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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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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戍年(B.C. 59)
임술년(B.C. 59)
三年이라
[綱] 나라 중종中宗 효선황제孝宣皇帝 신작神爵 3년이다.
春三月 丞相高平侯魏相注+恩澤侯表, 高平侯食邑於淮陽柘縣.하다
봄 3월에 승상丞相 고평후高平侯 위상魏相하였다.注+한서漢書》 〈은택후표恩澤侯表〉에 “고평후高平侯회양淮陽 자현柘縣식읍食邑으로 하였다.” 하였다.
諡曰憲이라하다
[目] 시호를 이라 하였다.
夏四月 以丙吉爲丞相하다
[綱] 여름 4월에 병길丙吉승상丞相으로 삼았다.
上寬大하고 好禮讓하여 掾吏有罪 輒與長休告注+長給休假, 令其去職也. 하고 務掩過揚善하여 終無所案하고
[目] 병길丙吉관대寬大함을 숭상하고 겸양謙讓을 좋아하여, 관리 중에 죄를 지은 자가 있으면 번번이 장기간의 휴가를 주고注+〈“여장휴고與長休告”는〉 장기간의 휴가를 주어서 관직을 떠나게 한 것이다. 허물을 덮어주고 을 드날리는 것을 힘써, 끝내 죄를 조사하는 일이 없었다.
曰 以公府而有案吏之名 吾竊陋焉注+公府, 謂三公之府. 이라하니 後人 因以爲故事하니라
말하기를 “공부公府로서 부하 관리를 조사한다는 명성이 있는 것을 나는 매우 누추하게 여긴다.”注+공부公府삼공三公를 이른다. 하니, 후인後人들이 이 일을 고사故事로 삼았다.
嘗出이라가 逢群鬪死傷 不問하고 逢牛喘 使問逐牛行幾里矣注+喘, 昌兗切, 急息也.오하니
일찍이 밖에 나갔다가 사람들이 싸워 서로 구타해서 사상자가 발생한 일을 보고서는 연유를 묻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으나, 소가 헐떡거리는 것을 보고서는 사람을 시켜 소를 따라가서 몇 리를 걸어왔는가를 묻게 하였다.注+창연昌兗이니, 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것이다.
或譏言失問한대 吉曰 民鬪 京兆所當禁이요 宰相 不親小事하니 非所當問也어니와
혹자가 병길에게 잘못 물은 것이라고 비판하자, 병길은 대답하기를 “백성들이 싸워 구타하는 것은 경조윤京兆尹이 금해야 할 일로, 재상宰相은 작은 일을 직접 다스리지 않으니 내가 물어야 할 바가 아니다.
方春未可熱注+方春, 少陽用事, 未可大熱. 이라
지금은 봄철이어서 무더운 때가 아니다.注+ 아직 크게 더울 수가 없는 것이다.
恐牛近行호되 用暑故喘注+用, 因也.하니 時氣失節이라
소가 가까운 거리를 왔는데도 날씨가 무덥기 때문에 헐떡이는가 염려해서 물은 것이니,注+은 인함(때문에)이다. 이는 철의 기후가 절서節序를 잃은 것이다.
三公 調陰陽하니 職當憂라한대 時人 以爲知大體라하니라
삼공三公은 음양을 조화롭게 해야 하니, 직책상 마땅히 근심해야 한다.” 하니, 당시 사람들이 ‘대체大體를 안다.’고 하였다.
秋七月 하다
[綱] 가을 7월에 소망지蕭望之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았다.
◑ 八月 益小吏俸하다
[綱] 8월에 낮은 관리들의 봉급을 올려주었다.
詔曰
[目] 다음과 같은 조령詔令을 내렸다.
吏不廉平則治道衰하나니
“관리들이 청렴하고 공평하지 않으면 정치하는 가 쇠퇴한다.
今小吏皆勤事而俸祿薄하니 欲無侵漁百姓이나 難矣
지금 낮은 관리들이 모두 일을 부지런히 하고 있으나 녹봉이 매우 적으니, 백성들을 침해하지 않고자 하나 어려운 상황이다.
其益吏百石已下俸十五注+若食一斛, 則益五斗.하라
연봉 일백석一百石 이하의 관리들에게 녹봉 10분의 5를 더 올려주도록 하라.注+예컨대 녹봉이 1이면 5를 더 준 것이다.
以韓延壽爲左馮翊하다
[綱] 한연수韓延壽좌풍익左馮翊으로 삼았다.
延壽爲潁川太守하여 承趙廣漢之後하니 俗多怨讐
[目] 처음에 한연수韓延壽영천태수潁川太守가 되어서 조광한趙廣漢의 뒤를 이으니, 풍속에 원수진 일들이 많았다.
延壽敎以禮讓하여 召故老하여 與議定嫁娶喪祭儀品호되 略依古禮하여 不得過法하니
한연수는 겸양謙讓으로 백성들을 가르쳐서, 고로故老들을 불러 시집가고 장가드는 혼례와 상례, 제례에 대한 의식을 함께 의논하여 결정했는데, 대략 옛날의 를 따라 법도를 넘지 못하게 하였다.
百姓 遵用其敎하여 賣偶車馬 下里僞物者 棄之市道注+偶, 對也, 謂土木爲之, 象眞車馬之形, 喪祭所用之儀也. 死者歸蒿里, 葬地下, 故曰下里. 一云 “下里, 下賤鄕里.” 僞物, 假僞之物也. 賣此等者, 皆自以無用而棄之市道也.
백성들은 그의 가르침을 따라서, 자신들이 팔던 허수아비로 만든 수레와 말, 하리下里위물僞物(부장품)을 길거리에 버렸다.注+ 진짜 수레와 말의 형상을 본뜬 것으로, 상례喪禮제례祭禮에 사용하는 의물儀物이다. 죽은 자는 호리蒿里로 돌아가서 지하에 장례하므로 장례하는 곳을 ‘하리下里’라 한 것이다. 일설에 “하리下里는 신분이 낮고 천한 자가 사는 향리鄕里이다.” 하였다. 위물僞物은 부장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거짓으로 만든 물건이다. 이런 물건을 파는 자들이 모두 스스로 쓸모가 없다고 여겨 시장과 길거리에 내다가 버린 것이다.
黃霸代之하여 因其迹而大治하니라
황패黃霸가 그를 대신하여 태수가 되어 그의 자취를 따르자, 고을이 크게 다스려졌다.
延壽所至 必聘其賢士하여 以禮待하여 用廣謀議하고 納諫諍하고
[目] 한연수韓延壽는 부임하는 곳에 반드시 어진 선비들을 초빙해서 로써 우대하여 계책과 의논을 넓히고, 충고하는 말을 받아들였다.
表孝弟有行하며 修治學宮注+學宮, 謂庠序之舍也. 하고 春秋鄕射 陳鍾鼓管絃하고 盛升降揖讓注+漢官儀 “春三月ㆍ秋九月, 習鄕射禮, 皆使太學生.” 하며
그리고 효도하고 공경하여 훌륭한 행실이 있는 자를 표창하였으며, 학궁學宮을 수리하고注+학궁學宮상서庠序의 집(향교)을 이른다. 봄과 가을로 향사례鄕射禮를 시행할 적에 종과 북과 관현악기를 진열하고는, 을 오르내리며 하고 사양하는 의식을 성대하게 행하였다.注+한관의漢官儀》에 “봄 3월과 가을 9월에 향사례鄕射禮를 익힐 적에 모두 태학생太學生을 시켰다.” 하였다.
及都試講武 設斧鉞旌旗하고 習射御之事注+漢諸郡, 以八月都試, 講武事也. 하며
도시都試를 하여 무예武藝를 익힐 적에는 부월斧鉞정기旌旗를 진열하고 활 쏘고 말 타는 일을 익혔다.注+나라의 여러 은 8월에 도시都試를 하여 무예武藝의 일을 익혔다.
治城郭하고 收賦租호되 先明布告其日하여 以期會爲大事하니 吏民 敬畏趨鄕之注+鄕, 讀曰嚮.하니라
성곽城郭을 수리하고 부세와 조세를 거두되, 먼저 그 날짜를 분명히 포고하여 제때에 맞추는 것을 중대한 일로 여기니, 관리와 백성들이 존경하고 두려워하여 받들어 따랐다.注+(향하다)은 으로 읽는다.
又置正, 五長하여 相率以孝弟하고 不得舍姦人注+師古曰 “正, 若今之鄕正ㆍ里正也, 五長, 同伍之中, 置一人爲長也.” 舍, 止也. 하며
[目] 또 오장五長을 배치하여 백성들을 효도와 공경으로써 서로 이끌게 하고, 간사한 짓을 한 죄인들을 집에 숨겨주지 못하게 하였다.注+안사고顔師古가 말하였다. “은 지금의 향정鄕正, 이정里正과 같고, 오장五長은 같은 (대오)의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뽑아 으로 삼은 것이다.” 는 머무는 것이다.
閭里阡陌 有非常이면 吏輒聞知하니 姦人 莫敢入界
여리閭里와 길거리에 비상사태가 있으면 관리가 번번이 이 사실을 들어서 아니, 간사한 짓을 한 죄인들이 감히 경내로 들어오지 못하였다.
其始若煩이로되 吏無追捕之苦하고 民無箠楚之憂하니 皆便安之러라
처음에는 이것이 번거로운 듯하였으나, 뒤에는 관리들이 죄인을 뒤쫓아 체포하는 괴로움이 없고 백성들이 볼기와 회초리 맞는 근심이 없으니, 모두 이것을 편안히 여겼다.
接待下吏 恩施甚厚而約誓明하고
한연수韓延壽는 낮은 관리를 접대할 적에 은혜를 매우 후하게 베풀고 약속을 분명히 하였다.
或欺負之者 延壽痛自刻責하니 吏聞者自傷悔하여 或自刺死하니라
혹 자신을 속이고 배신하는 자가 있으면 자기 스스로 통렬히 자책하니, 관리 중에 이 말을 들은 자가 스스로 비통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서, 혹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기도 하였다.
爲東郡太守三歲 令行禁止하여 斷獄 大減하니 由是 入爲馮翊注+令行禁止, 謂令之必行, 禁之必止, 無違者也.하니라
동군태수東郡太守가 된 지 3년에 명령하면 행해지고 금지하면 그쳐져서 옥사를 결단하는 일이 크게 줄어드니, 이 때문에 들어와 풍익馮翊이 되었다.注+〈“입위풍익入爲馮翊”은〉 명령하면 반드시 명령이 행해지고 금지하면 반드시 금지하는 일이 그쳐져서 어기는 자가 없음을 이른다.
行縣至高陵하니 民有昆弟訟田이어늘
[目] 을 순행하다가 고릉현高陵縣에 이르니, 백성 중에 토지를 가지고 송사하는 형제가 있었다.
延壽大傷之하여 曰 幸得備位하니 爲郡表率이어늘
한연수韓延壽가 이것을 크게 서글퍼하여 말하기를 “내가 요행히 태수太守의 벼슬자리에 올랐으니, 표솔表率(모범)이 되어야 한다.
不能宣明敎化하여 至令民有骨肉爭訟하여 使賢長吏, 嗇夫, 三老, 孝弟 受其恥하니
그런데 교화를 제대로 펴지 못해서 마침내 백성들로 하여금 골육骨肉 간에 쟁송爭訟하여 어진 장리長吏색부嗇夫, 삼로三老효제孝弟들로 하여금 그 치욕을 받게 하였다.
咎在馮翊이라 當先退注+長吏, 謂縣令ㆍ丞也. 續漢志 “縣有嗇夫, 主知民善惡, 爲役先後, 知民貧富, 爲賦多少, 平其差品.” 賢曰 “三老ㆍ孝弟ㆍ力田三者, 皆鄕官之名. 三老, 高帝置. 孝弟ㆍ力田, 高后置. 所以勸導鄕里, 助成風化也.”라하고 是日 移病하고 入臥傳舍하여 閉閤思過하니 一縣 莫知所爲하고 令丞以下 亦皆自繫待罪
잘못이 이 풍익馮翊에게 있으니, 마땅히 내가 먼저 물러나야 한다.”注+장리長吏현령縣令을 이른다. 《속한지續漢志》에 “에는 색부嗇夫가 있어서 백성들의 하고 함을 알아내어 부역의 선후先後를 정하고 백성들의 가난하고 부유함을 알아내어 부세賦稅의 많고 적음을 매겨 등급을 고르게 하는 일을 맡았다.” 하였다. 이현李賢이 말하기를 “삼로三老, 효제孝弟, 역전力田 세 가지는 모두 향관鄕官의 명칭이다. 삼로三老고제高帝가 설치하였고 효제孝弟역전力田고후高后(여태후呂太后)가 설치하였으니, 향리를 권장하고 인도해서 훌륭한 교화를 이루게 한 것이다.” 하였다. 하고는, 이날 병을 칭탁하고 들어가 전사傳舍(객사客舍)에 누워서 문을 닫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니, 온 고을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였고, 현령縣令 이하 관리들도 모두 스스로를 결박하고서 처벌을 기다렸다.
於是 訟者宗族 傳相責讓注+讓, 亦責也. 한대 此兩兄弟深自悔하여 自髡肉袒謝하여 願以田相移하여 終死不敢爭注+移, 猶傳也. 一說 “兄以讓弟, 弟又讓兄, 故云‘相移’”하니
이에 다투던 자의 종족宗族들이 돌아가며 꾸짖자,注+ 또한 꾸짖음이다. 이들 두 형제가 깊이 후회하면서 머리를 깎고 웃통을 벗어 사죄하고 토지를 서로 넘겨주어서 죽을 때까지 감히 다투지 않을 것을 청원하였다.注+(물려주다)과 같다. 일설에 “형은 아우에게 양보하고 아우는 또 에게 양보하였으므로, ‘서로 넘겨주었다’고 말한 것이다.” 한다.
郡中 歙然하여 傳相勅厲注+歙, 音吸, 合也. 恩信周徧하여 二十四縣 莫復以辭訟自言者
고을 안이 화합하여 돌려가며 서로 삼가고 장려하니,注+은 음이 이니, 화합함이다. 은혜와 신의가 두루 펴져서, 24개의 에 다시는 송사하는 일을 스스로 말하는 자가 없었다.
推其至誠하니 吏民 不忍欺紿注+馮翊, 統高陵ㆍ櫟陽ㆍ翟道ㆍ陽ㆍ夏陽ㆍ衙ㆍ粟邑ㆍ谷口ㆍ蓮勺ㆍ鄜ㆍ頻陽ㆍ臨晉ㆍ重泉ㆍ郃陽ㆍ(役栩)[祋祤]ㆍ武城ㆍ沈陽ㆍ(襄)[褱]德ㆍ徵ㆍ雲陵ㆍ萬年ㆍ長陵ㆍ陽陵ㆍ雲陽二十四縣. 祋, 丁外切. 祤, 音雨. (襄)[褱], 通作懷.러라
한연수가 자신의 지극한 정성을 미루어서 살피니, 관리와 백성들이 차마 태수를 속이지 못하였다.注+풍익馮翊고릉高陵, 역양櫟陽, 적도翟道, 지양池陽, 하양夏陽, , 속읍粟邑, 곡구谷口, 연작蓮勺, , 빈양頻陽, 임진臨晉, 중천重泉, 합양郃陽, 대우祋祤(제우), 무성武城, 침양沈陽, 회덕褱德, , 운릉雲陵, 만년萬年, 장릉長陵, 양릉陽陵, 운양雲陽 등 24개 을 통솔하였다. 정외丁外이고, 는 음이 이다. 와 통한다.
역주
역주1 봄이……用事하여 : 옛날에는 陰陽五行說에 입각하여 四象을 四時와 연관시켜, 봄은 少陽, 여름은 太陽, 가을은 少陰, 겨울은 太陰에 소속시켰다. 用事는 일을 주관하는 것으로 少陽의 약간 따뜻한 기후가 봄을 주관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2 以蕭望之爲御史大夫 : “청렴을 권장한 것이니, 宣帝가 이에 근본을 알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므로 이것을 써서 찬미한 것이다.[勸廉也 帝於是可謂知本矣 故書美之]” 《書法》
역주3 偶는……이르는데 : 偶는 허수아비로 耦로도 표기하는데, 나무로 만든 것을 木偶人, 흙으로 만든 것을 土偶人이라 하는바, 옛날 부장품으로 이것을 많이 사용하였다. 中國의 西安에서 발굴된 秦 始皇 陵의 兵馬俑이 바로 土偶人이다. 偶는 對의 뜻이 있는바, 실제 사람이나 말, 수레 등을 마주 놓고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역주4 (地)[池] : 저본에는 ‘地’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池’로 바로잡았으며, 이하 부분 역시 여기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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