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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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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申年(84)
갑신년甲申年(84)
元和元年이라 夏六月 詔議貢擧法하다
나라 숙종 효장황제肅宗 孝章皇帝 원화元和 원년이다. 여름 6월에 조령詔令을 내려 공거貢擧하는 법을 의논하게 하였다.
陳事者 多言郡國貢擧 率非功次 守職益懈而吏事寖疏라한대 詔公卿朝臣議하니
】 일을 아뢰는 자들이 대부분 말하기를 “군국郡國에서 공거貢擧하는 것(인재 천거)이 대부분 가 아니기 때문에 직책을 수행하려는 의식(마음)이 더욱 해이해지고 관리의 일이 점차 소원합니다.” 하니, 황제가 조령詔令을 내려 공경公卿과 조정의 신하들에게 의논하게 하였다.
大鴻臚韋彪曰注+彪, 賢之玄孫也. 夫國 以簡賢爲務 以孝行爲首 是以 求忠臣 必於孝子之門이니이다
이에 대홍려 위표大鴻臚 韋彪가 다음과 같이 건의하였다.注+위표韋彪위현韋賢현손玄孫이다. “국가는 어진 이를 선발하는 것을 힘쓰고 어진 이는 효행을 으뜸으로 삼습니다. 이 때문에 충신을 구하기를 반드시 효자의 가문에서 하는 것입니다.
夫人才行 少能相兼이라 是以 孟公綽 優於趙魏老호되 不可以爲滕薛大夫하니이다
忠孝之人 持心近厚하고 鍛鍊之吏 持心近薄注+鍛鍊, 猶成熟. 言深文之吏, 入人之罪, 猶工冶陶鑄鍛鍊, 使之成熟也.하니 士宜以才行爲先이요 不可純以閥閲이니이다
충효忠孝로운 사람은 마음가짐이 후덕함에 가깝고 법조문에 숙달된 관리는 마음가짐이 야박함에 가까우니注+단련鍛鍊”은 성숙成熟과 같으니, 법조문을 까다롭게 따지는 관리가 사람을 죄목에 넣기를 도공陶工야장冶匠도야陶冶하고 단련해서 성숙하게 하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선비를 선발할 때에는 마땅히 재주와 행실을 우선해야 하고 순전히 공적과 이력만 따져서는 안 됩니다.
이나 其要歸 在於選二千石하니 二千石賢이면 則貢擧皆得其人矣리이다
그러나 그 요점은 이천석二千石(태수太守)을 선발함에 달려 있으니, 이천석二千石이 어질면 공거貢擧가 모두 적임자를 얻을 것입니다.”
彪又上疏曰 天下樞要 在於尙書로되 而間者 多從郎官超升此位하니 雖曉習文法하여 長於應對
위표韋彪가 또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천하天下추요樞要상서尙書에 달려 있는데, 요사이 낭관郎官으로부터 등급을 뛰어넘어 이 지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비록 법조문을 밝게 익혀서 사물에 응대함에는 장점이 있으나,
然察察小慧 類無大能注+察察, 煩碎也.이니 宜鑑嗇夫捷急之對하고 深思絳侯木訥之功하소서 帝皆納之하다
번거롭게 살피는 작은 지혜는 대체로 큰 재능이 없으니注+찰찰察察”은 번거롭고 자질구레함이다., 마땅히 을 깊이 생각하소서.” 황제가 그의 말을 모두 받아들였다.
秋七月 하다
】 가을 7월에 조령詔令을 내려 참혹하게 옥사를 다스리는 것을 금하였다.
詔曰 律云 掠者 唯得榜笞立注+榜ㆍ笞, 輕刑也. 應受榜ㆍ笞者, 以一人背之, 令其立而受刑.하고 又令丙 箠長短有數注+令有先後, 有令甲ㆍ令乙ㆍ令丙. 景帝定箠令, 箠長五尺, 本大一寸, 其竹也末薄半寸, 其平去節, 故云長短有數.러니
】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렸다. “형률에 ‘고문하는 자는 오직 , 의 형벌을 〈죄인으로 하여금〉 서서 받게 할 수 있을 뿐이다.’注+는 가벼운 형벌이니, 의 형벌을 받을 자는 라고 하였고, 또 영병令丙(추)의 길이에 일정한 가 있는데注+ 〈“추장단유수箠長短有數”는〉 그러므로 길이에 일정한 수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自往者大獄以來 掠者多酷하여 鉆鑽之屬 慘苦無極注+大獄, 謂楚王英等獄也. 鉆, 通作鉗, 其廉切, 以鐵有所劫束也. 鑽, 作喚切, 臏刑也, 謂鑽去其膝蓋骨也.하니 念其痛毒 怵然動心注+怵, 勅律切, 悚懼也.이라 宜及秋冬治獄하여 明爲其禁하라
지난번 큰 옥사가 있은 뒤로 고문을 하는 자가 대부분 혹독하게 고문해서 쇠사슬로 목을 매고 종지뼈를 뚫는 등의 형벌이 더할 나위 없이 참혹하고 고통스러우니注+대옥大獄”은 초왕 유영楚王 劉英 등의 옥사獄事를 이른다. 과 통하는바 기렴其廉이니, 쇠사슬로 속박하는 것이다. 작환作喚빈형臏刑이니, 종지뼈를 뚫어 제거함을 이른다., 그 고통스러운 해독을 생각함에 마음이 송연해진다.注+칙률勅律이니, 송연해함이다. 마땅히 가을과 겨울 옥사를 다스릴 때에는 그 금하는 것을 분명히 하라.”
八月 太尉彪罷하니 以鄭弘爲太尉하다
】 8월에 태위 위표太尉 韋彪가 면직되니, 정홍鄭弘태위太尉로 삼았다.
◑帝南巡하다
】 황제가 남쪽 지역으로 순행하였다.
詔所經道上郡縣 無得設儲跱注+儲, 積也. 跱, 里切, 具也. 言不得豫有蓄備.하고 命司空하여 自將徒支拄橋梁注+自將徒, 謂官司自備工徒修理, 不役民夫也. 支, 通作枝, 捍也. , 竹柱切, 撑也. 梁, 卽橋也. 凡橋, 有木梁ㆍ石梁ㆍ舟梁, 皆謂之橋耳. 司空掌水土, 故使之.하고 有遣使奉迎探知起居어든 二千石當坐하라
】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렸다. “황제가 경유하는 길가의 군현郡縣들이 곡식을 미리 저축하지 못하게 하며注+는 쌓음이다. 장리丈里로 갖춤이니, 〈“무득설저치無得設儲跱”은〉 미리 저축하여 대비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사공司空에게 명해서 직접 공도工徒들을 거느리고서 교량橋梁을 지탱하게 하고注+자장도自將徒”는 관사官司가 직접 공도工徒들을 거느리고 수리하여 민부民夫(공역에 복무하는 백성)를 사역시키지 않음을 이른다. 와 통하니 막음이고, 죽주竹柱이니 버팀이다. 은 바로 다리이다. 대체로 다리는 목량木梁, 석량石梁, 주량舟梁이 있는데, 이를 모두 라 한다. 사공司空수토水土를 관장하였으므로 이 일을 시킨 것이다., 사자使者를 보내 황제를 맞이하거나 기거起居를 정탐하여 알려고 하는 자가 있으면 이천석二千石이 죄를 받게 하겠다.”
冬十月 至宛하여 以朱暉爲尙書僕射하다
】 겨울 10월에 에 이르러서 주휘朱暉상서복야尙書僕射로 삼았다.
暉嘗爲臨淮太守하여 有善政이라 歌之曰 彊直自 南陽朱季 吏畏其威하고 民懷其惠注+朱暉, 字文季, 故曰朱季, 南陽郡宛邑人也.라하니라
주휘朱暉가 일찍이 임회태수臨淮太守가 되어서 선정善政을 베풀어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강직하여 소신껏 자신의 일을 이룬 자는 남양南陽주계朱季이니, 관리들은 그의 위엄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그 은혜를 생각한다.”注+주휘朱暉는 자가 문계文季이므로 ‘주계朱季’라 말한 것이니, 남양군 완읍南陽郡 宛邑 사람이다. 하였다.
坐法免家居 召而用之注+東觀記曰 “坐考長, 囚死獄中, 州奏免官.”하니라 尙書張林 上言縣官經用不足하니 宜自煮鹽하고 修均輸法이니이다
그런데 이때에 법에 걸려 면직되어 집에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이 불러 등용한 것이다.注+동관한기東觀漢記≫에 “〈주휘朱暉가〉 장리長吏를 조사하다가 옥중에 가두어 죽게 한 죄에 걸려서, 에서 아뢰어 면직하였다.” 하였다. 뒤에 상서 장림尙書 張林상언上言하기를 “현관縣官(조정, 국가)의 비용이 부족하니, 직접 소금을 구워 팔고 균수법均輸法을 다시 시행해야 합니다.” 하였다.
暉曰 王制 天子不言有無하고 諸侯不言多寡하고 食祿之家不得與百姓争利하니이다
이에 주휘가 말하기를 “선왕先王예제禮制천자天子는 재물의 유무를 말하지 않고, 제후諸侯는 재물의 많고 적음을 말하지 않고, 녹을 먹는 집안은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均輸之法 與賈販無異 鹽利歸官이면 則下民窮怨이니 誠非明主所宜行이니이다
균수均輸의 법은 장사꾼이 물건을 파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소금을 구워 파는 이익이 관청으로 돌아가면 백성들이 곤궁하여 원망하게 되니, 진실로 현명한 군주가 행할 할 바가 아닙니다.” 하였다.
帝怒하여 切責諸尙書하니 暉等 皆自繫獄이러니 三日 詔勅出之하고
】 황제가 노하여 여러 상서尙書를 크게 책망하니 주휘朱暉 등이 모두 스스로 옥에 갇혀 있었는데, 3일 만에 조칙詔勅을 내려 출옥시키고 말하기를
國家樂聞駁議하고 黄髪無愆하니 詔書過耳 何故自繫注+黃髮, 賢老也, 謂朱暉也. 暉因稱病篤하고 不肯復署議注+署, 謂簽名也.하니
“국가(황제)가 반박하는 의논을 듣기 좋아하고 누런 머리의 노인(주휘)은 잘못이 없으니, 지난번 조서詔書가 지나쳤다. 무슨 이유로 스스로 옥에 갇혔는가.”注+황발黃髮”은 어진 노인이니, 주휘朱暉를 이른다. 하니, 주휘는 인하여 병이 위독함을 핑계로 다시는 의논에 서명하려고 하지 않았다.注+는 서명함을 이른다.
尙書令以下惶怖하여 謂暉曰 今臨得譴讓이어늘 奈何稱病注+臨得譴讓, 謂譴讓已臨乎其前也. 暉曰 行年八十 蒙恩하여 得在機密하니 當以死報
상서령尙書令 이하가 두려워 떨면서 주휘에게 이르기를 “지금 견책이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병을 칭탁합니까?”注+림득견양臨得譴讓”은 견책이 이미 목전에 닥쳤음을 이른다. 하니, 주휘가 말하기를 “나이 80에 은혜를 입어서 기밀機密의 자리에 있게 되었으니, 마땅히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하여야 한다.
若心知不可而順旨靁同이면 負臣子之義라하고 遂閉口不復言注+靁, 古雷字. 雷之發聲, 衆物同應, 俗人無是非之心, 出言同者謂之雷同. 一說 “雷同, 雷聲相似, 有同無異也.”하다
만약 마음속으로 불가함을 알면서도 군주의 뜻에 순종하여 부화뇌동하면, 신자臣子의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입을 닫고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注+(우레)는 고자古字이다. 우레가 소리를 내면 여러 물건이 함께 응하니, 세속 사람 중에 시비를 분별하려는 마음이 없어서 다른 사람과 똑같은 말을 하는 자를 뇌동雷同이라 이른다. 일설에 “뇌동雷同은 우레 소리가 서로 유사하여 같음만 있고 다름이 없는 것이다.” 하였다.
諸尙書共劾奏暉한대 帝寢其事하고 詔直事郎問暉起居하고 太醫視疾하고 太官賜食하니 暉乃起謝注+直事郞, 謂署郞當次直者.하다
여러 상서尙書가 함께 주휘를 탄핵하여 아뢰자, 황제가 이 일을 중지시키고 조령詔令을 내려 직사랑直事郎은 주휘의 기거起居(안부)를 묻고 태의太醫는 병을 살펴보고 태관太官은 음식을 하사하게 하니, 주휘가 그제야 나와서 사례하였다.注+직사랑直事郞삼서三署으로 차례에 따라 당직하는 자를 이른다.
十一月 還宮하다
】 11월에 황제가 환궁하였다.
공희孔僖난대령사蘭臺令史로 삼았다.
魯國孔僖 涿郡崔駰 同遊太學注+駰, 音因.하여 相與論호되 武帝始崇聖道하시니 號勝文, 景이러니 及後恣己하여 忘其前善注+恣己, 言恣己之欲也.이라한대
노국魯國 사람 공희孔僖탁군涿郡 사람 최인崔駰이 함께 태학太學에서 유학하면서注+은 음이 이다. 더불어 논하기를 “무제武帝가 처음에는 성인聖人를 높이시니 문제文帝경제景帝보다도 낫다고 이름났었는데, 뒤에는 자기 마음대로 행하여 예전의 함을 잊었다.”注+자기恣己”는 멋대로 자신의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하였다.
隣房生 上書하여 告駰, 僖誹謗先帝하고 刺譏當世라하다
옆방에 있던 생도가 상서上書하여 최인과 공희가 선제先帝(무제武帝)를 비방하고 당세當世를 비난했다고 고발하였다.
事下有司한대 僖以書自訟曰 凡言誹謗者 謂實無此事而虛加誣之也
】 이 일을 유사有司에게 회부하자, 공희孔僖가 글로써 다음과 같이 스스로 하소연하였다. “무릇 비방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이러한 일이 없는데 헛되이 무함을 가하는 것입니다.
至如孝武皇帝하여는 政之美惡 顯在漢史하니 是爲直說書傳實事 非虛謗也注+傳, 柱戀切.니이다
효무황제孝武皇帝로 말하면 정사의 좋고 나쁨이 나라 사서史書에 드러나 있으니, 이는 다만 글로 쓴 서책에 있는 실제의 일을 말했을 뿐이지 헛된 비방이 아닙니다.注+(책)은 주련柱戀이다.
夫帝者 爲善爲惡 天下莫不知하나니 斯皆有以致之 不可以誅於人也注+誅, 責也.니이다
제왕은 선행을 하고 악행을 함에 천하가 알지 못함이 없으니, 이는 모두 제왕이 스스로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책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注+는 책망함이다.
陛下卽位以來 政敎未過하시고 德澤有加하시니 臣等 獨何譏刺哉注+政敎未過, 言政敎未有過失也.리잇가
폐하께서는 즉위하신 이래로 정사와 교화를 잘못하지 않으셨고 덕택이 백성들에게 가해졌으니, 들이 유독 어찌 비난하겠습니까.注+정교미과政敎未過”는 정사와 교화에 과실이 있지 않음을 말한다.
假使所非實是 則固應悛改 儻其不當이라도 亦宜含容이니 又何罪焉注+當, 丁浪切.이리잇가
가령 비난한 바가 참으로 옳다면 진실로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이고, 혹여 비난한 바가 적합하지 않다 하더라도 마땅히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데, 또 어찌 죄를 주십니까.注+(적합하다)은 정랑丁浪이다.
臣等受戮 死卽死耳어니와 顧天下之人 必回視易慮하여 以此事 闚陛下心하고
들은 죽임을 당함에 죽게 되면 죽을 뿐이지만, 천하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반드시 돌아보고 생각을 바꾸어서 이 일로 폐하의 마음을 엿보고,
自今以後 苟見不可之事라도 終莫復言者矣리이다 齊桓公 親揚其先君之惡하여 以唱管仲하니 然後 群臣 得盡其心注+國語 “魯莊公束縛管仲, 以與齊桓公, 公親迎於郊而與之坐, 問曰 ‘昔吾先君襄公, 築臺以爲高位, 田狩畢弋, 不聽國政, 卑聖侮士, 而唯女是崇, 九妃六嬪, 陳妾數百, 食必粱肉, 衣必文繡, 戎士凍餒. 是以國家不日引, 不月長, 恐宗廟不掃除, 社稷不血食, 敢問爲此若何.’ 管子對以致霸之術.”이어늘
지금 이후로는 폐하께서 불가한 일을 하심을 보더라도 끝내 다시 말하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나라 환공桓公은 친히 선군先君의 죄악을 드날려서 관중管仲을 창도하니, 그런 뒤에 신하들이 마음을 다하였습니다.注+국어國語≫에 “나라 장공莊公관중管仲을 포박하여 나라 환공桓公에게 넘기자, 환공이 친히 교외에서 맞이하여 그와 함께 앉고 묻기를 ‘옛날에 나의 선군先君양공襄公께서 를 쌓아 자신의 높은 자리를 만들고 짐승을 쫓아 에워싸서 잡고 그물을 던지고 주살질을 하면서 국정國政을 다스리지 않았소. 그리고 성인聖人을 얕보고 선비를 업신여기고 오직 여인들을 높여서, 9명의 와 6명의 에다가 나열된 이 수백 명이었소. 이 여인女人들은 반드시 좋은 음식을 먹었고 반드시 무늬를 수놓은 비단옷을 입었는데, 병사들은 헐벗어 추위에 떨고 굶주렸소. 이 때문에 국가의 형편이 나날이 펴지지 못하고 다달이 신장되지 못한 것이오. 내 종묘宗廟를 청소하지 못하고 사직社稷혈식血食을 올리지 못할까 염려되니, 감히 묻건대 이것을 다스리기를 어떻게 해야 하겠소?’ 하니, 관자管子패업霸業을 이룰 수 있는 방도를 가지고 대답했다.” 하였다.
今陛下乃欲爲十世之武帝하사 遠諱實事하시니 豈不與桓公異哉注+爲, 去聲. 此言十世, 不以赤劉之九爲數, 直以武ㆍ昭ㆍ宣ㆍ元ㆍ成ㆍ哀ㆍ平ㆍ光ㆍ明, 及帝爲數.잇가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를 위하여 실제의 일을 멀리 숨기려 하시니, 어찌 환공桓公과 다르지 않겠습니까.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여기서 말한 “십세十世”는 를 삼지 않고, 다만 무제武帝, 소제昭帝, 선제宣帝, 원제元帝, 성제成帝, 애제哀帝, 평제平帝, 광무제光武帝, 명제明帝와 황제(장제章帝)를 가지고 수를 센 것이다.
恐卒然蒙枉하여 不得自敍하여 使後世論者 擅以陛下有所比方하노니 寧可復使子孫追掩之乎잇가
은 갑자기 억울함을 당하여 제 뜻을 펴지 못해서 후세에 의논하는 자들이 멋대로 폐하를 가지고 비교하는 바가 있을까 두려우니, 어찌 다시 자손으로 하여금 지난날의 잘못을 가리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謹詣闕하여 伏待重誅하노이다 書奏 詔勿問하고 拜僖蘭臺令史注+百官志 “蘭臺令史, 六百石, 掌奏及印工文書.”하다
삼가 대궐에 나아와 엎드려서 중한 죄가 내리기를 기다립니다.” 글을 아뢰자, 황제가 명하여 죄를 묻지 말게 하고 공희를 난대령사蘭臺令史로 임명하였다.注+후한서後漢書≫ 〈백관지百官志〉에 “난대령사蘭臺令史육백석六百石이니, ” 하였다.
모의毛義정균鄭均에게 각각 곡식 1,000을 하사하였다.
廬江毛義 東平鄭均 皆以行義 稱於鄉里러니 南陽張奉 慕義名하여 往候之할새 坐定而府檄適至하여 以義守安陽令注+檄, 召書也. 安陽縣, 屬汝南郡. 義爲安陽尉, 府檄至. 令, 守令也.하니
여강廬江 사람 모의毛義동평東平 사람 정균鄭均이 모두 훌륭한 행실로 향리鄉里에서 칭송되었다. 남양南陽장봉張奉이 모의의 명성을 사모하여 가서 문안하였는데, 좌정하자 마침 모의를 수안양령守安陽令으로 제수하는 격문檄文이 도착하였다.注+은 부르는 글이다. 안양현安陽縣여남군汝南郡에 속하였다. 모의毛義안양위安陽尉로 있었는데, 격문檄文이 도착한 것이다. 수령守令이다.
義奉檄而入하여 喜動顔色이어늘 心賤之하여 辭去하다 義母死한대 徵辟 皆不至어늘
모의가 격문을 받들고 들어가면서 기쁜 기색이 얼굴에 가득하자, 장봉은 속으로 그를 천하게 여겨 인사하고 떠나왔다. 뒤에 모의의 어머니가 죽자, 모의가 나라에서 부르고 고을에서 불러도 모두 나아가지 않으니,
乃歎曰 賢者 固不可測이로다 往日之喜 乃爲親屈也라하니라
장봉은 마침내 탄식하기를 “현자賢者는 진실로 측량할 수가 없다. 지난번 그가 기뻐했던 것은 어머니를 위하여 지조를 굽힌 것이다.” 하였다.
均兄 爲縣吏하여 頗受禮遺어늘 諫不聽하니 乃脱身爲傭이러니 歲餘 得錢帛하여 歸以與兄曰
정균의 형(정중鄭中)이 의 관리가 되어서 로 주는 선물(뇌물)을 많이 받았다. 정균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자, 정균은 마침내 집에서 몸만 빠져나와 남의 머슴살이를 하였는데, 1년 남짓에 돈과 비단을 얻고 돌아와 형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物盡 可復得이어니와 爲吏坐臧이면 終身捐棄注+臧, 與贓同.니이다하니 感其言하여 遂爲廉潔하다
“물건이 다 떨어진 것은 다시 얻을 수 있지만, 관리가 되어 뇌물죄에 걸리면 종신토록 버려집니다.”注+(뇌물을 받다)은 과 같다. 하니, 형이 그 말에 감동하여 마침내 청렴하고 결백한 관리가 되었다.
仕爲尙書라가 免歸러니 帝下詔褒寵義, 均하고 賜米各千斛하고 常以八月 長吏問起居하고 加賜羊酒注+問遺賢良, 必以八月, 諸物老成, 故順其時氣, 助養育之也.하다
정균이 벼슬하여 상서尙書가 되었다가 면직하고 돌아갔다. 황제가 조서詔書를 내려서 모의와 정균을 표창하여 총애하고 각각 쌀 1,000을 하사하였으며, 8월이면 항상 장리長吏가 안부를 묻고 양과 술을 하사하였다.注+현량賢良에게 문안하고 선물을 보내는 것을 반드시 8월에 한 것은, 가을은 여러 물건이 성숙하고 풍성하기 때문에 철의 기운을 순히 하여 도와 기르게 한 것이다.
詔除妖惡禁錮者하다
조령詔令을 내려 요망한 말과 나쁜 말을 하여 금고禁錮된 자들의 죄를 면제해주었다.
詔曰 往者 妖言大獄 所及廣遠하여 一人犯罪 禁至三屬注+明帝時, 楚王英與顔忠等, 造圖書謀逆. 三屬, 卽三族也.하니 如有賢才라도 没齒無用이라
】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렸다. “지난번에 요망한 말로 인한 큰 옥사의 영향이 매우 넓고 크게 번져서 한 사람이 죄를 범함에 금법이 삼족三族까지 미치니注+명제明帝 때에 초왕 유영楚王 劉英안충顔忠 등과 도참圖讖에 관한 책을 날조하여 반역을 꾀하였다. “삼속三屬”은 바로 삼족三族이다., 만약 어질고 재주 있는 자가 있더라도 종신토록 등용되지 못한다.
朕甚憐之하노니 諸以前妖惡禁錮者 皆蠲除之하라
은 이것을 매우 가엾게 여기니, 이전에 요망한 말과 나쁜 말을 하여 금고禁錮된 자들을 모두 면제하라.”
역주
역주1 功次 : 功績의 크고 작음과 官階의 승급하는 순서를 가리킨다.
역주2 孟公綽이……것입니다 : 孟公綽은 魯나라 大夫이다. ≪論語≫ 〈憲問〉에 “孟公綽은 趙氏와 魏氏의 家老가 되기에는 충분하지만 滕나라와 薛나라의 大夫가 될 수는 없다.[孟公綽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滕薛大夫]”라고 한 孔子의 말씀이 보이는데, 이에 대한 朱子의 ≪集註≫에 “趙氏와 魏氏는 晉나라 卿의 집안이고 老는 家臣의 우두머리이다. 大家(큰 집안)는 권세가 중하나 諸侯의 일이 없고, 家老는 명망이 높으나 관직을 맡는 책임이 없다. 優는 有餘함이다. 滕과 薛은 두 나라의 이름이고 大夫는 國政을 맡은 자이다. 滕과 薛은 나라가 작으나 정사가 번거롭고 大夫는 지위가 높고 책임이 중하니, 그렇다면 公綽은 아마도 청렴하고 고요하고 욕심이 적으나 재능에 부족한 자인 듯하다.[趙魏 晉卿之家 老 家臣之長 大家 勢重而無諸侯之事 家老 望尊而無官守之責 優 有餘也 滕薛 二國名 大夫 任國政者 滕薛 國小政繁 大夫 位高責重 然則公綽 蓋廉靜寡欲而短於才者也]”라고 설명하였다.
역주3 嗇夫가……功 : ‘嗇夫’는 漢나라 때에 小吏의 명칭이다. 謁者僕射 張釋之가 文帝를 수행하여 上林苑에 있는 虎圈(범을 기르는 우리)을 둘러보았는데, 文帝가 책임자인 上林尉에게 짐승들의 숫자가 적힌 장부를 묻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때 虎圈의 嗇夫가 나서서 매우 자세히 대답하니, 文帝는 장석지에게 명하여 그를 上林令에 임명하도록 하였다. 이에 장석지가 “絳侯(周勃)와 東陽侯(張相如)는 長者라고 알려졌으나 두 사람이 일을 말할 때에 일찍이 입에서 말을 제대로 내지 못했으니, 어찌 이 색부의 재잘거리는 言辯으로 민첩하게 대답함을 본받겠습니까.……이제 폐하께서 색부가 口辯이 있다 하여 등급을 뛰어넘어 승진시키신다면 천하가 바람을 따라 쏠리듯 다투어 口辯을 일삼아서 그 실제가 없을까 두렵습니다.”라고 아뢰자, 결국 문제는 색부를 상림령으로 임명하지 않았다.(≪資治通鑑≫ 권14 漢 文帝) ‘絳侯’는 漢나라의 개국공신 周勃의 봉호이며, ‘木訥’은 周勃의 爲人을 평가한 말이다. 呂后가 高祖의 사후에 相國으로서 적합한 자들을 물었을 때에 고조가 “周勃이 후중하고 文雅가 적으나 우리 劉氏를 편안히 할 자는 주발이니, 그를 太尉로 삼을 만하다.[周勃重厚少文 然安劉氏者必勃也 可令爲太尉]”라고 하였다.(≪資治通鑑≫ 권12 漢 高祖)
역주4 詔禁治獄慘酷者 : “景帝의 시절에 ‘詔令을 내려 옥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되도록 너그러움을 우선하게 하였다.’라고 썼었는데, 이때에 다시 보인다. 그러나 황제의 寛厚長者다운 면모는 또 景帝보다 크게 뛰어난 점이 있다.[景帝之世 書詔治獄者務先寛 於是再見 然帝之寛厚長者 又有大過於景帝者矣]” ≪書法≫
역주5 榜과 笞 : ‘榜’은 ‘搒’으로도 적는바, 杖이나 채찍으로 때리는 것이고, ‘笞’는 가시나무나 대나무로 만든 형구로 둔부나 대퇴부, 혹은 등을 때리는 것이다.
역주6 한……하였다 : 이 부분은 글 뜻이 자세하지 않은바, 우선 이렇게 번역하였음을 밝혀둔다.
역주7 詔令에는……있다 : ‘令’은 바로 황제의 詔令이다. ≪漢書≫ 顏師古의 注에 인용된 文穎의 설에 “천자가 詔勅을 내려 가감한 것으로서 律에 실려 있지 않는 것을 ‘令’이라 한다.[天子詔所增損 不在律上者爲令]”라고 하였다. 令甲, 令乙, 令丙은 詔令에 세 종류가 있는 것으로, 令甲은 조령의 첫 번째 편, 令乙은 조령의 두 번째 편, 令丙은 조령의 세 번째 편이다. ‘令은 천자가 詔勅을 내려 가감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受敎輯錄≫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受敎輯錄≫은 ≪經國大典≫이나 ≪大明律直解≫에 실려 있지 않은 것들을 그때그때 왕의 敎示를 받아 처리하고 이것을 모아놓은 條例集이다.
역주8 景帝가……만들었다 : 箠는 대나무로 만든 장방형의 刑具로, 笞刑을 가할 때에 사용하였다. 笞刑은 본래 가벼운 형벌이었는데, 뒤에는 重罪에 대한 처벌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행해졌다. 景帝는 이를 문제로 여겨 卽位 元年(B.C.156)에 笞刑의 횟수를 줄이도록 명하였고, 中6년(B.C.144)에는 箠의 길이와 두께를 통일하여 태형을 받은 자들이 비로소 몸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漢書≫ 권23 〈刑法志〉)
역주9 (文)[丈] : 저본에는 ‘文’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丈’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柱)[拄] : 저본에는 ‘柱’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拄’로 바로잡았다.
역주11 (守)[遂] : 저본에는 ‘守’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遂’로 바로잡았다.
역주12 (史)[吏] : 저본에는 ‘史’로 되어 있으나, ≪東觀漢記≫ 및 ≪後漢書≫ 註에 의거하여 ‘吏’로 바로잡았다.
역주13 以孔僖爲蘭臺令史 : “일개 令史일 뿐인데, 어찌하여 썼는가. 그 어짊을 기록한 것이다.[一令史耳 何以書 錄賢也]다” ≪書法≫
역주14 10世……武帝 : 원문의 ‘十世’는 王統을 기준으로 셈한 것으로, 前漢의 廢帝 劉賀와 孺子 劉嬰을 제외하면 武帝 劉徹로부터 後漢의 章帝 劉炟까지 총 10명의 황제가 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章帝는 前漢 景帝의 여섯 번째 아들인 長沙定王 劉發의 仍孫(8世孫)이고, 劉發은 武帝의 이복형인바, 실제로 武帝는 章帝에게 있어서 7代祖의 항렬이 된다.
역주15 赤劉의 九世 : 원문의 ‘赤劉’는 바로 漢나라를 가리킨다. 옛적에 讖緯家들은 漢나라가 火德으로 천하를 다스린다고 여겼는바, 漢나라의 姓은 劉氏이고 火는 赤色이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赤劉의 九世’는 일종의 讖緯說로, 漢나라의 아홉 번째 황제는 泰山에 가서 封禪을 지내고 天命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建武 32년(56) 정월에 光武帝가 齋戒하고 밤중에 ≪河圖會昌符≫라는 緯書를 읽었는데, 이 가운데에 “赤劉의 아홉 번째 황제는 마땅히 태산에서 천명을 받아야 하니, 삼가 능히 따르지 못한다면 대업을 계승함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진실로 이를 잘 따른다면 간사함과 거짓이 싹트지 못할 것이다.[赤劉之九 會命岱宗 不愼克用 何益於承 誠善用之 姦僞不萌]”라고 한 구절에 느낀 바가 있어서 梁松 등에게 명하여 河圖와 洛書에 관한 讖文으로서 ‘九世封禪’에 관한 일이 기록되어 있는 것들을 자세히 조사해 보고하게 하였다. 이에 양송 등이 조목조목 상세하게 열거하여 上奏하자 광무제가 封禪을 행하고 이해를 建武中元 원년으로 바꾸었는바, 본서 26쪽과 ≪後漢書≫ 권17 〈祭祀志〉 封禪에 보인다.
역주16 아뢰는……관장하였다 : 일본 ≪全譯 後漢書≫(汲古書院)에는 “上奏文과 문서를 封印하여 작성한 것을 관장한다.”고 번역하였다. ≪後漢書≫ 권77의 주석에 “印主文書”라고도 되어 있다.
역주17 賜毛義鄭均穀各千斛 : “선한 자에게 상을 줌을 가상히 여긴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곡식을 준 것을 쓴 것이 두 번이니, 모두 찬미한 것이다. 백성들에게 곡식을 하사한 것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嘉賞善也 終綱目書賜穀二 皆美也 賜民穀 不與焉]다” ≪書法≫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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