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衛將軍 楊珧 등이 건의하기를 “옛날의 제후를 봉건하는 것은 왕실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 王公이 모두 京師에 있으니, 나라를 보호하는 의리가 아니고, 또 異姓의 諸將이 변방에 있으니, 마땅히 친척을 그곳에 참여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晉主(司馬炎)가 諸王에게 조령을 내려 각자 戶邑의 정도를 세 등급으로 나누어 大國은 3軍 5,000명을 두고, 次國은 2軍 3,000명을 두고,
小國은 1
軍 1,100명을 두게 하였으며,
注+당시에 平原‧汝南‧琅邪‧扶風‧齊를 大國이라 하였고, 梁‧趙‧樂安‧燕‧安平‧義陽을 次國이라 하였으며, 나머지 나라는 小國이라 하였다. 諸王으로
都督이 된 자를 그
封國을 옮겨서 〈
都督하는 지역과〉 서로 가까이 있게 하였다.
8월에
司馬亮을 옮겨
汝南王으로 삼아서
豫州를 감독하게 하고,
注+司馬亮은 宣帝(司馬懿)의 아들로, 처음에 扶風王에 봉해졌다. 司馬倫을
趙王으로 삼아
鄴城을 감독하게 하였으며,
注+司馬倫은 宣帝의 아들로, 처음에 琅邪王에 봉해졌다. 司馬輔를
太原王으로 삼아
幷州를 감독하게 하고,
注+司馬輔는 司馬孚의 아들로, 처음에 勃海王에 봉해졌다.
司馬伷(사마주)는
徐州에 있었는데 옮겨서
琅邪王에 봉해주었으며,
司馬駿은
關中에 있었는데 옮겨서
扶風王에 봉해주었고,
注+司馬駿은 宣帝의 아들로, 처음에 汝陰王에 봉해졌다. 또
司馬顒(사마옹)을 옮겨서
河間王에 봉해주었으며,
司馬柬을 옮겨서
南陽王에 봉해주었으며,
注+司馬顒은 司馬孚의 손자로 처음에 太原王에 봉해졌다. 司馬柬은 武帝(司馬炎)의 아들로 처음에 汝南王에 봉해졌다. 관직이 없는 자는 모두 보내어 봉국으로 가게 하니, 여러
王公들이
京師를 그리워하여 모두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
또
皇子인
司馬瑋‧
司馬允‧
司馬該‧
司馬遐를 왕으로 봉하고,
注+司馬瑋는 始平王이 되었고, 司馬允은 濮陽王이 되었으며, 司馬該는 新都王이 되었고, 司馬遐는 淸河王이 되었다. 異姓의 신하로 공로가 큰 사람은 모두
郡公과
郡侯로 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