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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2)

자치통감강목(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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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亥年(279)
晉咸寧五年이요 吳天紀三年이라
春正月 樹機能攻陷涼州어늘 晉遣將軍馬隆討之하다
樹機能 久爲邊患이어늘 僕射李憙請發兵討之하니 朝議皆以爲出兵 重事 虜不足憂라하더니
至是陷涼州注+涼州治武威.하니 晉主臨朝而嘆曰 誰能爲我討此虜者오하니
司馬督馬隆 進曰 陛下能任臣하시면 臣能平之注+晉制, 二衛始制前驅‧由基‧弩爲三部司馬, 各置督리이다 晉主曰 必能平賊이면 何爲不任이리오마는 顧方略何如耳
隆曰 臣願募勇士三千人하여 無問所從來하고 帥之以西 虜不足平也注+應募者, 或出於農畒, 或出於營伍, 或出於逋逃, 或出於奴隷, 皆不問其所從來也. 帥讀曰率.니이다 晉主許之하여 以爲討虜將軍武威太守하니
募能引弓四鈞挽弩九石者取之注+三十斤爲鈞, 四鈞爲石.하여 立標簡試하니 自旦至日中 得三千五百人注+標, 表也.이라
隆曰 足矣라하고 又請自至武庫選仗하니 御史劾之한대 晉主命惟隆所取하고 仍給三年軍資而遣之하다
豹之子也 幼而雋異하고 師事上黨崔遊하여 博習經史러니
嘗謂同門生曰 吾常恥隨陸無武하고 絳灌無文注+隨‧陸, 隨何‧陸賈. 絳‧灌, 絳侯周勃‧灌將軍嬰.하노니 隨陸遇高帝而不能建封侯之業하고
絳灌遇文帝而不能興庠序之敎하니 豈不惜哉리오 於是兼學武事러니 乃長 猿臂善射하고 膂力過人하고 姿貌魁偉하니
爲任子在洛陽 王渾及其子濟皆重之하여 屢薦於晉主하니 晉主召與語悅之러라
濟曰 淵有文武長才하니 陛下任以東南之事하시면 吳不足平也리이다
孔恂楊珧曰 非我族類이니 其心必異 淵才器誠少比 然不可重任也이니이다
及涼州覆沒 晉主問將於李憙한대 對曰 陛下誠能發匈奴五部之衆하여 假淵一將軍之號하사 使將之而西하면
樹機能之首 可指日而梟也리이다 恂曰 淵果梟樹機能하면 則涼州之患方更深耳리이다하니 晉主乃止하다
東萊王彌家世二千石注+彌, 魏玄菟太守王頎之孫.이라 彌有學術勇略하고 善騎射하니 靑州人謂之飛豹
然喜任俠하니 處士陳留董養 見而謂之曰 君好亂樂禍하니 若天下有事 不作士大夫矣注+言將爲賊也.로다
淵與彌友善이러니 謂彌曰 王李以鄕曲見知注+王渾太原人, 李憙上黨人, 與淵同하여 每相稱薦하니 適足爲吾患耳 因歔欷流涕어늘
齊王攸聞之하고 言於晉主曰 陛下不除劉淵이면 臣恐幷州不得久安일까하노이다
王渾曰 大晉方以信懷殊俗이어늘 奈何以無形之疑 殺人侍子乎 何德度之不弘也 晉主然之러라 會豹卒하니 以淵代爲左部帥하다
冬十一月 晉大擧兵하여 分道伐吳하다
吳主每宴群臣 咸令沈醉하고 又置黃門郞十人爲司過하여
宴罷之後 各奏闕失하여 或剝人面하고 或鑿人眼하니 由是上下離心하여 莫爲盡力注+爲, 去聲.이러라
王濬上疏曰 孫皓荒淫凶逆하니 宜速征伐이라 若皓死 更立賢主 則強敵也
臣作船七年 日有朽敗하고 臣年七十이라 死亡無日하니 三者一乖 則難圖矣 願陛下 無失事機하소서
晉主於是 決意伐吳러니 會王渾言孫皓欲北上하니 邊戍皆戒嚴이라하니 乃更議明年出師어늘
杜預上表曰 賊之窮計하고 力不兩完이라 必保夏口以東하여 以延視息이니
無緣多兵西上하니 而陛下過聽하여 便用委棄大計하시니 縱敵患生 誠可惜也注+延, 引也. 人目不能視氣, 不復息則死矣.로소이다
向使擧而有敗 勿擧可也어니와 今有萬安之擧하고 無傾敗之慮하니
臣心實了 不敢以曖昧之見으로 自取後累 惟陛下察之注+了, 決也. 累, 事相緣及也.하소서
旬月未報어늘 預復表言 羊祜不博謀하고 而與陛計故 令朝臣多異同之議하니
凡事當以利害相校 今若此擧之利十有八九 而其害止於無功耳
必使朝臣으로 言破敗之形하면 亦不可得이니 直是以計不出己하고 功不在身하니
亦由恃恩不慮後患하여 而輕相同異耳注+直, 猶言但也. 自秋已來 討賊之形頗露하니
今若又中止하면 孫皓怖而生計하여 徙都武昌하고 完修江南諸城하며 遠其居民하면
城不可攻이요 野無所掠이면 則明年之計 亦無及矣니이다
晉主方與張華圍碁러니 預表適至하니 華推枰斂手曰注+推, 通回切. 枰, 音平, 碁局也. 陛下聖武하여 國富兵彊한대 吳主淫虐하여 誅殺賢能하니
今討之 可不勞而定이니 願勿以爲疑하소서 晉主乃許之하여 以華爲度支尙書하여 量計運漕注+量計, 量度而計筭也. 陸行曰運, 水行曰漕.하니
賈充荀勖馮紞固爭之어늘 晉主大怒하니 充免冠謝罪러라
山濤退而告人曰 自非聖人인댄 外寧이면 必有內憂하니 今釋吳爲外懼 豈非筭乎注+左傳 “晉侯伐鄭, 楚子救鄭, 晉范文子不欲戰曰 ‘自非聖人, 外寧必有內憂, 盍釋楚以爲外懼乎.’” 山濤引此而言, 外若安寧, 內必有憂. 謂能平吳, 則外寧矣, 然旣無外顧之虞, 則安肆自如, 無所忌憚, 內當有可憂之事生, 何不釋吳勿伐以爲敵國外患乎.
十一月 遣將軍琅邪王伷出涂中注+胡三省曰 “涂讀曰滁, 吳主權作堂邑, 涂塘卽其地, 蓋從今滁州取眞州路.”하고 王渾出江西注+胡三省曰 “今和州出橫江渡路.”하고 王戎出武昌하고 胡奮出夏口하고
杜預出江陵하고 王濬 巴東監軍唐彬下巴蜀하니 東西凡二十餘萬이라
命賈充爲使持節假黃鉞大都督하고 以冠軍楊濟副之注+使, 疏吏切.하니
充固陳伐吳不利하고 且言衰老하여 不堪元帥之任이라한대 詔曰 君若不行이면 吾便自出하리라하니
充乃受命하고 將中軍屯襄陽하여 爲諸軍節度하다
十二月 晉馬隆破樹機能斬之하니 涼州平하다
馬隆 西度溫水注+武威之東有溫圍水.하니 樹機能等 以衆數萬으로 據險拒之어늘
隆以山路陿隘 乃作扁箱車하고 爲木屋施於車上注+扁, 補典切. 車箱扁, 則可行狹路. 木屋, 所以蔽風雨, 捍矢石.하여 轉戰而前하니 行千餘里 殺傷甚衆이라
自隆之西 音問斷絶하니 朝廷憂之하여 或謂已沒이러니 及隆使至
晉主撫掌歡笑하고 召群臣謂曰 若從諸卿言이면 無涼州矣로다
隆至武威 鮮卑大人 帥萬餘落來降이라 隆與樹機能으로 大戰斬之하니 涼州遂平하다
晉詔議省員吏하다
詔問朝臣以政之損益한대 司徒長史傅咸上書注+晉志 “司徒加置左右長史各一人.” 咸, 玄之子也.以爲 公私不足 由設官太多
當今之急 在幷官省役務農而已라한대 遂議省州郡縣半吏以赴農功이러니
中書監荀勖以爲호되 省吏不如省官이요 省官不如省事 省事不如淸心이니
昔蕭曹相漢 하니 所謂淸心也
抑浮說簡文案하고 略細苛하며 宥小失하고 變常以徼利者 必誅 所謂省事也
以九寺併尙書하고 蘭臺付三府 所謂省官也注+九寺, 謂九卿寺也. 漢初九卿各有所掌, 東都以後, 尙書諸曹分掌衆事, 九卿殆爲具官, 故欲併之尙書. 蘭臺, 御史臺也. 三府, 三公府也. 漢丞相有長史‧司直, 御史大夫有中丞‧侍御史, 掌察擧非法, 故勖欲以蘭臺付之三府.
若直作大例하여 天下之吏 悉省其半이면 恐郡國職業 劇易不同하니 不可以一槪施之
若有曠闕이면 皆須更復이요 或激而滋繁이니 亦不可不重也니이다


己亥年(279)
나라 世祖 武皇帝 司馬炎 咸寧 5년이고, 吳主 孫皓 天紀 3년이다.
[] 봄 정월에 禿髮樹機能涼州를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나라가 將軍 馬隆을 파견하여 토벌하였다.
[] 예전에 禿髮樹機能이 오랫동안 변방의 근심거리였는데, 僕射 李憙가 병사를 출동시켜 토벌하기를 청하니, 조정의 의논이 모두 병사를 출동시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오랑캐는 근심할 것이 못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때에 이르러 〈독발수기능이〉 涼州를 함락시키자,注+涼州武威治所를 두었다. 晉主가 조회에 나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누가 나를 위해 이 오랑캐를 토벌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司馬督 馬隆이 나가서 말하기를 “폐하께서 에게 맡겨주신다면 이 이를 평정할 수 있습니다.”注+나라 제도에 의하면 는 처음에 前驅, 由基, 彊弩三部司馬로 삼고 각각 督史를 두었다.라고 하였다. 晉主가 말하기를 “반드시 을 평정할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임무를 맡기지 않겠는가마는, 方略이 어떤 것인지를 살필 뿐이다.”라고 하니,
마륭이 말하기를 “신이 바라건대 勇士 3천 명을 모집하여 출신을 묻지 않고 이들을 인솔하여 서쪽으로 간다면 오랑캐는 평정할 거리가 되지 못합니다.”注+응모하는 자들은 혹은 농사꾼 출신이고, 혹은 병사 출신이고, 혹은 도망자 출신이고, 혹은 노예 출신인데, 모두 그 출신을 따지지 않은 것이다. (거느리다)은 로 읽는다.라고 하니, 晉主가 허락하여 討虜將軍 武威太守로 삼았다.
마륭이 4의 활을 당길 수 있는 사람과 9의 쇠뇌[]를 당길 수 있는 사람을 모집하여 선발할 적에注+30근이 이고, 4이 1이다. 표지를 세우고 시험을 치러서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3,500명을 뽑았다.注+는 표시한다는 뜻이다.
마륭이 말하기를 “충분하다.”라고 하고, 또 자신이 武庫에 가서 병장기를 고를 것을 청하자 御史가 그를 탄핵하였는데, 晉主가 명을 내려 오직 마륭이 취하고 싶은 것을 갖도록 하고 이어 3년간 먹을 수 있는 군량을 주어 보냈다.
[] 나라가 匈奴劉淵左部帥로 삼았다.
[] 劉淵劉豹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준수하고 남달랐으며 上黨 사람 崔遊를 스승으로 섬기며 經史를 두루 익혔다.
일찍이 동문수학하던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는 늘 隨何陸賈武功이 없고, 絳侯灌嬰文才가 없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注+隨陸”은 隨何陸賈이다. “絳灌”은 絳侯 周勃將軍 灌嬰이다. 수하와 육가는 高帝를 만났으나 에 봉해지는 功業을 세우지 못하였고,
絳侯灌嬰文帝를 만났으나 庠序의 교육을 진흥시킬 수 없었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이에 겸하여 무예를 익혔다. 장성하자 원숭이처럼 긴 팔로 활을 잘 쏘았으며, 힘이 보통 사람보다 세었고, 모습이 훤칠하였다.
인질이 되어 洛陽에 있을 때 王渾과 그의 아들 王濟가 모두 소중하게 여겨 여러 차례 晉主(司馬炎)에게 천거하니, 晉主가 불러서 함께 이야기하고는 기뻐하였다.
왕제가 말하기를 “유연은 문무의 재주가 모두 출중하니, 폐하께서 東南의 일을 맡기시면 나라는 평정할 거리도 못 됩니다.”라고 하였다.
孔恂楊珧가 말하기를 “우리 종족과 같지 않으니 필시 그 마음이 다를 것입니다. 유연의 재주와 기량이 진실로 비교할 만한 사람이 적으나 중요한 임무를 맡겨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涼州가 함락되자 晉主李憙에게 장수를 시킬 만한 사람을 묻자, 대답하기를 “폐하께서 진실로 匈奴 5의 무리를 징발하여 유연에게 하나의 장군의 명칭을 빌려주어서 그에게 병사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가게 한다면
禿髮樹機能의 머리는 머지않아 효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공순이 말하기를 “유연이 과연 독발수기능을 효수하면 양주의 근심거리는 더욱 깊어질 뿐입니다.”라고 하니, 晉主가 이를 중지하였다.
[] 東萊 사람 王彌의 집안은 대대로 二千石의 관직을 지냈는데,注+王彌나라 玄菟太守 王頎의 손자이다. 왕미는 學術勇略이 있었으며 말 타고 활 쏘는 것을 잘하니, 靑州 사람들이 그를 飛豹라고 불렀다.
그러나 任俠을 하는 것을 좋아하니, 處士陳留 사람 董養이 그를 보고 말하기를 “그대는 혼란을 좋아하고 화란을 즐기니, 만약 천하에 전란이 있게 되면 사대부가 되지 못할 것이다.”注+〈“不作士大夫矣”는〉 장차 이 될 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劉淵은 왕미와 잘 지냈는데, 왕미에게 말하기를 “王渾李憙는 고향 사람으로 알고 지내는데,注+王渾太原 사람이고, 李憙上黨 사람인데, 劉淵同鄕이다. 매번 서로 칭찬하고 추천해주지만 나에게는 근심거리만 될 뿐이다.”라고 하고, 이로 인해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齊王 司馬攸가 그 소식을 듣고 晉主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 유연을 제거하지 않으시면 신은 幷州가 오랫동안 편안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라고 하였다.
왕혼이 말하기를 “위대한 우리 나라가 신의를 가지고 다른 풍속을 가진 사람을 품어주었는데, 어찌하여 드러나지 않은 의심으로 다른 사람이 보낸 인질을 죽인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이처럼 덕행과 도량이 좁단 말입니까.”라고 하니, 晉主가 수긍하였다. 마침 劉豹가 죽자, 대를 이어 유연을 左部帥로 삼았다.
[] 겨울 11월에 나라가 크게 군대를 일으켜 길을 나누어 나라를 정벌하였다.
[] 吳主(孫皓)가 매번 여러 신하들과 연회를 열 때마다 모두 아주 취하게 하고, 또 黃門郞 10명을 두어 司過(신하의 과실을 규찰하는 관리)로 삼았는데,
연회가 파한 뒤에 각기 그들이 저지른 실수를 상주하여 혹 얼굴의 가죽을 벗기거나 눈알을 파내니, 이로 말미암아 上下가 마음이 떠나서 힘을 다하는 자가 없었다.注+(위하다)는 去聲이다.
王濬이 상소하여 말하기를 “손호가 荒淫無道하고 흉악하며 패역하니, 마땅히 속히 정벌해야 합니다. 만일 갑자기 손호가 죽어 다시 어진 군주를 세우면 강한 적이 될 것이고,
신이 배를 만든 지가 7년이 되어 배가 날로 썩고 부서지며, 신의 나이가 칠십이어서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세 가지 중에 하나만 어그러져도 도모하기가 어려우니, 진실로 폐하께서는 事機를 놓치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晉主(司馬炎)가 이에 나라를 정벌할 것을 결심하였는데, 마침 王渾이 말하기를 “손호가 북쪽으로 올라오려고 하여 변방의 수비를 모두 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자, 다시 이듬해에 출병할 것을 의논하였다.
[] 杜預가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적들이 계책이 곤궁하고 병력이 을 완전히 지키지 못할 것이니, 반드시 夏口의 동쪽을 보존하여 연명하려고 할 것인데,
이유 없이 많은 병사들이 서쪽으로 올라오니 폐하께서 보고를 지나치게 들어 큰 계책을 버리시니, 적을 놓아주어 걱정거리를 만드는 것이 참으로 애석합니다.注+은 이끈다는 뜻이다. 사람의 눈으로는 기운을 볼 수 없고, 다시 숨을 쉬지 못하면 죽는다.
가령 군사를 일으켜 실패한다고 하면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옳지만, 지금은 편안한 거동만이 있고 실패할 염려가 없습니다.
신의 마음은 분명하기에 감히 애매한 의견으로 後患을 자초할 수 없으니, 폐하께서는 살펴주시기 바랍니다.”注+는 결정하는 뜻이다. 는 일이 서로 연결되어 미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 달이 지나도 아무런 回報가 없자, 두예가 다시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羊祜는 널리 계책을 구하지 않고 폐하와 계책을 도모했기 때문에 조정의 신하들로 하여금 대부분 다른 의론이 많아지게 한 것입니다.
무릇 일이란 마땅히 이로움과 해로움을 가지고 비교해야 하는데, 지금 이 거병은 이익이 열에 여덟아홉이고, 해가 되는 것은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하는 것에 그칠 뿐입니다.
조정의 신하들에게 적을 격파할 형세를 말하게 하면 역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는 계책이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고, 공이 자신에게 있지 않으니,
은혜를 믿고 나라의 후환을 염려하지 않기 때문에 가벼이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것뿐입니다.注+(다만)는 과 같다. 가을부터 적을 토벌하겠다는 모습이 제법 드러났으니,
지금 또 중지하면 孫皓가 두려워하여 계책을 내어 도읍을 武昌으로 옮기고 江南에 있는 여러 성들을 완전하게 수리하고 백성들을 먼 곳으로 옮기면
성을 공격할 수 없을 것이며 들에는 약탈할 것이 없게 될 것이니, 다음 해에 정벌하겠다는 계획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 晉主(司馬炎)가 張華와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杜預의 표문이 마침 도착하니, 장화가 바둑판을 밀고 손을 거두며 말하기를注+(밀다)는 通回이다. (바둑)의 음은 이니, 바둑이다. “폐하께서 聖武하시어 나라가 부유하고 군사가 강성한데 吳主가 음탕하고 포악하여 賢能한 자들을 주살하니,
지금 토벌하시면 수고를 하지 않고도 평정할 수 있으니, 바라건대 의심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晉主가 마침내 이를 허락하고 장화를 度支尙書로 삼아 필요한 군수품을 헤아려 조달하게 하였다.注+量計”는 양을 헤아려 계산하는 것이다. 陸路로 가는 것을 이라 하고, 水路로 가는 것을 라 한다.
賈充荀勖馮紞이 굳게 쟁론하였는데, 晉主가 크게 진노하니, 가충이 관을 벗고 사죄하였다.
山濤가 물러나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聖人이 아니고는 밖이 편안하면 반드시 안에는 근심거리가 있으니, 지금 〈우리의 안에 근심이 없으려면〉 나라를 내버려두어 외방의 두려움으로 삼는 것이 어찌 좋은 계책이 아니겠는가.”注+春秋左氏傳成公 16년에 “晉侯나라를 정벌하니, 楚子나라를 구원하였는데, 나라의 范文子가 전투를 원하지 않아 말하기를 ‘聖人이 아니고는 外部가 편안하면 반드시 內患이 있게 마련이니, 어찌 楚軍을 그대로 보내주어 外患으로 삼지 않겠는가.’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山濤가 이를 인용하여 밖이 만일 편안하면 반드시 안에는 근심거리가 있다고 말하였으니, 나라를 평정하면 밖이 편안해지나 이미 밖에 돌아볼 근심이 없다면 편안히 멋대로 행동하여 꺼리는 바가 없게 되어 내부에 마땅히 우려할 만한 일이 발생할 것이니, 어찌 나라를 내버려두어 정벌하지 말아서 敵國外患으로 삼지 않을 것인가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11월에 將軍 琅邪王 司馬伷를 파견하여 涂中(도중)으로 출동하게 하고,注+胡三省이 말하기를 “로 읽는다. 吳主 孫權堂邑을 만들었는데, 涂塘이 그 지역이니, 지금의 滁州에서 眞州路로 향하는 길을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王渾江西로 출동하게 하고,注+胡三省이 말하기를 “지금의 和州에서 橫江의 건너는 길로 나간 것이다.”라고 하였다. 王戎武昌으로 출동하게 하고, 胡奮夏口로 출동하게 하고,
杜預江陵으로 출동하게 하고, 王濬巴東監軍 唐彬巴蜀에서 내려가게 하였으니, 東西가 모두 20여만이었다.
賈充을 명하여 使持節黃鉞을 주어 大都督으로 삼고 冠軍將軍 楊濟副將으로 삼았다.注+使(사신)는 疏吏이다.
賈充나라를 정벌하는 것이 이롭지 못함을 굳게 진술하고 또 자신이 노쇠하다고 말을 하여 元帥의 직임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그대가 만약 출병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갈 것이다.”라고 하니,
가충이 명을 받고 中軍을 거느리고 襄陽에 주둔하면서 諸軍을 통제하였다.
[] 12월에 나라 馬隆禿髮樹機能을 격파하여 참수하니, 涼州가 평정되었다.
[] 馬隆이 서쪽으로 가서 溫水를 건너니,注+武威의 동쪽에 溫圍水가 있다. 禿髮樹機能 등이 수만 명을 데리고 험준한 곳에 의거하여 그들을 막았다.
마륭이 산길이 좁은 것으로 인해 마침내 扁箱車(좁은 길을 가는 수레)를 만들고 나무 지붕을 만들어 수레 위에 얹어서注+(협소하다)은 補典이다. 수레의 몸통이 좁으면 좁은 길을 갈 수 있다. 나무 지붕은 비바람을 막고 화살과 돌을 막는 것이다. 돌아다니며 전투하면서 전진하니, 1천여 리를 나아가자 죽이거나 다치게 한 자들이 매우 많았다.
마륭이 서쪽으로 나아가고 나서 소식이 끊기자 조정에서 걱정하였고, 어떤 자는 이미 죽었다고 말을 하였는데, 마륭의 使者가 도착하였다.
晉主가 손바닥을 치며 즐겁게 웃으며 여러 신하들을 불러 말하기를 “만약 여러 들의 말을 따랐다면 涼州를 잃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륭이 武威에 이르자 鮮卑族大人이 1만여 부락을 인솔하여 와서 항복하였다. 마륭이 독발수기능과 크게 전투를 벌여 그를 참수하자 양주가 이윽고 평정되었다.
[] 나라에서 조서를 내려 관리의 인원을 줄이는 것을 의논하게 하였다.
[] 조서를 내려 조정의 신하들에게 정사의 고칠 점을 물었는데, 司徒左長史 傅咸이 상서하기를注+晉書≫ 〈職官志〉에 “司徒左長史右長史 각각 1인을 더 두었다.” 하였다. 傅咸傅玄의 아들이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재화가〉 부족한 것은 관직을 너무 많이 설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급한 일이 관직을 합병하고 요역을 줄이며 농사에 힘쓰게 하는 데 있습니다.”라고 하니, 이윽고 의 관리를 반으로 줄여서 농업에 종사하는 것을 논의하였다.
그러자 中書監 荀勖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관리를 줄이는 것은 관직을 줄이는 것만 못하고, 관직을 줄이는 것은 사무를 줄이는 것만 못하며, 사무를 줄이는 것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만 못합니다.
옛날에 蕭何曹參나라의 재상을 맡았을 때 조참이 소하의 청정한 정치를 계승하여 백성들이 한결같이 편안하였으니, 이른바 마음을 깨끗이 한 것입니다.
부화하는 말을 억누르고, 문건을 간단히 하며, 자잘하고 번잡한 규정을 간략히 하며, 작은 실수를 용서하고, 상규를 바꾸어서 이익을 취하려 하는 자는 주벌하는 것이 이른바 일을 줄이는 것입니다.
九寺尙書臺에 병합하고 蘭臺三府에 붙이는 것이 이른바 관직을 줄이는 것입니다.注+九寺九卿寺를 말한다. 나라 초기에 九卿은 각각 관장하는 일이 있었는데, 東都(東漢) 이후로 尙書諸曹에서 여러 가지 일을 관장하여 九卿은 거의 자릿수만 채우는 관직이 되기 때문에 尙書臺로 병합하려고 한 것이다. 蘭臺御史臺이고, 三府三公府이다. 나라 丞相長史司直을 거느리고 御史大夫中丞侍御史를 거느려서 법에 어긋나는 일을 적발하였다. 그러므로 荀勖蘭臺三府에 붙이려고 한 것이다.
만약 곧바로 大例를 만들어서 천하 관리의 절반을 모두 줄이면 郡國의 직무에 어렵고 쉬움의 차이가 있으니, 이를 일률적으로 시행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만약 정사가 황폐해지면 모두 다시 회복시켜야 하고, 혹 요동쳐서 번다해질 것이니, 또한 신중히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역주
역주1 二衛 : 천자의 좌우나 전후에 두는 호위군이다.
역주2 (疆)[彊] : 저본에는 ‘疆’으로 되어 있으나, ≪晉書≫ 권24 〈職官志〉에 의거하여 ‘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史] : 저본에는 ‘史’가 없으나, ≪晉書≫ 권24 〈職官志〉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4 晉以匈奴劉淵爲左部帥 : “中華를 어지럽힌 것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資治通鑑綱目≫에서는 기록을 신중히 하였으므로 ‘〈劉淵을〉 左部帥로 삼았다’라고 기록하고, 〈太康 10년(289)에〉 ‘〈유연을〉 匈奴北部都尉로 삼았다.’라고 기록하였으며, 〈永熙 원년(290)에〉 ‘〈유연을〉 匈奴五部大都督으로 삼았다.’라고 기록하였다.[亂華之禍 始此矣 綱目謹志之 故爲左部帥書 爲匈奴北部都尉書 爲匈奴五部大都督書]” ≪書法≫
“先王은 봉역을 다르게 하여 夷狄을 要服과 荒服의 밖에 두고, 夷狄 중에 의리를 사모하여 王(천자)에게 귀의해오는 이들이 있으면 역시 도성문 밖에 거처하게 하였으니, 중화와 이적의 변별을 신중히 하고 內地와 外地의 禁防을 엄격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曹操가 匈奴를 나누어 五部로 편성하여 거처하게 한 뒤로부터 內地에 種類들이 점차 번잡해졌으니, 晉나라가 그것을 계승한 뒤에 어찌 개혁해야 할 것을 알지 못했겠는가. 이미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조정에 있는 신하들도 한창 劉淵의 재주를 번갈아 칭찬하여 중요한 임무를 주려고 하였으니, 이것은 이른바 도적에게 병기를 내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빌려주며 우리 속의 호랑이를 풀어놓아 길 가는 사람을 물어뜯게 하는 격이다. 分注(目)의 글을 살펴보면 王濟‧李憙가 유연을 추천한 것은 夷狄을 처리하는 방도가 몹시 잘못되었고, 齊王 司馬攸의 말에는 아주 先見之明이 있다고 하겠으나 正論을 얻은 것은 아니다. 가령 한 명의 유연이 비록 죽더라도 한 명의 유연이 다시 생길 것이니, 또한 그의 部伍에 돌아가지 말게 하고 그를 보내 변방 밖으로 나가게 해서 禁防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晉以匈奴劉淵爲左部帥’라고 기록한 것은 五胡의 난리가 여기에서부터 조짐이 있었음을 보인 것이니, 슬프다.[先王別異封域 置夷狄於要荒之外 其有慕義來王者 亦以國門外處之 所以謹華戎之辨 嚴內外之防也 自曹操分匈奴爲五部處之 內地種類漸繁 晉氏繼之 盍知所革 旣不能然 在朝之臣 方且交譽劉淵之才 乃欲畀之重任 是所謂資寇兵借盜糧 縱圏檻之虎豹而使之噬嚙於通衢者也 考之分注 如王濟李憙之薦 甚非處夷狄之道 至於齊王攸之言 可謂先見甚明 然亦未爲有得正 使一淵雖死 一淵復生 毋亦還其部伍 遣之出塞 嚴爲限隔之防 可也 書晉以匈奴劉淵爲左部帥 所以見五胡之亂 自此兆矣 噫]” ≪發明≫
역주5 州里 : 漢나라 사람들은 같은 고을에 사는 자들을 州里라 하였다.(≪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6권 중 漢 元帝 永光 원년(B.C.43) 訓義)
역주6 두 곳 : 兵力이 동시에 北部와 西部를 보전하지 못함을 말한다.(≪資治通鑑新注≫ 陝西人民出版社, 1998)
역주7 載其淸靜 民以寧一 : 漢나라 曹參이 相國이 되어 전임 상국 蕭何의 정책대로 따라 행하자 백성들이 편안해하여 노래를 부른 가사로, ≪漢書≫ 〈曹相國世家〉에 보인다.

자치통감강목(12) 책은 2021.01.0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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