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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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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子年(100)
十二年이라 夏四月 秭歸山注+秭, 通作姊, 秭歸縣, 屬南郡. 屈原此縣人, 旣被流放, 忽然蹔歸, 有賢姊曰女嬃, 亦歸, 喩令自寬, 因名其地爲秭歸.하다
◑秋七月朔 日食하다
◑太尉酺免하니 以張禹爲太尉하다
◑迷唐 復叛하다
迷唐 旣入朝 其餘種人 不滿二千이요 飢窘不立하여 入居金城注+不立, 謂不能自立也.이러니
帝令還大小榆谷하다 迷唐 以漢作河橋하여 兵來無常하니 故地 不可復居라하여 辭不肯出이어늘
校尉吳祉等 促使出塞하니 迷唐 復叛하여 寇鈔而去하다


경자년庚子年(100)
나라 효화황제 영원孝和皇帝 永元 12년이다. 여름 4월에 자귀산秭歸山(자귀산)이 무너졌다.注+와 통하니, 자귀현秭歸縣남군南郡에 속하였다. 이 출신 굴원屈原이 추방을 당했다가 갑자기 집에 돌아오니, 어진 누이인 여수女嬃(여수) 또한 돌아와 있었는데, 굴원에게 스스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라고 타일렀다. 인하여 이 지역을 자귀秭歸라 이름하였다.
】 가을 7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태위 장포太尉 張酺가 면직되니, 장우張禹태위太尉로 삼았다.
미당迷唐이 다시 배반하였다.
미당迷唐이 들어와 조회함에, 그 남은 종족들은 채 2천이 못 되는데다가 굶주리고 곤궁하여 자립하지 못해서 금성金城에 들어와 거주하였다.注+불립不立”은 자립하지 못함을 이른다.
황제가 이들로 하여금 대유곡大榆谷소유곡小榆谷으로 돌아가게 하자, 미당은 옛 땅에서 다시 살 수가 없다 하여 이리저리 둘러대면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이에 교위 오지校尉 吳祉 등이 재촉하여 변방으로 나가게 하니, 미당이 다시 배반하여 노략질하고 떠나갔다.


역주
역주1 漢나라에서……들어오니 : 和帝 永元 원년(93)에 護羌校尉 貫友가 迷唐을 공격하면서 逢留大河에 河橋를 설치하였다.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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