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癸巳年(153)
계사년癸巳年(153)
永興元年이라 秋七月하다
나라 효환황제 영흥孝桓皇帝 永興 원년元年이다. 가을 7월에 황충蝗蟲의 재해가 있었다.
河溢民饑어늘 以朱穆爲冀州刺史러니 尋徵下獄하여 輸作左校하다
】 황하가 넘쳐 백성이 굶주리자 주목朱穆기주자사冀州刺史로 삼았는데, 얼마 후 불러와 하옥下獄하고서 논죄하여 에서 노역하게 하였다.
冀州民饑하여 流亡 數十萬戶 詔以朱穆爲刺史하니 令長 聞穆濟河하고 解印綬去者 四十餘人이러라
기주冀州의 백성들이 굶주려서 유리流離하여 도망한 자가 수십만 였다. 조령詔令을 내려 주목朱穆자사刺史로 삼으니, 기주冀州현령縣令현장縣長들 중에 주목이 황하를 건너왔다는 말을 듣고는 인수印綬를 풀고 떠나간 자가 40여 명이었다.
及到 奏劾諸郡貪汙者하니 有至自殺하고 或死獄中이라
주목이 부임하여 여러 의 탐욕스럽고 부정한 자들을 아뢰어 탄핵하니, 이들 중에 심지어 자살하거나 혹은 옥중獄中에서 죽은 자도 있었다.
宦者趙忠 喪父歸葬호되 僭爲玉匣注+喪, 息浪切.이어늘 下郡案驗하니 吏發墓剖棺出之한대
환자 조충宦者 趙忠이 아버지 을 당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장례할 적에 참람하게 옥갑玉匣을 사용하였는데注+(초상)은 식랑息浪이다., 주목이 에 회부하여 조사하게 하니, 관리가 무덤을 파헤쳐 관을 쪼개어 꺼내었다.
帝聞하고 大怒하여 徵穆詣廷尉하여 輸作左校하다
황제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주목을 불러 정위廷尉에게 보내 논죄하여 좌교左校에서 노역하게 하였다.
太學生劉陶等數千人注+陶, 一名偉, 濟北貞王勃之後. 詣闕上書訟穆曰 中官近習 竊持國柄하여 手握王爵하고 口含天憲注+天憲, 王法也. 謂刑戮出於其口也.하여
태학생 유도太學生 劉陶 등 수천 명이注+유도劉陶일명一名유위劉偉니, 제북정왕 유발濟北貞王 劉勃의 후손이다. 대궐에 나아가 글을 올려 주목朱穆의 억울함을 다음과 같이 하소연하였다. “황제 가까이 있는 환관들이 나라의 권력을 도둑질하여 손에는 황제가 하사하는 관작을 쥐고 입에는 국법을 머금어注+천헌天憲”은 이니, 〈“구함천헌口含天憲”은〉 형벌과 죽임이 그의 입에서 나옴을 말한 것이다.,
運賞則使餓隷富於季孫하고 呼噏則令伊, 顔化爲桀, 跖注+運, 行也. 論語 “季氏富於周公.” 噏, 與吸通. 呼噏, 謂吐納也. 伊顔, 謂伊尹․顔回也. 桀, 夏之末帝. 跖, 通作蹠, 秦之大盜也.이어늘 而穆 獨亢然不顧身害하니 非惡榮而好辱하며 惡生而好死也
을 행하면 굶주린 노예로 하여금 계손씨季孫氏보다 부유하게 하고, 숨을 쉬면(말을 하면) 이윤伊尹안회顔回로 하여금 변하여 걸왕桀王도척盜跖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注+함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계손씨季孫氏주공周公보다 부유하다.” 하였다. 과 통하니, “호흡呼噏”은 숨을 토하고 들이쉼(말을 함)을 이른다. “이안伊顔”은 이윤伊尹안회顔回를 이른다. 걸왕桀王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다. 과 통하니, 나라의 큰 도둑이다. 그런데 주목이 홀로 꼿꼿하여 자신의 해로움을 돌아보지 않으니, 영화榮華를 싫어하고 오욕汚辱을 좋아하며 사는 것을 싫어하고 죽는 것을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徒感王綱之不攝하고 懼天綱之久失이라 竭心懷憂하여 爲上深計注+攝, 飭整也.하니
다만 황제의 기강이 정돈되지 못함을 서글퍼하고 하늘의 기강이 오랫동안 실추됨을 두려워해서 마음을 다하여 근심하는 마음을 품어서 을 위하여 깊이 계책한 것입니다.注+은 신칙하고 정돈함이다.
願黥首繫趾하여 代穆校作하노이다 帝乃赦之注+繫趾, 謂釱其足也, 以鐵著足曰釱.하다
은 원컨대 얼굴에 자자刺字하고 발에 차꼬를 차고서 주목을 대신하여 좌교左校에서 노역을 하겠습니다.” 황제가 마침내 주목을 사면하였다.注+계지繫趾”는 발에 차꼬를 채움을 이르니, 쇠를 발에 채우는 것을 라 한다.
陶又上疏曰 夫天之與帝 帝之與民 猶頭之與足 相須而行也 陛下目不視鳴條之事하고 耳不聞檀車之聲注+鳴條, 地名, 在安邑之西. 湯與桀, 戰于鳴條之野. 檀車, 兵車也. 大明之詩曰 “牧野洋洋, 檀車煌煌, 維師尙父, 時維鷹揚, 涼彼武王, 肆伐大商.” 陶蓋用此檀車事, 言桀․紂貴爲天子, 得罪於天, 流毒於民, 而湯․武伐之. 亡國之事, 不接於帝之耳目, 帝不知爲戒也.하시며
유도劉陶가 또다시 상소上疏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과 황제, 황제와 백성은 머리와 발이 서로 의존하여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폐하陛下께서는 눈으로 명조鳴條의 일을 보지 못하고 귀로 박달나무 수레의 소리를 듣지 못하시며注+명조鳴條지명地名으로 안읍安邑의 서쪽에 있는데, 탕왕湯王걸왕桀王명조鳴條의 들에서 싸웠다. 박달나무 수레는 병거兵車이다. ≪시경詩經≫ 〈대아 대명大雅 大明〉의 에 이르기를 “목야牧野가 넓고 넓으니 박달나무 수레가 빛나고 빛나도다! 스승인 상보尙父(강태공姜太公)가 이때 매처럼 드날려서 저 무왕武王을 도와 마침내 큰 나라를 정벌했다.” 하였다. 유도劉陶가 이 박달나무 수레의 일을 인용하여, 걸왕桀王주왕紂王천자天子의 귀한 지위에 있었으나 하늘에게 를 얻고 백성들에게 해독을 끼치자, 탕왕湯王무왕武王이 정벌하였으니, 멸망한 나라의 일이 황제의 귀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황제가 경계할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天災不有痛於肌膚하고 震食 不卽損於聖體注+震食, 謂地震․日食也. 蔑三光之謬하고 輕上天之怒注+蔑, 輕易也.하사
하늘의 재앙이 피부에 고통을 주지 않고 지진과 일식이 곧바로 성체聖體에 손상을 주지 않으므로注+진식震食”은 지진과 일식을 이른다. 삼광三光(해와 달과 별)이 잘못되는 것을 무시하고 상천上天이 노여워하는 것을 하찮게 여기십니다.注+은 가볍고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使群醜刑隷 芟刈小民注+刑, 刑餘之人, 謂宦官也. 隷, 謂皁隷也.하여 死者悲於窀穸하고 生者戚於朝野注+窀, 朱倫切, 厚也. 穸, 祥亦切, 夜也. 厚夜, 猶長夜, 謂葬埋也.하니 是愚臣所爲咨嗟長懷歎息者也注+爲, 去聲.니이다
여러 추악한 환관과 노예들로 하여금 백성들을 해치게 해서注+육형肉刑을 받은 사람으로 환관宦官을 이르고, 는 노예를 이른다., 죽은 자는 깊은 무덤 속에서 슬퍼하고 산 자들은 조야朝野에서 서글퍼하니注+주륜朱倫로 두터움이고, 상역祥亦로 밤이니, 두터운 밤이라는 것은 긴 밤과 같은바, 장례하여 무덤 속에 묻음을 이른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이 이 때문에 한탄하고 깊이 회한하며 탄식하는 것입니다.注+(때문에)는 거성去聲이다.
聞危非仁不扶 亂非智不救라하나이다 竊見朱穆, 李膺 履正淸平하며 貞高絶俗하니
은 들으니, 나라의 위태로움은 인자仁者가 아니면 해결하지 못하고 혼란은 지혜로운 자가 아니면 구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삼가 보건대 주목朱穆이응李膺은 공정하고 청렴하며 바르고 높은 절조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니,
斯實中興之良佐 國家之柱臣이니 宜還本朝하여 夾輔王室注+膺, 時亦免居綸氏. 挾, 通作夾.이니이다 書奏 不省하다
실로 나라를 중흥中興할 수 있는 어진 보좌요 국가國家주석柱石과 같은 신하입니다. 마땅히 본조本朝로 돌아오게 해서 왕실王室을 좌우에서 돕게 해야 합니다.”注+이응李膺도 이때 면직하고 윤씨현綸氏縣에 살고 있었다. (끼다)은 과 통한다. 글을 아뢰었으나 황제는 살펴보지 않았다.
역주
역주1 左校 : 宦官의 관직명으로 工役(工作에 동원되는 죄인)을 주관하였는바, 左校와 右校로 나뉘었다. ≪後漢書≫ 〈百官志〉에 “최고의 책임자로 左校令 한 사람이 있다.” 하였다.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