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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7)

자치통감강목(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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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元嘉二年이요 魏始光二年이라
◯夏主赫連昌承光元年이라
春正月 이라
徐羨之傅亮 上表歸政하니 三上 許之어늘 羨之 仍遜位還第하니 徐佩之等 竝謂非宜라하여 敦勸甚苦하니 乃復奉詔視事注+佩之, 羨之之兄子也.하다
二月 하다
燕有女子化爲男하니 燕主以問群臣한대 傅權對曰
西漢之末 雌雞化雄 猶有王莽之禍어든 況今女化爲男하니 臣將爲君之兆也注+漢書五行志 “宣帝黃龍元年, 未央殿輅軨中, 雌雞化爲雄, 毛衣變化而不鳴, 不將, 無距. 元帝初元中, 丞相府史家雌雞伏子, 漸化爲雄, 冠距鳴將. 其後, 王后群弟世權, 以至於莽, 遂篡天下.”니이다
魏主母密太后杜氏之殂也注+密, 諡也. 太宗以竇氏慈良하고 有操行이라하여 使保養之하니
竇氏撫視有恩하고 訓導有禮하니 世祖德之 故加以尊號하여 奉養不異所生하다
魏以長孫嵩爲太尉하고 長孫翰爲司徒注+翰, 肥之子也.하고 奚斤爲司空하다
◑夏四月 秦襲涼于臨松하여 敗之注+張天錫置臨松郡.하다
◑魏遣使如宋하다
始復通也하다
六月 武都王楊盛卒하니 子玄立하다
盛聞晉亡하고 不改義熙年號하고 謂世子玄曰 吾老矣 當終爲晉臣이니 汝善事宋帝하라
及卒 自稱武都王하다 遣使告喪于宋하고 始用元嘉年號하니 宋因而封之하다
秦擊黑水羌하여 破之注+黑水羌在鄧至西北. 水經注曰 “白水出臨洮縣西南西山, 東南流, 與黑水合. 黑水出羌中, 西南逕黑水城西, 又西南入于白水.”하다
◑八月 夏主勃勃殂하니 世子昌立하다
◑冬十月 魏主伐柔然하여 走之하다
魏大擧伐柔然할새 五道竝進하여 軍至漠南 舎輜重하고 輕騎 齎十五日糧하여 度漠擊之하니 柔然大驚하여 絶跡北走하다


宋나라 太祖 文帝 劉義隆 元嘉 2년이고, 北魏 世祖 太武帝 拓跋燾 始光 2년이다.
夏主 赫連昌 承光 원년이다.
[綱] 봄 정월에 宋主가 비로소 정사를 친히 다스렸다.
[目] 徐羨之와 傅亮이 表文을 올려서 정권을 되돌려주었는데, 表文을 올리기를 세 차례 만에 허락하였다. 그러자 서선지가 이어서 지위를 사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徐佩之注+① 徐佩之는 徐羨之의 조카이다. 등이 모두 마땅하지 않다고 말하여 〈서선지의 복귀를〉 강력하게 권하니, 마침내 다시 조서를 받들어 정사를 보았다.
[綱] 2월에 北燕에서 여자가 변하여 남자가 되었다.
[目] 北燕에서 여자가 변하여 남자가 되었다. 燕主가 이것을 신하들에게 묻자 傅權이 대답하기를
“西漢 말에 암탉이 변하여 수탉이 되었을 때에도 王莽의 재앙이 있었거늘 하물며 지금 여자가 변하여 남자가 되었으니, 신하가 장차 임금이 될 징조입니다.”注+① ≪漢書≫ 〈五行志〉에 “宣帝 黃龍 원년(B.C.49)에 未央殿의 輅軨(마구간) 안에서 암탉이 변하여 수탉이 되었는데, 깃털이 변하였지만 울지 않고 닭들을 거느리지 않고 며느리발톱이 없었다. 元帝 初元 연간(B.C.48~B.C.44)에 丞相府史의 집안에 암탉이 알을 품었는데 점점 변하여 수탉이 되었고, 볏이 생기고 울면서 닭들을 거느렸다. 그 후에 王后의 여러 동생들이 대대로 권력을 장악하였고 王莽에 이르러 마침내 천하를 찬탈하였다.”라고 하였다. 라고 하였다.
[綱] 3월에 魏主가 保母 竇氏을 높여서 保太后로 삼았다.
[目] 魏主의 어머니 密太后注+① 密은 시호이다. 杜氏가 殂하자 太宗(拓跋嗣)은 竇氏가 마음이 선량하고 지조와 덕행이 있다고 하여 두씨에게 拓拔燾를 보호하고 양육하게 하였다.
竇氏가 〈탁발도를〉 양육한 은정이 있고 훈도한 예의가 있으니, 世祖(탁발도)가 은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존호를 더하여 生母와 다름없이 봉양하였다.
[綱] 北魏가 長孫嵩을注+① 長孫翰은 長孫肥의 아들이다. 太尉로 삼고, 長孫翰을 司徒로 삼고, 奚斤을 司空으로 삼았다.
[綱] 여름 4월에 西秦이 臨松에서注+① 張天錫이 臨松郡을 설치하였다. 北涼의 군대를 습격하여 패배시켰다.
[綱] 北魏가 사신을 파견하여 宋나라로 보냈다.
[目] 비로소 다시 통교하였다.
[綱] 6월에 武都王 楊盛이 卒하자, 아들 楊玄이 즉위하였다.
[目] 예전에 楊盛은 東晉이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東晉의〉 義熙 年號를 고치지 않고 世子 楊玄에게 말하기를 “내가 늙었다. 끝까지 東晉의 신하가 될 것이니, 너는 宋나라 황제를 잘 섬기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양성이 卒하자 양현이 스스로 武都王이라고 칭하였다. 사신을 파견하여 宋나라에 喪事를 고하고 비로소 〈宋나라의〉 元嘉 年號를 사용하니, 宋나라가 이에 그를 봉해주었다.
[綱] 가을에 西秦이 黑水羌을注+① 黑水羌은 鄧至 西北에 있다. ≪水經注≫에 “白水가 臨洮縣 서남쪽 西傾山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黑水와 합한다. 黑水가 羌中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가서 黑水城 서쪽을 지나 또 서남쪽으로 가서 白水로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綱] 8월에 夏主 赫連勃勃이 殂하니, 世子 赫連昌이 즉위하였다.
[綱] 겨울 10월에 魏主가 柔然을 토벌하여 패주시켰다.
[目] 北魏가 대대적으로 군대를 일으켜 柔然을 정벌할 때에 다섯 개의 길로 동시에 진격하여 군대가 漠南에 이르자 輜重을 버리고 경무장한 기병으로 양식 15일 치를 가지고서 고비 사막을 통과하여 공격하니, 유연이 크게 놀라서 종적을 끊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역주
역주1 宋主始親聽政 : “‘始親政’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째서인가. 〈그동안의 정무를〉 徐羨之․傅亮이 전담했기 때문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始親政’이라고 기록한 것은 6번이니(漢 後主 延熙 20년(257)의 吳主 孫亮, 이해(425)의 宋主 劉義隆, 丁未年(467)의 魏主 拓跋弘, 辛未年(491)의 魏主 拓跋宏, 己卯年(559)의 周主 宇文毓, 壬辰年(572)의 周主 宇文邕), 모두 〈신하들이〉 전담했던 것이다.[書始親政 何 徐傅專也 終綱目 書始親政六(漢後主延熙二十年吳主亮 是年宋主 丁未年魏主弘 辛未年魏主宏 己卯年周主毓 壬辰年周主邕) 皆或專之也]” ≪書法≫
역주2 燕有女子化爲男 : “漢나라 靈帝 篇에 ‘암탉이 변하여 수탉이 되었다.’라고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그래도 동물이다. 이때에 여자가 변하여 남자가 되었으니, 이변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北燕이 一紀(12년)를 가지 못한 것이 마땅하다.[漢靈之篇 書雌雞化爲雄矣 猶物也 於是而女化爲男 異孰大焉 燕之不能一紀 宜矣]” ≪書法≫ 北燕이 이해(425)부터 망한 해(436)까지 年數로 12년이어서 一紀(12년)를 채우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다.
역주3 魏主尊保母竇氏 爲保太后 : “漢 宣帝 초기에 阿保에게는 물건을 하사할 뿐이었는데, 漢 安帝 때 王聖(延光 2년(123))과 漢 順帝 때 宋娥(陽嘉 2년(133))에 이르러서는 君에 봉하였고, 漢 桓帝 때에 또 乳母의 아들을 列侯로 봉하였다(永興 2년(154)). 이때에 지극히 높혀 太后로 삼았으니, 〈유모인〉 保太后에게는 지나치게 한 것이고. 〈생모인〉 皇太后에게는 더욱 심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척하여 ‘魏主’라고 기록한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保母를 높여서 太后로 삼은 것이 두 번이니(이해(425)의 竇氏, 壬辰年(452)의 常氏), 모두 北魏의 경우이다.[漢宣之初 阿保賜物而已 至漢安王聖(延光二年) 漢順宋娥則封君(陽嘉二年) 及漢桓又封其子(永興二年) 於是至尊爲太后 保太后 過矣 皇太后 甚哉 故斥書魏主 終綱目 保母尊爲太后者二(是年竇氏 癸巳年常氏) 皆魏也]” ≪書法≫ 원문에는 ‘癸巳年’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綱目≫ 제26권 상에 의거하여 ‘壬辰年’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便)[傾] : 저본에는 ‘便’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傾’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17) 책은 2021.11.0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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