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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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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丑年(B.C. 56)
을축년(B.C. 56)
二年이라
[綱] 나라 중종中宗 효선황제孝宣皇帝 오봉五鳳 2년이다.
가을 8월에 소망지蕭望之태자태부太子太傅로 좌천시켰다.
丞相丙吉 年老로되 重之러니
[目] 승상丞相 병길丙吉이 연로한데도, 은 그를 존중하였다.
望之嘗奏言호되 三公 非其人이면 則三光爲之不明이라
소망지蕭望之가 일찍이 아뢰기를 “삼공三公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면 이 이 때문에 밝지 못합니다.
今日月少光하니 咎在臣等이니이다
지금 해와 달이 광채가 적으니, 그 허물이 등에게 있습니다.” 하였다.
以其意輕吉이러니 司直 奏望之遇丞相禮節倨慢注+時, 緐延壽爲丞相司直. 緐, 音婆. 하고 又使吏私買賣하여 有所附益하니 請逮捕繫治注+使其吏爲望之家, 有所買賣, 而吏以其私錢增益之, 用潤望之也.라한대 詔左遷爲太子太傅하다
은 그의 뜻이 병길을 깔보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마침 사직司直이 아뢰기를 “소망지가 승상丞相을 대우하는 예절이 거만하고注+이때 반연수緐延壽(파연수)가 승상丞相사직司直이 되었다. 는 음이 이다. 또 부하 관리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사로운 물건을 매매하게 하면서 돈을 더 보태게 한 일이 있으니,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어 치죄治罪할 것을 청합니다.”注+〈“사리사매매使吏私買賣 유소부익有所附益”은〉 소망지蕭望之가 자신의 부하 관리들을 시켜 집안을 위해 물건을 매매하게 한 적이 있는데, 관리가 자기의 사전私錢을 더 보태서 소망지를 부유하게 한 것이다. 하니, 명하여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좌천시켰다.
匈奴呼韓邪單于 擊殺屠耆單于하니 呼屠吾斯 自立爲郅支單于하다
[綱] 흉노匈奴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도기선우屠耆單于를 공격하여 죽이니, 호도오사呼屠吾斯가 스스로 서서 질지선우郅支單于라 하였다.
呼韓邪襲屠耆屯兵한대 屠耆自將擊之라가 兵敗自殺하고
[目] 호한야呼韓邪도기屠耆의 주둔군을 습격하자, 도기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다가 패하여 자살하였다.
車犁亦東降呼韓邪하니 呼韓邪復都單于庭이라
거리車犁 또한 동쪽으로 호한야에게 항복하니, 호한야가 다시 선우정單于庭(선우單于왕정王庭)에 도읍하였다.
이나 衆裁數萬注+裁, 通作纔. 이요 其兄左賢王呼屠吾斯 亦自立爲郅支骨都侯單于注+郅, 之日切. 郅支骨都侯, 單于號也.하다
그러나 병력이 겨우 수만이었고,注+(겨우)는 와 통한다. 그의 좌현왕左賢王 호도오사呼屠吾斯 또한 스스로 서서 질지골도후선우郅支骨都侯單于(질지골도후선우)라 하였다.注+지일之日이니, 질지골도후郅支骨都侯선우單于의 칭호이다.
注+功臣侯表 “平通侯, 食邑於汝南之博陽.”하다
[綱] 광록훈光祿勳 평통후平通侯 양운楊惲을 면직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다.注+사기史記》 〈공신후표功臣侯表〉에 “평통후平通侯여남汝南박양博陽식읍食邑으로 하였다.” 하였다
廉潔無私注+惲, 故丞相敞子也. 惲, 於粉切.
[目] 양운楊惲은 성품이 청렴결백하고 공정하여 사사로움이 없었다.注+양운楊惲은 옛 승상丞相 양창楊敞의 아들이다. 어분於粉이다.
爲中郞將하니 故事 令郞出錢이라야 乃得出沐하고 名曰山郞注+郞官名山者, 財用之所出, 故取名焉. 이러니 罷之하고 休沐 皆以法令從事하며
고사에 낭관郞官으로 하여금 돈을 내어야 비로소 휴가를 가서 목욕하게 하고 이름하기를 ‘산랑山郞注+낭관郞官으로 이름한 것은, 산은 재용財用이 생산되는 곳이므로 취하여 이름한 것이다. 이라 하였는데, 중랑장中郞將이 되자 양운은 이 고사를 없애고 휴가하여 목욕하는 것을 모두 법령法令대로 시행하였다.
有過 輒奏免하고 薦其有行能者하니 郞官 化之하여 莫不自厲
그리고 관리들에게 잘못이 있으면 번번이 황제에게 상주上奏하여 면직시키고, 관리 중에 행실이 훌륭하고 재능이 있는 자를 천거하니, 낭관들이 교화되어 스스로 힘쓰지 않는 자가 없었다.
由是 擢爲諸吏光祿勳하니 輕財好義하여 殿中 稱其公平이라
양운은 이 때문에 여러 의 관리와 광록훈光祿勳으로 발탁되었는데,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의리義理를 좋아하여 청사 안에서 모두 그의 공평함을 칭송하였다.
이나 伐其行能注+謂自矜其節行及政治之能也.하고 又性刻害하여 好發人陰伏하니 由是多怨하니라
그러나 양운은 스스로 자신의 절개 높은 행실과 정치의 재능을 자랑하고,注+〈“벌기행능伐其行能”은〉 스스로 자기의 절개 높은 행실과 정치의 재능을 자랑한 것을 이른다. 또 성품이 각박하고 잔인해서 남의 숨겨진 비밀들을 들춰내기를 좋아하니, 이 때문에 원망이 많았다.
與太僕戴長樂으로 相失注+樂, 音洛. 이러니 長樂 上書하여 告惲以主上爲戲하여 語尤悖逆注+楊惲傳 “長樂嘗使行事肄宗廟, 還謂掾史曰 ‘我親面見受詔, 副帝肄, 秺侯御.’ 人有上書, ‘告長樂非所宜言.’ 事下廷尉. 長樂疑惲敎人告之, 亦上書告惲罪. ‘高昌侯車犇入北掖門, 惲語富平侯張延壽曰 「聞前曾有犇車抵殿門, 門關折, 馬死, 而昭帝崩, 今復如此, 天時,非人力也.」 左馮翊韓延壽, 有罪下獄, 惲上書, 訟延壽. 郞中丘常謂惲曰 「聞君侯訟韓馮翊, 當得活乎.」 惲曰 「事何容易. 脛脛者, 未必全也, 我不能自保.」 又中書謁者令宣 持單于使者語, 視諸將軍ㆍ中朝二千石, 惲曰 「冒頓單于, 得漢美食好物, 謂之殠惡, 單于不來明甚.」 惲上觀西閣上畫人, 指桀ㆍ紂畫, 謂樂昌侯王武曰 「天子過此, 一二問其過, 可以得師矣.」 畫人有堯ㆍ舜ㆍ禹ㆍ湯, 不稱而擧桀‧紂. 惲聞匈奴降者道單于見殺, 惲曰 「得不肖君, 大臣爲畫善計不用, 自令身無處所, 若秦時但任小臣, 誅殺忠良, 竟以滅亡, 令親任大臣, 卽至今耳.」 惲引亡國, 以誹謗當世, 無人臣禮. 又語長樂曰 「正月以來, 天陰不雨, 此春秋所記, 夏侯君所言, 行必不至河東.」 以主上爲戲, 語尤悖逆絶理.’” 殠, 通作臭. 이라한대
[目] 태복太僕 대장악戴長樂(대장락)과 서로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注+은 음이 이다. 대장락이 글을 올려 “양운楊惲주상主上을 희롱하여 말이 매우 패역悖逆하다.”注+한서漢書》 〈양운전楊惲傳〉에 “대장악戴長樂이 일찍이 천자天子의 일을 대신하여 종묘에서 의식을 익혔는데, 돌아와서 부하 관리에게 이르기를 ‘내 친히 황제를 뵙고 조령詔令을 받아 황제를 대신해서 를 익히니, 투후秺侯(투후, 김일제金日磾)가 나를 위해 말을 몰았다.’라고 자랑하였다.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려 ‘이것은 대장락이 해야 할 말이 아니다.’라고 비난하자, 이 일을 정위廷尉에게 회부하였다. 대장락은 양운楊惲이 사람을 사주하여 자신을 고발하게 했다고 의심하고는, 또한 글을 올려 양운의 죄를 다음과 같이 고발하였다.
고창후高昌侯(동충董忠)의 수레가 달려서 북액문北掖門으로 들어가자, 양운이 부평후富平侯 장연수張延壽에게 이르기를 「내 들으니, 예전에 수레를 달려서 궁전의 문을 들이받아 문지방이 부러지고 말이 죽은 일이 있었는데, 소제昭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이와 같으니, 이는 천시天時인력人力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좌풍익左馮翊 한연수韓延壽가 죄가 있어 하옥下獄되자, 양운은 글을 올려 한연수의 억울함을 하소연했는데, 낭중郞中 구상丘常이 양운에게 이르기를 「들으니, 군후君侯께서 한풍익韓馮翊의 억울함을 하소연했다고 하니, 한풍익이 마땅히 살 수 있겠습니까?」 하자, 양운이 말하기를 「일이 어찌 용이하겠는가. 너무 고집이 센 자는 반드시 온전하지 못하니, 나도 내 생명을 보전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중서알자령中書謁者令선우單于가 보낸 사자使者의 말을 여러 장군將軍과 조정에 있는 이천석二千石의 관리들에게 보이니, 양운이 말하기를 「묵특선우冒頓單于나라의 맛 좋은 음식과 좋은 물건을 얻으면 냄새가 나고 나쁘다[추악殠惡]고 말하였으니, 선우가 와서 조회하지 않을 것이 매우 분명하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운이 서각西閣에 올라가서 그 위에 그려져 있는 사람들을 볼 적에 , 의 그림을 가리키면서 낙창후樂昌侯 왕무王武에게 이르기를, 「천자天子가 이곳을 지나가실 적에 일일이 이 사람들의 잘못을 묻는다면 훌륭한 스승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림에 그려진 사람 중에는 , 우왕禹王, 탕왕湯王이 있었는데, 이분들을 말하지 않고 , 를 들었습니다.
양운은 흉노에서 항복해온 자가 선우單于가 살해당했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말하기를 「흉노의 대신大臣이 불초한 군주를 만나서 좋은 계책을 계획하였으나 쓰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선우 스스로 자기 몸이 머물 곳이 없게 되었다. 이는 마치 나라 때에 군주가 다만 소신小臣을 신임하고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들을 주살하여 끝내 멸망한 것과 같다. 나라가 만일 대신大臣을 친애하고 신임했더라면 바로 지금까지도 나라가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양운은 망녕되이 멸망한 나라를 인용하여 당세當世를 비방하였으니, 인신人臣가 없습니다. 또 저(대장악戴長樂)에게 말하기를 「정월 이래로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지 않으니, 이는 《춘추春秋》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요, 하후군夏侯君(하후승夏侯勝)이 말한 바이다. 황제의 행차가 반드시 하동河東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여, 주상主上을 희롱하여 말했으니, 더욱 패역悖逆하고 의리義理가 없습니다.’” 하였다.
와 통한다.
고 고발하였다.
事下廷尉하니 廷尉定國 奏惲怨望하여 爲訞惡言하니 大逆不道라하여늘 詔免爲庶人注+訞, 與妖同.하다
이 일을 정위廷尉에게 회부하니, 정위 우정국于定國이 아뢰기를 “양운이 원망하여 요망하고 간악한 말을 했으니, 대역무도합니다.” 하였으므로, 명하여 면직해서 서인庶人이 되게 하였다.注+(요양하다)는 와 같다.
역주
역주1 左遷蕭望之 : “左遷에 대한 글이 세 가지이니, ‘아무를 아무 관직으로 좌천시켰다.[左遷某爲某官]’는 것은 죄가 없다는 말이요, ‘아무가 죄로 좌천되었다.[某人以罪左遷]’는 것은 죄가 있다는 말이요, ‘아무가 좌천되었다.[某人左遷]’는 것은 죄가 적다는 말이다.[左遷之辭三 左遷某爲某官 無罪之辭也 某人以罪左遷 有罪之辭也 某人左遷 薄乎云爾之辭也]” 《書法》
역주2 三光 : 세 가지 빛나는 것으로 해와 달, 별을 이른다.
역주3 免光祿勳……爲庶人 : “‘면직하는 예[免例]’가 세 가지가 있으니, 무릇 ‘아무가 면직되었다.[某免]’고 쓴 것은 면직할 만한 자요, ‘연좌된 것을 드러냈다.[著所坐]’고 쓴 것은 죄가 있는 자요, ‘아무를 면직하고[免某官]’, ‘아무를 하옥하여 면직하고[下某獄免]’, ‘불러 하옥하여 면직했다.[徵下獄免]’고 쓴 것은 모두 죄가 없는 자이다.[免例有三 凡書某免者 可免者也 著所坐者 有罪者也 書免某官 下某獄免 徵下獄免 皆無罪者也]” 《書法》
역주4 (妾)[妄] : 저본에는 ‘妾’으로 되어 있으나, 《漢書》 〈楊惲列傳〉에 의거하여 ‘妄’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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