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郭質이 廣鄉에서 군대를 일으키고서
注+① 魏收의 ≪魏書≫ 〈地形志〉에 “鄭縣에 廣鄕原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鄭縣은 이때 京兆에 속하였다. 三輔 지역에 격문을 돌리기를 “姚萇이 흉악하고 포학해서 해독이 神과 사람에게 끼친다. 우리들은 대대로 先帝의 인자함을 입어서
注+② 先帝는 秦主 符堅을 이른다. 常伯과 納言의 자식이 아니면 바로 卿校(九卿․校尉)와 牧守의 후손이니,
注+③ 常伯은 侍中이고 納言은 尙書이다. 그 치욕을 참고 생존하기보다는 어찌 道를 따르다가 죽는 것만 하겠는가.”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