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楊駿은 자신이 평소 아름다운 명망이 없음을 알고는 封邑과 爵位를 두루 올려주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자 하였다.
將軍 傅祇가 그에게 이르기를
注+傅祇는 傅嘏의 아들이다. “
帝王이 처음
崩하였을 때 신하가
功을 논한 적은 있지 않습니다.” 하였으나, 양준은 따르지 않았다.
詔令을 내려
中外의 여러 신하들에게 지위를 올려주고 작위를 차등 있게 하사하였으며,
租와
調를 1년 동안 면제하였다.
注+復은 면제함이다. 調(戶稅)는 徒弔의 切이다. ≪唐書≫의 註에 “田地가 있으면 조세가 있으니 조세는 곡식을 내는 것이고, 家戶가 있으면 調가 있으니 調는 비단, 솜, 삼베, 삼을 내는 것이다.” 하였다.
散騎侍郞 何攀이 아뢰기를 “황제께서는 東宮의 지위에 오른 지 20여 년 만에 이제 大業을 이으셨는데, 상을 나누어주고 관작을 내린 것이 革命한 초기보다 더하여 輕重이 맞지 않습니다.
또 우리 大晉이 무궁한 후세에 이어질 것이니 〈지금 만든〉 制度를 마땅히 후세에 남겨야 하는데, 만약 관작이 있는 자를 반드시 승진시킨다면 몇 대 뒤에는 公侯 아닌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目
[目] 당초에 和嶠가 일찍이 武帝에게 말하기를 “태자가 순후하고 예스러운 풍모가 있는데 말세에는 거짓이 많으니, 폐하의 왕업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하였다.
뒤에
荀勗이 함께 무제를 모시고 있었는데, 무제가 말하기를 “태자가 근간에 많이 진전되었으니,
卿이 함께 가보라.”
注+“近進”은 근래에 진전됨이 있음을 이른다. 하였다.
순욱 등이 돌아와서 태자가 밝은 식견과 고아한 태도가 있다고 칭찬하였으나, 화교는 말하기를 “태자의 聖스러운 자질이 처음과 같습니다.” 하니, 무제가 기뻐하지 않고 일어났다.
이때 화교가 司馬遹을 따라 조회하자, 賈后가 황제로 하여금 묻게 하기를 “卿이 예전에 내가 왕업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는데, 지금은 참으로 어떤가?” 하니,
화교가 대답하기를 “신이 옛날 先帝를 섬길 적에 일찍이 이러한 말씀을 올렸는데, 이 말이 맞지 않음은 국가의 복입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