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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4)

자치통감강목(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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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年이라
趙建平二年이라
春三月朔 日食하다
趙令公卿以下 歲舉賢良方正하고 仍令舉人으로 得更相薦引하여 以廣求賢之路하고 起明堂, 辟雍, 靈臺於襄國城西하다
秋九月 趙營鄴宫하다
趙主勒 如鄴하여 將營新宫이러니 廷尉續咸 苦諫注+續, 姓也.한대하여 欲斬之하다
徐光 曰 咸言 不可用이나 亦當容之 奈何一旦以直言斬列卿乎잇가
嘆曰 爲人君하여 不得自專 如是乎 匹夫家貲滿百匹 猶欲市宅이어든 況富有四海乎 此宫 終當營之로되 且勅停作하여 以成吾直臣之氣라하고 因賜咸絹百匹이러니
至是하여 復營鄴宫하고 以洛陽爲南都하여 置行臺하다
有事於太廟하다
烝祭太廟하고 詔歸胙於司徒導하고 且命無下拜한대 導辭疾하고 不敢當注+冬祭曰烝祭, 餘肉曰胙. 齊世家 “周襄王使宰孔賜桓公胙, 命無拜. 管仲曰 ‘不可.’ 乃下拜受胙.” 晉以周之禮齊桓公者, 禮王導.하다
帝即位沖幼 每見導 必拜하고 與導手詔 則云皇恐言이라하고 中書作詔 則曰敬問이라하다
有司議元會日 帝應敬導不注+元會日, 元旦日朝會. 不, 讀曰否.하니 博士郭熙 以爲禮無拜臣之文이니이다
侍中馮懐 以爲天子臨辟雍하여 拜三老하시니 況先帝師傅 謂宜盡敬이니이다
侍中荀奕曰注+弈, 組之子也. 三朝之首 宜明君臣之體注+元朝爲三朝, 謂歲之朝․月之朝․日之朝. 若他日小會 自可盡禮라하니 詔從之하다
慕容廆遣使하여 詣太尉侃하다
廆僚屬 議共表請進廆官爵한대 參軍韓恒 駁曰
立功者 患信義不著 不患名位不髙 宜繕甲兵하여 除凶逆이니 功成之後 九錫自至 比於邀君以求寵이면 不亦榮乎잇가 廆不悦이러라
於是 遣使與陶侃牋하여 勸以興兵北伐하여 共清中原하니 而東夷校尉封抽等 疏上侃府하여 請封廆爲燕王이어늘
復書曰 夫功成進爵 古之成制也 車騎雖未能爲國摧勒이나 然忠義竭誠注+前封廆爲車騎將軍. 勒, 謂石勒也.이라 今騰牋上聽하니 可不遲速 當在天臺也注+騰牋上聽, 謂騰牋以達上聽. 不, 讀曰否. 天臺, 尊晉室也.니라


[] 나라(동진東晉) 현종顯宗 성황제成皇帝 함화咸和 6년이다.
[] 나라(후조後趙) 고조高祖 석륵石勒 건평建平 2년이다.
[] 봄 3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 여름에 나라(후조後趙)가 현량賢良방정方正을 천거하고 명당明堂, 벽옹辟雍, 영대靈臺를 세웠다.
[] 나라는 공경公卿 이하들로 하여금 해마다 현량賢良방정方正을 천거하게 하고, 인하여 천거된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서로 훌륭한 사람을 천거하여 현자를 구하는 길을 넓히게 하였으며, 명당明堂벽옹辟雍, 영대靈臺양국성襄國城 서쪽에 세웠다.
[] 가을 9월에 나라(후조後趙)가 업궁鄴宫을 경영하였다.
[] 처음에, 조주趙主 석륵石勒에 가서 장차 새 궁궐을 경영하려 하였는데, 정위廷尉 속함續咸注+① 續은 姓이다. 굳이 하자, 석륵이 노하여 그를 참수하고자 하였다.
서광徐光이 말하기를 “속함의 말은 받아들일 수 없으나 또한 마땅히 그를 용서해야 하니, 어찌 직언을 한다 하여 하루아침에 열경列卿을 참수할 수 있습니까.” 하였다.
석륵이 탄식하기를 “인군人君이 되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단 말인가. 필부匹夫의 집에서도 재물이 비단 백 필만 되어도 집을 사려고 하는데, 하물며 부유함이 사해四海를 소유함에 있어서랴. 이 궁궐은 끝내 경영할 것이나, 우선 중지한다는 명을 내려서 나의 직신直臣기개氣槪를 이루어주겠다.” 하고는, 인하여 속함에게 비단 백 필을 하사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다시 의 궁궐을 경영하고, 낙양洛陽남도南都로 삼아서 행대行臺를 설치하였다.
[] 겨울에 태묘太廟에 제사를 지냈다.
[] 태묘太廟증제烝祭를 지내고 조령詔令을 내려 제사 고기를 사도司徒 왕도王導에게 보내고注+① 겨울 제사를 烝祭라 하고, 제사 지낸 뒤의 고기를 胙라 한다. ≪史記≫ 〈齊世家〉에 “周나라 襄王이 宰孔을 보내 齊나라 桓公에게 제사 고기를 하사하면서 절하지 말라고 명하였는데, 管仲이 말하기를 ‘불가합니다’ 하여, 환공이 마침내 堂下에 내려가 제사 고기를 받았다.” 하였으니, 晉나라는 周나라에서 齊나라 桓公에게 예우한 것으로 王導를 예우한 것이다.당하堂下에 내려가 절하지 말도록 명하자, 왕도는 병으로 사양하고서 감히 이 명을 받들지 못하였다.
처음에 황제( 성제成帝)가 즉위했을 때에 나이가 어렸다. 그리하여 매번 왕도를 볼 때마다 반드시 절하였고, 왕도에게 손수 쓴 조서詔書를 내릴 때에는 “황공하게도 말한다.”라고 하였고, 중서성中書省에서 조서를 지으면 “공경히 묻는다.”라고 하였다.
유사有司가 정월 초하루에 신하들을 조회할 때에 황제가 마땅히 왕도를 공경할 것인가의 여부를 의논하니,注+② “元會日”은 정월 초하루에 신하들을 朝會하는 날이다. 不는 否로 읽는다. 박사博士 곽희郭熙가 이르기를 “예서禮書에는 군주가 신하에게 절한다는 글이 없습니다.” 하였다.
시중侍中 풍회馮懐가 말하기를 “천자天子벽옹辟雍에 가서 삼로三老에게 절하니, 더구나 선제先帝사부師傅이신 왕도에게는 마땅히 공경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시중侍中 순혁荀奕注+③ 荀奕은 荀組의 아들이다. 말하기를 “정월 초하루[군신간君臣間의 예의를 밝혀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훗날 왕도와 회동할 때에는 저절로 그에게 공경하는 예를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조령詔令을 내려 순혁의 말을 따르게 하였다.
[] 모용외慕容廆가 사자를 보내어 태위太尉 도간陶侃을 방문하게 하였다.
[] 모용외慕容廆요속僚屬들이 함께 표문表文을 올려서 모용외의 관작을 올려달라고 청할 것을 의논하자, 장군 한항韓恒이 논박하여 말하기를
을 세우는 자는 신의信義가 드러나지 못함을 염려하고, 명칭과 지위가 높지 못함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갑옷과 병기를 수선하여 흉역凶逆을 제거하여야 하니, 이 이루어진 뒤에는 이 저절로 이를 것입니다. 군주에게 요구하여 은총을 구하는 것에 비하면 영광스럽지 않겠습니까.” 하니, 모용외가 기뻐하지 않았다.
[] 이때에 모용외가 사자를 보내어 도간陶侃에게 군대를 일으켜 북쪽(후조後趙)을 공격해서 함께 중원中原을 깨끗이 소탕할 것을 권하는 글을 보내니, 동이교위東夷校尉 봉추封抽 등이 도간의 에 글을 올려서 모용외를 연왕燕王으로 봉해줄 것을 청하였다.
도간이 답서에 이르기를 “이 이루어지면 작위를 올려주는 것은 옛날에 이루어진 제도이다. 거기장군車騎將軍(모용외)이 비록 나라를 위하여 석륵石勒을 꺾지는 못하였으나,注+① 예전에 慕容廆를 車騎將軍으로 봉하였다. 勒은 石勒을 이른다. 충성스럽고 의로우며 정성을 다하였다. 이제 글을 올려 성상聖上에게 보고하려 하니, 승진 여부와 그 더디고 빠름은 천대天臺의 결정에 달려 있다.”注+② “騰牋上聽”은 글을 올려서 聖上에게 아뢴 것을 이른다. 不는 否로 읽는다. 天臺는 晉나라 황실을 높인 것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趙舉賢良……靈臺 : “趙나라는 오랑캐이다. 그런데 ≪資治通鑑綱目≫에서 이것을 썼으니, 또한 오랑캐를 인정한 것인가. 도적이 도적질을 하는 것은 진실로 도적이 늘 하는 일이지만, 도적이 군자의 일을 하였으니 군자 또한 어찌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진실로 ≪자치통감강목≫의 書法의 뜻이다. 그러나 중국이 강하지 못해서 오랑캐들로 하여금 중국의 문물을 도적질하게 하였으니, 오랑캐는 진실로 칭찬하여 높일 수 있지만, 장차 중국을 어찌한단 말인가. 아! 슬프다.[趙 夷狄也 綱目書此 亦予之乎 曰 盗賊而爲盗賊之事 固盗賊之常也 盗賊而爲君子之事 君子亦豈得不予之哉 此固書法之意也 雖然 中國不競 而使夷狄得以竊中國之文物 夷狄固可進也 其如中國何哉 噫]” ≪發明≫
역주2 九錫 : 天子가 공로가 있는 신하에게 내리는 아홉 가지 恩典으로, 車馬, 衣服, 樂器, 朱戶, 納陛, 虎賁, 弓矢, 鈇鉞, 秬鬯을 이른다.

자치통감강목(14) 책은 2021.11.1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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