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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北魏에서 赫連定을 죽이고 나서 이어서 吐谷渾王 慕容慕璝의 官爵을 승진시키자 모용모괴가 표문을 올리기를 “신이 참람한 역적을 포로로 사로잡아 王府에 바쳤는데 작위와 질록은 비록 높아졌으나 영토는 불어나지 않았고 수레와 깃발은 이미 장식하였으나 재물은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였으니, 바라건대 살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魏主가 안건을 내려 함께 논의하게 하였다. 공경들이 말하기를 “모용모괴가 바친 것은 단지 혁련정이고, 변방 밖의 백성이 모두 자신의 소유인데도 탐욕스럽게 요구하여 만족함이 없으니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니, 이로부터 모용모괴의 貢使(공물을 진상하는 사신)가 北魏에 오는 것이 점차로 간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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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劉道濟는 비축 양식이 모두 고갈되었는데, 裴方明이 성을 나가 양식을 구하다가 적도에게 패배하여 필마로 혼자 돌아오니 적도들이 다시 크게 모여들었다. 배방명이 밤에 줄을 타고 성으로 올라갔는데
注+① 縋는 馳僞의 切이니, 줄을 내리는 것이다. 上(올라가다)은 時掌의 切이다. 유도제가 그를 위해
注+② 爲(위하다)는 去聲이다. 음식을 차려주니 눈물을 흘리며 먹지 못하였다.
유도제가 말하기를 “卿은 大丈夫가 못 된다. 작은 패배를 어찌 괴로워하는가. 적도들의 기세가 이미 쇠퇴했고 臺兵(朝廷의 군대)이 거의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卿만 돌아온다면 어찌 적도들을 근심할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대가 돌아왔다.〉”라고 하고, 즉시 자기 측근의 인원을 줄여서 배방명에게 배속시켰다.
적도들이 소리를 높여 배방명이 이미 죽었다고 하니 성안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유도제가 밤에 횃불을 나열하고 배방명을 내보내어 대중들에게 보이자 대중들이 마침내 안정되었다. 유도제는 재물을 모두 내놓아서 배방명에게 군사들을 모집하게 하였다.
이때 소문에 유도제가 이미 죽었다고 전해져서 응모하는 자가 없었다. 梁儁之가 유도제를 설득하여 측근에 있는 給使 30여 명을 밖으로 내보내게 하고 또 고하게 하기를 “내 병이 조금 나았으니, 너희들은 귀가하여 휴식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給使들이 나가고 나자 성안이 마침내 안정되고 모집에 응하는 자가 날마다 1천여 명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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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사신이 돌아오자 魏主가 北涼의 실상을 물었는데, 李順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沮渠蒙遜이 河右(河西) 지역을 다스린 지가 30년이 넘었습니다. 험난함을 겪어서 기지와 권변을 대략 알고 변방 지역을 안정시켜서 아랫사람들이 두려워 복종하니, 비록
그러나 禮는 德을 싣는 수레이고, 敬은 몸을 받쳐주는 터전이지만, 저거몽손은 禮가 없고 공경하지 않으니, 신의 견해로 살펴보면 다시 1년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注+① 〈“不復年矣”는〉 1년의 수명도 있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魏主가 말하기를 “세대가 바뀐 후에 어느 때 멸망할 것 같은가?”라고 하였다.
이순이 말하기를 “저거몽손의 아들들을 신이 대략 살펴보니 모두 재주가 용렬합니다. 소문으로는 敦煌太守 沮渠牧犍은 기량과 성품이 대략 확립되었으니 저거몽손을 계승할 자는 반드시 이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 부친에 견주면 모두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는 하늘이 聖明한 폐하를 도와주시려는 것 같습니다.” 하니,
魏主가 말하기를 “朕이 한창 동쪽에 군대를 운용하고 있으니
注+② “方有事東方”은 한창 燕나라를 도모하고 있음을 말한다. 서쪽을 공략할 겨를이 없다. 卿이 말한 대로 된다면 불과 수년 밖의 일이니 늦을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예전에 罽賓(계빈)의 스님 曇無讖이 스스로 말하기를 “귀신을 부려 병을 치료할 수 있고 또 신비한 술법이 있다.”라고 하니, 저거몽손이 그를 존중하여 聖人이라고 말하고, 여러 딸과 며느리들을 모두 그에게 가서 술법을 전수받게 하였다.
魏主가 담무참을
注+③ 曇은 姓이고, 無讖은 그 이름이다. ≪北史≫ 〈北涼列傳〉에 말하기를 “曇無讖이 스스로 말하였다. ‘능히 귀신을 부려 병을 치료하며 부인들에게 아들을 많이 낳게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불렀는데 저거몽손이 억류하고 보내지 않다가 죽이니 魏主가 이로 말미암아 北涼에게 노여움을 품었다. 저거몽손은 거칠며 음탕하고 시기하며 포악하여 아랫사람들이 괴로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