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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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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辰年(B.C. 101)
경진년(B.C. 101)
四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태초太初 4년이다.
封李廣利爲海西侯注+班志 “海西縣, 屬東海郡.”하다
봄에 이광리李廣利를 봉하여 해서후海西侯로 삼았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해서현海西縣동해군東海郡에 속했다.” 하였다.
貳師所過 小國 聞宛破하고 皆使其子弟 從入貢獻하여 因爲質焉하고 軍還 入馬千餘匹하다
[目] 이사장군貳師將軍이 지나오는 곳에 약소국들은 대완大宛이 격파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그 자제子弟들로 하여금 따라 들어와서 공물을 바치고 인하여 인질이 되게 하였으며, 군대가 개선하자 천여 필의 말을 바쳤다.
後行 軍非乏食이요 戰死不甚多 而將吏貪하여 不愛士卒하여 侵牟之하니 以此 物故者衆注+旣還燉煌, 而再出師, 故曰後行.이라
뒤에 다시 출동하였을 적에 군대는 양식이 궁핍한 것이 아니었고 전사자가 그리 많은 것이 아니었으나 장수와 관리들이 탐욕스러워 사졸士卒을 아끼지 않아서 침탈하여 이익을 취하니, 이 때문에 물고物故(사망)한 자가 많았다.注+이미 돈황燉煌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출병하였으므로 ‘뒤에 출동했다.’라고 한 것이다.
上以爲萬里而伐이라하여 不錄其過注+錄, 采也, 收拾也.하고 乃封廣利等하여 侯者二人이요 爲九卿者三人이요 二千石百餘人이라
그러나 은 만 리 먼 길에 정벌을 했다 하여 이사장군의 잘못을 처벌하지 않고,注+채록採錄함이고 수습收拾(징계 조치함)함이다. 마침내 이광리李廣利 등을 봉하여 가 된 자가 두 명이고 구경九卿이 된 자가 세 명이고 이천석二千石이 된 자가 백여 명이었다.
奮行者 官過其望注+奮, 迅也, 謂自樂而行者.하고 以謫過行 皆黜其勞注+言以罪謫而行者, 免其所犯, 不敍功勞.하고 士卒 賜直四萬錢注+或以他財物充之, 故云直.하다
자신이 자발적으로 지원하여 출전한 자들에게는 관직을 그들의 소망보다 더 높여주었고,注+은 신속히 함이니, 〈“분행奮行”은〉 스스로 즐거워하여 출전한 자를 이른다. 잘못을 저지르고 책벌로써 출전한 자들에게는 모두 그 공로를 서훈敍勳하지 않았고,注+〈“이적과행以謫過行 개출기로皆黜其勞”는〉 죄적罪謫 때문에 출동한 자는 그가 범한 죄를 면제하고 공로를 서훈敍勳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일반 사졸士卒들에게는 4만 의 값어치가 되는 물건을 하사하였다.注+혹은 딴 재물로 충당하였으므로 ‘값어치’라고 말한 것이다.
匈奴因樓蘭하여 候漢使後過者하여 欲絶勿通이어늘 軍正任文 捕得生口하여 知狀以聞注+軍正, 猶卒正, 將軍屬官. 任文, 姓名也. 生獲其人曰生口, 謂生獲樓蘭國人, 而知其國中情狀.이라
흉노匈奴누란국樓蘭國을 이용하여 나라 사신으로서 뒤에 지나가는 자를 엿보아 길을 차단하고 통하지 못하게 하려 하였는데, 군정軍正임문任文생구生口(포로)를 체포하여 이러한 상황을 알아내어 보고하였다.注+군정軍正졸정卒正과 같으니, 장군에게 소속된 관원이다. 임문任文은 사람의 성명姓名이다. 사람을 사로잡은 것을 생구生口라 하니, 누란국樓蘭國 사람을 생포하여 그 나라의 정황을 앎을 말한 것이다.
詔文引兵하여 捕樓蘭王하여 將詣闕簿責한대 對曰 小國 在大國間하여 不兩屬이면 無以自安이니 願徙國하여 入居漢地하노이다
은 임문에게 조령詔令을 내려 군대를 이끌고 가서 누란왕樓蘭王을 체포하게 하고 데리고 대궐로 와서 하나하나 죄를 책망하자, 누란왕은 대답하기를 “약소국이 큰 나라의 틈새에 끼어있어서 두 나라에 소속되지 않으면 스스로 편안할 수가 없으니, 원컨대 나라를 옮겨 들어와 나라 땅에서 살고 싶습니다.” 하였다.
直其言하여 遣歸國하고 亦因使候司匈奴注+司, 讀曰伺.하니 匈奴自是 不甚親信樓蘭이라
은 그의 말을 옳게 여겨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또한 그로 하여금 흉노를 정탐하게 하니,注+(엿보다)는 로 읽는다. 흉노가 이 뒤로는 누란왕을 그리 친애하고 신임하지 않았다.
於是 自燉煌으로 西至鹽澤 往往起亭하고 而輪臺, 渠犁 皆有田卒數百人하니 置使者校尉領護하여 以給使外國者注+輪臺, 西域國名, 在車師西千餘里, 渠犂亦國名. 一曰 “支渠犂, 在輪臺東.” 領護, 統領其衆而保護營田之事也. 給, 謂收其五穀以供之.하니라
이에 돈황燉煌으로부터 서쪽으로 염택鹽澤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정장亭障을 세웠고, 윤대輪臺거리渠犁에 모두 둔전屯田하는 병졸 수백 명이 있었는데, 사자使者교위校尉를 배치하여 둔전병屯田兵을 통솔하고 보호해서 외국에 사신 가는 자들에게 양식을 공급하게 하였다.注+윤대輪臺서역西域의 나라 이름이니, 거사車師의 서쪽 천여 리 지점에 있고, 거리渠犂 또한 나라 이름이다. 일설에 “지거리支渠犂이니, 윤대輪臺의 동쪽에 있다.” 하였다. “영호領護”는 그 무리를 통령統領하고 둔전屯田을 경영하는 일을 보호하는 것이다. 오곡五穀을 수확하여 공급함을 이른다.
注+宮, 在長樂宮後, 南與長樂宮相聯屬, 北通桂宮.하다
[綱] 가을에 명광궁明光宮을 일으켰다.注+장락궁長樂宮 뒤에 있었으니, 남쪽으로는 장락궁長樂宮과 서로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계궁桂宮과 통하였다.
◑ 冬 匈奴呴犁湖單于死하니 弟且鞮侯單于立하여 使使來獻하다
[綱] 겨울에 흉노匈奴구려호선우呴犁湖單于가 죽으니, 아우인 저제후선우且鞮侯單于(흉노의 제9대 선우)가 즉위하여 사신을 보내와 공물을 바쳤다.
欲因伐宛之威하여 遂困胡하여 乃下詔曰
[目] 대완大宛을 정벌한 위세를 인하여 마침내 흉노匈奴를 곤궁하게 하고자 해서, 이에 다음과 같은 조령詔令을 내렸다.
高皇帝遺朕平城之憂하시고 高后時 單于書絶悖逆이라
고황제高皇帝에게 평성平城의 걱정을 남겨주셨고,
齊襄公 復九世之讐한대 春秋 大之注+公羊傳莊四年春 “齊襄公滅紀, 復讐也. 襄公之九世祖, 昔爲紀侯所譖而烹殺于周, 故襄公滅紀也. 九世猶可以復讐乎, 曰 雖百世, 可也, 先君之恥, 猶今君之恥也.”라하다
옛날 나라 양공襄公이 9대조의 원수를 보복하자, 《춘추春秋》에서 이를 훌륭하게 여겼다.”注+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장공莊公 4년 봄에 “나라 양공襄公나라를 멸망시켰으니, 복수한 것이다. 양공襄公의 9세조世祖가 옛날 나라 임금에게 중상모략을 당하여 나라에서 삶아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므로 양공이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다. 9세가 되었는데도 복수할 수 있는가? 비록 백세가 되더라도 괜찮으니, 선군先君의 치욕은 지금 군주의 치욕과 똑같은 것이다.” 하였다.
且鞮侯初立 恐漢襲之注+且, 子余切. 鞮, 丁奚切.하여 乃曰 我 兒子 安敢望漢天子리오
저제후선우且鞮侯單于는 처음 즉위하자, 나라가 그들을 습격할 것을 두려워해서,注+자여子余이고, 정해丁奚이다. 마침내 말하기를 “나는 어린아이이니, 어찌 감히 나라의 천자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漢天子 我丈人行也라하고 因盡歸漢使之不降者路充國等하고 使使來獻注+丈人, 尊老之稱. 行, 胡浪切, 軰行也.하다
나라의 천자는 우리 어르신의 항렬이다.” 하고, 인하여 나라 사신 중에 항복하지 않은 자인 노충국路充國 등을 모두 돌려보내고 사신을 보내와 공물을 바쳤다.注+장인丈人(어르신)”은 지위가 높고 연로한 분의 칭호이다. 호랑胡浪이니, 항렬이다.
역주
역주1 起明光宮 : “武帝가 즉위한 이래로 ‘柏梁臺를 일으켰다.’고 썼고 ‘宣防宮을 건축했다.’고 썼고 ‘蜚廉觀과 桂觀과 通天莖臺를 만들었다.’고 썼고, ‘首山宮을 지었다.’고 썼고, 또 ‘建章宮을 지었다.’고 썼지만 못과 동산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백성들의 힘을 동원한 것이 많다. 그런데 이때 또다시 ‘明光宮을 일으켰다.’고 썼으니, 토목공사로 백성들을 피폐하게 한 것이 武帝보다 더 심한 자가 있지 않다. 臺觀은 ‘起’라고 썼으나 宮은 ‘起’라고 쓴 적이 있지 않았는데, 여기에서 ‘起’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집을 너무 크고 높게 지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臺觀에 사용하는 말로 쓴 것이다. 이 때문에 武帝의 明光宮을 ‘起’라고 썼고(이해), 明帝의 北宮을 ‘起’라고 썼고(永平 3년, 60), 燕나라의 逍遥宮을 ‘起’라고 썼고(晉 安帝 元興 3년, 404), 陳 後主의 三閣을 ‘起’라고 썼고(甲辰年, 584) 唐 憲宗의 承暉殿을 ‘起’라고 썼으니(元和 13년, 818), 이는 모두 너무 집을 크고 높게 지었기 때문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宮殿을 ‘起’라고 쓴 것이 다섯 번이다.[武帝自卽位以來 書起柏梁臺 書築宣防宮 書作蜚廉桂觀通天莖臺 書作首山宮 又書作建章宮 池苑不與焉 用民力多矣 於是又書起明光宮 土木疲民 未有盛於帝者也 臺觀書起 宮未有書起者 此其書起 何 峻宇也 故以臺觀之辭書之 是故武帝明光宮書起 明帝北宮書起 燕逍遥宮書起 陳後主三閣書起 唐憲宗承暉殿書起 皆峻宇也 終綱目 宮殿書起五]” 《書法》
역주2 高皇后……悖逆하였다 : 漢나라 惠帝 3년(B.C. 192)에 있었던 일을 가리킨 것이다.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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