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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8)

자치통감강목(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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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강목(18)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宋大明四年이요 魏和平元年이라
◑夏六月 魏伐吐谷渾하다
吐谷渾王拾寅 兩受宋魏爵命하고 居止出入 擬於王者 魏人忿之하여 遣陽平王新成等하여 督諸軍以擊之하니 虜獲甚衆注+新成, 魏主之弟.이러라
崔浩之誅 史官遂廢러니 至是復置하다
冬十月 宋殺其廬陵内史周朗하다
言事切直하니 宋主銜之하여 使有司 奏朗居母喪不如禮라하고 傳送寧州하여 於道殺之注+傳, 知戀切.하다
朗之行也 侍中蔡興宗 方在直하여 請與朗别하니 坐白衣領職하다
宋以顔師伯爲侍中하다
師伯 以諂佞被親任하여 群臣莫及이라 多納貨賄하니 家累千金이러라
宋主 嘗與之樗蒲할새 宋主 擲得雉하고 自謂必勝이러니 師伯 次擲得盧하니 宋主失色이어늘
師伯 遽斂子曰 幾作盧라하고 是日 一輸百萬注+擲, 投也. 子, 五木也. 樗蒲譜云 “𢳚二, 撅三, 黑四, 搨五, 退六, 白八, 進九, 犢十, 塞十一, 開十二, 野十四, 盧十六.” 又云 “兩犢三黑曰盧, 兩雉三白曰白, 兩犢三白曰犢, 兩雉三黑曰雉, 已上謂之貴采. 一犢一雉一白二黑曰𢳚, 一雉一犢一黑二白曰撅, 二犢二黑一白曰秃, 二雉二白一黑曰搨, 二雉二黑一白曰進, 二犢二白一黑曰退, 一雉一犢三白曰開, 一雉一犢三黑曰塞. 秃又爲里也.” 𢳚, 音犍. 搨, 都盍切.하다
柔然攻髙昌하여 殺沮渠安周하다
柔然 攻髙昌하여 殺沮渠安周하고 滅沮渠氏하고 以闞伯周 爲髙昌王하니 髙昌稱王 自此始러라


나라 세조世祖 효무제孝武帝 유준劉駿 대명大明 4년이고, 북위北魏 고종高宗 문성제文成帝 탁발준拓跋濬 화평和平 원년이다.
[] 봄 정월에 송주宋主(효무제孝武帝)가 적전籍田을 가는 예를 행하고, 3월에 황후皇后서교西郊에서 친히 양잠養蠶하는 예를 행하고, 태후太后를 살펴보았다.
[] 여름 6월에 북위北魏토욕혼吐谷渾을 정벌하였다.
[] 토욕혼왕吐谷渾王 모용습인慕容拾寅나라와 북위北魏 양쪽에서 준 작명爵命을 받고는 행동거지와 출입(경필警驆)하는 것이 제왕帝王에 견주었다. 그러자 북위北魏 사람들이 분노하여 양평왕陽平王 탁발신성拓跋新成注+① 拓跋新成은 魏主(文成帝)의 아우이다. 등을 보내어 여러 군대를 감독하여 공격하게 하니, 포로와 노획물이 매우 많았다.
[] 북위北魏가 다시 사관史官을 두었다.
[] 최호崔浩가 주륙되고 나서 사관史官이 마침내 폐기되었는데 이때에 와서 다시 두었다.
[] 겨울 10월에 나라가 여릉내사廬陵内史 주랑周朗을 죽였다.
[] 주랑周朗이 일을 말할 적에 간절하며 솔직하니 송주宋主(효무제孝武帝)는 앙심을 품고서 유사有司에게 주랑이 모친의 상중에 예법대로 하지 않는다고 아뢰게 하고 파발마로注+① 傳(파발마)은 知戀의 切이다. 영주寧州에 압송하여 도중에 주랑을 죽였다.
주랑이 출발할 적에 시중侍中 채흥종蔡興宗이 마침 당직이어서 주랑과 이별하기를 청하였는데 이것에 연루되어 로 직책을 담당하였다.
[] 나라가 안사백顔師伯시중侍中으로 삼았다.
[] 안사백顔師伯이 아첨으로 송주宋主(효무제孝武帝)의 친애와 신임을 받아 여러 신하들이 미치지 못하였다. 뇌물을 많이 받으니 집안에 천금을 쌓아두었다.
송주宋主가 일찍이 안사백과 놀이를 하였을 때에 송주宋主오목五木을 던져서 를 얻고는 스스로 반드시 이길 것이라 생각하였다. 안사백이 다음에 던져서 를 얻으니 송주宋主실색失色하자,
안사백은 갑자기 오목五木[]을 거두면서 말하기를 “거의 가 나올 뻔하였습니다.”라고 하고, 이날 모두 1백만 을 잃었다.注+① 擲은 던짐이다. 子는 五木(나무로 만든 다섯 개 패나 주사위)이다. ≪樗蒲譜≫에 “〈五木을 던졌을 때에〉 𢳚은 2이고 撅은 3이고 黑은 4이고, 搨은 5이고 退는 6이고, 白은 8이고 進은 9이고 犢은 10이고 塞은 11이고 開는 12이고 野는 14이고 盧는 16이다.” 또 말하기를, “〈五木을 던져〉 2犢 3黑이 나온 것을 盧라 하고, 2雉 3白이 나온 것을 白이라 하고, 2犢 3白이 나온 것을 犢이라 하고, 2雉 3黑이 나온 것을 雉라 하니 이상을 貴采라고 한다. 1犢 1雉 1白 2黑이 나온 것을 𢳚이라 하고, 1雉 1犢 1黑 2白이 나온 것을 撅이라 하고, 2犢 2黑 1白이 나온 것을 秃이라 하고, 2雉 2白 1黑이 나온 것을 搨이라 하고, 2雉 2黑 1白이 나온 것을 進이라 하고, 2犢 2白 1黑이 나온 것을 退라 하고, 1雉 1犢 3白이 나온 것을 開라 하고, 1雉 1犢 3黑이 나온 것을 塞라 한다. 秃은 또 里라고도 한다.” 하였다. 𢳚는 音이 犍이다. 搨은 都盒의 切이다.
[] 유연柔然고창髙昌을 공격하여 저거안주沮渠安周를 죽였다.
[] 유연柔然고창髙昌을 공격하여 저거안주沮渠安周를 죽이고, 저거씨沮渠氏를 멸망시키고, 감백주闞伯周고창왕髙昌王으로 삼았다. 고창이 을 일컬은 것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역주
역주1 春正月……太后觀禮 : “‘親耕(황제가 친히 밭을 갈았다.)’이라고 기록한 것은 많으나 ‘親蠶(황후가 친히 양잠하다.)’이라고 기록한 것은 없었는데, ‘親蠶’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째서인가. 근본을 중시함을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 漢 文帝 때에 ‘詔具親耕桑禮儀(조서를 내려서 친히 밭을 갈며 양잠하는 예의를 갖추게 하였다.)’라고 기록한 데서부터 이때에 비로소 ‘親蠶’을 기록하였으니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은 근본(농사와 양잠)을 중시하였으므로 ‘具親耕桑禮儀’라고 기록하고(漢 文帝 12년), ‘親蠶’이라고 기록하고(이해(460)), ‘皇后帥命婦親蠶(皇后가 命婦들을 데리고서 친히 양잠하였다.)’이라고 기록하고(唐 太宗 貞觀 원년(627)), ‘祀先蠶(養蠶의 神에 제사하였다.)’이라고 기록하고(唐 髙宗 上元 2년(675)), ‘賜近臣絲(近臣에게 명주실[絲]을 내려주었다.)’라고 기록하였다(唐 玄宗 開元 15년(727)).[書親耕多矣 未有書親蠶者 書親蠶何 嘉重本也 自漢文帝書詔具親耕桑禮儀 於是始書親蠶 嘉之也 綱目重本 故具親耕桑禮儀書(漢文帝十二年) 親蠶書(是年) 皇后帥命婦親蠶書(唐太宗貞觀元年) 祀先蠶書(唐髙宗上元二年) 賜近臣絲書(唐玄宗開元十五年)]” ≪書法≫
역주2 魏復置史官 : “‘復置’라고 기록한 것은 어째서인가. 오랫동안 폐기했기 때문이다. 崔浩가 죽고 나서 이때에 13년이 되었으므로 ‘復(다시)’라고 기록하여 나무란 것이다.[書復置何 久廢也 自崔浩之死 於是十三年矣 故書復譏之]” ≪書法≫
역주3 白衣 : 벼슬이 없이 직책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역주4 樗蒲 : 놀이나 노름의 하나로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주사위나 윷놀이와 비슷하거나 쌍륙놀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는 나무로 만든 다섯 개의 投子로 하는 놀이를 말하는데, 다섯 개의 투자마다 兩面의 한쪽에는 黑色을 칠하고 송아지를 그렸으며, 다른 쪽에는 白色을 칠하고 꿩을 그렸는데, 이 다섯 투자를 던져서 모두 흑색을 얻으면 ‘盧’라고 외쳤다. 아래 訓義의 내용은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

자치통감강목(18)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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