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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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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戌年(B.C. 83)
무술년(B.C. 83)
四年이라
[綱] 나라 효소황제孝昭皇帝 시원始元 4년이다.
봄 3월에 첩여倢伃 상관씨上官氏황후皇后로 세우고 사면赦免하였다.
霍光 與上官桀 相親善하여 每休沐出 常代入決事注+休沐, 言休息以洗沐也. 書記所稱曰歸休ㆍ休息ㆍ休澣, 皆假也. 漢制, 中朝官五日一下里舍休沐, 三署諸郞亦然.하니라
[目] 처음에 곽광霍光상관걸上官桀과 서로 친선親善하여, 매번 휴목休沐(휴가)을 나갈 때마다 상관걸이 곽광을 대신하여 들어와 일을 처리하였다.注+휴목休沐”은 휴식하면서 몸을 씻고 머리를 감음을 말한다. 서기書記(옛 기록)에 귀휴歸休, 휴식休息, 휴한休澣이라고 칭한 것은 모두 휴가를 말한 것이다. 나라 제도에, 중조中朝의 관리는 5일에 한 번 자신의 마을 집으로 내려가서 휴목休沐을 하니, 삼서三署의 여러 낭관郞官들도 또한 그러하였다.
光女爲桀子安妻하여 生女
곽광의 딸이 상관걸의 아들인 상관안上官安의 아내가 되어서 딸을 낳았다.
年甫五歲 欲因光內之宮中이어늘 光以爲尙幼라하여 不聴하다
딸의 나이 겨우 다섯 살에, 상관안은 곽광을 통하여 딸을 궁중으로 들여보내고자 하였으나, 곽광은 아직 어리다 하여 따르지 않았다.
蓋長公主 私近子客丁外人注+蓋, 如字, 又音閤. 地理志 “蓋縣, 屬泰山郡.” 公主, 卽卾邑長公主也, 爲蓋侯王充所尙, 故曰蓋長公主. 私近, 謂私竊昵近之也. 子客者, 子之賓客也. 丁, 姓. 外人, 名也.이러니 說外人曰 安子容貌端正하니 誠因長主하여 時得入爲后注+時得入, 以時得入.하면 以臣父子在朝而有椒房之重注+椒房, 殿名, 在未央宮, 皇后所居. 以椒和泥塗壁, 取其溫煖而芳, 辟除惡氛. 一說 “取繁衍多子之義.”이라
개장공주蓋長公主는 아들의 빈객인 정외인과 은밀히 친하였는데,注+는 본음대로 읽는데, 또 으로도 읽는다. 《지리지地理志》에 “개현蓋縣태산군泰山郡에 속하였다.” 하였다. 공주公主는 바로 악읍卾邑 장공주長公主이니, 개후蓋侯왕충王充에게 시집갔으므로 개장공주蓋長公主라 한 것이다. “사근私近”은 은밀히 친근함을 이른다. “자객子客”은 자식의 빈객이다. 이고, 외인外人은 이름이다. 상관안이 정외인丁外人을 설득하기를 “나의 딸이 용모가 단정하니, 만일 기회를 보아 장공주長公主를 통해 에 들어가 황후皇后가 되면,注+시득입時得入”은 때를 보아 들여보내는 것이다.부자父子가 조정에 있으면서 초방椒房의 존귀함이 있게 되는 것이다.注+초방椒房”은 궁전의 이름으로 미앙궁未央宮에 있었으니, 황후皇后가 거처하는 곳이다. 천초川椒를 진흙과 섞어 벽에 바르니, 이는 따뜻하고 향기로워서 나쁜 냄새를 제거하는 뜻을 취한 것이다. 일설에 “천초川椒는 번성하니, 자식을 많이 두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 하였다.
漢家故事 常以列侯尙主하니 足下何憂不封侯乎리오
나라의 고사故事에 항상 열후列矦공주公主에게 장가들게 하였으니, 그대가 어찌 에 봉해지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하였다.
外人 言於長主한대 以爲然하여 召安女入爲倢伃라가 遂立爲后하니라
정외인이 장공주에게 말하자, 장공주는 그의 말을 옳게 여기고 상관안의 딸을 불러들여 첩여倢伃로 삼았다가 마침내 황후皇后로 세웠다.
令民勿出馬하다
[綱] 가을에 백성들로 하여금 말을 공출供出하지 말게 하였다.
詔曰
[目] 조령詔令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
比歲不登하여 流庸未還注+庸, 與傭同. 流庸, 謂流移他處及傭作於人者.이라
“근래 해마다 곡식이 여물지 않아서 유리流離하는 자와 품팔이하는 자가 아직 돌아오지 못하였다.注+(품팔이)은 과 같으니, “유용流庸”은 다른 곳에 유리流離하는 자와 남에게서 품팔이하는 자를 이른다.
往時 令民出馬러니 其止勿出하고 諸給中都官者 減之하라
지난번에 백성들로 하여금 말을 공출하게 하였는데, 이를 중지하여 공출하지 말게 하고 중도관中都官에 공급하는 것을 줄이라.”
西南夷復反이어늘 遣兵擊之하다
[綱] 서남이西南夷가 다시 배반하였으므로 군대를 파견하여 공격하게 하였다.
◑ 以上官安으로 爲車騎將軍하다
[綱] 상관안上官安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삼았다.
역주
역주1 立倢伃……赦 : “이때에 황제의 나이가 12살이었고, 황후의 나이는 막 5살이었으니, 어린 황후를 세운 것이 이때보다 더 심한 적이 있지 않았다. 이는 上官桀이 사욕을 부린 것인데, 또한 너무 일찍 계책을 세운 것이다.[於是帝年十二 而后方五歲 立后之幼 未有甚於此者 桀私也 亦大早計矣哉]” 《書法》
“昭帝가 이때 春秋가 12세였고, 上官氏 또한 겨우 5세였는데, 갑자기 中宮殿에 正室로 자리하였으니, 이는 霍光이 배우지 못한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資治通鑑綱目》에서 이것을 쓸 적에 글에는 폄하한 말이 없으나 의리는 폄하한 뜻이 이 가운데 들어 있다.[昭帝是年春秋十二 而上官氏亦始五歲 遽乃正位中宮 此則霍光不學之故爾 綱目書此 文無貶詞 而義則在其中矣]” 《發明》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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