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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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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辰年(B.C. 41)
三年이라
春三月 立子康爲濟陽王하다
◑ 冬十一月 地震, 雨水하다
◑ 復鹽鐵官하고 員千人하다
以用度不足하고 民多復除하여 無以給中外徭役故也


경진년(B.C. 41)
[綱] 나라 효원황제孝元皇帝 영광永光 3년이다.
봄 3월에 아들 유강劉康을 세워 제양왕濟陽王으로 삼았다.
[綱] 겨울 11월에 지진이 나고, 비가 내렸다.
[綱] 염철관鹽鐵官을 다시 회복하고 박사博士제자弟子 1,000명을 두었다.
[目] 〈염철관鹽鐵官을 회복하고 박사博士에 정원을 둔 것은〉 용도用度(재정)가 부족하고 백성 중에 부역을 면제받은 자가 많아서 중외中外의 부역을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역주
역주1 置博士弟子 : “武帝 때에 처음으로 博士弟子 50명을 두었었는데, 元帝에 이르러 인원수를 없애고 백성 중에 한 經書를 통달한 자들에게 모두 身役을 면제해주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身役을 면제받은 자들이 너무 많아 부역을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 뒤에 또다시 1천 명으로 제한하였으니, 뜻은 당초에는 줄이려 하였으나 실제는 넓힌 것이다. 그러므로 《資治通鑑綱目》에 ‘제한했다.[限]’고 쓰지 않고 ‘설치했다.[置]’고 썼으니, 당시 儒學의 성함을 볼 수 있다.[自武帝始置博士弟子五十人 至帝罷其員數 民通一經者 皆復其身 及是復除者多 無以供役 然後又以千人限之 意雖近狹而實廣也 故綱目不書限書置 而當時儒學之盛 亦可見矣]” 《書法》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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