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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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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未年(B.C. 338)
三十一年이라
秦伯하다
秦人 誅衛鞅하고 滅其家하다
孝公하고 太子立하니 是爲惠文王注+惠文王, 名駟.이라
公子虔之徒告商君欲反한대 發吏捕之하니
商君 出亡하야 欲止客舍한대 舍人 曰 商君之法 舍人無驗者 坐之라하니 商君 嘆曰 爲法之弊一至此哉인저
去之魏注+下之, 往也.하니 魏人 不受하고 之秦注+怨其挾詐以破魏師, 故不受. 內, 讀曰納.한대
秦人 攻殺之하야 車裂以徇하고 盡滅其家注+徇, 行示也. 使人將行徧示衆士以爲戒.하다
商君 用法嚴酷하야 步過六尺者有罰하고 棄灰於道者被刑하니
嘗臨渭論囚 渭水盡赤이라
爲相十年 人多怨之注+水經 “渭水出隴西郡首陽縣鳥鼠山, 東流至秦都咸陽南.” 決罪曰論.러라
嘗問趙良曰 我治秦 孰與五羖大夫賢注+羖, 音古, 牡羊也. 百里奚, 自賣以五羖羊之皮, 爲人養牛. 秦穆公擧以爲相, 秦人謂之五羖大夫. 曰 千人之諾諾 不如一士之諤諤注+諾, 應聲也. 諤, 五各切, 直言也.이니
請終日正言而無誅可乎인저 商君 曰 諾
曰 五羖大夫 荊之鄙人也注+百里奚, 南陽宛人, 宛屬楚, 故云荊. 穆公 擧之牛口之下而加之百姓之上호대 秦國 莫敢望焉하고
相秦六七年而東伐鄭하고 三置晉君하고 一救荊禍하야 巴人 致貢하고 犬戎 來服注+東伐鄭, 謂左傳僖三十年, 與晉圍鄭也. 三置晉君, 謂立晉惠公‧懷公‧文公也. 一救荊禍, 未詳. 黃帝之後, 生幷明, 幷明生白犬, 是爲犬戎.하며
其爲相也 勞不坐乘하고 暑不張蓋注+古者, 車立乘, 惟安車則坐乘耳. 蓋, 所以覆冒車上也.하고 行於國中 不從車乘하며 不操干戈注+從, 才用切.하고
及其死也 男女流涕하고 童子不歌謠하며 舂者不相杵注+徒歌曰謠. 相, 去聲. 杵, 昌署切. 相杵者, 以音聲相勸.러니
今君之見也 因景監하야 以爲主하고 其從政也 陵轢公族하고 殘傷百姓注+轢, 音歷, 謂車所踐也.하니 公子虔 杜門不出 已八年矣
詩曰 得人者興하고 失人者崩注+逸詩也.이라하니 此數者 非所以得人也
君之出也 後車載甲하며 多力而騈脅者爲驂乘注+騈, 蒲眠切, 合也, 本作骿. 脅, 肋也. 蓋腋下肋骨, 合比若一.하고 持矛而操闟戟者旁車而趨注+闟, 所及切, 闟之爲言, 函也. 取四戟函車邊. 旁, 步痕切, 傍附也. 此蓋令力土旁車而趨, 有急則操闟鼓以禦之也.하니
書曰 恃德者昌이요 恃力者亡注+逸書也.이라하니 此數者 非恃德也
君之危若朝露而尙貪商於之富하며 寵秦國之政하고 畜百姓之怨而無變計注+朝露, 易晞, 言不久也. 寵秦國之政, 以專秦國之政爲寵也.하니
秦王 一旦 捐賓客而不立朝 秦國之所以收君者豈其微哉注+鞅於秦無仁恩, 故秦之將欲收鞅者, 其效甚明, 故云豈其微哉.리오
商君 不聽이러니 居五月而難作하니라
胡氏曰
至是하야 雖有變計 亦無所施矣
何則
百姓者 其讐也 六國者 其敵也
惠文王之憾 不可平이며 公子虔之刑 不可補 商於蕞爾之地不足以自蔽也注+蕞, 祖外切, 小貌. 欲圖善後之策이라도 亦無所爲而可矣
嗚呼
刑名之學 刻薄之徒亦可以少戒哉인저


계미년(B.C. 338)
[綱]나라 현왕顯王 31년이다.
진백秦伯하였다.
나라 사람이 위앙衛鞅을 죽이고 그 집안사람을 모두 없앴다.
[目]효공孝公하고 태자太子가 즉위하니 바로 혜문왕惠文王이다.注+혜문왕惠文王은 이름이 이다.
공자公子 의 무리가 상군商君이 배반하려 한다고 고발하니, 관리를 보내어 체포하게 하였다.
상군이 도망하여 객사客舍에 머물려고 하였는데, 사인舍人이 말하기를 “상군의 에 여행증이 없는 사람을 머물게 하면 연좌됩니다.”라고 하니, 상군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법의 폐단이 마침내 이에 이르렀구나.”라고 하였다.
상군이 떠나서 나라에 가니注+② 아래의 ‘’는 간다는 뜻이다.나라 사람이 받아주지 않고 나라로 들여보냈다.注+위앙衛鞅이 속여서 나라의 군대를 패배시킨 것을 원망하였기 때문에 받아주지 않았다. (들이다)는 으로 읽는다.
나라 사람이 그를 공격하여 죽여서 거열형車裂刑을 하여 조리돌리고 그 집안사람을 모두 죽였다.注+은 다니면서 보여주는 것이니, 사람들로 하여금 돌아다니며 중사衆士에게 보여 경계를 삼게 하는 것이다.
일찍이 위수渭水 가에서 죄수를 논죄할 때에 위수가 모두 붉어졌다.注+① 《수경水經》에 “위수渭水농서군隴西郡 수양현首陽縣 조서산鳥鼠山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나라 도성 함양咸陽의 남쪽에 이른다.”고 하였다. 죄를 결정하는 것을 이라 한다.
정승이 된 지 10년 만에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찍이 조량趙良에게 묻기를 “내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와 더불어 누가 더 나은가?”注+는 음이 이니 숫양이다. 백리해百里奚는 다섯 마리 숫양의 가죽에 자신을 팔아 남을 위하여 소를 키웠다. 나라 목공穆公이 등용하여 정승으로 삼으니 나라 사람들이 그를 오고대부五羖大夫라 불렀다.라고 하니, 조량이 대답하기를 “천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이 한 사람의 바른말보다 못합니다.注+은 대답하는 소리이다. 오각五各이니 바른말이다.
청컨대 제가 하루 종일 바른말을 하여도 주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상군이 말하기를 “좋다.”라고 하였다.
조량이 말하기를 “오고대부는 (楚)나라의 비천한 사람이었는데注+백리해百里奚남양南陽 땅 사람이다. 나라 소속이므로 이라 하였다., 목공穆公이 그를 소를 먹이는 신분에서 등용하여 백성의 위에 올려놓았지만, 나라에서 누구도 불만하지 못하였습니다.
나라에서 정승으로 지낸 지 6, 7년 만에 동쪽으로 나라를 정벌하고, 세 번 나라 임금을 세우고, 한 번 나라의 를 구원하여 파인巴人이 조공을 바치고 견융犬戎이 와서 복종하였습니다.注+⑤ “동벌정東伐鄭(동쪽으로 나라를 정벌하였다.)”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30년에 나라와 함께 나라를 포위한 것을 말한다. “삼치진군三置晉君(세 번 나라 임금을 세웠다.)”은 나라의 혜공惠公회공懷公문공文公을 세운 것을 말한다. “일구형화一救荊禍(한 번 나라의 를 구원하였다.)”는 자세하지 않다. 황제黃帝의 후손이 병명幷明을 낳고 병명幷明백견白犬을 낳았는데, 백견白犬견융犬戎이다.
그가 정승이 되어서는 수고로워도 수레에 앉지 않았고 더워도 일산을 펴지 않았으며注+⑥ 옛날에 수레는 서서 타는데 오직 안거安車는 앉아서 타는 것이다. 는 수레의 위를 덮는 것이다., 나라 안을 다닐 때에는 수레가 뒤따르지 않고 창과 방패로 호위하지 않았습니다.注+(따르다)은 재용才用이다.
그가 죽었을 때 남자와 여자들은 눈물을 흘리고 어린아이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며 방아 찧는 자는 절구질을 해도 장단을 맞추지 않았습니다.注+⑧ 악기의 반주 없이 노래하는 것이 이다. (돕다)은 거성去聲이고 창서昌署이다. 상저相杵는 소리로 서로 권면하는 것이다.
[目], 정사를 맡아서 공족公族을 업신여기고 백성百姓에게 모질게 하니注+은 음이 이니 수레가 밟고 지나가는 것을 이른다.공자公子 두문불출杜門不出한 지 이미 8년입니다.
시경詩經》에 ‘인심을 얻은 자는 흥하고 인심을 잃은 자는 망한다.’注+② 《시경詩經》에 빠져 없어진 이다.라고 하였으니, 위의 몇 가지는 인심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나갈 때는 뒤따르는 수레에 갑사甲士를 태웠으며, 힘이 세고 기골이 건장한 자를 참승驂乘으로 하고注+포면蒲眠이니 합함이다. 본래 骿으로 쓴다. 은 갈비뼈이다. 대개 겨드랑이 아래의 갈비뼈가 하나처럼 합쳐 있는 것이다., 창을 가진 자가 창으로 수레를 에워싸며 수레 옆에서 따라오게 하였습니다.注+소급所及이다. 의 뜻은 상자처럼 싸는 것이니 네 면에서 창으로 수레를 둘러싸는 뜻을 취한 것이다. 보흔步痕이니 곁에 붙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역토力土로 하여금 수레 옆에서 따라오게 하다가 급한 일이 있으면 창을 잡고 북을 치며 방어하는 것이다.
서경書經》에 ‘을 믿는 자는 번창하고 힘을 믿는 자는 패망한다.’注+⑤ 《서경書經》에 빠져 없어진 글이다.라고 하였으니 위의 몇 가지는 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위태로움이 아침 이슬과 같은데도 오히려 의 부유함을 탐하며, 나라의 정사를 농단하는 것을 총애로 여기고, 백성의 원망을 쌓으면서도 바꿀 생각이 없으니注+⑥ 아침 이슬은 쉽게 마르니 오래가지 않음을 말한다. “총진국지정寵秦國之政(秦나라의 정사를 농단했다.)”은 나라의 정사를 오로지하는 것을 총애로 여긴다는 것이다.,
나라 왕이 하루아침에 빈객賓客을 버리고 별세하여 조정에 서지 못하면 나라에서 그대를 잡으려는 자가 어찌 적겠습니까?”注+위앙衛鞅나라에 인덕과 은혜가 없었으므로 나라에서 장차 위앙衛鞅을 잡으려는 것은 그 징험이 매우 분명하였다. 그러므로 어찌 적겠는가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상군商君이 그 말을 따르지 않았는데 5개월이 지난 뒤에 난이 일어났다.
[目]호씨胡氏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위앙衛鞅이 이때에 이르러 비록 바꿀 생각이 있었더라도 시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백성은 그의 원수이고 육국六國은 그의 적이다.
혜문왕惠文王의 서운함을 풀어줄 수 없고 공자公子 의 형벌을 보상할 수 없으며 의 작은 땅은 자신을 감추기에 부족하니注+조외祖外이니 작은 모양이다., 뒷마무리를 잘하는 계책을 쓰고 싶더라도 해서 될 만한 일이 없었다.
오호라!
형명刑名의 학문을 따르고 백성에게 모질게 하는 무리들에게 또한 조그만 경계가 될 만하다.”


역주
역주1 : 납
역주2 처음에……받았다 : 전혀 벌하지 않을 것을 벌함으로써 백성을 길들이는 것이다.
역주3 五羖大夫 : 秦나라 穆公 때의 뛰어난 재상 百里奚이다. 목공이 楚나라에 양가죽 다섯 장을 주고 데리고 왔다고 하여 오고대부라는 호칭을 얻었다. 목공을 섬겨 秦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역주4 이제……통했으며 : 명분을 가지고 만난 것이 아니라 총애하는 신하를 통해서 임금께 신임을 얻었다는 말이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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