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황제(晉 孝武帝)가 처음으로 佛法을 신봉하여 精舍를 궁전 안에 세우고 여러 沙門(승려)을 끌어와 거처하게 하자,注+① 精舍는 佛寺이니, 자기가 학업하는 바를 專心하여 講習하는 것으로 뜻을 삼은 것이다. 지금 儒家와 釋家의 학업을 익히는 곳을 통틀어 精舍라 한다. 左丞 王雅가 간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注+② 王雅는 王肅의 曾孫이다.
綱
【綱】 2월에 東夷와 西域 62개국이 秦나라(前秦)에 조공을 바쳤다.
綱
【綱】 여름 6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綱
【綱】 겨울 11월에 秦나라(前秦)가 竟陵을 침략하였는데, 晉나라의 桓沖이 격파하고서 마침내 管城을 함락하고 이곳을 지키던 장수 閻振과 吳仲을 사로잡았다.注+① 管城은 마땅히 滶水의 북쪽에 있었을 것이다.
綱
【綱】 江東 지방에 큰 기근이 들었다.
역주
역주1立佛精舍於内殿 :
“불교가 漢나라 明帝 때 중국에 들어온 뒤로부터(漢나라 永平 8년(65)이다.) 佛舍를 세웠다고 쓴 적이 있지 않았으니, 불사를 세웠다고 쓴 것은 오랑캐의 가르침을 숭상함을 비난한 것이다. 内殿에 세움은 더욱 올바른 장소가 아니다. 이 때문에 孝武帝가 精舍를 세울 적에 内殿에 세웠다고 썼고(이해(381)이다.) 肅宗이 도량을 설치할 적에 三殿에 설치하였다고 썼고(唐나라 上元 2년(761)이다.) 武宗이 望僊臺를 세울 적에 禁中에 세웠다고 썼으니,(唐나라 會昌 3년(843)이다.) 모두 비판한 것 중에 비판한 것이다.[佛自明帝時入中國(漢永平八年) 未有書立佛舍者 書立佛舍 譏尙夷敎也 於内殿 益非所矣 是故孝武之立精舍 以於内殿書(是年) 肅宗之置道場 以於三殿書(唐上元二年) 武宗之立望僊臺 以於禁中書(唐會昌三年) 皆譏之譏也]” ≪書法≫“부처는 西域의 神이니, 神의 있고 없음을 논할 것이 없고 우선 그 본래의 법을 가지고 말하면 淸虛하고 寂滅한 것이다. 지금 内殿이 어떤 곳인데, 마침내 내전 안에 精舍를 세운단 말인가. 더구나 또 沙門의 무리들을 뒤섞어 끌어다가 거처하게 한단 말인가. 直筆로 썼으니, 그 잘못이 저절로 드러난다.[佛 西域之神也 不論有無 姑就其本法言之 淸虛寂滅者也 今内殿 何地 乃立精舍於中 況又雜引沙門軰 居之哉 直筆書之 其失自見]” ≪發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