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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7)

자치통감강목(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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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元嘉二十六年이요 魏太平眞君十年이라
春正月 魏主復伐柔然하니 可汗遁走하다
◑秋七月 宋以隨王誕으로 爲雍州刺史注+誕, 文帝子.하다
宋主欲經略中原하니 群臣爭獻策以迎合取寵이러니 王玄謨尤好進言이어늘 宋主謂侍臣曰 觀玄謨所陳하니 令人有封狼居須意注+言令我遂起北伐之意也. 須, 通作胥. 狼居胥, 匈奴中山名. 漢霍去病伐匈奴, 封狼居胥, 禪於姑衍, 以臨瀚海.로다
御史中丞袁淑曰注+淑, 耽之曾孫也. 陛下今當席卷趙魏하여 檢玉岱宗注+卷, 讀曰捲. 封泰山用玉檢.이니 臣逢千載之會하여 願上封禪書注+此欲效司馬相如事, 相如未死時, 爲一卷書曰 “有使來求書, 奏之.” 其遺札書, 言封禪事.하노이다하니 宋主悅이러라
以襄陽外接關河 欲廣其資力하여 乃罷江州軍府文武하여 悉配雍州하고 湘州入臺租稅 悉給襄陽注+晉孝武始於襄陽立雍州, 并立僑郡縣, 至是, 割荊州之襄陽․南陽․新野․順陽․隨五郡爲雍州, 而僑郡縣猶寄寓在諸郡界.하다
九月 魏主伐柔然大獲하다
魏主伐柔然할새 高涼王那 出東道하고 略陽王羯兒 出中道注+羯兒, 道武之孫也.러니
柔然處羅可汗 悉國中精兵하여 圍那數十里어늘 那掘塹堅守하여 相持數日이러니 處羅數挑戰하여 輒爲那所敗러라
以那衆少而堅이라 疑大軍將至하여 解圍夜去어늘 那追之九日夜하니 處羅益懼하여 棄輜重하고 踰穹隆嶺하여 遠遁하다
那收其輜重하고 引軍還하여 與魏主會於廣澤하고 羯兒 收柔然民畜凡百餘萬하니 自是柔然衰弱하여 屏跡不敢犯魏塞러라
宋雍洲蠻反하다
沔北諸山蠻 寇雍州어늘 將軍沈慶之 帥參軍柳元景隨郡太守宗慤等討之할새 八道俱進하다
先是 諸將討蠻者 皆營於山下러니 蠻得據山하여 發矢石以擊하니 官軍多不利러니
慶之曰 去歲蠻田大稔하여 積穀重巖하니 不可與之曠日相守也注+重, 龍切.
不若出其不意하여 衝其腹心하니 破之必矣라하고 乃命諸軍斬木登山하여 鼓譟而前하니 群蠻震恐이어늘
因其恐而擊之하니 所向奔潰러라


宋나라 太祖 文帝 劉義隆 元嘉 26년이고, 北魏 世祖 太武帝 拓跋燾 太平眞君 10년이다.
[綱] 봄 정월에 魏主가 다시 柔然을 정벌하니, 處羅可汗(郁久閭吐賀眞)이 달아났다.
[綱] 가을 7월에 宋나라가 隨王 劉誕을注+① 劉誕은 宋 文帝의 아들이다. 雍州刺史로 삼았다.
[目] 宋主가 中原을 경략하려고 하니, 여러 신하들이 다투어 계책을 올려 황제의 뜻에 영합하여 총애를 얻고자 하였다. 王玄謨가 더욱 진언하기를 좋아하였는데, 宋主가 侍臣에게 말하기를 “왕현모의 진언을 살펴보니, 사람(宋主)에게 狼居須에서 封禪하게 할 뜻을 갖게 한다.”注+① 〈“令人有封狼居須意”는〉 자신에게 마침내 北伐의 뜻을 일으키게 했다는 말이다. 須는 胥와 통용한다. 狼居胥는 匈奴에 있는 산 이름이다. 漢나라 霍去病이 흉노를 정벌하여 狼居胥山에서 封祭를 지내고, 故衍山에서 禪祭를 지냈으며, 瀚海까지 갔다.라고 하였다.
御史中丞 袁淑이注+② 袁淑은 袁耽의 증손이다.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이제 마땅히 趙와 魏를 석권하셔서 岱宗山(泰山)에서 의식을 거행하셔야 하니注+③ 卷(말다)은 捲으로 읽는다. 泰山에 封禪할 때에는 玉檢을 쓴다., 臣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나 封禪書를 올리기를 바랍니다.”注+④ 이는 司馬相如의 일을 본받고자 한 것이다. 사마상여가 죽기 전에 한 권의 책을 저술하고서 말하기를 “사자가 와서 책을 구하면 이것을 올리시오.” 하였다. 그가 남긴 책은 封禪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라고 하니, 宋主가 기뻐하였다.
襄陽은 밖으로 函谷關․黃河와 접하고 있어서, 그 財物과 人力을 넓히고자 江州 軍府의 文武官을 해체하여 모두 雍州에 배치하고 湘州에서 조정으로 들어가는 조세를 모두 양양에 공급하게 하였다.注+⑤ 晉나라 孝武帝가 처음 襄陽에 雍州를 세우고, 아울러 僑郡․僑縣을 세웠다. 이때에 이르러 荊州의 襄陽․南陽․新野․順陽․隨의 5郡을 떼어서 雍州로 삼았는데, 僑郡․僑縣은 여전히 여러 郡의 경계에 얹혀 있었다.
[綱] 9월에 魏主가 柔然을 정벌하여 〈사람과 물자를〉 크게 포획하였다.
[目] 魏主가 柔然을 정벌할 때에 高涼王 拓跋那는 동쪽 길로 출발하고 略陽王 拓跋羯兒는注+① 拓跋羯兒는 道武帝(拓跋珪)의 손자이다. 중간 길로 출발하였다.
유연의 處羅可汗(郁久閭吐賀眞)이 나라 안에 있는 정예병을 모두 동원하여 탁발나를 수십 겹으로 포위하자, 탁발나는 참호를 파고 굳게 지키며 며칠 동안 대치하였는데, 처라가한이 자주 挑戰하여 번번이 탁발나에게 패배하였다.
탁발나의 무리는 적었으나 견고하였기에 〈처라가한은〉 北魏의 大軍이 장차 도착할 것으로 의심하여 포위를 풀고 밤중에 퇴각하였는데, 탁발나가 9일 동안 밤낮으로 그들을 추격하니, 처라가한이 더욱 두려워 輜重을 버리고 穹隆嶺을 넘어 멀리 도망갔다.
탁발나가 輜重을 수습하고 군사들을 이끌고 돌아와 魏主과 廣澤에서 만나고, 탁발갈아는 유연의 백성과 가축 도합 100여만을 거두어들이니, 이로부터 유연이 쇠약해져서 자취를 감추고 감히 北魏의 변경을 침범하지 못하였다.
[綱] 겨울에 宋나라 雍洲의 蠻族이 반란을 일으켰다.
[目] 沔水 북쪽의 山蠻이 雍州를 침략하자 將軍 沈慶之가 參軍 柳元景과 隨郡太守 宗慤 등을 인솔하여 토벌할 적에 8개의 길로 함께 진군하였다.
이에 앞서 만족을 토벌하려는 諸將들이 모두 산 아래에 군영을 치니, 만족이 산을 점거하고 화살과 돌을 발사하여 공격을 하자, 官軍이 불리할 때가 많았다.
심경지가 말하기를 “지난해에 만족의 밭에 곡식이 아주 잘 여물어 겹겹의注+① 重(거듭)은 直龍의 切이다. 바위 속에 곡식을 쌓아두고 있으니, 그들과 쓸데없이 시일을 보내며 대치하는 것을 옳지 않다.
뜻밖에 적에게 출병하여 적의 심장부를 공격하는 것만 못하니,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적들을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 마침내 여러 군대에 명령을 내려서 나무를 베며 산에 올라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전진하니, 여러 만족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들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공격하자, 향하는 곳마다 적이 달아나 궤멸되었다.


역주
역주1 檢玉 : 封禪을 가리킨다. 옛날 封禪 의식에는 金策(금편에 글을 새겨 만든 策書), 石函, 金泥(水銀과 금가루를 섞어서 만든 인주), 玉檢(玉牒書를 봉해 넣은 상자)을 사용하였다.
역주2 (立)[直] : 저본에는 ‘立’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直’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17) 책은 2021.11.0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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