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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2)

자치통감강목(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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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子年(268)
晉泰始四年이요 吳寶鼎三年이라
春正月 晉律令하다
賈充等 上所刊修律令注+充等所刊修, 就漢律九章增十一篇, 合二十篇, 六百二十條. 其不入律者, 悉以爲令施行. 凡律令合二千九百二十六條.이어늘 晉主親自臨講하니 中書侍郞張華 請抄死罪條目하여 懸以示民이어늘 從之注+抄, 楚交切, 謄寫也.하다
晉詔立考課法이러니 不果行하다
詔河南尹杜預하여 爲黜陟之課하니 預奏호되 古者黜陟 擬議於心이요 不泥於法注+泥, 乃計切, 滯也.이러니
末世不能紀遠而專求密微하여 疑心而信耳目하고 疑耳目而信簡書하니 簡書愈繁하고 官方愈僞注+方, 術也. 言爲官之方術也.
魏氏考課之遺意注+劉卲考課法, 其略見漢後主建興十五年. 其文 可謂至密이나 然失於苛細하여 以違本體
歷代不能通也하니 豈若申唐堯舊制하여 取大捨小하고 去密取簡이리오
委任達官하여 各考所統하여 歲第其人하여 言其優劣注+達官, 顯官也. 居一官之長, 其事得專達於上.이니이다
如此六載 主者總集하여 採案其言하여 六優者 超擢하고 六劣者 廢免하고 優多劣少者 平敍하고 劣多優少者 左遷注+六優, 謂六載俱優. 六劣, 謂六載俱劣.호되
其間所對不鈞하여 品有難易어든 主者固當準量輕重하여 微加降殺 不足曲以法盡也注+準量, 謂考課者準則量度其優劣也.니이다
其有優劣徇情하여 不叶公論者 當委監司彈之注+叶, 合也. 監, 古御切. 監司, 御史‧司隷及諸州刺史也. 彈, 糾也.
若令上下公相容過 此爲淸議大頹 雖有考課之法이라도 亦無益也라하되 事竟不行하다
晉主親耕藉田하다
◑三月 晉太后王氏殂하다
晉主居喪 一遵古禮하여 旣葬 有司請除衰服이어늘 詔曰 受終身之愛而無數年之服 情所不忍也니라
有司固請한대 詔曰 患在不能篤孝 勿以毁傷爲憂하라 前代禮典 質文不同하니 何必限以近制하여 使達喪闕然乎注+達喪, 猶通喪也.
群臣請不已어늘 乃許之 然猶素服以終三年하다
夏四月 晉太保王祥卒하다
祥卒 門無雜弔之賓이러라 其族孫戎 歎曰 太保當正始之世하여 不在能言之流러니
及間與之言 理致淸遠하니 豈非以德掩其言乎注+正始, 魏邵陵厲公年號也. 正始所謂能言者, 何平叔數人也. 魏轉而爲晉, 何益於世哉. 王祥所以可尙者, 孝於後母與不拜晉王耳. 君子猶謂其任人柱石而傾人棟梁也. 理致淸遠, 言乎, 德乎. 淸談之禍, 迄乎永嘉, 流及江左, 猶未已也.
秋七月 衆星 西流如雨而隕하다
◑九月 晉大水하다
◑晉揚州都督石苞罷하다
晉大司馬揚州都督石苞 久在淮南하여 威惠甚著注+漢後主景耀元年, 魏平諸葛誕. 苞代鎭淮南, 至是凡十一年.하니 監軍王琛 惡之하여 密表호되 苞與吳通이어늘
晉主遣義陽王望하여 帥大軍徴之注+望, 泰始元年受封. 讀曰率.하니 苞椽孫鑠 在許昌聞之러니 或勸鑠無與於禍注+與, 讀曰豫.어늘
鑠馳詣壽春하여 勸苞放兵하고 步出都亭待罪注+都亭, 壽春都亭也.하니 晉主聞之意解 苞以公還第注+以樂陵公還第.하다


戊子年(268)
나라 世祖 武皇帝 司馬炎 泰始 4년이고, 吳主 孫皓 寶鼎 3년이다.
[] 봄 정월에 나라 律令이 완성되었다.
[] 賈充 등이 수정한 律令을 올리자注+賈充 등이 수정한 것은 바로 漢律 9에 11增補한 것이니, 모두 20편으로 620조였다. 그것에 들어가지 않는 은 모두 으로 삼아 시행하였다. 모든 律令은 모두 2,926조이다. 晉主(司馬炎)가 친히 자리에 참석하여 講解하였다. 中書侍郞 張華가 사형 죄에 해당하는 조목을 베껴서 이를 게시하여 백성들에게 보여주기를 요청하자, 그것을 따랐다.注+楚交이니 베낀다는 뜻이다.
[] 나라가 조서를 내려 考課法을 만들게 하였으나 시행하지 못하였다.
[] 河南尹 杜預에게 조서를 내려 승진과 퇴출에 해당하는 고과를 만들게 하였는데, 두예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옛날에는 퇴출과 승진을 마음으로 헤아려 논하고, 법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注+(구속받다)는 乃計이니 구속받는다는 뜻이다.
말세에는 원대함을 경영하지 못하고, 오로지 정밀함을 추구하여 마음으로 헤아리는 것을 의심하여 듣고 보는 것을 믿고, 듣고 보는 것을 의심하여 서류를 믿으니, 서류가 더욱 번잡해지고 관원이 부리는 술수가 더욱 거짓되었습니다.注+은 술수이니, 〈“官方”은〉 관리들이 술수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
[] 魏氏(나라)의 考課는 바로 京房이 남긴 뜻이니,注+劉卲考課法은 그 대략이 蜀漢 後主 建興 15년(237)에 보인다. 그 글이 지극히 정밀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가혹하고 세밀함에 결점이 있어 근본 체제에 어긋납니다.
그러므로 歷代에 통용될 수 없었습니다. 어찌 唐堯(임금)의 옛 제도를 펼쳐서 큰 것을 채택하고 작은 것을 버리며, 정밀한 것을 버리고 간편한 것을 채택하는 것만 하겠습니까.
현달한 관원에게 맡겨서 각각 휘하의 사람들을 살펴서 해마다 그 인물들을 평가하고 그들이 우열을 말하게 해야 합니다.注+達官”은 현달한 관원이다. 한 관청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그 일을 상부에 단독으로 전달할 수 있다.
[] 이처럼 6년 동안 하여 주관하는 사람이 모두 모아서 평가한 말을 채택해 살펴 6년 동안 우수한 사람을 등급을 넘어 발탁하고 6년 동안 열등한 사람을 파면하도록 하며, 우수한 평가가 많고 낮은 평가가 적은 사람을 그 직위와 같은 등급에서 서용하고, 열등한 것이 많고 우수한 평가가 적은 사람을 좌천시키십시오.注+六優”는 6년 동안 모두 우수한 등급을 말한다. “六劣”은 6년 동안 모두 열등한 등급을 말한다.
그 사이에 평가를 올린 것이 불공평하기도 하고 등급의 품평에도 어려우며 쉬운 경우가 있으면 주관하는 사람이 진실로 경중을 기준대로 헤아려서 어느 정도 加減을 해야 할 것이니, 그 곡절을 모두 법으로 다할 수는 없습니다.注+準量”은 考課者가 그 優劣을 기준에 따라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그 우열이 私情을 따라서 공론에 맞지 않는 점이 있는 자는 마땅히 監司에게 맡겨 탄핵하게 해야 합니다.注+은 맞다는 뜻이다. (살피다)은 古御이다. 監司御史, 司隷와 모든 刺史이다. 은 탄핵한다는 뜻이다.
만일 위아래로 하여금 공공연히 서로 과실을 용납하게 한다면 이로 인해 淸議(공정한 여론)가 크게 무너지게 되니, 비록 고과법이 있더라도 이로움이 없습니다.” 일이 끝내 시행되지 않았다.
[] 晉主(司馬炎)가 藉田에서 親耕하였다.
[] 3월에 나라
[] 晉主居喪에 한결같이 옛날의 禮法을 준수하였다. 장사를 지내고 나서 有司衰服(상복)을 벗을 것을 청하자, 조서를 내리기를 “종신토록 사랑을 받고서 몇 년간의 衰服을 입지 않는 것은 情理로 보아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유사가 강력하게 요청하니 조서를 내리기를 “우려되는 점은 효도를 돈독하게 할 수 없을까 하는 데에 있으니, 몸이 수척해져 손상될까 하는 것은 근심하지 말라. 이전 시대의 예법은 질박함과 수식이 같지 않으니, 어찌 반드시 근래의 제도로 제한을 하여 을 행하는데 결함이 있게 하겠는가.”注+達喪”은 通喪과 같다.라고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간청을 그치지 않자, 결국 그것을 허락하였으나 끝내 素服을 입고서 3년을 끝마쳤다.
[] 여름 4월에 나라 太保 王祥하였다.
[] 王祥하자, 그 집 문안에는 〈단정한 조문객뿐이어서〉 잡된 조문객이 없었다. 그의 族孫 王戎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太保께서는 正始의 시대를 당하여 말을 잘하는 부류에 속하지는 않았다.
간간이 그와 말을 할 적에 理致가 분명하고 원대했으니, 어찌 덕성이 말솜씨를 가린 것이 아니겠는가.”注+正始나라 邵陵厲公(曹芳)의 年號이다. 正始 시대(240~248)에 말을 잘했던 사람은 何平叔(何晏) 등 몇 사람이다. 나라가 바뀌어서 나라가 되었으니 세상에 무슨 보탬이 되었는가. 君子는 평하기를 다스리는 이치가 밝고 원대함은 言辯에 있는가, 功德에 있는가. 淸談永嘉 연간까지 미쳤으며 폐단이 전해 내려와 江左(東晉南朝) 時代에 이르도록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 가을 7월에 많은 별들이 서쪽으로 흘러가 비처럼 떨어졌다.
[] 9월에는 나라에 홍수가 있었다.
[] 나라 揚州都督 石苞가 파면되었다.
[] 나라 大司馬 揚州都督 石苞가 오랫동안 淮南에 있으면서 위엄과 은혜를 베푼 일이 매우 드러났다.注+蜀漢 後主 景耀 원년(258)에 나라가 諸葛誕의 반란을 평정하였다. 石苞가 후임으로 淮南鎭守하였는데, 이때에 이르기까지 모두 11년이다. 監軍 王琛이 이를 싫어하여 비밀리에 表文을 올려 석포가 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하였다.
晉主義陽王 司馬望을 파견하여 대군을 거느리고서 그를 불러들이도록 하였다.注+司馬望泰始 원년(265)에 봉작을 받았다. (거느리다)은 로 읽는다. 석포의 掾吏 孫鑠許昌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들었는데 어떤 이가 손삭에게 권하여 화가 될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였다.注+(관여하다)는 로 읽는다.
손삭은 壽春으로 말을 달려가서 석포에게 권하여 병권을 내려놓고 걸어서 都亭에 가서 대죄하도록 하였다.注+都亭壽春의 도정이다. 晉主(司馬炎)가 이 소식을 듣고 의심을 풀었다. 석포는 樂陵公의 신분으로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注+〈“以公還第”는〉 樂陵公 신분으로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역주
역주1 京房 : 前漢 元帝 때 사람이다. 백관들의 공로를 평가하기 위하여 考功課吏法을 만들었으나 너무 번쇄하여 시행되지 않았다. 그 대체적인 내용은 ≪資治通鑑≫ 권73 魏나라 明帝 景初 원년(237) 조에 보인다.
역주2 太后……殂하였다 : 王氏는 王元姬이다. 〈綱目凡例〉에 의하면 천하를 통일한 황제의 죽음을 ‘崩’이라 하고, 황제를 칭하였으나 천하를 통일하지 못해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殂’라고 하였다. 이 경우 ‘殂’라고 쓴 것은 晉나라가 아직 천하를 통일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역주3 通喪 : 부모의 喪에 위로는 天子부터 아래로는 庶人까지 똑같이 三年服을 입는 것을 말한다.
역주4 王祥을……것뿐인데 : 王祥(184~268)은 모질게 대하는 繼母를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했는데, 계모가 한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어 하자 강가로 내려가 얼음을 깨고 물에 들어가려고 하자 얼음이 저절로 깨지면서 잉어 두 마리가 튀어나왔고, 또 계모가 참새구이를 먹고 싶어 하자 참새들이 그 집으로 날아들었다. 또 자두가 열렸는데 계모가 그것을 지키라고 하자 비바람이 칠 때마다 나무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리고 司馬炎이 魏나라의 相國으로서 晉王일 때 王祥, 何曾, 荀顗가 三公의 지위에 있었는데 晉王을 만나러 갈 때 절을 해야 한다고 하자, 왕상이 “상국이 존귀하기는 하나 魏나라의 재상일 뿐이다. 우리는 魏나라의 삼공이니, 공과 왕 사이는 한 등급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반열이 거의 같은데, 어찌 천자의 三司(三公)로 남에게 절을 할 수가 있는가. 魏나라 조정의 위신을 깎아내리고 진왕의 덕망도 훼손하는 것이다.[相國誠爲尊貴 然是魏之宰相 吾等魏之三公 公王相去一階而已 班例大同 安有天子三司而輒拜人者 損魏朝之望 虧晉王之德]”라고 하고는 홀로 揖만 하고 절을 하지 않았다.(≪晉書≫ 〈王祥列傳〉)
역주5 사람을……하였다 : 이 고사는 ≪世說新語≫ 〈規箴〉에 “陸玩이 司空에 임명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방문하여 좋은 술을 찾았다. 술을 얻자 바로 일어나서 마룻대와 들보 사이에 부우면서 축원하기를 ‘지금 인재가 부족하여 너를 柱石으로 기용하였으니 남의 棟梁을 기울게 하지 말라.’라고 하니, 육완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귀하의 좋은 경계를 받아들이겠소.’라고 하였다.[陸玩拜司空 有人詣之 索美酒 得便自起 瀉箸梁柱間地 祝曰 當今乏才 以爾爲柱石之用 莫傾人棟梁 玩笑曰 戢卿良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주6 (師)[帥] : 저본에는 ‘師’로 되어 있으나, 본문에 의거하여 ‘帥’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12) 책은 2021.01.0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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