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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0)

자치통감강목(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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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강목(20)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梁大同八年이요 魏大統八年이요 東魏興和四年이라
春正月 梁安成妖人 作亂이어늘 三月 江州司馬王僧辯 討平之하다
安成望族劉敬躬 以妖術惑衆하여 遂據郡反하니 南方久不習兵이라 人情擾駭어늘
江州刺史湘東王繹 遣司馬王僧辯하여 討斬之注+① 繹, 梁主子.하다 僧辯該博辯捷하고 器宇肅然하여 雖射不穿札이라도 而志氣高遠注+② 編甲如櫛齒相比曰札.이러라
魏初置六軍하다
◌ 秋八月 東魏以侯景爲河南大行臺하다
◑ 冬十月 東魏大丞相歡圍魏玉壁하여 不克而還하다
高歡擊魏하여 入自汾絳하여 連營四十里어늘 宇文泰使王思政守玉壁하여 以斷其道한대 歡圍玉壁九日 遇大雪하여 士卒多死 遂解圍去하다
十二月 梁盧子略 作亂이어늘 廣州參軍陳霸先 討平之하다
孫冏盧子雄 討李賁할새 以春瘴方起 請待至秋注+① 瘴, 熱病也. 南方瘴熱, 春氣深則瘴起. 染之者必死, 軍行尤畏之.한대 武林侯諮趣之하여 衆潰而歸注+② 趣,讀曰促.러니 諮誣奏冏及子雄逗留라하니 賜死하다
子雄弟子略及杜僧明周文育等 帥衆攻廣州注+③ 句.어늘 參軍吳興陳霸先 帥精甲三千하여 擊破之하고 擒僧明文育하니
霸先以二人驍勇過人이라하여 釋之以爲主帥러니 詔以霸先爲直閣將軍하다


梁나라 高祖 武帝 蕭衍 大同 8년이고, 西魏 文帝 元寶炬 大統 8년이고, 東魏 孝静帝 元善見 興和 4년이다.
【綱】 봄 정월에 梁나라 安成의 요망한 사람이 난을 일으키자 3월에 江州司馬 王僧辯이 난을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目】 安成의 명망이 있는 종족 劉敬躬이 妖術로 백성들을 현혹하여 마침내 郡을 점거하여 반란을 일으키니 남방에서는 오랫동안 군사 훈련을 하지 않았으므로 인심이 동요하고 놀랐다.
江州刺史 湘東王 蕭繹이 司馬 王僧辯을 파견하여 유경궁을 토벌하여 참수하였다.注+① 蕭繹은 梁主(蕭衍)의 아들이다. 왕승변은 해박하고 말을 잘하며 민첩하고 풍채가 엄숙하여 비록 활을 쏘아 갑옷의 비늘을 뚫지 못하더라도 뜻과 기운은 높고 원대하였다.注+② 갑옷을 엮어 빗살처럼 배열한 것을 札이라 한다.
【綱】 西魏가 처음으로 6軍을 설치하였다.
【綱】 가을 8월에 東魏가 侯景을 河南大行臺로 삼았다.
【綱】 겨울 10월에 東魏의 大丞相 高歡이 西魏의 玉壁을 포위하였다가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目】 高歡이 西魏를 공격하여 汾州와 絳州에서부터 진입하여 군영을 40리에 걸쳐 연결시키자, 宇文泰가 王思政을 시켜서 玉壁을 지키게 하여 그 길을 차단하게 하였다. 고환이 옥벽을 포위한 지 9일이 되었을 때 큰 눈이 내려서 士卒들이 많이 죽었으므로, 마침내 포위를 풀고 떠났다.
【綱】 12월에 梁나라 盧子略이 난을 일으키자, 廣州參軍 陳霸先이 난을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目】 孫冏과 盧子雄이 李賁을 토벌하는데, 봄이라 瘴氣가 한창 발생하였으므로 가을이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을 요청하였는데,注+① 瘴은 熱病이다. 남쪽 지역은 瘴氣가 있고 더운데 봄의 기운이 짙어지면 瘴氣가 발생한다. 장기에 감염된 사람은 반드시 죽기 때문에 군대가 출동할 때 더욱 두려워한다. 武林侯 蕭諮가 재촉하여 출정했다가 군사들이 궤멸되어 돌아왔다.注+② 趣(재촉하다)은 促으로 읽는다. 소자가 誣告로 주청하여 손경과 노자웅이 머뭇거리면서 전진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들에게 죽음을 내렸다.
노자웅의 아우인 盧子略과 杜僧明, 周文育 등이 무리를 인솔하고 廣州를 공격하였는데,注+③ 여기에서 구두를 뗀다. 參軍인 吳興 사람 陳霸先이 정예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그들을 격파하고 두승명과 주문육을 사로잡았다.
진패선은 두 사람의 용맹이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여겨 그들을 풀어주어 主帥로 삼았는데, 조서를 내려서 진패선을 直閣將軍으로 삼았다.



자치통감강목(20) 책은 2022.11.0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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