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7. 崩葬
7. 붕장崩葬
능묘陵廟, 추존追尊, 개장改葬에 관한 사항
凡正統曰崩注+因其舊史臣子之辭., 在外則地注+秦始皇‧漢安帝之類.. 未踰年不成君曰薨注+本漢北鄕侯.. 失尊曰卒注+如周赧‧漢獻之類..
무릇 정통正統은 임금이 승하한 경우 ‘注+① 그 구사舊史에 신하들이 한 말을 따랐다.이라 하고, 지방에서 죽으면 지명을 기록하고注+이다., 해를 넘기지 않은 불성군不成君의 경우는 ‘注+나라 의 기록에 근거하였다.이라 하고, 지위를 잃은 경우는 ‘注+④ 예를 들면 이다.이라 하였다.
其太皇太后‧皇太后‧皇后, 皆曰某后某氏崩. 自殺曰自殺注+謂罪疑者., 有罪卽加有罪字注+上文已書反逆者, 不必加有罪字. 如衛后‧戾太子是., 無罪而以幽死者曰幽殺之注+自殺亦同..
태황태후太皇太后황태후皇太后, 황후皇后가 죽으면 모두 “모후某后 모씨某氏하였다.[某后某氏崩]”라 하고, 자살自殺한 경우는 ‘자살自殺注+가 의심스러운 것을 말한다.이라 하고, 가 있으면 곧 ‘유죄有罪’ 2자를 추가하며注+상문上文에서 이미 반역反逆이라고 썼으면 ‘유죄有罪’ 2자를 추가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면 이다., 죄가 없는데도 유폐幽閉되어 죽었으면 ‘유살지幽殺之注+자살自殺도 같다.라 하였다.
廢后不書, 因事見者曰卒, 自殺者曰自殺, 國亡身廢, 守節不移, 而國統尋復者, 則存其故號而書崩注+孝平皇后..
폐후廢后는 기록하지 않는데 사건으로 인하여 나타내는 경우에는 ‘’이라 하고, 자살自殺을 하였으면 ‘자살自殺’이라 하고, 나라가 망하고 몸은 폐위되었으나 수절守節하여 뜻을 바꾸지 않다가 국통國統이 회복된 경우는 그 고호故號가 있으면 ‘注+이다.이라 하였다.
秦漢以後, 王侯死皆曰卒, 賢者則注云諡曰某注+按劉秘丞說, 凡諸侯王以下, 當依陸淳例書卒, 溫公以爲確論, 而恨周秦漢紀不可請本追改, 則是已覺通鑑書薨之失而悔之矣. 陸淳說見春秋纂例, 蓋薨乃臣子之辭, 不當施之於國史也. 今從其說. ◑又諡, 非生者之稱, 而通鑑以諡加於薨卒之上, 亦非是. 今亦正之. 然非賢者, 則虛美之稱, 亦無所取, 故不復書.. 自殺者如后例注+反逆如七國者, 不復言有罪..
진한秦漢 이후는 가 죽으면 모두 ‘’이라 하고, 현자賢者인 경우는 에 ‘시왈모諡曰某注+⑨ 살피건대 이 말한 “제후왕 이하는 의 사례와 같이 로 써야 한다.”라는 것을 온공溫公이 명확한 의론이라고 하면서도 이미 진상進上한 〈주기周紀〉, 〈진기秦紀〉, 〈한기漢紀〉의 대본을 추후 개정할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이는 이미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이라 쓴 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후회한 것이다. 육순陸淳의 말은 《춘추찬례春秋纂例》에 보인다. 대체로 은 바로 그 신하들이 하는 말이니, 마땅히 국사國史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제 그 학설을 따른다. 또 시호諡號는 산 사람에 대한 칭호가 아닌데,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는 시호諡號의 위에 더하였으니 또한 잘못되었다. 이제 역시 바로잡는다. 그러나 현자賢者가 아니라면 시호가 헛되이 기리는 칭호가 될 것이니, 또한 취할 바가 없으므로 더 이상 시호를 이름 아래에 쓰지 않았다.라 하고, 자살自殺한 경우는 범례凡例와 같이 하였다.注+반역反逆칠국七國(吳楚七國)과 같은 것은 다시 죄가 있음을 말하지 않았다.
僭國之君稱帝者曰某主姓某卒, 稱王公者曰某王公姓某卒注+按溫公引三十國春秋諸國之君皆書卒..
참국僭國의 임금으로 칭제稱帝한 자는 “모주某主 성모姓某하였다.[某主姓某卒]”라 하고, 칭왕공稱王公한 자는 “모왕공某王公 성모姓某하였다.[某王公姓某卒]”注+⑪ 살피건대 온공溫公이 인용한 《삼십국춘추三十國春秋》의 여러 나라의 임금은 모두 이라고 하였다.라 하였다.
后夫人不書, 因事而見者曰某號某氏卒.
후부인后夫人은 쓰지 않았고 사건으로 인하여 나타낸 것은 “모호某號 모씨某氏하였다.[某號某氏卒]”라 하였다.
凡無統之君稱帝者, 曰某王某殂. 稱王公者, 曰某王公某薨注+上無天子, 故得因其臣子之辭.,
무릇 무통無統의 임금이 칭제稱帝한 경우는 “모왕某王 하였다.[某王某殂]”라 하였고, 칭왕공稱王公한 경우는 “모왕공某王公 하였다.[某王公某薨]”注+① 위로 천자天子가 없으므로 그 신하들이 하는 말을 따른 것이다.라 하였다.
其后夫人如僭國例.
후부인后夫人참국僭國범례凡例와 같다.
凡蠻夷君長曰死注+匈奴單于‧烏孫昆彌..
무릇 만이蠻夷군장君長은 ‘注+이다.라 하였다.
凡盜賊酋帥曰死注+隗囂之類..
무릇 도적盜賊의 대장은 ‘’라 注+이다.하였다.
凡正統之君, 廢爲王公而死者, 書卒而注其諡.
무릇 정통正統의 임금이 폐위되어 왕공王公으로 죽은 경우에는 이라 쓰고 그 시호를 주석으로 달았다.
凡正統之君, 葬注+驪山‧萬年‧長陵以下., 立廟注+太上皇廟‧高廟之類., 預作陵注+漢景作陽陵邑, 募民徙居之類.‧廟注+漢文作顧成廟之類., 追崇廟號注+漢太祖‧太宗‧世宗‧中宗之類., 皆隨事書之.
모든 정통正統의 임금은 장례葬禮 지내고注+ 이하의 경우이다., 사당[廟]을 세우며注+이다., 미리 注+이다.과 사당注+이다.을 만들고, 묘호廟號注+이다.추숭追崇한 것은 모두 사안에 따라 기록하였다.
凡正統之后特葬, 曰葬某諡皇后于某注+自漢宣帝許后始有諡, 而書葬如此例., 合葬不地注+如漢光武‧昭烈之類., 不當合而合, 則特書合葬某陵注+漢哀帝, 傅太后合葬渭陵之類..
모든 정통正統단릉單陵으로 장례 지내는 경우 “모시황후某諡皇后모릉某陵에 장례 지냈다.[葬某諡皇后于某]”注+ 이 사례와 같이 장례를 기록하였다.라 하였고, 합장合葬은 왕과 왕후를 구분하지 않았고注+② 예를 들면 이다., 합장을 해서는 안 되는데 합장을 한 경우는 특별히 “모릉某陵에 합장하였다.[合葬某陵]”注+이다.라 썼다.
凡僭國無統之君, 陵廟因事乃書, 無事則見之注下注+因事如魏作壽陵, 立三祖廟之類..
모든 참국僭國무통無統의 임금은 능묘陵廟를 사안을 통해서만 기록하였고, 사안이 없으면 주석에서 나타내었다.注+① 사안에 따른 것은 예를 들면 이다.
其后夫人亦然.
후부인后夫人도 같다.
凡正統, 追尊‧改葬‧立廟皆書注+漢高祖五年, 昭靈夫人. 昭帝, 鉤弋夫人. 宣帝追諡戾太子‧悼考‧悼后, 置園邑, 追尊悼考爲皇考, 立寢廟. 哀帝定陶共王去定陶之號. 光武立四親廟於洛陽, 徙章陵..
역주
역주1 秦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秦 始皇은 辛卯(B.C. 210) 秦 始皇帝 37년에 “가을 9월에 砂丘에 이르러 崩하였다.[秋七月 至沙丘崩]”라 하고, 安帝는 乙丑(125) 後漢 安帝 延光 4년에 “황제가 葉에서 崩하고 궁으로 돌아와 발상하였다.[帝崩于葉 還宮發喪]”라 하였다.
역주2 北鄕侯 : 後漢의 제7대 임금인 劉懿이다. A.D. 125년 3월에 安帝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나 동년 10월에 병으로 죽었다. 《資治通鑑綱目》에서 乙丑(125) 後漢 安帝 延光 4년에 3월에는 “北鄕侯 劉懿를 맞이하여 즉위하였다.[迎北鄕侯懿入卽位]”라 하고, 10월에는 “북향후가 죽었다.[北鄕侯薨]”라 하였다.
역주3 周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赧王은 乙巳(B.C. 256) 周 赧王 59년에 “秦나라가 마침내 周나라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니 왕이 秦나라에 들어가 周나라 땅을 바치고 돌아와 卒하였다.[秦遂入寇 王入秦 盡獻其地 歸而卒]”라 하고, 獻帝는 甲寅(234) 蜀漢 後主 建興 12년에 “3월에 山陽公이 卒하였다.[三月 山陽公卒]”라 하였다.
역주4 衛后와……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寅(B.C. 91) 漢 武帝 征和 2년에 “황제가 甘泉宮에 갔다. 가을 7월에 황태자 據가 사자 江充을 살해하니, 황후가 군사를 내어 반란을 일으켰다고 말하였다. 조서를 내려 승상 屈氂에게 토벌하게 하니 據가 패하여 湖로 달아났다. 황후 衛氏와 據가 모두 자살하였다.[帝如甘泉 秋七月 皇太子據殺使者江充 白皇后發兵反 詔丞相屈氂討之 據敗走湖 皇后衛氏及據皆自殺]”라 하였다. 여기서 皇后 衛氏가 衛后이고, 태자 據가 戾太子이다. 사후에 태자에게 戾를 追諡하였다.
역주5 孝平皇后의 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癸未(23) 漢 帝玄 更始 원년에 “孝平皇后가 스스로 불에 타서 崩하였다.[孝平皇后自焚 崩]”라 하였다. 효평황후는 漢나라 平帝의 부인으로 王莽의 딸이었다. 왕망이 평제를 시해하고 劉嬰을 황태자로 세우면서 孺子라 칭하였다. 그 후 孺子를 폐하여 定安公이라 하고, 효평황후를 定安太后라 하였다가 다시 黃皇室主라 하며 지위를 낮추었다. 효평황후는 아버지인 왕망에게 협조하지 않다가 왕망이 패하기 직전에 스스로 불에 타서 죽었다.
역주6 劉秘丞 : 宋나라의 학자 劉恕(1032~1078)이다. 유서는 字가 道原이고 筠州 사람이며, 史学으로 이름이 높았다. 사마광을 도와 《자치통감》을 편찬하였다.
역주7 陸淳 : 唐나라 학자 陸質의 초명이다. 그는 啖助와 趙匡에게 《春秋》를 배워 《春秋微旨》와 《春秋集傳辨疑》, 《春秋集傳纂例》 등을 저술하였다.
역주8 匈奴의……昆彌 : 匈奴와 烏孫은 북방 유목족으로 單于와 昆彌는 중국의 王號에 해당하는 칭호이다. 《資治通鑑綱目》에서 庚辰(B.C. 161) 漢 文帝 後元 3년에 “봄에 흉노 老上單于가 죽고 아들 軍臣單于를 세웠다.[春 匈奴老上單于死 子軍臣單于立]”라 하고, 辛酉(B.C. 60) 漢 宣帝 神爵 2년에 “烏孫의 昆彌 翁歸靡가 죽고 狂王 泥靡를 세웠다.[烏孫昆彌翁歸靡死 狂王泥靡立]”라 하였다.
역주9 隗囂의 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癸巳(33) 後漢 光武帝 建武 9년에 “隗囂가 죽으니 여러 장수가 그 아들 純을 세웠다.[隗囂死 諸將立其子純]”라 하였다. 외효는 57쪽 역주 1) 참조.
역주10 驪山……長陵 : 《資治通鑑綱目》에서 秦 始皇은 辛卯(B.C. 210) 秦 始皇帝 37년에 “9월에 驪山에 장사 지냈다.[九月 葬驪山]”라 하고, 漢 高祖 太上皇은 甲辰(B.C. 197) 漢 高祖 10년에 “여름 5월에 太上皇이 崩하였다. 가을 7월에 萬年에서 장사 지내고 제후왕의 나라에 모두 묘를 세우게 했다.[夏五月 太上皇崩 秋七月 葬萬年 令諸侯王國皆立廟]”라 하고, 한 고조는 丙午(B.C. 195) 漢 高祖 12년에 “5월에 長陵에 장사 지냈다.[五月 葬長陵]”라 하였다.
역주11 太上皇廟와……경우 : 태상황묘는 앞의 역주 83) 참조. 《資治通鑑綱目》에서 高廟는 丙午(B.C. 195) 漢 高祖 12년에 “군국에 高廟를 세우게 했다.[令郡國立高廟]”라 하였다.
역주12 漢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己丑(B.C. 152) 漢 景帝 5년에 “봄 정월에 陽陵邑을 만들고 백성을 모아 옮겨 살게 하였다.[春正月 作陽陵邑 募民徙居之]”라 하였다. 양릉읍은 景帝가 長安의 동북쪽에 자신의 壽陵을 미리 만들고 縣名을 양릉읍이라 하였다.
역주13 漢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文帝가 자신의 사당을 미리 만들었는데, 乙丑(B.C. 176) 漢 文帝 4년에 “顧成廟를 만들었다.[作顧成廟]”라 하였다.
역주14 漢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乙酉(B.C. 156) 漢 景帝 원년에 “겨울 12월에 高皇帝를 높여 太祖, 孝文皇帝를 太宗으로 하고 郡國에 太宗廟를 세우게 하였다.[冬十二月 尊高皇帝爲太祖 孝文皇帝爲太宗 令郡國立太宗廟]”라 하였고, 戊申(B.C. 72) 漢 宣帝 本始 2년에 “孝武帝廟를 높여 世宗이라 하고 행행한 군국에 모두 묘를 세웠다.[尊孝武帝廟爲世宗 所幸郡國皆立廟]”라 하였고, 甲子(4) 漢 平帝 元始 4년에 “孝宣廟를 높여 中宗, 孝元廟를 높여 高宗이라 하였다.[尊孝宣廟爲中宗 孝元廟爲高宗]”라 하였다.
역주15 漢나라……있었으므로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戌(B.C. 71) 漢 宣帝 本始 3년에 “恭哀皇后를 杜陵 남쪽 동산에 장사 지냈다.[葬恭哀皇后於杜陵南園]”라 하였다. 霍光의 부인 霍顯이 자기 딸을 황후로 만들려고 女醫 淳于衍을 시켜 황후 許氏를 독살시켰으므로 시호를 恭哀라 하였다.
역주16 後漢……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丁巳(57) 後漢 光武帝 建武中元 2년에 “3월에 原陵에 장사 지냈다.[三月 葬原陵]”라 하였다. 그런데 癸卯(223) 蜀漢 昭烈帝 章武 3년 4월에 소열제가 죽었다는 기록만 있고 장례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자료에는 동년 8월에 成都의 惠陵에 장사 지냈으며 甘夫人과 吳夫人을 합장하였다고 하였다.
역주17 漢나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戊子(B.C. 33) 漢 元帝 竟寧 원년에 “가을 渭陵에 장사 지냈다.[秋七月 葬渭陵]”라 하였는데, 己未(B.C. 2) 漢 哀帝 元壽 원년에 “황태태후 傅氏가 崩하였는데, 孝元皇后(부씨)를 위릉에 합장하였다.[皇太太后傅氏崩 合葬孝元皇后於渭陵]”라 하였다.
역주18 魏나라가……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壬寅(222) 蜀漢 昭烈帝 章武 2년에 “魏나라가 壽陵을 만들었다.[魏作壽陵]”라 하였는데, 魏나라 曹丕가 壽陵을 축조한 것이고, 丁巳(237) 蜀漢 後主 建興 15년에 “魏나라가 三祖를 훼손하지 않는 묘로 한다고 제명하였다.[魏制三祖爲不毁之廟]”라 하였는데, 魏나라가 武帝(曹操)를 太祖, 文帝(曹丕)를 高祖, 明帝(曹叡)를 烈祖로 하는 三祖廟를 세운 것이다.
역주19 漢나라……옮겼다 : 《資治通鑑綱目》에서 己亥(B.C. 202) 漢 高祖 5년에 “先媼을 추존하여 昭靈夫人이라 하였다.[追尊先媼曰昭靈夫人]”라 하였고, 甲午(B.C. 87) 漢 昭帝 後元 2년에 “鉤弋夫人을 추존하여 황태후로 삼았다.[追尊鉤弋夫人爲皇太后]”라 하였고, 戊申(B.C. 73) 漢 宣帝 本始 원년에 “戾太子, 戾夫人의 悼考와 悼后를 추시하고 園邑을 설치하였다.[追諡戾太子戾夫人悼考悼后 置園邑]”라 하였고, 丙辰(B.C. 65) 漢 宣帝 元康 원년에 “도고를 추존하여 황고로 삼고 침묘를 세웠다.[追尊悼考爲皇考 立寢廟]”라 하였고, 丙辰(B.C. 5) 漢 哀帝 建平 2년에 “定陶共王에서 定陶의 칭호를 제거하라고 조서를 내렸다.[詔共皇去定陶之號]”라 하였고, 丁亥(27) 後漢 光武帝 建武 3년에 “洛陽에 四親廟를 세웠다.[立四親廟於洛陽]”라 하였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