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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1)

자치통감강목(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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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午年(238)
延熙元年이라
魏景初二年이요 吳赤烏元年注+權以赤烏至於殿前, 改元.이라
春正月 魏遣太尉司馬懿하여 擊遼東하다
魏主叡召司馬懿於長安하여 使將兵四萬하여 討遼東하니 議臣 或以爲兵多하여 難供이라한대
叡曰 四千里征伐 雖云用奇 亦當任力이니 不當計役費也注+續漢志 “遼東郡, 在洛陽東北三千六百里.”니라
因謂懿曰 公孫淵 將何計以待君 對曰 棄城豫走 上計也 據遼東하여 拒大軍 其次也 坐守襄平이면 此成禽耳注+遼東, 當作遼水.니이다
曰 三者 何出 對曰 唯明智라야 能審量彼我하여 乃豫有所割棄 此非淵所及이라 必先拒遼東하고 後守襄平也리이다
曰 還往幾日 對曰 往百日이요 攻百日이요 還百日이요 以六十日爲休息이니 如此 一年 足矣리이다
聞之하고 復遣使稱臣하고 求救於吳한대 吳人 欲戮其使注+欲報張彌‧許晏之忿也.러니
羊衜曰 不可하다 是肆匹夫之怒而捐霸王之計也 不如因而厚之하여 遣奇兵潛往하여 以要其成注+要, 約也. 成, 和也.이니
若魏伐不克而我軍遠赴 是恩結遐夷하고 義形萬里
若兵連不解하여 首尾離隔이면 則我虜其傍郡하여 驅略而歸리니 亦足以報雪曩事矣注+報雪, 謂報讐雪恥也. 曩事, 曏日之事也, 亦謂斬張彌‧許晏也.리이다
吳主權 乃大勒兵하고 謂淵使曰 請俟後問하라 當從簡書注+左傳 “狄伐邢, 管仲言於齊侯曰 ‘詩云 「豈不懷歸. 畏此簡書.」 簡書, 同惡相恤之謂也, 請救邢以從簡書.’”호리라
二月 魏以韓曁爲司徒하다
魏主叡問盧毓호되 誰可爲司徒者 薦處士管寧이러니
叡不能用하고 更問其次한대 對曰 敦篤至行 則太中大夫韓曁
亮直淸方 則司隷崔林이요 貞固純粹 則太常常林이니이다 乃以曁爲之하다
立皇后張氏注+前后之妹也.하다
◑立子璿爲皇太子하다
大司農孟光 問太子讀書及情性好尙於秘書郞郤正注+正, 儉之孫也.한대 正曰 奉親虔恭하고 擧動仁恕하여 有古世子之風이니라
光曰 此皆家戶所有耳注+謂其才行不逾中人也. 吾欲知其權略智調何如也注+調, 徒弔切, 才調之調.로라
正曰 世子之道 在於承志竭歡하니 旣不得妄有施爲 智調 藏於胸懷하고 權略 應時而發하니 此之有無 焉可豫知也注+承志, 謂承君父之志. 竭歡, 謂左右就養, 承顔順色, 以盡親之歡. 焉, 於虔切.리오
光曰 今天下未定하니 智意爲先이라 儲君讀書 寧當傚吾等竭力博識하여 以待訪問하여
如博士探策講試하여 以求爵位邪 當務其急者니라 深然之注+探, 試取也. 不知主文所問何策, 試取而答之, 謂之射策, 卽探策也. 若錄政化得失, 顯而問之, 謂之對策.
注+一當千, 徑一寸四分, 重十六銖.하다
◑秋八月 魏司馬懿克遼東하고 斬公孫淵하다
六月 司馬懿軍 至遼東하니 公孫淵 使其將卑衍等으로 將步騎數萬하여 屯遼隧하여 圍塹二十餘里注+卑, 姓也.
諸將 欲擊之어늘 懿曰 此欲以老吾兵也 攻之 正墮其計注+墮, 徒果切, 落也.
且賊大衆 在此하여 其巢窟空虛하리니 直指襄平이면 破之必矣니라
乃多張旗幟하여 欲出其南한대 衍等 盡銳趣之注+趣, 七喩切.어늘
懿潛濟水하여 出其北하여 直趣襄平하니 衍等하여 引兵夜走
諸軍 進至首山注+首山, 在襄平西南.하니 復使衍等逆戰이어늘 懿擊破之하고 遂進圍襄平하다
大霖雨하여 遼水暴漲하니 運船 自遼口 徑至城下注+遼口, 遼水津渡之口也.
雨月餘不止하니 平地 水數尺이라 三軍하여 欲移營이어늘
懿令軍中하여 敢有言徙者호리라 都督令史 犯令이어늘 斬之하니 軍中 乃定注+魏制, 諸公加兵者, 置都督令史一人.하다
恃水하여 樵牧自若이어늘 諸將 欲取之한대 懿皆不聽하다
司馬陳珪曰 昔攻上庸 八部竝進하여 晝夜不息이라 能一旬之半 拔堅城하여 斬孟達이러니
今者遠來로되 而更安緩하니 愚竊惑焉하노이다 懿曰 達 衆少而食支一年이요 我軍 四倍於達而糧不淹月注+淹, 留也, 言所留之糧不支一月也.하니
以一月圖一年이니 安可不速이리오 以四擊一하니 正令失半而克이라도 猶當爲之 是以 不計死傷하여 與糧競也注+競, 爭也. 懿之語珪, 猶有廋辭, 蓋其急攻孟達, 豈特與糧競哉. 懼吳‧蜀救兵至耳.로라
今賊衆我寡하고 賊飢我飽하고 水雨乃爾하여 功力不設하니 雖當促之 亦何所爲注+爾, 如此也.리오
自發京師 不憂賊攻이요 但恐賊走 今賊糧垂盡而圍落未合하고 掠其牛馬하고 抄其樵采하니 故驅之走也注+抄, 略取也.니라
夫兵者 詭道 善因事變注+言善兵者, 能因事而變化也.하나니 憑衆恃雨故 雖飢困이나 未肯束手하니
當示無能以安之 取小利以驚之 非計也注+懿知淵可禽, 欲以全取之.니라
朝廷 聞師遇雨하고 咸欲罷兵이어늘 魏主叡曰 懿臨危制變하니 禽淵 可計日待也니라
雨霽 懿乃合圍하여 作土山, 地道하고 楯, 櫓, 鉤, 衝으로 晝夜攻之하니 矢石如雨注+楯, 干也, 攻城之士以扞蔽其身. 櫓, 樓車, 登之以望城中. 鉤, 鉤梯也, 所以鉤引上城者. 衝, 衝車也, 以衝城.러라
窘急糧盡하여 人相食이러니 八月 使其相王建, 柳甫 請解圍却兵이면 當君臣面縛이라한대
懿命斬之하고 檄告淵曰 楚, 鄭 列國이로되 鄭伯 猶肉袒牽羊迎之注+左傳宣公十二年, “楚子圍鄭, 鄭伯肉袒牽羊以逆.” 註 “示服爲臣僕.”어든
天子上公이어늘 而建等 欲使退舍하니 豈得禮邪注+漢太傅, 位上公, 懿時爲太尉, 而自謂上公, 以太尉於三公爲上也. 左傳僖公二十五年 “晉侯圍原, 退一舍而原降.” 註 “一舍, 三十里.”
二人老耄하여 傳言失指하니 已相爲斬之注+爲, 去聲. 若意有未已어든 可更遣年少有明決者來니라
復遣侍中衛演하여 乞克日送任注+任, 保也. 送任, 謂送子爲質, 以保其不失信.이어늘 懿謂演曰 軍事 大要有五하니
能戰이면 當戰이요 不能戰이면 當守 不能守 當走 餘二事 惟降與死耳
汝不肯面縛하니 此爲決就死也 不須送任이니라
旣而 城潰하니 將數百騎突圍走어늘 懿擊斬之하고 遂入城하여
誅其公卿以下及兵民七千餘人하여 築爲京觀하니 遼東, 帯方, 樂浪, 玄菟四郡 皆平注+觀, 去聲, 積戰死之尸, 封土其上, 以彰克敵之功, 謂之京觀. 漢帶方縣, 屬樂浪郡, 公孫氏分立郡.하다
淵之將反也 將軍綸直, 賈範等 苦諫하니 皆殺之注+綸直, 姓名.러니
懿乃封其墓而顯其遺嗣하고 釋淵叔父恭之囚하고 遂班師하다
淵兄晃 爲恭任子在洛陽이라 先淵未反하여 數陳其變注+先, 悉薦切.이러니
及淵謀逆 叡不忍市斬하여 欲就獄殺之注+晃數陳淵之必反, 非同逆者也. 叡欲殺之以絶其類, 刑之於市, 則無名, 故欲就獄殺之.한대 廷尉高柔曰 仲尼亮司馬牛之憂注+亮, 照察也. 司馬牛問君子, 子曰 “君子不憂不懼.” 蓋牛以其兄桓魋將爲亂, 心常負憂, 故孔子告之以此.하시고 祁奚明叔向之過注+左傳 “晉人逐欒盈, 殺羊舌虎, 囚虎兄叔向, 祁奚見范宣子曰 ‘管‧蔡爲戮, 周公右王, 若之何以虎也棄社稷.’ 宣子言諸公而免之.”하니
晃信有言인댄 宜貸其死 苟自無言이면 便當市斬이어늘 今進不赦其命하고 退不彰其罪하니 臣恐四方 或疑此擧也로이다
不聽하고 竟遣使齎金屑飮之하고 賜以棺斂注+飮, 於鴆切. 案晉趙王倫傳云, 飮以金屑苦酒.하다
吳中書郞呂壹 伏誅하다
吳主權 使中書郞呂壹 典校官府州郡文書러니 因此作威福하여 深文巧詆하여 排陷無辜하고 毁短大臣하여 纖介必聞注+深文, 謂文法深刻. 巧, 穿鑿也. 詆, 誣也. 言不公平也.하다
太子登 數諫不聽하니 群臣 莫敢復言이러라
誣故江夏太守刁嘉 謗訕國政이라하여 收繫驗問注+故, 謂舊嘗爲此官也.하니
時同坐人 皆畏壹하여 竝言聞之注+坐, 徂臥切. 時同坐, 謂其時與嘉同坐者.로되 侍中是儀 獨云 無聞注+是, 姓也.이라
窮詰累日 詔旨轉厲호되 儀終無變辭하니 嘉遂得免하다 陸遜, 潘濬 憂壹亂國하여 每言之 輒流涕러라
白丞相顧雍過失한대하여 詰責雍하다 謝厷 謂壹曰 此公 免退 潘太常 得無代之乎注+厷, 與宏同.
壹曰 近之니라 厷曰 潘常切齒於君이라 今日代顧公이면 恐明日便擊君矣注+漢制, 丞相‧御史擧奏百官有罪者.리라하여 乃解散雍事하다
詣建業하여 欲極諫이라가注+濬, 本留武昌. 聞太子數言不聽하고
乃大請百寮하여 欲因會殺之하여 爲國除患이러니 知之하고 稱疾不行하다
左將軍朱據部曲 應受三萬緡이러니 工王遂 詐而受之注+工, 官名. 王遂, 姓名. 疑據自取하여 考問主者하여 死於杖下注+主者, 據管事之吏.
據無以自明하여 藉草待罪注+藉, 慈夜切, 以茅藉地.어늘 典軍吏劉助覺하고 言遂取注+覺, 言覺其事而言之.라하니
大感寤曰 朱據見枉하니 況吏民乎아하고 乃賞助百萬하고 窮治壹罪러라
顧雍 至廷尉하여 見壹하고 和顔色而問之曰 君意得無欲有所道乎注+得無, 猶言無乃也. 道, 言也.아하니 叩頭無言이러라
尙書郞懷敍 面詈辱壹注+懷敍, 姓名.이어늘 責敍曰 官有正法하니 何至於此오하니라
徐衆曰 雍 可謂長者矣로다이나 問所欲道則非也
姦險亂法하여 毁傷忠賢이어늘 今乃開引其意하여 儻獲原宥 豈大臣忠主疾惡之義哉
旣伏誅 因遣人하여 告謝諸大將하고 問時事所當損益이러니 諸將 皆不敢有所言이라
復以詔責之曰 子瑜, 子山, 義封, 定公 皆不肯有所陳하고 而伯言, 承明 涕泣危怖하여 有不自安之心이라하니
聞之 悵然하여 深自刻恠注+子瑜, 諸葛瑾字. 子山, 步騭字. 義封, 朱然字. 定公, 呂岱字. 伯言, 陸遜字. 承明, 潘濬字. 刻, 通作克, 痛責也. 怪, 亦責也.하노라 夫惟聖人이라야 能無過行이요 明者라야 能自見耳注+行, 去聲.
人之擧厝 何能悉中注+厝, 通作措. 中, 去聲. 悉中, 猶言皆當也.이리오 獨當己有以傷拒衆意로되 忽不自覺이라 諸君 有嫌難耳注+當, 猶應也. 言己應有違衆心, 處嫌疑也. 難, 猶不肯也. 謂諸君皆避嫌疑, 而難於陳言也.
與諸君從事하여 自少至長하여 髮有二色注+二色, 謂班白也.하니 義雖君臣이나 恩猶骨肉하여 榮福喜戚 相與共之
忠不匿情하고 智無遺計하니 事統是非어늘 諸君 豈得從容而已哉注+事統是非, 言行事是則君臣同其是, 非則同其非也. 從, 七容切. 容, 如字. 謂其舒肆自在也.리오
齊桓 有善 管子未嘗不歎하고 有過 未嘗不諫하여 諫而不得이면 終諫不止
今孤自省 無桓公之德이요 而諸君諫諍 未嘗出口하고 仍執嫌難하니
以此言之컨대 孤於齊桓 良優로되 未知諸君於管子 如何耳로라
冬十二月 蔣琬 出屯漢中하다
하고 召司馬懿入朝하고 以曹爽爲大將軍하다
魏太祖以劉放, 孫資爲秘書郞이러니 文帝更命秘書曰中書라하고 以放爲監하고 資爲令하여 遂掌機密하다
魏主叡卽位 尤見寵任하여 親覽萬機하고 數興軍旅호되 腹心之任 皆二人管之하여
每大事朝臣會議 常令決其是非하여 擇而行之러라
中護軍蔣濟 上疏曰 臣聞大臣太重者 國危하고 左右太親者 身蔽라하니 古之至戒也니이다
往者大臣秉事하여 外內扇動注+蓋謂文帝時也. 或曰 “謂受遺大臣也.”이러니 陛下卓然自覽萬機하시니 莫不祗肅이라
夫大臣 非不忠也로되 然權在下하면 則衆心慢上 勢之常也니이다 陛下旣已察之於大臣矣시니 願無忘於左右하노이다
左右忠正遠慮 未必賢於大臣이요 至於便辟取容하여는 或能工之注+辟, 讀曰僻.니이다
況實握事要하고 日在目前하니 儻因疲倦之間하여 有所割制注+謂因人主疲倦之時, 有所剖割而制斷也. 衆臣 見其能推移於事하고 卽亦因而向之하리니
一有此端이면 私招朋援하여 臧否毁譽 必有所興이요 功負賞罰 必有所易注+負, 罪也. 易, 則賞罰不當乎功罪이라
直道而上者 或壅하고 曲相比附者 反達注+上, 時掌切.하여 因微而入하고 緣形而出이로되 意所狎信 不復猜覺하리니 此宜早以經意也니이다
叡不聽이러니 及寢疾 深念後事하여 乃以武帝子燕王宇爲大將軍하고 夏侯獻, 曹爽, 曹肇, 秦朗等으로 輔政注+肇, 休之子也.하다
劉放, 孫資 久典機任하니 獻, 肇心不平이러니 殿中 有鷄棲樹어늘
二人 相謂曰 此亦久矣 其能復幾注+殿中畜鷄, 以司晨, 棲於樹上, 因謂之鷄棲樹. 獻‧肇指以喩放‧資.리오하니 放, 資懼하여 陰圖間之注+間, 古莧切.러라
宇性恭良하여 陳誠固辭어늘 叡引放, 資하여 入臥內하여 問曰 燕王 正爾爲注+正爾爲, 猶言誠然如此乎. 一說 “言其性恭良, 爲事正如此也.”
對曰 燕王 實自知不堪大任故耳니이다 叡曰 誰可者 惟爽在側이라
放, 資因薦之하고 且請召司馬懿하여 與相參하니 叡從之러니 旣而 中變이러라
放, 資復入說한대 又從之러니 請爲手詔한대 叡曰 我困篤하여 不能이로라
上牀하여 執其手하여 強作之注+強, 其亮切.하고 遂齎出하여 大言曰 有詔免燕王宇等官하니 不得停省中이라하니 皆流涕而出하니라
遂以爽爲大將軍하니 叡嫌其才弱하여 拜尙書孫禮爲長史하여 以佐之하다
懿在汲注+時自遼東還師, 次于汲也. 汲縣, 自漢以來, 屬河內郡.이라 宇以爲關中事重하니 宜遣懿還長安이라하여 事已施行注+關中事重, 謂備蜀及撫安氐‧羌也.이러니
至是하여 復得手詔하니 前後相違 懿疑京師有變하여 乃疾驅入朝하다 眞之子也


戊午年(238)
나라(蜀漢) 後主 延熙 원년이다.注+孫權은 붉은 까마귀가 宮殿 앞에 이르렀다 하여 赤烏改元하였다.
나라 明帝 曹叡 景初 2년이고, 나라 大帝 孫權 赤烏 원년이다.
】 봄 정월에 나라에서 太尉 司馬懿를 보내어 遼東을 공격하게 하였다.
魏主 曹叡司馬懿長安에서 불러와 그로 하여금 4만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遼東을 토벌하게 하였다. 의논하는 신하들이 혹 말하기를 “병력이 너무 많아 군량과 물자를 공급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자,
조예가 “4천 리 멀리 征伐함에 비록 기이한 대책을 쓴다고 하더라도 또한 마땅히 힘을 다해야 하니, 노역과 비용을 계산해서는 안 된다.”注+續漢志≫에 “遼東郡洛陽의 동북쪽 3,600리 지점에 있다.” 하였다. 하였다.
조예는 인하여 사마의에게 묻기를 “公孫淵이 장차 무슨 계책으로 을 상대하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을 버리고 미리 도망하는 것이 上策이요, 遼水를 점거하여 大軍에 항거하는 것이 그 다음이요, 襄平死守하면 이는 사로잡히는 방법입니다.”注+遼東은 마땅히 遼水가 되어야 한다. 하였다.
曹叡가 묻기를 “세 가지 방법 중에 公孫淵이 어떤 방책으로 나오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오직 밝고 지혜로운 자라야 능히 彼我의 형세를 살피고 헤아려서 일에 앞서 포기하는 것이니, 이는 공손연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그는 반드시 먼저 遼水에서 막고 뒤에 후퇴하여 襄平을 지킬 것입니다.” 하였다.
조예가 묻기를 “갔다가 돌아오는 데 며칠이 걸리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가는 데 100일, 공격하는 데 100일, 돌아오는 데 100일이 걸리고 60일 동안 휴식을 해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1년이면 충분합니다.” 하였다.
公孫淵나라에서 정벌해온다는 말을 듣고 다시 나라에 使者를 보내어 이라 하고 구원을 요청하였다. 나라 사람들은 그 사신을 죽이고자 하였으나注+〈“欲戮其使”는 公孫淵이〉 張彌許晏을 죽인 데 대한 분노를 보복하고자 한 것이다.
羊衜(양도)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不可합니다. 이것은 匹夫의 노여움을 부려서 霸者王者의 계책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 일을 기회로 사자를 후대하여 보내고 奇兵을 은밀히 보내어서 그(공손연)와 화친을 약속하는 것만 못합니다.注+는 약속함이요, 은 화친이다.
만약 나라 군대가 정벌하여 이기지 못하였는데 우리 군대가 멀리 달려가서 구원하면, 이는 먼 오랑캐와 은혜를 쌓고 의리가 만 리에 드러나는 것이요,
만약 전쟁이 이어져서 해결되지 아니하여 전방과 후방이 離隔되면 우리가 그 주변 고을의 백성들을 사로잡아 노략질하고 돌아올 수 있으니, 또한 지난날의 일에 원수를 갚고 치욕을 설욕하는 데 충분할 것입니다.”注+報雪”은 원수를 갚고 치욕을 설욕함을 이른다. “曩事”는 지난날의 일이니, 또한 張彌許晏을 참수한 일을 이른다.
】 2월에 나라에서 韓曁(한기)를 司徒로 삼았다.
魏主 曹叡盧毓에게 묻기를 “누가 司徒가 될 만한 자인가?” 하니, 노육은 處士 管寧을 천거하였다.
曹叡가 그를 등용하지 않고 다시 그 다음 사람을 묻자, 대답하기를 “敦厚하고 지극한 행실이 있는 자는 太中大夫 韓曁요,
성실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고 方正한 자는 司隷 崔林이요, 貞固하고 純粹한 자는 太常 常林입니다.” 하였다. 이에 한기를 사도로 삼았다.
皇后 張氏를 세웠다.注+ 皇后의 여동생이다.
】 〈나라(蜀漢) 後主가〉 아들 劉璿(유선)을 세워 皇太子로 삼았다.
大司農 孟光秘書郞 郤正(극정)에게 太子가 읽고 있는 책과 性情의 좋아하고 숭상하는 것을 물으니,注+郤正郤儉의 손자이다. 극정이 대답하기를 “어버이를 받듦에 삼가고 공손하며, 행동거지가 仁愛하고 寬恕하여 옛날 世子風貌가 있다.” 하였다.
맹광이 말하기를 “이는 모든 집안의 자제에게 있는 것이다.注+〈“皆家戶所有”는〉 그 재주와 행실이 보통 사람을 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나는 太子權略(權謀智略)과 智調(지혜와 재주)가 어떠한가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注+調(才氣)는 徒弔이니, 才調調이다. 하니,
극정이 말하기를 “세자의 道理는 군주의 뜻을 잘 받들고 힘을 다하여 기쁘게 해드리는 데 있으니, 이미 무슨 일을 함부로 시행할 수가 없다. 智調는 가슴속에 감춰져 있고 權略은 때에 응하여 발로되니, 이것이 있고 없음을 어찌 미리 알 수 있겠는가.”注+承志”는 君父의 뜻을 받듦을 이르고, “竭歡”은 좌우로 나아가 봉양해서 君父의 얼굴빛을 받들어 순종하여 어버이의 기쁨을 지극하게 함을 이른다. (어찌)은 於虔이다. 하였다.
이에 맹광이 “지금 天下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으니, 지혜로운 생각이 최우선이다. 儲君(太子)이 글을 읽을 적에 어찌 우리들처럼 힘을 다하고 널리 알아서 諮問을 기다려서,
마치 博士을 취하여 답하고 고시를 준비해서 爵位를 구하는 것과 같이 하겠는가. 마땅히 그 급한 것을 힘써야 한다.” 하니, 극정은 그의 말을 매우 옳게 여겼다.注+은 시험삼아 하는 것이니, 主文(시험관)이 물을 바가 어떤 인지를 알지 못하여, 시험삼아 취해서 하는 것을 射策이라 이르니 바로 探策이다. 만약 정치와 교화의 得失을 기록하여 드러나게 물으면, 이것을 對策이라 한다.
나라가 1,000에 해당하는 大錢을 주조하였다.注+한 개의 이 1.000의 가치에 해당하였는데, 지름이 1 4이고 무게가 16였다.
】 가을 8월에 나라 司馬懿遼東을 공격하여 이기고 公孫淵을 참수하였다.
司馬懿가 公孫淵을 공격하다司馬懿가 公孫淵을 공격하다
】 6월에 司馬懿의 군대가 遼東에 이르니, 公孫淵이 부하 장수 卑衍 등으로 하여금 보병과 기병 수만 명을 거느리고 遼隧에 주둔하게 하고서 주위에 20여 리의 참호를 팠다.注+이다.
나라의 장수들이 공손연을 공격하고자 하자, 사마의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는 적이 우리 군대를 지치게 하려는 술책이니, 저들을 공격하면 바로 저들의 술책에 넘어가는 것이다.注+徒果이니, 넘어감이다.
의 큰 병력이 모두 이곳에 있어 그 소굴이 텅 비었을 것이니, 우리가 곧바로 襄平으로 향하면 틀림없이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
司馬懿가 마침내 旗幟를 많이 벌려 남쪽으로 진출하려는 것처럼 위장하자, 비연 등이 정예부대를 거느리고서 뒤쫓았다.注+(달려가다)는 七喩이다.
사마의가 은밀히 遼水을 건너 그 북쪽으로 나와서 곧바로 襄平으로 향하니, 비연 등이 두려워하여 밤에 군대를 이끌고 달아났다.
諸軍이 전진하여 首山에 이르니,注+首山襄平의 서남쪽에 있다. 公孫淵이 다시 비연 등으로 하여금 맞이하여 싸우게 하였는데, 사마의가 이들을 격파하고서 마침내 나아가 襄平城을 포위하였다.
가을에 큰 장맛비가 내려서 遼水가 갑자기 불어나니, 漕運하는 선박이 요수 어귀로부터 곧바로 襄平城 아래에 이르렀다.注+遼口”는 遼水의 물을 건너는 어귀이다.
비가 한 달이 넘도록 그치지 않으니, 평지에 물이 몇 자나 올라와 차 있었다. 三軍이 두려워해서 진영을 옮기고자 하였는데,
사마의가 군중에 명령하여 “감히 진영을 옮길 것을 말하는 자가 있으면 참형에 처하겠다.” 하였다. 都督令史軍令을 범하자 그를 참수하니, 군중이 마침내 진정되었다.注+나라 제도에 諸公에게 병력을 통솔하는 임무를 주었을 경우에는 부하에 都督令史 한 사람을 두었다.
(公孫淵의 무리)은 물을 믿고서 태연자약하게 나무하고 방목하였는데, 장수들이 가서 이들을 잡고자 하였으나 司馬懿는 그들의 말을 모두 듣지 않았다.
司馬 陳珪가 묻기를 “옛날 孟達上庸을 공격할 적에는 여덟 개의 부대가 동시에 진격하여 밤낮으로 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능히 5일 만에 적의 견고한 을 함락하여 맹달을 참수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멀리 왔는데도 다시 편안하고 느슨히 하시니, 저는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하였다. 이에 사마의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맹달은 병력이 적으나 양식이 1년을 지탱할 수 있었고, 우리 군대는 맹달보다 4배나 더 많으나 양식이 한 달을 지탱할 수 없었다.注+은 남아 있음이니, 남아 있는 양식이 한 달을 지탱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한 달을 지탱할 수 있는 양식을 가지고 1년을 지탱할 수 있는 양식을 가진 적을 도모해야 하니, 어찌 속히 싸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병력이 4배나 많아 우리 병사 네 명이 적병 한 명을 공격하니, 설령 절반을 잃고 승리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싸워야 했다. 이 때문에 사상자를 계산하지 않고서 양식에 맞춰 싸운 것이다.注+은 다툼이다. 司馬懿陳珪에게 말하는 중에 오히려 숨기는 말이 있었으니, 그가 孟達을 급히 공격한 것이 어찌 다만 양식과 맞추었을 뿐이겠는가. 蜀漢의 구원병이 이를까 두려워한 것이다.
】 지금 은 병력이 많고 우리는 적으며, 적은 굶주리고 우리는 배부르며, 큰비가 내린 것이 마침내 이와 같아서 功力을 베풀 수가 없으니, 비록 싸움을 재촉한다 하더라도 또한 무슨 일을 하겠는가.注+는 이와 같음이다.
나는 京師를 출발한 뒤로부터 적의 공격을 근심하지 않고 다만 적이 달아날까 두려워하였다. 지금 적의 양식이 다해가는데 적을 완전히 포위하지 않은 채 저들의 소와 말을 노략질하고 땔감을 빼앗는다면, 이는 일부러 적이 달아나도록 내모는 것이다.注+는 빼앗음이다.
兵法이란 상대방을 속이는 방도이다. 일에 따라 변화를 잘해야 하니,注+〈“善因事變”은〉 용병을 잘하는 자는 능히 일을 따라 변화함을 말한 것이다. 적이 많은 병력과 큰비를 믿기 때문에 비록 굶주리고 곤궁하나 손을 묶고서 항복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니,
우리가 마땅히 무능함을 보여서 적을 안심시켜야 한다. 작은 이익을 취하여 적을 놀라게 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다.”注+〈“當示無能以安之……非計也”는〉 司馬懿公孫淵을 사로잡을 수 있음을 알고는 온전하게 잡고자 한 것이다.
나라 조정에서는 군대가 큰비를 만났다는 말을 듣고 모두 군대를 해산하고자 하였는데, 魏主 曹叡가 말하기를 “司馬懿는 위태로운 상황에 임하여 변화에 잘 대응하니, 얼마 안 있어 公孫淵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비가 개자, 사마의가 마침내 완전히 포위하여 土山과 지하도를 만들고 방패와 망루와 쇠뇌와 衝車를 동원하여 밤낮으로 공격하니, 화살과 포석이 비 오듯 하였다.注+는 방패이니, 을 공격하는 병사들이 자기 몸을 가리는 것이다. 樓車(망루를 설치한 수레)이니, 올라가서 성을 바라보는 것이다. 鉤梯(갈고리를 단 사다리)이니, 갈고리를 걸고서 성에 오르는 것이다. 衝車(성벽이나 성문에 충격을 가하는 수레)이니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公孫淵의 군대가 곤궁하고 양식이 다하여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는데, 8월에 그의 王建柳甫를 보내 포위를 풀고 나라의 군대를 퇴각시키면 마땅히 君臣에 따라 두 손을 등 뒤로 묶고 얼굴을 앞으로 향하고 항복하겠다고 청하자,
司馬懿는 명하여 이들을 참수하고 檄文을 보내어 공손연에게 다음과 같이 통고하였다. “옛날 나라와 나라는 같은 列國인데도 鄭伯이 오히려 웃통을 벗고 을 끌고 가서 나라의 임금을 맞이하였다.注+〈“鄭伯猶肉袒牽羊迎之”는〉 ≪春秋左氏傳宣公 12년에 “楚子나라를 포위하자 鄭伯이 웃통을 벗고 양을 끌고 가서 맞이했다.” 하였는데, 에 “복종하여 臣僕이 됨을 보인 것이다.” 하였다.
나는 天子上公인데도 王建 등이 나에게 30리를 후퇴하기를 요구하니, 어찌 에 맞는 일이겠는가.注+나라의 太傅는 지위가 上公이다. 司馬懿가 이때 太尉였는데 스스로 上公이라 한 것은 태위가 三公보다 위가 되기 때문이다. ≪春秋左氏傳僖公 25년에 “晉侯 지역을 포위하였는데 1를 후퇴하자 이 항복했다.” 하였는바, 에 “1는 30이다.” 하였다.
두 사람이 늙어서 말을 전함에 본래의 뜻을 잃었으므로, 내 이미 그대를 위해 그들을 참수하였다.注+(위하다)는 去聲이다. 만약 항복할 뜻이 아직 남아 있으면, 나이가 젊어 분명하게 결단하는 자를 다시 보내라.”
公孫淵이 다시 侍中 衛演을 보내어 날짜를 잡아 아들을 인질로 보낼 것을 청하자,注+은 보증함이니, “送任”은 자식을 보내어 인질로 삼아서 신의를 잃지 않을 것을 보증함을 이른다. 司馬懿가 공손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軍事에는 大要가 다섯 가지가 있으니,
싸울 수 있으면 마땅히 싸워야 하고, 싸울 수 없으면 마땅히 지켜야 하고, 지킬 수 없으면 마땅히 달아나야 하고, 나머지 두 가지 일은 오직 항복과 죽음뿐이다.
너희들이 얼굴을 앞으로 향하고 두 손을 묶고서 항복하려 하지 않으니, 이는 결단코 죽음으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굳이 인질을 보낼 필요가 없다.”
】 얼마 후 襄平城이 무너지니, 公孫淵은 수백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다. 司馬懿가 추격하여 그를 참수하고 마침내 성안에 들어가서
公卿 이하와 병사와 백성 7천여 명을 주살하여 京觀을 쌓으니, 遼東帯方, 樂浪玄菟의 네 이 모두 평정되었다.注+(京觀)은 去聲이니, 전사한 적의 시신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봉분하여 적을 이긴 공을 드러내는 것을 京觀이라 한다. 나라 帶方縣樂浪郡에 속하였는데 公孫氏가 나누어 을 설치하였다.
공손연이 장차 배반하려 할 적에 將軍 綸直賈範 등이 굳이 하니 공손연은 이들을 모두 죽였다.注+綸直은 사람의 姓名이다.
사마의는 마침내 그들의 묘를 봉분하고, 그들의 남은 後嗣(아들)를 높이 등용하고 감옥에 갇혀 있던 공손연의 叔父 公孫恭을 석방하고 마침내 회군하였다.
】 처음에 公孫淵의 형 公孫晃公孫恭의 인질이 되어서 洛陽에 와 있었다. 공손황은 공손연이 배반하기 이전에 여러 번 공손연이 변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아뢰었다.注+(앞서다)은 悉薦이다.
공손연이 반역을 도모하자, 曹叡는 차마 공손황을 시장에서 참수할 수가 없어서 에 보내 죽이고자 하였다.注+公孫晃은 여러 번 公孫淵이 반드시 배반할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함께 역모를 꾸민 자가 아니다. 曹叡가 그를 죽여서 그 종류를 끊고자 하였는데, 그를 시장에서 형벌하기에는 명분이 없으므로 그를 옥에 보내어 죽이고자 한 것이다. 이에 廷尉 高柔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仲尼(孔子)는 司馬牛의 근심을 밝게 살피셨고,注+은 밝게 살핌이다. 祁奚叔向의 허물을 분명하게 아셨습니다.注+春秋左氏傳≫에 “나라 사람이 欒盈을 축출하고 羊舌虎를 죽이고 양설호의 형인 叔向(羊舌肸)을 가두자, 祁奚范宣子를 보고 말하기를 하니, 범선자가 에게 말하여 그의 죄를 면해주었다.” 하였다.
공손황이 진실로 이러한 말을 했다면 마땅히 그의 죽음을 용서해야 할 것이요, 만일 본래 이러한 말이 없었다면 곧바로 시장에서 참형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나아가서는 그의 목숨을 사면하여 구해주지 않고 물러나서는 그의 죄를 밝히지 않으시니, 은 사방에서 혹 이 조처를 의심할까 두렵습니다.”
曹叡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끝내 사자를 보내어 금가루를 가지고 옥으로 가서 공손황에게 먹여 죽게 하고 을 하사하여 斂襲하게 하였다.注+(마시게 하다)은 於鴆이다. ≪晉書≫ 〈趙王倫傳〉을 살펴보면 “금가루를 탄 쓴 술을 마셔 죽게 했다.” 하였다.
나라 中書郞 呂壹伏誅되었다.
吳主 孫權中書郞 呂壹로 하여금 官府州郡文書를 맡아 校勘하게 하니, 여일이 이로 인하여 威嚴(형벌)과 (상)을 제멋대로 내려서 법조문을 까다롭게 적용하고 교묘히 질책해서 죄 없는 사람을 배척하여 죄에 빠뜨리고 大臣의 단점을 들춰내어 하찮은 일도 반드시 손권에게 보고하였다.注+深文”은 법조문을 매우 까다롭게 적용함을 이른다. 穿鑿함이요, 는 무함함이니, 〈“深文巧詆”는〉 公平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太子 孫登이 여러 번 했으나 손권이 듣지 않으니, 여러 신하들이 감히 다시는 말하지 못하였다.
呂壹이 이에 江夏太守 刁嘉(조가)가 國政을 비방한다고 모함하여 그를 체포해서 심문하니,注+는 옛날 일찍이 이 官職을 지냈음을 말한 것이다.
당시 연루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여일을 두려워해서 조가가 비방하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으나,注+(걸리다)는 徂臥이니, “時同坐”는 그 당시 刁嘉와 함께 연루되었던 자를 이른다. 侍中 是儀는 홀로 듣지 못했다고 하였다.注+이다.
여러 날 동안 끝까지 심문하여 詔令의 뜻이 더욱 엄하였으나 시의는 끝내 말을 바꾸지 않으니, 조가가 마침내 죄를 면하였다. 陸遜潘濬은 여일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을 염려하여 이 일을 말할 때마다 번번이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呂壹丞相 顧雍의 잘못을 아뢰자, 孫權하여 고옹을 힐문하였다. 謝厷(사굉)이 여일에게 이르기를 “이 顧公이 면직하고 물러가면 潘太常(潘濬)이 대신하지 않겠는가.”注+과 같다. 하였다.
여일이 말하기를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니, 사굉이 말하기를 “반태상은 항상 그대에게 원한을 품어 이를 갈고 있다. 오늘날 반태상이 顧公을 대신하면 明日에 곧바로 을 공격할까 두렵다.”注+나라 制度丞相御史百官 중에 죄가 있는 자를 들어 아뢰었다. 하니, 여일이 두려워해서 마침내 고옹의 일을 무마하였다.
반준이 建業에 가서 極諫하려고 하다가注+潘濬은 본래 武昌에 머물러 있었다. 太子가 여러 번 말해도 손권이 듣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는,
마침내 백관들을 크게 초청하여 모이게 한 다음 틈을 타서 여일을 죽여 나라를 위해 걱정거리를 제거하고자 하였는데, 여일이 이것을 알고는 병을 칭탁하고 가지 않았다.
左將軍 朱據部曲이 3만 (1,000의 돈꿰미)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工人王遂가 속여서 이 돈을 받아 챙겼다.注+官名이고, 王遂는 사람의 姓名이다. 呂壹은 주거가 직접 돈을 받았는가 의심하여 일을 주관하는 자를 고문해서 곤장 아래에서 죽게 하였다.注+主者”는 朱據의 사무를 주관하는 관리이다.
주거는 자신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어서 띠풀을 땅에 깔고 엎드려서 죄가 내리기를 기다렸는데,注+慈夜이니, 띠풀을 땅에 까는 것이다 典軍吏 劉助가 이 일의 진상을 알고는 왕수가 돈을 받았다고 말하였다.注+은 그 일의 진상을 깨닫고 말함을 이른다.
孫權은 크게 감동하여 깨닫고 말하기를 “주거도 억울한 누명을 썼으니, 하물며 일반 관리와 백성이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유조에게 백만 전을 으로 주고, 여일의 죄를 끝까지 다스렸다.
顧雍廷尉에 이르러 呂壹을 보고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여 묻기를 “그대의 생각에 말하고 싶은 바가 있지 않은가.”注+得無(아니겠는가)”는 無乃라는 말과 같다. 는 말함이다. 하니, 여일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이 없었다.
이때 尙書郞 懷敍가 여일을 대면하여 꾸짖고 욕하니,注+懷敍는 사람의 姓名이다. 고옹이 회서를 꾸짖기를 “관청에는 바른 법이 있으니, 어찌 이렇게까지 하는가.” 하였다.
서중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고옹은 長者라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여일에게 말하고 싶은 바를 물은 것은 잘못이다.
여일이 간사하고 음험하여 법을 어지럽혀서 忠賢을 훼방하여 해쳤는데, 이제 마침내 그의 뜻을 열어 말하게 해서 혹시라도 임금의 용서를 받게 된다면, 어찌 大臣이 군주에게 충성하고 악한 자를 미워하는 의리이겠는가.”
】 여일이 伏誅되자, 孫權은 인하여 사람을 보내어 여러 大將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時事에 마땅히 줄이고 더할 바를 물었는데, 장수들은 모두 감히 말하려 하지 않았다.
손권은 다시 詔書를 내려 다음과 같이 責望하였다. “子瑜(諸葛瑾)와 子山(步騭), 義封(朱然)과 定公(呂岱)은 모두 말을 하려고 하지 않고, 伯言(陸遜)과 承明(潘濬)은 눈물을 흘리며 위태롭게 여기고 두려워해서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 하니,
내 이 말을 들음에 마음이 서글퍼져서 통렬히 자책하노라.注+子瑜諸葛瑾이고, 子山步騭(보즐)의 이고, 義封朱然이고, 定公呂岱이고, 伯言陸遜이고, 承明潘濬이다. 하니, 痛烈히 책망함이요, 또한 책망함이다. 오직 聖人이라야 능히 잘못된 행실이 없고, 현명한 자는 능히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이다.注+(행실)은 去聲이다.
사람의 擧措가 어찌 능히 모두 도리에 맞겠는가.注+한다. (맞다)은 去聲이니, “悉中”은 모두 도리에 맞다는 말과 같다. 다만 내가 스스로 옳다고 여겨서 사람들의 의견을 어기면서도 소홀하여 깨닫지 못해서, 諸君들이 혐의하여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것이다.注+과 같다. 〈“獨當己有以傷拒衆意”는〉 자신이 응당 사람들의 마음을 어기는 바가 있어 혐의를 받게 됨을 말한 것이다. 은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으니, 〈“有嫌難”은〉 諸君들이 모두 혐의를 피하여 말하는 것을 어려워함을 이른 것이다.
내 제군들과 함께 일하여 젊었을 때로부터 장성함에 이르러서 머리털이 斑白이 되었으니,注+二色”은 班白(검은 머리와 흰 머리가 반반임)을 말한다. 의리는 비록 군신 간이나 은혜는 골육 간과 같아서 榮華, 기쁨과 슬픔을 서로 함께하고 있다.
충성스러우면 실정을 숨기지 않고 지혜로우면 계책을 남기지 않고 다 말하는 법이니, 일의 옳고 그름에 군주와 신하의 의견이 함께해야 하는데, 諸君들이 어찌 從容하게 있을 수 있는가.注+事統是非”는 행하는 일이 옳으면 君主와 신하가 그 옳게 여김을 함께하고, 그르면 그 그르게 여김을 함께함을 말한 것이다. 七容이고 은 본음대로 읽으니, 〈“從容”은〉 느긋하고 자유로움을 말한 것이다.
桓公善行이 있을 적에 管子(管仲)가 일찍이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잘못이 있을 적에 일찍이 하지 않은 적이 없어서 간하여 듣지 않으면 그치지 않고 끝까지 간하였다.
지금 내 스스로 살펴봄에, 나는 제 환공의 덕이 없고, 諸君들은 간쟁하는 말을 일찍이 입에서 내지 아니하여 그대로 혐의하고 어려워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말하건대 〈잘못을 깨달은〉 나는 제 환공에게 비하여 참으로 넉넉하지만, 제군들은 관자에 비하여 어떨지 모르겠다.”
】 겨울 12월에 蔣琬이 나가 漢中에 주둔하였다.
魏主 曹叡가 병이 위독하자, 郭夫人을 세워 로 삼고 司馬懿를 불러 들어와 조회하게 하고 曹爽大將軍으로 삼았다.
】 처음에 太祖(曹操)가 劉放孫資秘書郞으로 삼았는데, 文帝(曹丕)가 秘書의 이름을 고쳐 中書라 하고 유방을 中書監으로 삼고 손자를 中書令으로 삼아서 기밀의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魏主 曹叡가 즉위하자 이들을 더욱 총애하고 신임하여, 조예가 때로 직접 萬機를 살피고 자주 군대를 일으켰으나, 심복의 임무는 모두 이 두 사람이 관장하였다.
그리하여 큰일이 있어서 朝臣들이 회의할 때마다 항상 이들로 하여금 그 옳고 그름을 결정해서 선택하여 행하게 하였다.
中護軍 蔣濟가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이 들으니 大臣의 권력이 너무 무거우면 나라가 위태롭고, 좌우의 신하가 너무 군주와 친하면 군주가 愚昧해진다.” 하였으니, 옛날의 지극한 경계입니다.
先君 때의 大臣政事를 전횡하여 外內가 선동하였는데,注+〈“往者大臣”은〉 아마도 文帝(曹丕) 때의 대신을 이른 듯하다. 혹자는 “遺詔를 받은 大臣을 이른다.” 한다. 폐하께서 卓然히 직접 萬機를 살펴보시니, 신하 중에 공경하고 숙연해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大臣이 충성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권세가 아랫사람에게 있으면 사람들이 윗사람(군주)을 소홀히 여김은 당연한 형세입니다. 폐하께서 이미 大臣들을 살피셨으니, 좌우 신하들에 대한 경계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좌우 신하들은 충성스럽고 정직한 마음과 멀리 생각하는 뜻이 반드시 大臣보다 낫지는 못하지만, 외모를 잘 꾸며 군주에게 영합하고 뜻을 받들어 호감을 얻음에 이르러서는 혹 더 잘하기도 합니다.注+(외모)은 으로 읽는다.
더구나 이들은 실로 권력을 장악하고 날마다 군주의 눈앞에 있으니, 혹시라도 군주의 피곤한 틈을 타서 국정을 농단하여 결정하는 바가 있으면,注+〈“疲倦之間 有所割制”는〉 군주가 피곤한 때를 틈타 左右 신하들이 농단하여 결정하는 바가 있음을 이른다. 여러 신하들은 그들이 일을 자기 마음대로 옮기고 바꾸는 것을 보고는 이 틈을 타서 즉시 이들에게 향할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이런 단서가 있으면 사사로이 朋黨과 지원 세력을 불러 모아서 잘한다 하여 칭찬하고 잘못한다 하여 훼방하는 일이 반드시 생길 것이요, 이 있는 자와 를 지은 자의 賞罰이 반드시 서로 뒤바뀌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注+는 죄이다. 은 상과 벌이 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다.
正道를 따라 승진하려는 자는 혹 막히고 아첨하여 서로 빌붙는 자는 도리어 영달합니다.注+(올라가다)은 時掌이다. 그리하여 작은 기회를 틈타 조정으로 들어가고 군주의 안색을 살펴 조정에서 나오는데도, 폐하께서는 마음속으로 친애하고 믿는 사람은 의심하여 살피지 못할 것이니, 이는 마땅히 일찍 유념하셔야 할 것입니다.”
曹叡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는데, 병이 위독해지자 死後의 일을 깊이 생각해서 마침내 武帝의 아들 燕王 曹宇大將軍으로 삼고, 夏侯獻曹爽, 曹肇(조조)와 秦朗 등으로 정사를 보좌하게 하였다.注+曹肇曹休의 아들이다.
劉放孫資가 오랫동안 기밀의 임무를 맡으니 夏侯獻曹肇가 불평하는 마음이 있었다. 대궐에 닭이 깃들어 사는 나무가 있었는데,
하후헌과 조조 두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 또한 오래되었으니, 얼마나 더 있을 수 있겠는가.”注+宮殿에 닭을 길러서 새벽에 울어 시간을 알리는 일을 맡게 하였는데, 나무 위에 깃들었으므로 인하여 鷄棲樹라 한 것이다. 夏侯獻曹肇는 이것을 가리켜 劉放孫資를 비유한 것이다. 하니, 유방과 손자가 두려워하여 은밀히 이들을 이간질할 것을 도모하였다.注+(이간질하다)은 古莧이다.
曹宇가 성품이 공손하고 선량하여 誠心을 다하여 大將軍의 직책을 굳이 사양하자, 曹叡가 유방과 손자를 臥室로 불러 들어오게 해서 묻기를 “燕王이 진실로 이와 같이 사양한단 말인가.”注+正爾爲”는 “진실로 이와 같이 사양한단 말인가.”라는 말과 같다. 일설에 “그의 성품이 공손하고 선량하여 일을 함이 바로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 한다. 하니,
대답하기를 “연왕은 실제로 자신이 큰 임무를 감당하지 못할 줄을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조예가 묻기를 “누가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자인가?” 하니, 이때 曹爽이 곁에 있었다.
유방과 손자는 인하여 조상을 천거하고 또 司馬懿를 불러와 함께 정사를 보좌하는 일에 참여하게 할 것을 청하였다. 조예가 그들의 말을 따랐는데, 얼마 후 중간에 마음이 변하였다.
劉放孫資가 다시 들어가 설득하자 曹叡가 또다시 이들의 말을 따랐는데 유방이 手詔(직접 쓴 詔書)를 쓸 것을 청하니, 조예가 말하기를 “내 너무 피곤하여 쓰지 못하겠다.” 하였다.
유방이 침상으로 올라가서 조예의 손을 잡아 억지로 조서를 쓰게 하고는注+(억지로)은 其亮이다. 마침내 조서를 가지고 나와서 큰소리로 말하기를 “燕王 曹宇 등을 면직하라는 조서가 있으니, 궁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하니, 조우 등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나왔다.
마침내 曹爽大將軍으로 삼으니, 조예는 그의 재주가 부족한 것을 혐의하여 尙書 孫禮大將軍長史로 삼아서 조상을 돕게 하였다.
】 이때 司馬懿汲縣에 있었다.注+〈“ 懿在汲”은〉 이때 司馬懿遼東에서 회군하여 汲縣에 머물고 있었다. 급현은 나라 이래로 河內郡에 속하였다. 曹宇關中(장안)의 일이 중요하니 마땅히 사마의를 長安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고 아뢰어, 일이 이미 시행되고 있었다.注+關中事重”은 蜀漢을 대비하는 것과 氐族羌族을 어루만져 편안히 함을 이른다.
이때에 사마의가 다시 조예의 手詔를 받아 보니, 앞과 뒤가 서로 맞지 않았다. 사마의는 京師에 변란이 있는가 의심해서 마침내 급히 수레를 몰고 들어와 조회하였다. 曹爽曹眞의 아들이다.


역주
역주1 春秋左氏傳에……청합니다 : 簡書는 竹簡이나 木簡에 쓴 글을 이른다. 옛날 이웃나라가 적의 공격을 받아 위급해서 簡書를 보내어 위급한 상황을 알려오면 즉시 군대를 출동시켜 구원하였는바,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閔公 원년에 보인다.
역주2 吳鑄當千大錢 : “이보다 앞서 吳나라에서 大錢을 주조하였는데 돈 한 개가 500錢에 해당하였다. 이것을 綱에 쓰지 않았으나 지금 ‘當千’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500전에 해당한 것도 큰데 1,000전에 해당하니, 너무 심하다. 그러므로 곧바로 써서 거듭 비난한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大錢’을 쓴 것이 6번인데 1,000전에 해당한 것보다 더 큰 것은 있지 않았다.[先是 吳鑄大錢 一當五百矣 不書大錢 此其書當千 何 非常也 當五百大矣 當千甚哉 直書 重譏之 終綱目 書大錢六 莫大於當千者矣]” ≪書法≫
역주3 司馬牛가……것이다 : 司馬牛는 孔子의 제자 이름이고, 桓魋는 사마우의 형으로 본명이 向魋인데 성질이 포악하여 공자도 죽이려 한 적이 있었다. “君子는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씀은 ≪論語≫ 〈顔淵〉에 보이는데, 바로 다음 章에 사마우가 근심하면서 “남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 홀로 없다.”라고 하자, 子夏가 말하기를 “나는 들으니, 죽고 사는 것은 天命에 달려 있고 富와 貴는 하늘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朱子의 ≪集註≫에 “사마우가 형제가 있었는데도 이렇게 말한 것은 아마도 상퇴가 난을 일으키다가 장차 죽을 것을 우려한 듯하다.” 하였다. 여기에서 자하의 말을 공자의 말씀으로 인용한 것은 편의상 두 가지 일을 하나로 묶은 것으로 보인다.
역주4 管叔과……말인가 : 管叔과 蔡叔과 周公은 모두 周나라 成王의 叔父이며, 관숙은 주공의 형이고 채숙은 주공의 아우이다. 관숙과 채숙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그와 형제간인 주공은 그대로 성왕을 보필하였는바, 이는 곧 형제간에 죄가 서로 미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襄公 22년에 보인다.
역주5 魏主叡有疾 立郭夫人爲后 : “魏나라에 일찍이 貴嬪 某氏를 세워 后로 삼았다고 2번 썼었는데, 여기에서 곧바로 郭夫人를 세웠다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내용을 생략한 것이다. 어찌하여 생략하였는가. 毛氏의 죽음은 그 발단이 郭氏에게서 일어났으니, 魏主가 곽씨를 마음에 둔 것이다. 이때 병이 위독하자 급급히 郭夫人를 세워 행여 미치지 못할까 염려했으니, 그 어두워 시비를 가리지 못함이 또한 심하다. ≪資治通鑑綱目≫에서 특별히 그 글을 달리한 것은 비난하는 뜻을 보인 것이다.[魏嘗再書立貴嬪某氏爲后矣 此則直曰 立郭夫人 何 略之也 曷爲略之 毛氏之死 釁起郭氏 魏主蓋有心矣 於是疾革 汲汲立焉 惟恐不及 其蔽亦甚矣哉 綱目特異其文 所以示譏也]” ≪書法≫

자치통감강목(11) 책은 2020.12.0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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