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美水令 張統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行唐公 符洛은 上(符堅)의 從弟입니다. 용맹이 當今의 으뜸이니, 만약 그를 받들어 맹주로 삼아서 여러 호걸을 거느리게 하면 呂光이 비록 이곳에 오더라도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할 것이니, 그의 정예 병력을 이용하여 동쪽으로
를 연합해서 흉악한 반역자들을 소탕하고 황실을 편안히 하면 이는 齊 桓公과 晉 文公과 같은 霸者의 일입니다.”
注+① ≪資治通鑑≫에 “동쪽으로 毛興을 겸하고 王統과 楊璧을 연합하여 4개 州의 무리를 모은다.”라고 하였고, 그 註에 “모흥은 이때 河州刺史였고, 왕통은 이때 秦州刺史였고, 양벽은 이때 南秦州刺史였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梁熙는 또다시 듣지 않고 西海에서 부락을 죽였다.
注+② 위의 太元 5년(380)에 符洛이 배반하여 사로잡혔는데, 符堅이 용서하여 죽이지 않고 涼州의 西海郡으로 귀양 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