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상上은 평소
왕길王吉과
공우貢禹가 모두
경학經學에 밝고 행실이 깨끗하다는 말을 듣고는
사자使者를 보내어 불렀는데,
注+공貢은 성姓이다. 왕길은 도중에 병들어 죽었고 공우는 오자
간대부諫大夫로 임명하고 정사를 물었다.
“옛날에 훌륭한 임금들은 근검절약하여 10분의 1의 세금만 받고 다른 부역賦役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였습니다.
고조高祖와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는 궁녀宮女가 10여 명에 불과하였고, 마구간의 말이 겨우 100여 필匹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제齊나라의
삼복三服의 관서에서 물건을 황궁에 바치는 것이 열 상자에 불과하였는데,
注+제齊나라에 옛날 삼복三服의 관서가 있어서 천자天子의 의복衣服을 만드는 것을 주관하여, 봄에는 관冠과 책幘과 족두리를 바쳐 수복首服을 만들고, 비단과 흰 명주로 겨울옷을 만들고, 가벼운 깁으로 여름옷을 만들어서 모두 세 상자였다. 사笥는 선사先嗣의 절切이니 옷을 담는 대그릇이다. 쇄縰는 사纚와 같으며 산이山爾의 절切이니 바로 방목사方目紗이다. 지금은 일하는
공인工人 수천 명이 해마다
거만鉅萬을 허비하고, 마구간에 곡식을 먹는 말이 거의 10,000
필匹에 이릅니다.
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지금 제齊나라의 삼복三服의 관청에는 일하는 공인이 각각 수천 명이다.”라고 되어 있다.
무제武帝는 아름다운 여자를 많이 취하여 수천 명에 이르러서
후궁後宮을 가득 채웠는데,
注+치塡(두다)는 치寘로 읽는다. 세상을 버리게 되자
능陵에
금전金錢과
재물財物을 많이 묻었고, 또
후궁後宮의 여자를
원릉園陵에 두어서
천하天下의 사람들로 하여금 교화를 받들게 하여
여인女人을 취함이 과도하니, 안에는 원망하는 여자가 많고 밖에는 홀아비가 많았습니다.
注+한漢나라 제도에 천자天子가 승하하면 후궁後宮들이 황제를 장송葬送하고 인하여 능침陵寢에 남아 죽은 황제를 받들었다. 취取(장가들다)는 취娶로 읽는다. 광曠은 비었다는 뜻이니, 실가室家가 비는 것이다.
그리고 서민들이
매장埋葬할 적에 모두
지상地上을 비워서
지하地下를 채우니, 그 잘못은 위(
천자天子)로부터 생겼습니다.
注+자自는 부터라는 뜻이다. 상上은 천자天子를 이른다.
바라건대 폐하陛下께서는 옛날의 도道를 깊이 살피셔서 검소한 것을 따르소서.
하늘이 성인을 냄은 만민을 위한 것이니, 성인만 홀로 즐기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目
[目] 사마공司馬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충신이 군주를 섬길 적에 군주가 하기 어려운 일을 책責하면 쉬운 것은 수고롭지 않아도 바루어지고, 군주의 부족한 바를 보조하면 뛰어난 것은 권면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효원황제孝元皇帝는 성품이 우유부단하여 참소하는 자와 말 잘하는 자가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 당시의 큰 병통이었는데, 공우貢禹는 이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손과 근검과 절약은 효원황제의 평소 뜻이었는데, 공우가 부지런히 이것을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만일 공우의 지혜가 이것을 알지 못했다면 어찌 어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알고도 말하지 않았다면 죄가 더욱 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