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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4)

자치통감강목(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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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年이라
趙建平三年이라
春正月 趙大饗群臣하다
趙主勒 謂徐光曰 朕可方自古何等主注+方, 比也. 對曰 陛下神武謀略 過於漢髙하니이다
笑曰 人豈不自知리오 卿言太過로다 朕若遇髙祖 當北面事之하여 與韓, 彭比肩이요 若遇光武 當竝驅中原하여 未知鹿死誰手
大丈夫行事 宜礌礌落落하여 如日月皎然注+礌, 與磊通, 磊落, 魁礧貌.이니 終不效曹孟徳, 司馬仲逹 欺人孤兒, 寡婦하여 狐媚以取天下也注+狐, 妖獸也, 能蠱媚人.하노라
雖不學이나 好使諸生으로 讀書而聴之하고 時以其意 論古今得失하니 聞者悦服이라
嘗使人讀漢書라가 聞酈食其勸立六國後하고 驚曰 此法 當失이어늘 何以遂得天下오하더니 及聞留侯諫하고 乃曰 賴有此耳로다
好屬文하고 親敬儒素 謂中書令徐光曰 大雅愔愔하여 殊不似將家子注+大雅, 弘字. 愔, 音陰. 愔愔, 安和貌.로다
光曰 漢祖以馬上取天下어늘 孝文以玄黙守之하니 聖人之後 必有勝殘去殺者 天之道也니이다 甚悦이러라
因説曰 中山王 雄暴多詐하니 陛下一旦不諱하시면 臣恐社稷非太子所有也 宜漸奪其權하여 使太子早參朝政이니이다
程遐 亦曰 中山王 勇悍殘忍하여 威震外内하고 諸子皆典兵權하여 志願無極注+虎子邃․宣, 勒皆使之典兵. 志願無極, 謂虎有窺覦天位之志.하니 若不除之하시면 臣見宗廟不血食矣리이다 皆不聴하다
徐光 他日 承間言曰 今國家無事어늘 而陛下若有不怡 何也잇가 勒曰 吴, 蜀未平하니 恐後世不以吾爲受命之主로라
光曰 陛下包括二都하고 平蕩八州하시니 帝王之統 不在陛下하고 復當在誰注+二都, 長安․洛陽. 八州, 冀․幽․幷․靑․兗․豫․司․雍也.리잇고 且陛下不憂腹心之疾하고 而更憂四支乎잇가
中山王 資性不仁하고 見利忘義하며 父子竝據權位하여 而耿耿常有不滿之心注+耿耿, 不安也.하며 近於東宫侍宴 有輕皇太子色하니 恐陛下萬年後 不可復制也하노이다
默然하고 始命太子하여 省可尙書奏事注+省視其可者行之, 不復啓奏.하고 以中常侍嚴震으로 參綜可否하고 惟征伐斷斬大事라야 乃呈之하다
於是 震權 過於主相하고 虎之門 可設雀羅矣 虎愈怏怏注+可設雀羅, 言其寂靜無人行也.이러라
하여 攻拔襄陽하고 遂留鎮之하다
趙郭敬 南掠江西注+江西, 謂邾城以東至歷陽也.어늘 陶侃 遣桓宣하여 乘虚攻樊城하여 悉俘其衆하니
旋救樊이어늘 與戰於涅水하여 破之注+水經註 “涅水出南陽涅陽縣西北岐棘山, 東南逕涅陽縣, 又東南逕安衆縣, 又東南至新野縣, 東入於淯.”하니하여 遁去 遂拔襄陽한대 使宣鎮之하다
招懐初附하여 簡刑罰하고 略威儀하며 勸課農桑하여 或載鉏耒於軺軒하고 親帥民耘穫注+軺, 使者小車駕馬者也. 軒, 曲輈也, 闌板曰軒.이러라
在襄陽十餘年 趙再攻之어늘 以寡弱拒守하여 趙不能勝하니 時人 以爲亞於祖逖, 周訪이러라
趙涼州牧張駿 立其子重華하여 爲世子하다
重華 駿之次子也注+重, 直龍切. 涼州僚屬 勸駿稱涼王하고 置百官한대 駿曰 此非人臣所宜言也 敢言此者 罪不赦호리라
이나 境内皆稱之爲王이러라


[] 나라(동진東晉) 현종顯宗 성황제成皇帝 함화咸和 7년이다.
[] 나라(후조後趙) 고조高祖 석륵石勒 건평建平 3년이다.
[] 봄 정월에 나라(후조後趙)가 여러 신하들에게 크게 연향을 베풀었다.
[] 조주趙主 석륵石勒서광徐光에게 이르기를 “은 옛날 어떠한 군주에게 비할注+① 方은 비교함이다. 만한가?” 하니, 〈서광이〉 대답하기를 “폐하의 신묘한 무용武勇모략謀略나라 고조高祖보다 더합니다.” 하였다.
석륵이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어찌 자신을 모른단 말인가. 의 말이 너무 지나치다. 짐이 만약 나라 고조高祖를 만났으면 마땅히 북면北面하여 그를 섬겨서 한신韓信, 팽월彭越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이요, 만약 광무제光武帝를 만났으면 마땅히 함께 중원中原을 다투어서
대장부는 일을 함에 마땅히 광명정대하여注+② 礌는 磊와 통하니, “磊落”은 넓고 공정한 모양이다. 해와 달처럼 분명해야 하니, 끝내 조맹덕曹孟徳(조조曹操)과 사마중달司馬仲逹(사마의司馬懿)이 남의 고아와 과부를 속여서 여우처럼注+③ 여우는 요망한 짐승이니, 능히 사람을 홀린다. 〈부정한 방법으로 사람을〉 미혹시켜 천하를 취했던 것을 본받지는 않겠다.”
[] 석륵石勒은 비록 배우지 못하였으나, 제생諸生들로 하여금 책을 읽게 하고 듣기를 좋아하였으며, 때로는 자기 견해를 가지고 고금古今득실得失을 논하니, 듣는 자들이 기뻐하여 복종하였다.
석륵이 일찍이 사람을 시켜서 ≪한서漢書≫를 읽게 하다가, 는 말을 듣고는 놀라 말하기를 “이 방법으로는 천하를 잃어야 마땅한데, 어떻게 마침내 천하를 얻었는가?” 하였는데, 유후留侯(장량張良)가 한 내용을 듣고는 말하기를 “여기에 힘입었기 때문이다.” 하였다.
[] 나라(후조後趙)가 태자太子 석홍石弘에게 명하여 상서尙書에서 아뢰는 일을 재결하게 하였다.
[] 석홍石弘은 문장을 짓기 좋아하고 유자儒者들을 친애하고 공경하였다. 석륵石勒중서령中書令 서광徐光에게 이르기를 “대아大雅의 〈성품이〉 평안하고 온화하여注+① 大雅는 石弘의 자이다. 愔은 音이 陰이니, “愔愔”은 편안하고 온화한 모양이다. 조금도 장수 집안의 자식과 같지 않다.” 하였다.
서광이 말하기를 “나라 고조高祖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는데 효문제孝文帝청정무위清靜無爲로 천하를 지켰습니다. 〈나라를 창업한〉 성인聖人의 뒤에는 반드시 자가 있으니, 이것이 하늘의 입니다.” 하니, 석륵이 매우 기뻐하였다.
서광이 인하여 석륵을 설득하기를 “중산왕中山王(석호石虎)이 용맹하고 포악하며 속임수가 많으니, 폐하께서 하루아침 갑자기 서거하신다면 은 태자가 사직을 소유하지 못하게 될까 염려됩니다. 마땅히 점차 중산왕의 권력을 빼앗아서, 태자로 하여금 빨리 조정의 정사에 참여하게 해야 합니다.” 하였다.
정하程遐 또한 말하기를 “중산왕은 용맹하고 사납고 잔인하여 위엄이 내외에 진동하고 또 여러 아들들이 모두 병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뜻과 야망이 끝이 없으니,注+② 石勒이 石虎의 아들 石邃와 石宣에게 병권을 주관하게 하였다. “志願無極”은 석호가 천자의 자리를 넘보는 뜻이 있음을 이른다. 만약 이들을 제거하지 않으시면 신은 종묘宗廟혈식血食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나 석륵은 그들의 말을 모두 듣지 않았다.
[] 서광徐光이 며칠 후에 틈을 타서 석륵石勒에게 말하기를 “지금 국가가 큰일이 없이 평안한데, 폐하께서는 언짢은 기색이 있는 듯하시니 어째서입니까?” 하니, 석륵이 말하기를 “내 아직 (동진東晉)와 (성한成漢)을 평정하지 못했으니, 후세 사람들이 나를 천명을 받은 군주(황제)라고 아니 여길까 염려된다.” 하였다.
서광이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두 도읍을 차지하고 여덟 를 평정하셨으니,注+① 두 도읍은 長安과 洛陽이고, 여덟 州는 冀州, 幽州, 幷州, 靑州, 兗州, 豫州, 司州, 雍州이다. 제왕帝王정통正統이 폐하에게 있지 않고 다시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또 폐하는 폐와 심장의 병(위급한 화환禍患)을 근심하지 않고, 다시 사지四肢를 근심하십니까.
중산왕中山王(석호石虎)은 타고난 성품이 인자하지 못하고 이익을 보면 의리를 잊으며, 부자父子가 함께 권력과 지위를 차지하고 불안해하면서注+② “耿耿”은 불안해하는 모양이다. 항상 불만스런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또 근래 동궁東宮을 모시고 연회하는 자리에서 황태자를 경시하는 기색이 있었으니, 신은 폐하께서 서거하신 뒤에 더 이상 그를 제재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하였다.
석륵은 한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태자에게 해서 상서尙書에서 아뢰는 일을 재결하게 하고,注+③ 〈“省可尙書奏事”는〉 그 〈내용이〉 가한 것은 살펴보아 행하고, 다시 임금에게 아뢰지 않는 것이다. 중상시中常侍 엄진嚴震으로 하여금 참여하여 가부可否를 결정하게 하였으며, 오직 정벌征伐과 죄인을 참수斬首하는 큰일만 석륵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이에 엄진의 권세가 정승보다 더하였고 석호의 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참새 그물을 칠 정도였다.注+④ “可設雀羅”는 고요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이에 석호는 더욱 앙앙불락怏怏不樂하였다.
[] 가을에 태위太尉 도간陶侃남중랑장南中郎將 환선桓宣을 보내어 양양襄陽을 공격해서 함락시키고, 마침내 〈환선으로 하여금 양양에〉 머물러 진주하게 하였다.
[] 나라(후조後趙)의 곽경郭敬이 남쪽으로 강서江西 지역을注+① 江西는 邾城 동쪽에서 歷陽까지를 이른다. 노략질하자, 도간陶侃환선桓宣을 보내어 빈틈을 타서 번성樊城을 공격하여 그 무리를 모두 사로잡았다.
곽경이 곧바로 번성을 구원하였는데, 환선이 그와 열수涅水(열수)에서注+② ≪水經註≫에 “涅水는 南陽郡 涅陽縣 서북쪽의 岐棘山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열양현을 지나고, 또 동남쪽으로 安衆縣을 지나고, 또 동남쪽으로 新野縣에 이르러 동쪽으로 淯水(육수)로 들어간다.” 하였다. 싸워서 격파하니, 곽경이 두려워하여 도망갔다. 환선이 마침내 양양襄陽을 함락하니, 도간이 환선으로 하여금 양양에 진주하게 하였다.
환선은 이제 막 귀의한 자들을 회유하여 형벌을 줄이고 위의威儀를 간략히 하였으며, 농사짓고 누에치는 것을 권장하고 감독하였다. 그리하여 때로 호미와 쟁기자루를 수레에 싣고注+③ 軺는 使者가 타는 작은 수레에 말을 멍에한 것이다. 軒은 굽은 끌채이니, 闌板(수레를 가로막는 판자)을 軒이라 한다. 직접 백성들을 거느리고 가서 김매고 수확하였다.
양양에 있은 지 10여 년에 나라가 두 번 공격하였는데, 환선은 적고 약한 병력으로 막아내고 지켜서 나라가 승리하지 못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조적祖逖주방周訪에 버금간다고 칭찬하였다.
[] 장중화張重華注+① 重은 直龍의 切이다. 장준張駿의 둘째 아들이다. 양주涼州(전량前涼)의 요속僚屬이 장준에게 양왕涼王을 칭하고 백관百官을 설치할 것을 권하자, 장준이 말하기를 “이는 신하가 마땅히 말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감히 이것을 말하는 자는 죄를 주고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경내境内에서는 모두 그를 양왕涼王이라고 칭하였다.


역주
역주1 사슴이……모른다 : 원문의 ‘鹿死誰手’는 사슴을 쫓는 것을 정권을 쟁탈하는 것에 비유한 말로, 석륵이 광무제와 자기 중에 누가 승리하여 천하를 얻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역주2 酈食其(역이기)가……권했다 : 漢나라 高祖가 楚나라에 자주 침탈을 당하자, 역이기가 말하기를 “湯王과 武王이 桀王과 紂王을 친 뒤에 그 후손을 杞나라와 宋나라에 봉한 古事를 따라 六國의 후손을 다시 세우고, 德義가 행해진 뒤에 霸者를 칭하면, 楚나라도 옷깃을 여미고 조회할 것입니다.” 하자, 고조가 곧 六國의 印章을 새기게 하였다. 이때 張良이 이 일의 불가함을 말하니, 고조가 곧 그 인장을 녹여 없애게 하였다.(≪史記≫ 권55 〈留侯世家〉)
역주3 趙命太子弘 省可尙書奏事 : “太子가 일을 결단하는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태자에게 ‘일을 살폈다.’라고 쓴 것이 2번이고(이해 趙나라 太子 石弘, 咸康 6년(340) 趙나라 太子 石宣), ‘百官을 총괄했다.’라고 쓴 것이 1번이고(宋나라 甲申年(444) 北魏 太子 拓跋晃), ‘일을 결단하고 송사를 결단했다.’라고 쓴 것이 3번이고(唐나라 髙祖 武徳 9년(626), 太宗 貞觀 4년(630), 睿宗 景雲 2년(711)), ‘政事를 다스렸다.’라고 쓴 것이 2번이고(唐나라 太宗 貞觀 19년(645), 23년(649)), ‘監國했다.’라고 쓴 것이 7번이다(宋나라 壬戌年(422) 北魏 太子 拓跋燾, 唐나라 太宗 貞觀 19년, 髙宗 調露 원년(679)과 弘道 원년(683), 睿宗 景雲 2년(711), 玄宗 天寳 14년(755), 徳宗 貞元 20년(804)).[太子决事自此始 終綱目 太子書省事二(是年趙太子弘 咸康六年趙太子宣) 總百揆一(宋甲申年魏太子晃) 書决事决訟三(唐髙祖武徳九年 太宗貞觀四年 睿宗景雲二年) 書聴政二(唐太宗貞觀十九年 二十三年) 書監國七(宋壬戌年魏太子燾 唐太宗貞觀十九年 髙宗調露元年 弘道元年 睿宗景雲二年 玄宗天寳十四載 徳宗貞元二十年)]” ≪書法≫
역주4 仁政으로……없애는 : 원문의 ‘勝殘去殺’은 군주가 仁政을 베풀어 殘暴한 사람이 교화되고 善을 행함으로써 死刑을 쓰지 않는 것을 이른다. ≪論語≫ 〈子路〉에 “善人이 나라를 백 년 동안 다스리면 또한 흉악한 자를 이겨내고 사형을 쓰지 않을 수 있다.[善人爲邦百年 亦可以勝殘去殺矣]”라고 보인다.
역주5 太尉侃 遣南中郎將桓宣 : “‘遣(보냈다)’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功을 陶侃에게 돌린 것이다. 무릇 〈어떤 일에 대하여〉 공과 죄가 있을 적에 ‘보냈다’라고 쓴 것은 그 윗사람에게 공과 죄를 돌린 것이다. 이 때문에 桓宣이 襄陽을 함락했을 적에 ‘도간이 보냈다.’라고 썼고(이해), 唐나라 渾瑊이 吐蕃을 물리쳤을 적에 ‘郭子儀가 보냈다.’라고 썼고(唐나라 代宗 大曆 8년(773)), 李懐光이 토번을 격파했을 때에 ‘곽자의가 보냈다.’라고 썼으니(大曆 13년(778)), 이는 모두 그 윗사람에게 功을 돌린 말이다.[書遣 何 歸功侃也 凡功罪書遣 歸其上也 是故桓宣之拔襄陽 書陶侃遣(是年) 渾瑊之却吐蕃 書郭子儀遣(唐代宗大曆八年) 李懐光之破吐蕃 書郭子儀遣(大曆十三年) 皆歸功於其上之辭也]” ≪書法≫
역주6 趙나라(後趙)……삼았다 : 이는 오호십육국의 하나인 前涼에 관한 기사이다. 이때 前涼이 後趙에 겉으로 稱臣하였으나, 독자적인 국가를 이루고 있었다.

자치통감강목(14) 책은 2021.11.1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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