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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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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朝會
13. 조회朝會
빙문聘問, 유세游說, 화호和好, 교질交質, 할지割地, 항부降附, 공헌貢獻에 관한 사항
凡朝, 有事若非常乃書.
무릇 조회朝會는 비상 상황과 같은 일이 있으면 기록하였다.
正統曰某侯來朝注+周齊侯‧秦公子少官會諸侯來朝之類..
정통正統은 “모후某侯가 와서 조회하였다.[某侯來朝]”注+ 등이다.라 하였다.
漢以後則書名, 衆則曰等.
나라 이후에는 이름을 썼으며 여럿이면 ‘’을 썼다.
非正統而相朝者, 曰某入朝于某注+如韓王朝秦之類.. 其相如而非朝者, 各以其事書注+如秦王稷薨, 韓王衰絰入弔祠. 齊‧趙入秦置酒之類..
비정통非正統으로 서로 조회한 경우는 “에 들어와 조회하였다.[某入朝于某]”注+① 예를 들면 이다.라 하였고, 서로 동류同類이면서 조회하지 않은 경우는 각각 그 일로써注+② 예를 들면 , 이다. 기록하였다.
凡會盟皆書,
무릇 회맹會盟은 모두 기록하였다.
有主者曰某會某于某注+齊田和會魏‧衛于濁澤, 秦公子少官會諸侯來朝, 秦誘楚會武關, 秦會楚于宛之類.. 無主者曰某某會于某注+齊‧魏會田, 諸侯會京師, 齊‧魏會徐州之類..
주재主宰하는 자가 있으면 “에서 회맹하였다.[某會某于某]”注+, , , 등이다.라 하였고, 주재主宰하는 자가 없으면 “에서 회맹하였다.[某某會于某]”注+, , 등이다.라 하였다.
有事者各以事繫之注+如濁澤以求爲諸侯, 徐州以相王之類..
일이 있으면 각각 그 일을 연계하여 기록하였다.注+③ 예를 들면 , 등이다.
凡聘問, 正統遣使於他國, 曰遣某官某使某注+漢陸賈‧劉敬.. 使卑而無事者, 曰遣使如某.
무릇 빙문聘問정통正統사신使臣타국他國에 보내는 경우는 “모관某官 를 어디에 사신으로 보냈다.[遣某官某使某]”注+이다.라 하였고, 사신의 신분이 낮고 일이 없는데 가는 경우는 “사신을 보내서 어디로 갔다.[遣使如某]”라 하였다.
他國通好而不臣者, 使來, 曰某國遣使來聘. 使者有事, 則曰遣其臣某. 使者官重, 則曰遣其某官某.
왕래하여 우호가 있으나 신하가 되지 않은 타국他國이 사신을 보내오는 경우는 “모국某國이 사신을 보내어 와서 빙문하였다.[某國遣使來聘]”라 하였고, 사자使者가 일이 있어 가면 “그 신하 를 보냈다.[遣其臣某]”라 하였고, 사자使者가 벼슬이 높으면 “그 모관某官 를 보냈다.[遣其某官某]”라 하였다.
◑間無異事而遣報使, 則曰遣某官某報之. 有異事, 則曰遣某官某報其使.
◑두 나라 사이에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보답하는 사신을 보내면 “모관某官 를 보내어 답하였다.[遣某官某報之]”라 하였고, 특별한 일이 있으면 “모관某官 를 보내어 그 사신을 따라가 답하게 하였다.[遣某官某報其使]”라 하였다.
非正統, 則曰某使某如某注+燕樂毅., 略則曰某遣使如某.
비정통非正統은 “를 사신으로 보내어 어디로 갔다.[某使某如某]”注+이다.라 하였고, 간략하게는 “가 사신을 보내어 어디로 갔다.[某遣使如某]”라 하였다.
◑間說則曰某使某說某, 而繫其事注+秦使張儀說諸侯連衡, 使黃歇歸約親, 用此例. 燕使報未至, 秦王薨, 諸侯皆畔衡, 復合從而不書者, 秦非燕所能使, 燕特資其行耳..
◑나라 사이에 유세하면 “를 보내어 를 설득하였다.[某使某說某]”注+, 은 이 범례凡例를 썼다. 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는 나라가 부릴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고, 나라는 다만 그 행위의 바탕이 되었을 뿐이다.라 하였고, 그 일을 연계하여 기록하였다.
◑乞師曰某使某如某乞師注+趙公子勝如楚乞師..
◑乞師는 “를 보내어 어디로 가서 군사의 출병을 요청하였다.[某使某如某乞師]”注+이다.라 하였다.
◑獻物曰某使某獻某于某注+趙使藺相如獻璧于秦..
◑獻物은 “를 보내어 에게 를 바쳤다.[某使某獻某于某]”注+이다.라 하였다.
凡和好, 各依本文書之.
무릇 화호和好는 각각 본문本文에 따라 기록하였다.
其非正統, 或曰某以某爲和於某, 或曰某請成于某, 或曰某與某平, 或曰某與某和親, 或曰約親.
비정통非正統은 혹 “로써 에 화친을 청하였다.[某以某爲和於某]”라 하거나 “에 화친을 청하였다.[某請成于某]”, “가 화친하였다.[某與某平]”, “와 화친하였다.[某與某和親]”, “화친을 약속하다.[約親]”라 하였다.
◑正統, 我所欲曰遣某使某結和親, 或曰與某和親. 彼所欲, 曰某請和親.
◑正統은 우리가 하고자 하였으면 “에 보내어 화친을 맺었다.[遣某使某結和親]”, “와 화친하였다.[與某和親]”라 하였고, 저쪽이 하고자 하였으면 “가 화친을 청하였다.[某請和親]”라 하였다.
凡交質, 曰某某質于某.
무릇 교질交質(옛날에 열국列國이 서로 인질을 교환하던 일)은 “에서 인질을 교환하였다.[某某質于某]”라 하였다.
凡割地, 從小入大, 曰某獻某地于某, 或曰某入某地于某, 或曰某伐某某獻某, 或曰某以某爲成於某,
무릇 할지割地소국小國에서 대국大國으로 편입하는 것은 “에 어느 땅을 바쳤다.[某獻某地于某]”라 하거나 혹 “에 어느 땅을 주었다.[某入某地于某]”, “를 정벌하자 를 바쳤다.[某伐某某獻某]”, “로써 에 화친을 청하였다.[某以某爲成於某]”,
或曰云云某盡入某以謝, 或曰某割某以和于某.
“……某가 를 다 주면서 감사해 하였다.[云云 某盡入某以謝]”, “를 갈라서 에 화친하였다.[某割某以和于某]”라 하였다.
從大入小, 曰某與某某.
대국에서 소국으로 편입하는 것은 “에게 를 주었다.[某與某某]”라 하였다.
凡降附, 正統曰某來降.
무릇 항부降附(投降하고 귀부歸附함)는 정통正統은 “가 와서 항복하다.[某來降]”라 하였다.
◑力致曰降之注+如赤眉之類..
◑무력으로 복속시키는 것은 ‘강지降之注+① 예를 들면 이다.라 하였다.
◑或隨事書之注+如曰南越王稱臣奉貢之類..
◑혹 사안에 따라 기록하였다.注+② 예를 들면 이다.
非正統, 曰某降于某.
비정통非正統은 “에게 항복하다.[某降于某]”라 하였다.
◑或隨事書之注+如衛服屬三晉, 聽命于秦, 韓稱藩于秦, 王陵以兵屬漢, 隨何以九江王歸漢之類..
凡貢獻, 正統曰某遣使入貢, 或云獻某物.
무릇 공헌貢獻정통正統은 “가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某遣使入貢]”라 하거나 혹 “모물某物을 바쳤다.[獻某物]”注+① 예를 들면 이다.라 하였다.
非正統曰某遣使貢獻于某, 或曰獻某物注+如趙使藺相如獻璧于秦之類..
비정통非正統은 “가 사신을 보내어 에게 공물을 바쳤다.[某遣使貢獻于某]”라 하거나 혹 “모물某物을 바쳤다.[獻某物]”라 하였다.
역주
역주1 周나라……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辛亥(B.C. 370) 周 烈王 6년에 “齊侯가 周나라에 와서 조회하였다.[齊侯來朝]”라 하였다.
역주2 秦나라……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戊寅(B.C. 343) 周 顯王 26년에 “秦나라가 公子 少官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제후들을 모아 조회하게 하였다.[秦使公子少官帥師會諸侯來朝]”라 하였다.
역주3 韓나라……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丁未(B.C. 254) 秦 昭襄王 53년에 “韓나라 왕이 秦나라에 들어가 조회하였다.[韓王入朝于秦]”라 하였다.
역주4 秦나라……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戌(B.C. 251) 秦 昭襄王 56년에 “가을에 秦나라 왕 稷이 薨하자 태자 柱가 즉위하였다. 韓나라 왕이 상복을 입고 사당에 들어가 조문하였다.[秋 秦王稷薨 太子柱立 韓王衰絰入弔祠]”라 하였다.
역주5 齊나라와……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甲子(B.C. 237) 秦 始皇 10년에 “齊나라와 趙나라가 秦나라에 들어가 주연을 베풀었다.[齊趙入秦置酒]”라 하였다.
역주6 齊나라……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壬辰(B.C. 389) 周 安王 13년에 “齊나라 田和가 魏侯와 楚나라 사람과 魏나라 사람을 濁澤에서 만나 諸侯가 되기를 요구하였다.[齊田和會魏侯楚人衛人于濁澤 求爲諸侯]”라 하였다.
역주7 秦나라……來朝한 일 : 99쪽 역주 171) 참조.
역주8 秦나라가……만난 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壬戌(B.C. 299) 周 赧王 16년에 “秦나라가 楚나라를 정벌하여 성 8개를 빼앗고 드디어 楚나라 임금 槐를 武關에 유인하여 잡아서 돌아갔다.[秦伐楚 取八城 遂誘楚君槐于武關 執之以歸]”라 하였다.
역주9 秦나라가……만난 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丙子(B.C. 285) 周 赧王 30년에 “秦나라가 宛에서 楚나라와 회견하고 趙나라와 中陽에서 회견하였다.[秦會楚于宛 會趙于中陽]”라 하였다.
역주10 齊나라와……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丙寅(B.C. 355) 周 顯王 14년에 “齊나라와 魏나라가 교외에서 만나 사냥을 하였다.[齊魏會田于郊]”라 하였다.
역주11 諸侯들이……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丁丑(B.C. 344) 周 顯王 25년에 “제후들이 京師에 모였다.[諸侯會于京師]”라 하였다.
역주12 齊나라와……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丁亥(B.C. 334) 周 顯王 35년에 “齊나라와 魏나라가 徐州에서 만나 서로 왕으로 칭하자고 하였다.[齊魏會于徐州以相王]”라 하였다.
역주13 濁澤에서……일 : 앞의 역주 175) 참조.
역주14 徐州에서……일 : 앞의 역주 181) 참조.
역주15 漢나라의……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壬戌(B.C. 179) 漢 文帝 원년에 “太中大夫 陸賈를 보내어 南越에 사신 가게 하였다.[遣太中大夫陸賈使南越]”라 하였고, 癸卯(B.C. 198) 漢 高祖 9년에 “겨울에 劉敬을 보내어 匈奴에 사신 가서 화친을 맺게 하였다.[冬 遣劉敬使匈奴 結和親]”라 하였다.
역주16 燕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丙子(B.C. 285) 周 赧王 30년에 “燕나라가 亞卿 樂毅로 하여금 趙나라에 가게 하였다.[燕使亞卿樂毅如趙]”라 하였다.
역주17 秦나라가……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戌(B.C. 311) 周 赧王 4년에 “秦나라가 張儀로 하여금 楚나라, 韓나라, 齊나라, 趙나라, 燕나라를 유세하여 연횡으로 秦나라를 섬기게 하였는데, 秦나라 임금이 卒하여 제후들이 다시 합종을 하였다.[秦使張儀說楚韓齊趙燕連衡以事秦 秦君卒 諸侯復合從]”라 하였고, 그 目에 “燕나라 왕이 常山의 끝에 있는 5성을 바치며 화친을 청하였다. 장의가 돌아가 보고하려는데 咸陽에 도착하기 전에 惠王이 훙하고 아들 武王이 즉위하였다. 무왕은 태자 때부터 장의를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제후들이 소식을 듣고 모두 연횡을 배반하고 다시 합종을 하였다.[燕王請獻常山之尾五城以和 儀歸報未至 而惠王薨 子武王立 武王自爲太子時 不說儀 諸侯聞之 皆畔衡 復合從]”라 하였다.
역주18 黃歇을……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己丑(B.C. 272) 周 赧王 43년에 “楚나라 태자 完이 秦나라에 인질이 되었다.[楚太子完質於秦]”라 하였는데, 그 目에 “왕이 그 말을 따라 黃歇로 하여금 돌아가 楚나라와 화친을 맺게 하였다.[王從之 使歇歸 約親於楚]”라 하였다.
역주19 燕나라가……일 : 101쪽 역주 186) 참조.
역주20 趙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癸卯(B.C. 258) 周 赧王 57년에 “趙나라 公子 勝이 楚나라에 가서 군대를 빌리자, 楚나라 黃歇이 군대를 이끌고 趙나라를 구원하였다.[趙公子勝如楚乞師 楚黃歇帥師救趙]”라 하였다.
역주21 趙나라가……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戊寅(B.C. 283) 周 赧王 32년에 “趙나라가 藺相如로 하여금 秦나라에 璧을 바치게 하였다.[趙使藺相如獻璧于秦]”라 하였다.
역주22 (蘇秦)[張儀] : 저본에는 ‘蘇秦’으로 되어 있으나, 庚戌(B.C. 311) 周 赧王 4년의 기사에 근거하여 ‘張儀’로 바로잡았다. 《朱子全書》의 《資治通鑑綱目》과 《四庫全書》의 《御批資治通鑑綱目》에도 ‘蘇秦’으로 잘못되어 있다.
역주23 赤眉의 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丁亥(27) 後漢 光武帝 建武 3년에 “馮異가 崤底에서 赤眉를 대파시키니 적의 무리들이 동쪽으로 달아났다. 황제가 군사를 통솔하여 宜陽에서 항복시키고 傳國의 옥새와 인끈을 얻었다.[馮異大破赤眉於崤底 賊衆東走 帝勒軍宜陽降之 得傳國璽綬]”라 하였다.
역주24 南越王이……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乙巳(B.C. 196) 漢 高祖 11년에 “5월에 옛 秦나라 南海尉 趙佗를 南粤王으로 삼았다.[五月 立故秦南海尉趙佗爲南粤王]”라 하였다.
역주25 衛나라가……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乙亥(B.C. 346) 周 顯王 23년에 “衛나라가 칭호를 낮추어 侯로 하고 三晉에 복속되었다.[衛貶號曰侯 服屬三晉]”라 하였다.
역주26 秦나라의……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丁未(B.C. 254) 秦 昭襄王 53년에 “魏나라 전체가 秦나라의 명에 따랐다.[魏擧國聽令於秦]”라 하였다.
역주27 韓나라가……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戌(B.C. 311) 周 赧王 4년에 “秦나라가 張儀로 하여금 楚나라, 韓나라, 齊나라, 趙나라, 燕나라를 유세하여 연횡으로 秦나라를 섬기게 하였는데, 秦나라 임금이 卒하여 제후들이 다시 합종을 하였다.[秦使張儀說楚韓齊趙燕連衡以事秦 秦君卒 諸侯復合從]”라 하였는데, 그 目에 “韓나라와 梁나라가 번신으로 칭하였다.[韓梁稱藩臣]”라 하였다.
역주28 王陵이……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乙未(B.C. 206) 漢 漢王 원년에 “王陵이 군사를 이끌고 漢나라에 귀속하였다.[王陵以兵屬漢]”라 하였다.
역주29 隨何가……일 : 《資治通鑑綱目》에서 丁未(B.C. 204) 漢 漢王 3년에 “隨何가 九江王 黥布를 漢나라에 귀부시켰다.[隨何以九江王布歸漢]”라 하였다.
역주30 趙나라가……경우 : 102쪽 역주 191) 참조.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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