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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魏主가 柔然을 정벌할 때에 高涼王 拓跋那는 동쪽 길로 출발하고 略陽王 拓跋羯兒는
注+① 拓跋羯兒는 道武帝(拓跋珪)의 손자이다. 중간 길로 출발하였다.
유연의 處羅可汗(郁久閭吐賀眞)이 나라 안에 있는 정예병을 모두 동원하여 탁발나를 수십 겹으로 포위하자, 탁발나는 참호를 파고 굳게 지키며 며칠 동안 대치하였는데, 처라가한이 자주 挑戰하여 번번이 탁발나에게 패배하였다.
탁발나의 무리는 적었으나 견고하였기에 〈처라가한은〉 北魏의 大軍이 장차 도착할 것으로 의심하여 포위를 풀고 밤중에 퇴각하였는데, 탁발나가 9일 동안 밤낮으로 그들을 추격하니, 처라가한이 더욱 두려워 輜重을 버리고 穹隆嶺을 넘어 멀리 도망갔다.
탁발나가 輜重을 수습하고 군사들을 이끌고 돌아와 魏主과 廣澤에서 만나고, 탁발갈아는 유연의 백성과 가축 도합 100여만을 거두어들이니, 이로부터 유연이 쇠약해져서 자취를 감추고 감히 北魏의 변경을 침범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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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沔水 북쪽의 山蠻이 雍州를 침략하자 將軍 沈慶之가 參軍 柳元景과 隨郡太守 宗慤 등을 인솔하여 토벌할 적에 8개의 길로 함께 진군하였다.
이에 앞서 만족을 토벌하려는 諸將들이 모두 산 아래에 군영을 치니, 만족이 산을 점거하고 화살과 돌을 발사하여 공격을 하자, 官軍이 불리할 때가 많았다.
심경지가 말하기를 “지난해에 만족의 밭에 곡식이 아주 잘 여물어 겹겹의
注+① 重(거듭)은 直龍의 切이다. 바위 속에 곡식을 쌓아두고 있으니, 그들과 쓸데없이 시일을 보내며 대치하는 것을 옳지 않다.
뜻밖에 적에게 출병하여 적의 심장부를 공격하는 것만 못하니,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적들을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 마침내 여러 군대에 명령을 내려서 나무를 베며 산에 올라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전진하니, 여러 만족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들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공격하자, 향하는 곳마다 적이 달아나 궤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