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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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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戌年(B.C. 23)
二年이라
夏四月 以王音爲御史大夫하다
於是 王氏愈盛하여 郡國守相刺史 皆出其門注+言爲其家寮屬者, 皆得大官.하고 五侯群弟 爭爲奢侈注+五侯無群弟, 疑群字當作兄. 하여 賂遺珍寶 四面而至러라
皆通敏人事하고 好士養賢하여 傾財施予하여 以相高尙하니 賓客 競爲之聲譽注+施, 去聲. 予, 讀曰與.
劉向 謂陳湯曰
今災異如此어늘 而外家日盛하니 其漸 必危劉氏
吾幸得以同姓末屬으로 累世蒙漢厚恩하여 身爲宗室遺老하여 歷事三主注+三主, 宣‧元‧成.
上以我先帝舊臣이라하여 每進見 常加優禮하시니 吾而不言이면 孰當言者리오
遂上封事하여 極諫曰
臣聞人君 莫不欲安이나 然而常危하고 莫不欲存이나 然而常亡 失御臣之術也라하니이다
夫大臣 操權柄하고 持國政이면 未有不爲害者也
今王氏一姓 乘朱輪華轂者 二十三人이요 大將軍 秉事用權하고 五侯驕奢僭盛하여 竝作威福하여 擊斷自恣하여 行汚而寄治하고 身私而託公注+行, 去聲. 言內爲汚私之行而外則寄託治公之道也.하며 依東宮之尊하고 假甥舅之親하여 以爲威重注+依, 上聲, 恃也. 東宮, 太后所居也.이라
尙書, 九卿, 州牧, 郡守 皆出其門하여 筦執樞機하고 朋黨比周注+筦, 與管同.
稱譽者登進하고 忤恨者誅傷하며 游談者助之說하고 執政者爲之言注+爲, 去聲.하여 排擯宗室하고 孤弱公族하며 其有智能者 尤非毁而不進하여 不令得給事朝省하여 恐其與己分權이니이다
數稱燕王蓋主以疑上心注+數, 音朔. 燕王與蓋主謀反, 數稱燕蓋, 以示宗室親近而反逆也.하고 避諱呂霍而弗肯稱注+呂后‧霍后二家, 皆坐僭擅誅滅, 故爲王氏諱而不言也.하여 內有管蔡之萌하고 外假周公之論하여 兄弟據重하고 宗族磐互하니 外戚僭貴 未有如王氏者也注+據, 專也. 重, 謂威重. 磐, 通作盤.니이다
物盛이면 必有非常之變 先見하여 爲其人微象注+言伏於微而著於象也. 陳濟曰 “先見, 屬上文爲句. 爲, 如字. 言凡物之盛, 必有非常之變, 豫先著見, 以爲其人之微象也.”하나니 王氏先祖墳墓在濟南者 其梓柱生枝葉하여 扶疎上出屋하고 根垂地中注+王氏, 本濟南東平陵人, 武帝時, 王賀乃徙居魏郡元城. 梓, 音子, 楸也. 柱, 楹也. 扶踈, 枝葉盛也. 臿, 測洽切. 剌入也. 一說 “字書, 測洽之臿從干從臼, 與今臿字不同. 劉向傳, 作根垂地中, 意臿卽垂字也.”하니
事勢不兩大 王氏與劉氏 亦且不竝立이니
如下有泰山之安이면 則上有累卵之危니이다
陛下爲人子孫하여 守持宗廟로되 而令國祚移於外親하여 降爲皁隷注+皁隷, 卑賤之人也.하면 縱不爲身이나 奈宗廟何注+爲, 去聲.잇고
婦人 內夫家而外父母家하나니 此亦非皇太后之福也注+內, 猶親也, 而皇太后反外夫家也.니이다
宜發明詔하사 援近宗室하고 黜遠外戚注+援, 音爰, 引也. 近, 去聲, 謂升引而附近之也. 遠, 于萬切. 謂疏而離之也.하여 王氏永存하여 保其爵祿하고 劉氏長安하여 不失社稷이니 所以褒睦外內之姓하여 子子孫孫無疆之計也니이다
如不行此策하시면 田氏復見於今이요 六卿必起於漢하여 爲後嗣憂 昭昭甚明하니 唯陛下 深留聖思하소서
書奏 天子召見向하고 歎息悲傷其意하여 曰 君且休矣어다
吾將思之호리라
이나 終不能用其言하니라
關東大水하다
◑ 定陶王康하다
諡曰恭이라하다
徙信都王興하여 爲中山王하다


무술년(B.C. 23)
[綱] 나라 효성황제孝成皇帝 양삭陽朔 2년이다.
여름 4월에 왕음王音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았다.
[目] 이때에 왕씨王氏가 더욱 번성하여 군국郡國, 자사刺史가 모두 왕씨王氏 가문에서 나왔고,注+〈“개출기문皆出其門”은〉 왕씨王氏 집안의 요속寮屬이 된 자가 모두 높은 관직을 얻었다는 말이다.오후五侯의 형제들이 다투어 사치한 짓을 하여注+오후五侯는 여러 아우가 없으니, 의심컨대 자는 마땅히 ‘’자가 되어야 할 듯하다. 각지에서 뇌물로 바치는 귀중한 보물이 사방에서 이르렀다.
이들은 모두 인사人事에 통달하였으며 선비를 좋아하고 현자를 길러서 많은 재물을 흩어주어 서로 높이고 숭상하니, 빈객賓客이 다투어 이들을 위하여 칭찬하였다.注+(베풀다)는 거성去聲이다. (주다)는 로 읽는다.
[目] 유향劉向진탕陳湯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재이災異가 이와 같은데 외척이 날로 번성하니, 그 조짐이 반드시 유씨劉氏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내 다행히 동성同姓의 먼 친족으로 여러 동안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서 몸이 종실宗室유로遺老가 되어 세 군주를 차례로 섬겼다.注+삼주三主”는 선제宣帝원제元帝성제成帝이다.
은 내가 선제先帝구신舊臣이라 하여 매양 나아가 뵐 때마다 항상 우대하는 를 가하시니, 내가 만일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마땅히 말하겠는가?”
[目] 마침내 봉사封事를 올려 다음과 같이 극간極諫하였다.
이 듣건대 인군人君이 편안하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으나 그런데도 항상 위태롭고, 보존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으나 그런데도 항상 망함은 신하를 통제하는 방법을 잃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대신大臣권병權柄을 잡고 국정國政을 마음대로 집행하면 폐해가 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 왕씨王氏이 붉은 수레와 화려한 수레를 탄 자가 23명이요, 대장군大將軍왕봉王鳳이 권력을 잡아 용사用事를 하고, 오후五侯가 교만하고 사치하며 참람하고 강성하여 위엄과 을 함께 일으켜서 마음대로 결단하고 스스로 방자하여, 행실이 더러우면서도 공정한 다스림에 의탁하고 몸이 사사로우면서도 공정함에 칭탁하며,注+(행실)은 거성去聲이니, 〈“행오이기치行汚而寄治 신사이탁공身私而託公”은〉 안으로는 더럽고 사사로운 행실을 하면서 밖으로는 공사公事를 처리하는 법도에 의탁하는 것이다. 위엄과 장중함으로 삼고 있습니다.注+상성上聲이니 믿음이란 뜻이다. 동궁東宮태후太后가 거처하는 곳이다.
상서尙書구경九卿, 주목州牧군수郡守가 모두 그 가문에서 나와서 중요한 부서를 관리하고 붕당을 지어 서로 친합니다.注+과 같다.
이들을 칭찬하는 자는 등용되고, 이들을 거슬리고 원망하는 자는 주벌을 당하며, 유세하는 자들이 도와주어 말하고 집정자執政者가 그들을 위해 말해서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종실宗室을 물리치고 공족公族(황족皇族)을 외롭고 약하게 하며, 그중에도 지모와 재능이 있는 자는 더더욱 비방하고 훼방하여 등용되지 못하게 하고 조정에서 일을 집행하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자기(왕씨王氏)와 권력을 나누게 될까 염려합니다.
[目] 연왕燕王개장공주蓋長公主를 자주 칭하여 의 마음을 의심하게 하고,注+은 음이 이다. 연왕燕王개장공주蓋長公主가 모반하였으니, 연왕과 개장공주를 자주 칭함은 종실宗室의 가까운 친척인데도 도리어 반역함을 보인 것이다.注+여후呂后곽후霍后 두 집안이 모두 참람하여 멋대로 행동하다가 죄에 걸려 주벌을 당하고 멸망하였으므로, 왕씨王氏를 위하여 이들을 기휘忌諱하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안으로는 형제가 중요한 자리를 독차지하고 종족들이 서로 얽혀 있으니, 외척으로 참람하게 귀한 자가 왕씨王氏 같은 자가 있지 않았습니다.注+는 오로지 독차지한다는 뜻이다. 은 중한 위엄을 이른다. 과 통한다.
물건이 지나치게 성하면 반드시 비상한 변고가 먼저 나타나서 그 사람의 은미한 징조[]가 되니,注+〈“위기인미상爲其人微象”은〉 은미함에 숨어 있는 에 드러난다는 말이다. 진제陳濟가 말하였다. “선견先見은 윗글에 속하여 가 된다. (하다)는 본음本音으로 읽는다. 모든 물건이 성하면 반드시 비상한 변고가 있어서 미리 먼저 나타나니, 이는 그 사람의 은미한 이 됨을 말한 것이다.”제남濟南에 있는 왕씨王氏 선조先祖들의 묘소에 있는 재실의 가래나무 기둥에서 가지와 잎이 나와 무성하여 지붕 위로 솟아나고 뿌리가 땅속에 드리워 있습니다.注+왕씨王氏는 본래 제남濟南의 동쪽 평릉平陵 사람이었는데, 무제武帝 때에 왕하王賀가 비로소 위군魏郡원성元城으로 옮겨 이주하였다. 는 음이 이니, 가래나무이다. 는 기둥이다. “부소扶疎”는 가지와 잎이 무성한 것이다. 측흡測洽이니, 뚫고 들어가는 것이다. 일설에 “자서字書측흡測洽을 따르고 를 따라서 지금의 자와 같지 않다. 《한서漢書》 〈유향전劉向傳〉에는 ‘근수지중根垂地中’으로 되어 있으니, 짐작컨대 은 바로 자일 것이다.” 하였다.
사세事勢는 양쪽에 모두 클 수는 없으니, 왕씨王氏유씨劉氏 또한 장차 병립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래에 태산泰山의 편안함이 있으면 위에 누란累卵의 위험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폐하陛下께서 자손子孫이 되어 종묘宗廟를 지키셔야 하는데 국통[국조國祚]으로 하여금 외친外親(외척外戚)으로 옮겨지게 하여 미천한 신분으로 강등한다면,注+조례皁隷”는 비천한 사람이다. 폐하께서 비록 자신을 위하지는 않더라도 종묘宗廟를 어찌하겠습니까.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부인婦人은 남편의 집을 안으로 삼고 친정 부모의 집안을 밖으로 삼으니, 이는 또한 황태후皇太后이 아닙니다.注+과 같으니, 황태후皇太后가 도리어 남편의 집안을 밖으로 여기는 것이다.
[目] 마땅히 분명한 조칙을 내려서 종실宗室을 등용하여 가까이하고 외척外戚을 물리쳐 멀리해서,注+은 음이 이니 인도한다는 뜻이다. 거성去聲이다. 〈“원근援近”은〉 올려 이끌어서 붙여 가까이함을 이른다. 우만于萬이다. 〈“출원黜遠”은〉 멀리하여 떠나게 함을 이른다.왕씨王氏가 영원히 보존되어 그 관작과 녹봉을 보존하고 유씨劉氏가 길이 편안하여 종묘와 사직을 잃지 않게 하여야 하니, 이것은 외가外家내가內家의 자손들을 표창하고 화목하게 해서 자자손손 다함이 없게 하는 계책입니다.
만일 이 계책을 행하지 않으신다면 후사後嗣의 우환이 됨이 불을 보듯 매우 분명할 것이니, 부디 폐하께서는 깊이 성스러운 생각을 유념하소서.”
이 글을 아뢰자, 천자天子유향劉向을 불러 보고 탄식하며 그 뜻을 서글퍼하여 말하기를 “은 우선 쉬어라.
내 장차 생각하겠다.” 하였다.
그러나 끝내 그 말을 받아들이지는 못하였다.
[綱] 가을에 관동關東 지방에 큰 홍수가 났다.
[綱] 정도왕定陶王 유강劉康하였다.
[目] 시호는 이다.
[綱] 신도왕信都王 유흥劉興봉지封地를 옮겨 중산왕中山王으로 삼았다.


역주
역주1 東宮의……빌려서 : 여기의 東宮은 世子宮이 아니고 東朝를 말한 것으로 元帝의 后妃인 王太后를 가리키며, 舅甥 간은 王鳳 등이 成帝의 외숙이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2 呂氏와……않아서 : 呂氏는 高祖의 后妃인 呂太后의 족속이고 霍氏는 昭帝의 后妃의 족속으로 이들은 모두 외척으로서 권력을 잡고 帝位를 찬탈하려 하였는바, 신하들이 외척인 이들을 말하지 아니하여 결국 황제로 하여금 외척을 의심하지 않게 한 것이다.
역주3 管叔과……빌려서 : 管叔과 蔡叔, 周公은 모두 武王의 아우이고 成王의 숙부이다. 주공은 武王을 도와 殷나라를 정벌한 다음 紂王의 아들 武庚을 殷나라에 봉하여 成湯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관숙과 채숙으로 하여금 殷나라를 감시하게 하였다. 그러다가 武王이 죽고 어린 成王이 즉위하여 주공이 섭정을 하자, 관숙과 채숙은 주공이 장차 어린 성왕을 해치고 천자가 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무경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성왕의 토벌을 받고 평정되었다. 이는 곧 王氏가 관숙과 채숙처럼 반란할 싹이 있으면서도 겉으로 주공처럼 국가를 위해 충성한다는 의논을 빌림을 말한 것이다.
역주4 田氏가……일어나서 : 田氏는 春秋시대 陳完을 이른다. 陳나라의 公子인 完이 齊나라로 망명하여 景公에게 중용되고 집안이 강성해졌는데, 뒤에 田氏로 바꾸었다. 이들은 자손이 점점 번성하여 田和 때에 제후왕의 지위를 찬탈하고 齊나라를 차지하였다. 六卿은 춘추시대 晉나라 六卿의 집안으로 范氏ㆍ中行氏ㆍ智氏ㆍ韓氏ㆍ魏氏ㆍ趙氏이고, 이들은 晉나라에서 대대로 벼슬하여 六卿이 되었는데, 뒤에 智氏ㆍ趙氏 등이 范氏와 中行氏 가문을 멸망하였고, 韓氏ㆍ魏氏ㆍ趙氏가 다시 智氏를 멸망한 다음 戰國시대 초기 晉나라 땅을 셋으로 나누어 韓ㆍ魏ㆍ趙 세 나라가 되었다.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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