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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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綱
丁亥年(B.C. 214)
三十三年이라
略取南越地하야 置桂林南海象郡하고 以謫徙民五十萬으로 戍之하다
目
發諸嘗逋亡人及贅壻賈人爲兵注+贅, 之芮切. 贅壻, 男無聘財, 以身自質於妻家, 如人身之肬贅, 是餘剩之物. 賈, 商賈也.하야 略取南越陸梁地하야 置三郡注+南越, 本禹貢楊州地. 嶺南人多處山陸間, 其彊梁, 故曰陸梁.하고 以謫徙民五十萬으로 戍五嶺注+謫, 責也. 嶺者, 西自衡山之南, 東窮于海, 一山之限, 而別標名, 則有五, 大庾‧始安‧臨賀‧陸陽‧揭陽, 是也.
하다
目
蒙恬이 斥逐匈奴하고 收河南地하야 爲四十四縣注+河南地, 當北地之北, 黃河之南.하고 築長城호대 起臨洮하야 至遼東하니 延袤萬餘里注+洮, 音滔. 班志, 臨洮縣屬隴西郡, 縣臨洮水, 因以爲名. 延, 長行也. 南北曰袤.라
暴師於外十餘年에 恬이 常居上郡하야 統治之러라
綱
彗星見하다


綱
정해년(B.C. 214)
[綱]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33년이다.
남월南越 지역을 침략해 차지하고는 계림군桂林郡‧남해군南海郡‧상군象郡을 설치한 다음, 죄를 지은 백성 50만 명을 이주시켜 지키게 하였다.
目
[目] 일찍이 도망쳤던 자들 및 췌서贅壻와 고인賈人을 동원해 군사로 삼아注+췌贅(혹, 데릴사위)는 지예之芮의 절切이다. 췌서贅壻는 남자가 아내를 데리고 올 재물이 없어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처가에 볼모로 잡히는 것이다. 마치 사람의 몸에 난 혹과 같은 것으로, 이는 쓸데없는 물건이다. 고賈는 장사치를 말한다.남월南越과 육량陸梁 지역을 침략해 차지하고는 3군郡을 설치한 다음,注+남월南越은 본래 《서경書經》 〈하서夏書 우공禹貢〉의 양주楊州 지역이다. 고개 남쪽 지방은 사람들이 대부분 산과 평지 사이에 살고 있으며, 그 성품이 억세고 사나우므로 육량陸梁이라고 한 것이다. 죄를 지은 백성 50만 명을 이주시켜 을 지키게 한 것이다.注+적謫은 꾸짖는 것이다. 영嶺은, 서쪽으로는 형산衡山의 남쪽에서부터 동쪽으로는 바닷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산맥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말한다. 고개 이름을 구별해서 말하면 다섯 개의 고개가 있는데, 대유령大庾嶺‧시안령始安嶺‧임하영臨賀嶺‧육양영陸陽嶺‧게양령揭陽嶺이 이것이다.
目
[目] 몽념蒙恬이 흉노匈奴를 축출하고서 을 거두어 44개의 현縣을 설치하고注+하남河南 지역은 북지北地의 북쪽과 황하黃河의 남쪽에 해당하는 지역을 말한다.장성長城을 쌓았는데, 임조臨洮에서 시작하여 요동遼東에까지 이르니, 길게 뻗어간 것이 1만여 리나 되었다.注+조洮는 음이 도滔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를 보면, 임조현臨洮縣은 농서군隴西郡에 속하는데, 고을이 조수洮水에 임하여 있으므로, 그로 인해서 고을의 이름으로 삼았다. 연延은 길게 뻗어간 것이다. 남쪽과 북쪽으로 이어진 것을 무袤라고 한다.
군사들이 10년 동안이나 객지에서 고생하였는데, 몽념이 항상 상군上郡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들을 통솔해 다스렸다.
綱
[綱] 혜성이 나타났다.


역주
역주1 五嶺 : 중국 남쪽의 湖南과 廣東 두 省의 경계에 있는 다섯 개의 큰 고개를 말한다.
역주2 (姓)[性] : 저본에는 ‘姓’으로 되어 있으나, 思政殿訓義 《資治通鑑》과 《史記索隱》에 근거하여 ‘性’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河南 지역 : 내몽골 지역 황하 만곡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河套(오르도스)라고 한다. 이 지역은 북방 유목민의 주요 거점이자 교통의 요충지였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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