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6)

자치통감강목(6)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辛丑年(B.C.20)
신축년(B.C.20)
起辛丑漢成帝鴻嘉元年하여 盡壬戌漢平帝元始二年이니 凡二十二年이라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제7권은 신축년辛丑年 나라 성제成帝 홍가鴻嘉 원년(B.C.20)에서 시작하여 임술년壬戌年 나라 평제平帝 원시元始 2년(A.D.2)까지이니, 모두 22년이다.
鴻嘉元年이라 春正月 以薛宣爲御史大夫하다
[] 나라 효성황제孝成皇帝 홍가鴻嘉 원년이다. 봄 정월에 설선薛宣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았다.
御史大夫缺이어늘 谷永호되
[] 어사대부御史大夫가 결원이 되자, 곡영谷永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帝王之德 莫大於知人하니 知人則百僚任職하여 天工不曠이니이다
제왕帝王은 인물을 아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훌륭한 인물을 알면 백관百官들이 직책을 담당하여 을 폐하지 않습니다.
御史大夫 任重職大하니 非庸才所能堪이라
어사대부御史大夫는 임무가 막중하고 직임이 크니, 용렬한 재주로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少府宣 達於從政하여 擧錯時當하고 經術文雅 足以謀王體, 斷國論하여 身兼數器하니 唯陛下 留神考察하소서
소부少府 설선薛宣정사政事에 통달하여 거조擧措가 때에 맞고 이치에 합당하며 경학經學문재文才가 조정의 대정大政을 도모하고 국론國論을 결단하기에 충분하여 한 몸에 여러 재능을 겸하고 있으니, 부디 폐하陛下께서는 유념하여 살피소서.”
從之注+時當, 言其合時而當理也.하다
이 그의 말을 따랐다.注+① “시당時當”은 때에 적합하고 이치에 합당함을 말한 것이다.
二月 更以新豐戱鄕으로 爲昌陵縣하여 奉初陵注+戱, 音羲. 戱鄕, 戱水之鄕也, 在京兆新豐東.하다
[] 2월에 다시 신풍현新豐縣희향戱鄕창릉현昌陵縣으로 삼아 을 받들게 하였다.注+는 음이 이니, 희향戱鄕희수戱水의 지방으로 경조京兆 신풍현新豐縣의 동쪽에 있다.
[] 황제皇帝가 처음으로 미행微行을 하였다.
始爲微行하여 從期門郞或私奴하여 或乘小車하고 或皆騎하여 出入市里郊野하여 遠至旁縣하여
[] 이 처음으로 미행微行을 하여 기문랑期門郞 혹은 사가私家의 종들을 수행시켜 작은 수레를 타거나 혹은 모두 말을 타고서 시가市街와 골목길, 교외郊外를 출입하고 멀리는 장안長安 주변의 고을에까지 이르렀다.
鬪鷄走馬 常自稱富平侯家人注+期門, 掌執兵送從, 武帝初置, 皆郞, 無員, 多至千人. 旁縣, 諸縣環長安旁者也.하니
투계鬪鷄경마競馬를 볼 때에 항상 자기를 부평후富平侯의 집안사람이라고 칭하였다.注+① “기문期門”은 병기兵器를 잡고 사람을 전송하고 수행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무제武帝가 처음 설치하였는데, 모두 낭관郞官이고 정원이 없어서 많으면 1,000명에 이르렀다. “방현旁縣”은 장안長安 주위에 있는 여러 고을이다.
富平侯者 侍中張放也 寵幸無比故 假稱之注+放, 安世四世孫也. 放父臨, 尙元帝妹敬武公主, 生放, 放爲侍中‧中郞將, 娶許皇后女弟.하니라
부평후는 시중侍中 장방張放이니, 그에 대한 군주의 총애가 견줄 자가 없었으므로 가탁하여 칭한 것이었다.注+장방張放장안세張安世의 4대손이다. 장방의 아버지 장림張臨원제元帝의 누이동생인 경무공주敬武公主에게 장가들어 장방을 낳았는데, 장방은 시중侍中중랑장中郞將의 관직을 제수받고 허황후許皇后의 여동생에게 장가들었다.
三月 丞相禹罷하고 夏四月 以薛宣爲丞相하다
[] 3월에 승상丞相 장우張禹가 면직되고, 여름 4월에 설선薛宣을 승상으로 삼았다.
禹以老病罷호되 朝朔望하고 位特進하여 賞賜甚厚하다
[] 장우張禹가 늙고 병들어 면직되었으나, 초하루와 보름에 조회하고 특진特進의 지위에 있어서 매우 후하게 을 하사하였다.
爲相하니 官屬 譏其煩碎無大體하고 不稱賢也하니라
설선薛宣이 정승이 되니, 관속들은 그가 번거롭고 자질구레하여 대체大體가 없음을 비난하고 현능하다고 칭찬하지 않았다.
匈奴復株累單于死어늘 弟搜諧若鞮單于立注+搜, 疎鳩. 諧, 雄皆切. 搜諧, 卽且糜胥也.하다
[] 흉노匈奴복주루선우復株累單于가 죽자, 아우인 수애약제선우搜諧若鞮單于( 흉노의 제16대 선우)가 즉위하였다.注+소구疎鳩이고 웅개雄皆이니, “수해搜諧”는 바로 이다.
역주
역주1 天工 : 하늘이 해야 할 일로, 王者가 하늘을 대신하여 관청을 세워서 하늘이 해야 할 일을 대신 수행함을 이른다. 《書經》 〈虞書 皐陶謨〉에 “여러 관직을 폐하지 마소서. 하늘이 해야 할 일을 사람이 대신한 것입니다.[無曠庶官 天工人其代之]”라고 보인다.
역주2 初陵 : 제왕이 생전에 자신의 陵을 미리 만드는 것으로 壽陵이라고도 한다.
역주3 帝始爲微行 : “‘처음[始]’이란 무엇인가. 終身토록 하였다는 말이니, 이루 다 쓸 수 없다고 여겨서 그 처음만을 썼을 뿐이다. 이 때문에 成帝가 微行하여 曲陽侯의 집에 방문한 것을 쓰지 않은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에 미행을 쓴 것이 3번인데, ‘始’라고 쓴 것이 2번이니, 武帝와 成帝가 모두 미행을 심하게 한 자이다.[始者 何 終身之辭也 以爲不可勝書 書其始而已矣 故微行過曲陽侯第 不書 綱目書微行三 而書始者二 武帝成帝皆其甚者也]” 《書法》 書法은 ‘筆法’이란 말과 같다. 朱子는 《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할 적에 孔子의 《春秋》 筆法을 따라 綱과 目으로 나누었는바, 綱은 《春秋》의 經文을, 目은 《春秋左氏傳》 傳文을 따랐다. 《資治通鑑綱目》의 筆法을 밝힌 것으로는 劉友益(宋)의 《綱目書法》, 尹起莘(宋)의 《綱目發明》이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책은 현재 淸나라 聖祖(康熙帝)가 엮은 《御批資治通鑑綱目》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이 필법은 綱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는데, 우리나라 학자들이 특별히 이 《자치통감강목》을 愛讀한 이유는 바로 이 필법에 있었다. 《어비자치통감강목》에는 이외에도 汪克寬(元)의 《綱目凡例考異》 등 많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나, 본서에서 다 소개하지 못하고 《강목서법》과 《강목발명》만을 소개하되, 《강목서법》과 《강목발명》은 중요한 것만을 발췌하여 수록하였다. 또한 陳濟(明)의 《資治通鑑綱目集覽正誤》를 인용하여 오류를 바로잡기도 하였다. 본고에서는 각각 《書法》, 《發明》, 《正誤》로 요약하여 표기하였다.
역주4 且糜胥(저미서) : 呼韓邪單于(14대 선우)는 呼衍王의 두 딸을 총애하였는데, 장녀 顓渠閼氏(전거연지)의 장남이 且莫車(저막차)이고, 작은딸 大閼氏(대연지)의 아들이 雕陶莫皐(조요막고)와 且糜胥이다. 호한야선우가 저막차를 세우려 하였으나 저막차가 너무 어려 조요막고를 세우고 저막차에게 전하게 하였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역주5 : 反切音을 표시한 것이다. ‘反(번)’은 뒤집는다(되치다)는 뜻으로 번역을 의미하고, ‘切’은 자른다는 의미이다. 앞 글자의 初聲을 따고 뒷글자의 中聲과 終聲을 따서 읽는다.

자치통감강목(6)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