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諫大夫杜延年이 言호되 年歲比不登하여 流民未盡還하니 宜修孝文時政하여 示以儉約寬和하여 順天心하고說民意하면 年歲宜應하리이다
光이 納其言하고 詔有司하여 問郡國所擧賢良, 文學 民所疾苦와 敎化之要한대
皆對호되 願罷鹽, 鐵, 酒榷, 均輸官하여 毋與天下爭利하여 示以儉節이니 然後에 敎化를 可興이라하다
桑弘羊
이 難
하여 以爲此國家大業
이라 所以制四夷, 安邊足用之本
이니 不可廢也
注+難, 乃旦切.라하니
於是
에 鹽鐵之議 起焉
注+議罷鹽鐵之官, 百姓皆得鬻鹽鑄錢.하니라
目
[目] 간대부諫大夫 두연년杜延年이 아뢰기를 “농사에 계속 곡식이 여물지 않아서 유리流離하는 백성들이 다 돌아오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효문황제孝文皇帝 때의 정사를 닦아서 검약과 너그러움과 온화함을 보여주어 천심天心에 순응하고 민심民心을 기쁘게 하면, 연사年事(농사)가 마땅히 응할 것입니다.” 하였다.
곽광霍光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고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군국郡國에서 천거한 현량賢良과 문학文學들에게 백성들이 고통으로 여기는 것과 교화의 요점을 물었는데,
모두 대답하기를 “염鹽, 철鐵과 주각酒榷(주각, 술을 전매하는 관원)과 균수관均輸官을 파하여 천하天下와 더불어 이익을 다투지 말아서 근검절약勤儉節約을 보여주어야 하니, 그런 뒤에야 교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홍양桑弘羊은 논란하여 이르기를 “이는 국가의 큰 사업이라서 사방 오랑캐들을 제어하며 변경을 편안하게 하고 재정을 풍족하게 하는 근본이니, 폐지할 수 없다.”
注+난難(논란하다)은 내단乃旦의 절切이다. 하였다.
이에
염鹽‧
철鐵을 폐지하자는 의논이 일어나게 되었다.
注+〈“염철지의鹽鐵之議 기언起焉”은〉 염鹽‧철鐵의 관원을 파罷하여 백성들이 모두 소금을 팔고 돈을 주조할 수 있게 할 것을 의논한 것이다.
目
[目] 이전에
소무蘇武는
이릉李陵과 함께
시중侍中이 되었었는데, 이릉이
흉노匈奴에 항복하자
선우單于가 그를
북해北海 가로 보내, 소무를 위하여 술자리를 베풀고 풍악을 진열하고서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 수위誰爲와 자위子爲도 같다. 다음과 같이 설득하게 하였다.
“선우는 나(이릉)와
자경子卿(
소무蘇武)이 평소 친하다는 말을 듣고
注+자경子卿은 소무蘇武의 자字이다. 나를 보내어
족하足下를 설득하게 하였으니, 마음을 비우고 서로 대하고자 한다.
그대가 끝내
한漢나라에 돌아가지 못하고 부질없이 사람이 없는 땅에서 스스로 고생한다면, 신의를 어디에 나타내 보이겠는가.
注+무亡(없다)는 무無와 같이 읽는다. 현見(나타내다)은 현편賢遍의 절切이다.
족하의 형제들은 모두 일에 연루되어 자살하였고
태부인太夫人(모친)은 이미 불행히 별세하였고 부인 또한
개가改嫁하였으며,
注+“불행不幸”은 죽음을 이른다. 경更(다시)은 평성平聲이다. 오직 여동생과 자녀가 있는데 생존 여부를 알 수 없다.
注+〈“여제남여女弟男女”는〉 여동생 두 명과 두 딸과 한 아들이다.
인생은 아침 이슬처럼 허무하니, 어찌 스스로 고생하기를 이와 같이 한단 말인가.
注+〈“인생여조로人生如朝露”는〉 아침 이슬은 햇빛이 나타나면 마르니, 사람 목숨의 짧음이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또 폐하陛下의 춘추春秋(연세)가 높으시어 법령法令에 일정함이 없어서 대신大臣들 중에 죄 없이 죽고 멸망한 자가 수십 가호이니, 편안하고 위태로움을 장담할 수 없는데, 자경子卿은 다시 누구를 위한단 말인가.”
“우리 부자父子는 공功과 덕德이 없는데, 모두 폐하陛下께서 성취해주시어 열후列侯의 지위에 오르고 통후通侯의 관작을 받았다.
나는 항상 자신의
간肝과
뇌腦를 땅에 발라(
사력死力을 다해) 국가에 충성하기를 원하였으니,
注+소무蘇武의 아버지 소건蘇建이 교위校尉로서 위청衛靑을 종군하여 흉노匈奴를 공격하고 평릉후平陵侯에 봉해졌다. 지금 몸을 죽여 스스로 목숨을 바칠 수 있다면 진실로 기꺼이 즐겁게 여길 것이다.
신하가 군주를 섬김은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과 같으니,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죽는다면 한탄할 것이 없는 것이다.
目
[目] 이때에 흉노匈奴의 국내가 괴리되어 항상 한漢나라 군대가 습격할 것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이에 한漢나라와 화친하고 마침내 소무蘇武와 마굉馬宏 등을 귀환시켰다.
마굉은 예전에
서역西域의 나라에 사신 갔다가 흉노에게 막혀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 또한 항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注+“서국西國”은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를 이른다.
그러므로 흉노는 이 두 사람을 귀환시켜 좋은 뜻을 통하고자 하였다.
이에 이릉李陵은 술자리를 베풀어 소무를 축하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족하足下는 흉노에 이름을 드날리고
한漢나라에
공功이 드러났으니, 비록 옛날
죽백竹帛에 기재된 사람과
단청丹靑에 그려진 인물이라도 어찌
자경子卿보다 더할 수 있겠는가.
注+옛날에는 종이가 없어서 글을 쓸 적에 죽간竹簡을 사용하고 혹은 비단을 사용하였으므로 죽백竹帛이라 하였으니, 죽백은 청사靑史라는 말과 같다.
나는 비록 노둔하고 겁이 많으나,
한漢나라가 나의 죄를 용서하고
노모老母를 온전히 하여
注+세貰는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이다. 나로 하여금 큰 치욕을 씻으려는 깊은 뜻을 분발하게 하였다면,
조귀曹劌가
가柯 땅에서 한 맹약을 거의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니, 이는 내가 평소에 잊지 않은 마음이었다.
注+선우單于를 겁박하기를 조귀曹劌가 가柯 땅의 맹약에서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위협할 때와 같이 하려 함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한漢나라에서는 나의 종족들을 멸하여 세상의 큰 살육殺戮이 되었으니, 내 다시 무엇을 돌아보겠는가.
자경子卿으로 하여금 내 마음을 알게 할 뿐이다.”
이릉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서 소무와 작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