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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2)

자치통감강목(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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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酉年(277)
晉咸寧三年이요 吳天紀元年이라
春正月朔 日食하다
◑三月 晉討樹機能破之하니 降諸胡二十萬口하다
◑秋七月 有星孛于紫宮하다
◑晉詔遣諸王就國하고 封功臣爲公侯하다
衛將軍楊珧等 建議호되 以爲古者封建諸侯 所以藩衛王室이라
今諸王公 皆在京師하니 非扞城之義 又異姓諸將居邊하니 宜參以親戚이라한대
晉主乃詔諸王하여 各以戶邑多少 爲三等하여 大國 置三軍五千人하고 次國 二軍三千人하고
小國 一軍一千一百人注+時以平原‧汝南‧琅邪‧扶風‧齊爲大國, 梁‧趙‧樂安‧燕‧安平‧義陽爲次國, 餘國爲小國.하고 諸王爲都督者 各徙其國使相近이라
八月 徙亮爲汝南王하여 督豫州注+亮, 宣帝子, 初封扶風王.하고 倫爲趙王하여 督鄴城注+倫, 宣帝子, 初封琅邪王.하고 輔爲太原王하여 監幷州注+輔, 孚之子, 初封勃海王.하고
伷在徐州 徙封琅邪하고 駿在關中이라 徙封扶風注+駿, 宣帝子, 初封汝陰王.하고 又徙顒爲河間王하고
柬爲南陽王注+顒, 孚之孫, 初封太原王. 柬, 武帝子, 初封汝南王.하고 其無官者 皆遣就國하니 諸王公 戀京師하여 皆涕泣而去러라
又封皇子瑋允該遐皆爲王注+瑋爲始平王, 允爲濮陽王, 該爲新都王, 遐爲淸河王.하고 其異姓之臣有大功者 皆封郡公郡侯하다
◑羊祜封南城郡侯하니 固辭不受注+時詔以泰山之南武陽‧牟‧南城‧梁父‧平陽五縣爲南城郡. 祜本泰山南城人也.하다 祜每拜官爵 多避讓하여 至心素著故 特見申於分列之外注+見申, 謂許之辭爵, 其志獲申也. 分列, 謂分封列爵也.러라
歷事二世 職典樞要注+歷事二世, 謂事文帝及帝也.하되 凡謀議 皆焚其草하니 世莫得聞이요 所進達之人 皆不知所由注+謂人由祜薦引而進達, 不知其所由來也.러라
常曰 拜官公朝 謝恩私門 吾所不取也라하더라
晉大水하다
◑冬十二月 吳人 襲晉江夏汝南大略而還하다
吳人 襲晉江夏汝南하여 略千餘家注+江夏郡屬荊州, 汝南郡屬豫州, 相去甚遠. 沈約宋志 “江夏太守治汝南縣, 本沙羨土, 晉末汝南郡民流寓夏口, 因立爲汝南.” 則此時江夏郡, 未有汝南縣也, 無亦史追書乎.하니 晉主遣侍臣하여 詰羊祜不追討之意하고 幷欲移荊州어늘
祜曰 江夏去襄陽八百里하니 比知賊問 去已經日하니 步軍安能追之리오 勞師以免責 非臣志也
昔魏武帝置都督 類皆與州相近하니 以兵勢好合惡離故也注+與州相近, 如揚州刺史治壽春. 都督揚州諸軍事, 亦治壽春之類.
疆埸之間 一彼一此 愼守而已注+左傳魯桓公曰 “疆埸之間, 愼守其一, 而備其不虞.” 若輒徙州 賊出無常하니 亦未知州之所宜據也리이다
吳主以俶多所譖白으로 甚見寵任이러니 俶表置彈曲二十人하여 專糾司不法注+糾, 督也. 司, 主也.하니
於是 吏民各以愛憎으로 互相告訐이라 獄犴盈溢注+朝廷曰獄, 鄕亭之繫曰犴. 犴, 本作豻, 音岸, 胡地野犬也. 犬所以守, 故謂獄爲豻.이러니 至是하여 俶姦利事發이어늘 車裂之하다
索頭拓跋力微死하다
衛瓘遣拓跋沙漠汗歸國注+前年, 瓘表留沙漠汗, 讒間旣行, 乃遣歸.하고 諸部大人 共譖而殺之 力微以憂卒하니 時年一百四러라
子悉祿立하니 其國遂衰하다 幽幷二州 皆與鮮卑接하니 東有務桓하고 西有力微하여 多爲邊患이러니
瓘密以計間之하여 務桓降而力微死하니 朝廷嘉瓘功하여 封其弟爲亭侯하다


丁酉年(277)
나라 世祖 武皇帝 司馬炎 咸寧 3년이고, 吳主 孫皓 天紀 원년이다.
[] 봄 정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 3월에 나라가 禿髮樹機能을 토벌하여 격파하니, 여러 胡族 20만 명이 항복하였다.
[] 가을 7월에 孛星紫宮星에 나타났다.
[] 나라가 조서를 내려 諸王들을 보내어 封國에 나아가게 하고 功臣을 봉하여 公侯로 삼았다.
[] 衛將軍 楊珧 등이 건의하기를 “옛날의 제후를 봉건하는 것은 왕실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 王公이 모두 京師에 있으니, 나라를 보호하는 의리가 아니고, 또 異姓諸將이 변방에 있으니, 마땅히 친척을 그곳에 참여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晉主(司馬炎)가 諸王에게 조령을 내려 각자 戶邑의 정도를 세 등급으로 나누어 大國은 3 5,000명을 두고, 次國은 2 3,000명을 두고,
小國은 1 1,100명을 두게 하였으며,注+당시에 平原汝南琅邪扶風大國이라 하였고, 樂安安平義陽次國이라 하였으며, 나머지 나라는 小國이라 하였다. 諸王으로 都督이 된 자를 그 封國을 옮겨서 〈都督하는 지역과〉 서로 가까이 있게 하였다.
8월에 司馬亮을 옮겨 汝南王으로 삼아서 豫州를 감독하게 하고,注+司馬亮宣帝(司馬懿)의 아들로, 처음에 扶風王에 봉해졌다. 司馬倫趙王으로 삼아 鄴城을 감독하게 하였으며,注+司馬倫宣帝의 아들로, 처음에 琅邪王에 봉해졌다. 司馬輔太原王으로 삼아 幷州를 감독하게 하고,注+司馬輔司馬孚의 아들로, 처음에 勃海王에 봉해졌다.
司馬伷(사마주)는 徐州에 있었는데 옮겨서 琅邪王에 봉해주었으며, 司馬駿關中에 있었는데 옮겨서 扶風王에 봉해주었고,注+司馬駿宣帝의 아들로, 처음에 汝陰王에 봉해졌다.司馬顒(사마옹)을 옮겨서 河間王에 봉해주었으며,
司馬柬을 옮겨서 南陽王에 봉해주었으며,注+司馬顒司馬孚의 손자로 처음에 太原王에 봉해졌다. 司馬柬武帝(司馬炎)의 아들로 처음에 汝南王에 봉해졌다. 관직이 없는 자는 모두 보내어 봉국으로 가게 하니, 여러 王公들이 京師를 그리워하여 모두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
皇子司馬瑋司馬允司馬該司馬遐를 왕으로 봉하고,注+司馬瑋始平王이 되었고, 司馬允濮陽王이 되었으며, 司馬該新都王이 되었고, 司馬遐淸河王이 되었다. 異姓의 신하로 공로가 큰 사람은 모두 郡公郡侯로 봉했다.
[] 羊祜南城郡侯에 봉하니, 굳게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注+당시에 조서를 내려 泰山南武陽南城梁父(양보)‧平陽 5南城郡으로 하였다. 羊祜는 본래 泰山 南城 사람이다. 양호는 관작을 받을 때마다 대부분 사양하여 지극한 마음이 평소에 잘 드러났기 때문에 특별히 작위의 반열 밖에 있게 해달라고 한 것을 허락받았다.注+見申”은 작위를 사양하는 것을 허락받아 그 뜻을 펼 수 있다는 말이다. “分列”은 봉지를 받고 작위에 나열되는 것이다.
2대에 걸쳐 樞要의 직책을 담당하였는데,注+歷事二世”는 文帝(司馬昭)와 武帝(司馬炎)를 섬긴 것을 이른다. 모의한 내용은 그 초고를 모두 불태웠으니, 세상에서 그 내용을 들을 수가 없었고, 그에게 천거되어 관리가 된 사람도 그 연유를 몰랐다.注+〈“所進達之人 皆不知所由”는〉 어떤 사람이 羊祜의 천거로 연유하여 관리가 되어도 그 연유를 몰랐음을 말한다.
양호가 늘 말하기를 “〈자신이 추천한 사람이〉 조정에서 관직을 받았는데 私家(양호)에 감사히 여기는 것은 내가 취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나라에 홍수가 났다.
[] 겨울 12월에 나라 사람들이 나라의 江夏汝南을 습격하여 크게 노략질하고 돌아갔다.
[] 나라 사람들이 나라 江夏汝南을 습격하여 1천여 가를 노략질하였는데,注+江夏郡荊州에 속하였고, 汝南郡豫州에 속하였는데, 서로 거리가 아주 멀다. 의 ≪宋書≫ 〈地理志〉에 “江夏太守汝南縣治所를 두었으니, 본래 沙羨 지역이다. 나라 말엽에 汝南郡의 백성들이 유랑하다가 夏口에 정착하여 그로 인해 汝南縣을 세웠다.”라고 하였는데, 이때에 江夏郡에는 汝南縣이 있지 않았으니, 史書에서 추후에 〈汝南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겠는가. 晉主(司馬炎)가 侍臣을 파견하여 羊祜가 추격하여 토벌하지 않은 뜻을 추궁하고 荊州治所를 옮기고자 하니,
양호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江夏襄陽과의 거리가 800리로, 적에 대한 소식을 알았을 때쯤에는 적들이 도망친 지가 이미 며칠이 지난 뒤일 것이니, 보병이 어찌 그들을 추격할 수 있겠습니까. 군대를 수고롭게 하여 책임을 면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닙니다.
옛날에 武帝(曹操)가 都督을 설치했을 때에 대부분 모두 와 가까운 곳에 두었으니, 병사의 세력이 합치기를 좋아하고 흩어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었습니다.注+與州相近”은 揚州刺史壽春治所를 두고 都督揚州諸軍事 역시 壽春治所를 두는 부류와 같다.
국경 지역에서는 상대편과 우리 편이 자기 쪽의 경계를 조심하여 지킬 뿐입니다.注+春秋左氏傳桓公 17년에, 魯桓公이 말하기를 “疆埸 사이의 일은 그 일정한 경계를 신중히 지켜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만일 治所를 옮기면 적들이 일정치 않게 출몰할 것이니, 역시 가 의거할 곳을 모르게 될 것입니다.”
[] 나라 司直中郞將 張俶이 죽임을 당했다.
[] 吳主張俶이 참소하는 말을 많이 한 것으로써 매우 그를 총애하고 신임하게 되었는데, 장숙이 20명을 두어 전적으로 불법을 규찰하겠다는 표문을 올리자,注+는 감독한다는 뜻이고, 는 주관한다는 뜻이다.
이에 吏民들이 각기 愛憎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고해 바쳐서 감옥이 넘쳐났다.注+조정에 〈죄수를 가둔 곳을〉 이라 하고, 에 죄수를 가둔 곳을 이라 한다. 은 본래 으로 쓰는데 음이 으로, 오랑캐 지역의 들개이다. 개는 지키기 때문에 이라 한다. 이때에 이르러 장숙이 간악한 이익을 취한 일이 발각되자, 거열형에 처해졌다.
[] 索頭部拓跋力微가 죽었다.
[] 衛瓘拓跋沙漠汗을 보내어 귀국하게 하고注+ 참소와 이간책이 이미 시행된 뒤에 마침내 돌려보낸 것이다. 諸部大人이 함께 참소하여 그를 죽였다. 그러자 拓跋力微가 근심을 하다가 하였는데, 당시 나이가 104세였다.
아들 拓跋悉祿이 즉위하니, 그 나라가 이윽고 쇠퇴하였다. 예전에 幽州幷州 두 곳이 모두 鮮卑族과 접하고 있었는데, 동쪽으로는 劉務桓이 있었고, 서쪽으로는 탁발력미가 있어서 변경 지역에 대한 근심이 많았다.
위관이 비밀리에 계책을 써서 이들을 이간질하여 유무환은 항복하고 탁발력미는 죽으니, 조정에서는 위관의 공을 가상히 여겨 그의 동생을 亭侯로 봉하였다.


역주
역주1 沈約 : 441~513. 宋나라 때의 史家이자 文章家이다. 南朝 齊나라, 梁나라 때 사람이다. 梁 武帝 때 尙書僕射, 尙書令에 이르렀다. 詩文에 능하였다. 허리가 몹시 가늘어 沈腰라고 불렸으며 가는 허리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저서에 ≪四聲譜≫‧≪宋書≫ 등이 있다.(≪梁書≫ 〈沈約列傳〉, ≪南史≫ 〈沈約列傳〉)
역주2 吳司直中郞將張俶伏誅 : “張俶이 참소를 잘하여 총애를 받다가 이때에 와서 간사하게 이권을 취한 일로 주살되었으니, 罪人이다. 그러므로 孫皓가 卽位한 이래 여기까지 ‘殺’이라고 기록된 것이 9번인데, 오직 張俶은 ‘伏誅’로 기록하였으니, ≪資治通鑑綱目≫에서 참소하는 말을 미워한 뜻이 엄중하다.[俶以善譛取寵 至是以姦利事誅 則罪人也 故孫皓自卽位至今 凡九書殺 惟張俶以伏誅書 綱目之疾讒說 嚴矣]” ≪書法≫
“간사한 사람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뜻을 얻지만 또한 반드시 재앙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孫皓가 음탕하고 포악한데, 張俶이 참소로 인해 등용되었으니, 꽃이 봄을 만나고 벼가 가을을 만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안 되어 또한 주살되었는데 ≪資治通鑑綱目≫에서 이를 기록한 것은 또한 小人을 경계시킨 것이다.[姦回之人 得志亂世 然亦未必能免 孫皓淫虐 而張俶以讒譛用 可謂卉之春 而稼之秋矣 未幾亦以誅死 綱目書之 其亦警戒小人也歟]” ≪發明≫
역주3 彈曲 : 관원의 불법 행위를 전문적으로 규찰하는 관리를 말한다.
역주4 전년(275)……하였는데 : 본서 295쪽에 보인다.

자치통감강목(12) 책은 2021.01.0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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