니, 이사장군의 집안이 마침내 멸족을 당하였다.
〇 秋하다
[綱] 가을에 황충蝗蟲의 재해가 있었다.
〇 以田千秋爲大鴻臚하고 하다
[綱] 전천추田千秋대홍려大鴻臚로 삼고 강충江充의 집안을 멸족하였다.
吏民以巫蠱相告言者 案驗하니 多不實이라
[目] 관리와 백성들 중에 무고巫蠱를 서로 고발한 자들을 조사하여 징험해보니, 사실이 아닌 것이 많았다.
頗知太子皇恐無他意注+言爲江充所迫, 皇恐無以自明, 而起兵殺江充, 非有他意也.러니 高寢郞田千秋 上急變하여 訟太子寃曰注+高寢郞, 高廟衛寢之郞. 上, 時掌切. 所告非常, 故云急變.
태자太子가 황공해서 그런 것이고 딴마음이 없었음을 자못 알고 있었는데,注+〈“파지태자황공무타의頗知太子皇恐無他意”는〉 태자太子강충江充에게 압박을 당해서 놀라고 두려워 스스로 밝힐 길이 없으므로 군대를 일으켜 강충을 죽인 것이지, 딴마음이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 마침 고침랑高寢郞(고조高祖능침陵寢낭관郎官)인 전천추田千秋급변急變을 올려 태자의 억울함을 다음과 같이 하소연하였다.注+고침랑高寢郞고묘高廟능침陵寢을 보호하는 낭관郞官이다. (올리다)은 시장時掌이다. 하는 내용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므로 ‘급변急變’이라 한 것이다.
子弄父兵이면 罪當笞 天子之子 過誤殺人이면 當何罪哉잇고
“자식이 아버지의 병기를 가지고 희롱하면 죄가 태형笞刑에 해당하니, 천자天子의 아들이 과오로 사람을 죽이면 무슨 죄에 해당하겠습니까.
臣嘗夢見一白頭翁 敎臣言하더이다
이 일찍이 꿈속에서 한 백발노인을 만나보았는데, 신으로 하여금 이것을 황제께 말씀드리게 하였습니다.”
乃大感寤하여 召田千秋하여 謂曰 父子之間 人所難言也어늘 獨明其不然하니 高廟神靈 使公敎我
은 마침내 크게 감동하고 깨달아 전천추를 불러 이르기를 “부자간의 일은 남들이 말하기 어려운 것인데, 이 홀로 그렇지 않음을 밝혔으니, 이는 고묘高廟의 신령이 으로 하여금 나를 가르쳐주게 한 것이다.
當遂爲吾輔佐라하고 立拜千秋爲大鴻臚注+立拜, 當其立見而卽拜之, 言不移時也.하고 而族滅江充家하고 焚蘇文於橫橋上注+橫, 音光, 長安城北面西頭第一門曰橫門, 門外有橋, 名橫橋, 卽渭橋也.하다
은 마땅히 마침내 나의 보좌가 되어야 한다.” 하고, 즉석에서 전천추를 대홍려大鴻臚로 제수하고注+입배立拜”는 서서 뵐 때에 즉시 제수한 것이니, 시간을 경과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강충江充의 집안을 멸족하였으며, 소문蘇文횡교橫橋(광교) 위에서 불태워 죽였다.注+은 음이 이다. 장안성長安城 북면 서쪽 머리의 첫 번째 문을 횡문橫門이라 하고, 밖에 다리가 있는데 이름을 횡교橫橋라 하니, 바로 위수渭水의 다리이다.
憐太子無辜하여 乃作思子宮하고 爲歸來望思之臺於湖하니 天下聞而悲之注+歸來望思, 言己望而思之, 庶幾太子之魂歸來也.하니라
태자太子가 죄 없이 죽은 것을 가엾게 여겨 마침내 사자궁思子宮을 짓고 귀래망사대歸來望思臺호현湖縣에 지으니, 천하天下 사람들이 듣고 슬퍼하였다.注+귀래망사歸來望思”는 자기가 바라보고 생각하여 행여 태자太子영혼靈魂이 돌아오기를 바람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丞相屈氂棄市 : “劉屈氂는 腰斬刑을 당하였는데, ‘棄市’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유굴리를 죄주는 말이다. 李陵이 항복했을 적에 뒤에 ‘이릉의 가족을 주살하였다.[族誅]’라고 썼었는데, 이광리 역시 항복하여 그 집안을 멸족했는데도, 어찌하여 ‘誅’라고 쓰지 않았는가? 이때에 이광리와 유굴리는 昌邑王을 太子로 세우려 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유굴리는 棄市刑을 당하고 이광리의 처자식은 獄吏에게 회부되었는데, 이광리가 오랑캐 땅에 깊이 쳐들어가서 스스로 속죄하고자 하다가 대패하여 마침내 항복하였다. 《資治通鑑綱目》에서 ‘깊이 쳐들어가 크게 패했다.’라고 쓰지 않고, 곧바로 ‘흉노에게 항복했다.’고 써서 이광리의 죄를 드러내었으니, ‘誅’를 쓰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屈氂 腰斬也 其書棄市 何 罪辭也 李陵之降也 後書族誅李陵家 廣利亦降矣 族其家 則何以不書誅 於是廣利屈氂欲立昌邑爲太子 事覺 屈氂棄市 廣利妻子下吏 廣利因欲深入自贖 大敗遂降 綱目不書深入大敗 直書降匈奴 廣利之罪著矣 不書誅 可也]” 《書法》
“相臣을 棄市하여 개돼지보다도 못하게 대우하였으니, 국가의 체통에 어떠한가? 李廣利의 三族을 誅殺함은 굳이 말할 것이 못 되는데, 이를 써서 처음에 사람을 가볍게 등용한 잘못을 나타낸 것이다.[相臣棄市 待之不啻犬彘矣 其於國體何如哉 廣利族誅 無足道者 書之 以見始焉輕用之失]” 《發明》
역주2 族滅江充家 : “江充은 太子를 誣陷하였으니 죄인이다. 태자에게 있어서는 ‘殺’이라 쓰는 것이 마땅하다. 武帝가 이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깨달아 江充의 집안을 멸족하였는데, 어찌하여 ‘族誅’라고 쓰지 않았는가? 武帝를 나쁘게 여긴 것이다. 나쁘게 여긴 것은 무엇인가? 강충은 은밀한 일을 고자질함으로써 무제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단정한 선비가 아니다. 그런데도 무제가 그를 총애하고 믿어서 巫蠱의 獄事를 다스리게 하였으니, 무제 또한 허물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만 ‘族滅’이라고 쓴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을 만든 이래로 ‘族’이라고 쓴 것이 11번인데, 무제가 그중에 여섯 번을 차지하니, 그렇다면 무제의 형벌이 너무 각박한 것이다. 이후로 漢나라의 여러 신하 중에, 謀反한 경우가 아니면 집안을 멸족한[夷族] 자가 없고, 唐나라에 이르러서는 모반하지 않았는데 집안을 멸족한 자를 세 번 썼을 뿐이었다.[江充誣陷太子 罪人也 在太子則書殺宜矣 帝旣悔悟族之 則曷爲不書族誅 病帝也 其病之 何 充以告陰事見知 非端士矣 而寵信之 使治巫蠱 帝亦不能無過也 故止書族滅 入綱目以來 書族十一 而武帝居其六 然則帝之刑 亦太刻哉 自是以後 漢諸臣非謀反 無夷族者 以至于唐 非謀反而夷族者 三書而已]” 《書法》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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