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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2)

자치통감강목(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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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巳年(249)
十二年이라
魏嘉平元年이요 吳赤烏十二年이라
春正月 及何晏等하고 夷其族하다
曹爽 驕奢無度하여 飮食衣服 擬於乘輿하고 又私取先帝才人하여 以爲伎樂하고
作窟室하여 綺疏四周하여 與何晏等縱酒其中注+窟室, 掘地爲室也. 綺, 文繒也. 綺疏四周, 謂疏通其周匝爲牎而以綺蒙之也. 一說 “綺疏, 謂鏤爲綺文.”하니 弟羲泣諫하되 不聽하다
又兄弟數俱出遊어늘 司農桓範 謂曰 總萬機하고 典禁兵하니
不宜竝出이라 若有閉城門이면 誰復內人者注+內, 讀曰納.리오하니 爽曰 誰敢爾邪아하다
淸河平原 爭界하여 八年不能決이라 冀州刺史孫禮 請天府所藏烈祖封平原時圖以決之注+烈祖, 明帝也, 封平原王. 畫壤分國, 有地圖在天府. 周禮有天府, 鄭玄註云 “掌祖廟之寶藏, 又賢能之書及功書, 皆藏于天府.”하니
爽信淸河之訴하여 云 圖不可用이라한대 禮上疏自辨호되 辭頗剛切하니 爽大怒하여 劾禮怨望이라하여 結刑五歲注+結刑五歲者, 但結以徒作五歲之罪而不使之輸作也.러라
久之 復爲幷州하니 往見司馬懿하고 有忿色而無言이어늘 懿曰 卿得幷州少邪 恚理分界失分乎注+冀州大於諸州, 幷州遠接荒外, 故意其觖望. 分, 扶問切.
禮曰 禮雖不德이나 豈以是爲意邪 本謂明公 匡輔魏室하여 以報明帝之託이러니
今社稷將危하여 天下兇兇하니 此所以不悅也注+兇, 通作匈, 許容切, 又上聲.로다 因涕泣橫流어늘 懿曰 且止하여 忍不可忍하라
李勝 出刺荊州할새 過辭懿하니 懿令兩婢侍어늘 持衣 衣落하고
指口言渇한대 婢進粥이어늘 懿不持杯而飮하니 粥流霑胷이라 勝曰 衆謂明公舊風發動이러니 何意乃耳注+魏武之辟懿也, 懿辭以風痹, 故勝以爲舊風獲動.
懿使聲氣纔屬하여호되 年老枕疾하여 死在旦夕이라 幷州近胡하니 好爲之備하고 且以子師昭爲託注+屬, 之欲切. 作聲使氣似欲絶而僅纔聨屬之狀. 懿故作此態, 以示衰老無用.이라
勝曰 還忝本州하니 非幷州也注+勝, 南陽人, 故謂荊州爲本州.니이다 懿復錯亂其辭曰 君方到幷州 勝曰 當忝荊州니이다
懿曰 年老意荒하여 不解君言이라 今爲本州하니 好建功勳하라
勝退하여 告爽曰 司馬公 尸居餘氣하여 形神已離하니 不足慮矣注+言其形神已離, 惟尸在而餘殘喘耳.라하니 故爽等 不復設備러라
是月 魏主芳謁高平陵이어늘 爽與弟羲訓彦으로 皆從注+高平陵, 明帝陵也. 孫盛曰 “高平陵去洛城九十里.” 從, 才用切.이라
懿與師昭謀하여 以皇太后令으로 閉諸城門하고 勒兵據武庫하고
召司徒高柔하여 假節行大將軍事하여 據爽營하고 太僕王觀으로 行中領軍事하여 據羲營하다
奏曰 大將軍爽 背棄顧命하고 敗亂國典하고 僭擬專權하여 盡據禁兵하고 群官要職 皆置所親하고
殿中宿衛 易以私人하여 伺察至尊하고 離間兩宮하니 天下洶洶하여 人懷危懼注+洶, 音匈, 又上聲. 此言天下諠擾, 如水勢洶湧, 故人懐危懼也.하니
此非先帝詔陛下及臣升御牀之本意也注+通鑑上文云 “臣昔從遼東 先帝詔陛下秦王及臣升御牀, 把臣臂, 深以後事爲念.” 太尉臣濟等 皆以爽有無君之心하니 兄弟不宜典軍宿衛라하여 奏永寧宮하니
皇太后令臣하여 如奏施行이라 臣輒勅主者하여 罷爽羲訓吏兵하니 以侯就第하라
敢有稽留車駕 便以軍法從事하라하고 臣輒力疾將兵하여 屯洛水浮橋하여 伺察非常注+輒, 專也. 懿雖挾太后以臨爽, 而其奏自言輒者至再, 以天子在爽所也. 力疾, 勉力帶病而起也. 水經注 “洛城南出西頭第二門曰宣陽門, 漢之小苑門也, 對閶闔, 南直洛水浮桁.”하노이다
爽得奏迫窘하여 不知所爲러라 懿使爽所親信으로 說爽하여 宜早自歸罪하니 唯免官而已라하고
懿以太后令으로 召桓範한대 範欲應命이어늘 其子曰 車駕在外하니 不如南出이니이다
範乃出하니 懿謂蔣濟曰 智囊往矣로라하니 濟曰 駑馬戀棧豆하니 必不能用也注+棧, 士限切, 馬皁也. 豆所以飼馬. 言爽顧戀室家而慮不及遠, 必不能用範計.리라
範勸爽以天子詣許昌하여 發四方兵自輔라한대 爽疑未決이어늘
範謂羲曰 此事昭然하니 卿用讀書何爲 今卿門戶 求貧賤인들 復可得乎
且匹夫質一人이라도 尙欲望活注+質, 音致. 此謂漢末劫質也.이어든 卿與天子相隨하니 令於天下 誰敢不應이리오
今詣許昌 不過中宿이요 所憂穀食이어늘 而大司農印章 在我身注+中, 去聲. 中宿, 次宿也.하니라
羲兄弟不從하고 自甲夜至五鼓注+甲夜, 初夜也. 夜有五更, 一更爲甲夜, 二更爲乙夜, 三更爲丙夜, 四更爲丁夜, 五更爲戊夜. 爽乃投刀於地曰 我亦不失作富家翁이니라
範哭曰 曹子丹 佳人이러니 生汝兄弟하니 㹠犢耳로다 何圖今日坐汝族滅也注+子丹, 眞字. 佳人, 猶言佳士. 㹠, 與豚同. 小豕曰㹠, 小牛曰犢.오하더라
爽乃通懿奏하고 請下詔免己官하고 奉駕還宮하니 爽兄弟歸家 懿發吏卒圍守之注+吏卒, 洛陽令所主吏卒也.하다
有司奏호되 黃門張當 私以所擇才人與爽하니 疑有姦이라하여 收付廷尉考實하니
辭云 爽與何晏鄧颺丁謐畢軌李勝等으로 謀逆이라하니 於是 收爽羲等하고 幷桓範張當俱夷三族하다
先是 宗室曹冏 上書曰注+冏, 少帝之族祖也. 冏, 俱永切. 古者 必建同姓하여 以明親親하고 必樹異姓하여 以明賢賢하니 親疏竝用이라 故能保其社稷이러니
今州郡牧守 皆跨有千里하고 兼軍武之任하여 或比國數人하고 或兄弟竝據注+比, 接近也.하노이다
而宗室子弟 王空虛之地하고 君不使之民하여 曾無一人間厠其間하여 與相維制注+空虛, 謂有封國之名, 實不能有其地也. 君不使之民, 謂抗藩王之尊於國民之上, 不得而臣使也. 間, 隔也. 厠, 雜也.하니 非所以彊幹弱枝備萬一之虞也注+京師爲幹, 四方爲枝. 虞, 度也.
語曰 百足之蟲 至死不僵이라하니 以其扶之者 衆也注+馬蚿百足. 僵, 居良切.라하니 此言 雖小 可以譬大라하니
欲以感寤曹爽호되 不能用하다
及懿閉門 爽司馬魯芝聞變하고 將營騎하여 斫津門出赴爽注+營騎, 大將軍營騎士也. 津門, 洛城南出西頭第一門也, 亦曰建城門.이러라
及爽解印綬 主簿楊綜 止之曰 公挾主握權이어늘 捨此以至東市乎注+東市, 刑人之所也. 言必將見誅於市也.
有司奏收芝綜하니 懿曰 彼各爲其主也 宥之하라
芝之出也 呼參軍辛敞欲與俱어늘 敞謀於其姊憲英曰 天子在外어늘 太傅閉城門하니 人云 將不利國家라하니 於事 可得爾乎注+爾, 猶云如此也.아한대
憲英曰 以吾度之하니 太傅誅曹爽耳라하니 然則事就乎 曰 得無殆就 爽才非太傅偶也注+殆, 近也. 偶, 匹也.니라
然則可以無出乎 曰 職守 人之大義也 凡人在難이라도 猶或䘏之어든 執鞭而棄其事 不祥莫大焉이요
且爲人任하고 爲人死 親昵之職也 從衆而已注+左傳晏子曰 “君爲社稷死則死之, 若爲己死, 非其私昵, 誰敢任之.” 昵, 私愛也. 此言親者則可爲質任, 愛昵者則可爲之死.라하다
敞遂出이러니 事定之後 嘆曰 吾不謀於姊런들 幾不獲於義라하더라
○先是 爽辟王沈羊祜하니 沈勸祜應命하니 祜曰 委質事人 復何容易注+易, 去聲. 言不可輕易也.리오하다
沈遂行이러니 及爽敗하여 沈以故吏免하니 謂祜曰 吾不忘卿前語하노라 祜曰 此非始慮所及也注+言始慮亦不料爽至此, 不欲受知幾之名也.니라
○爽從弟文叔妻夏侯令女 早寡無子注+夏侯文寧之女, 名令女. 其父欲嫁之한대 令女截耳自誓하고 居常依爽이러니
爽誅 其家上書絶昏하고 強迎以歸하여 復將嫁之어늘 令女又斷其鼻하니
其家驚惋하여 謂之曰 人生世間 如輕塵棲弱草어늘 何至自苦乃爾 且夫家夷滅已盡하니 守此欲誰爲哉注+惋, 烏貫切, 驚歎也. 爲, 去聲.오하니
令女曰 吾聞仁者 不以盛衰改節하고 義者 不以存亡易心이라하니
曹氏前盛時에도 尙欲保終이어든 況今衰亡하니 何忍棄之리오 此禽獸之行이니 吾豈爲乎아하다
懿聞而賢之하고 聽使乞子字養하여 爲曹氏後하다
◑何晏等 方用事 自以爲一時才傑 人莫能及이라하여
嘗爲名士品目曰 唯深也故 能通天下之志 夏侯泰初 是也注+泰初, 玄字.
唯幾也故 能成天下之務 司馬子元 是也注+子元, 師字.
惟神也故 不疾而速하고 不行而至 吾聞其語이요 未見其人이라하니 蓋以自況也러라
晏聞平原管輅 明術數하고 請與論易한대 鄧颺在座하여 謂輅曰 君自謂善易이어늘 而語不及易中詞義 何也오하니
輅曰 夫善易者 不言易也 晏笑而賛之曰 可謂要言不煩이로다
因謂輅曰 試爲作一卦하여 當至三公不注+爲, 去聲. 不, 讀曰否.아하고 又問連夢靑蠅數十 來集鼻上하니 何也오하니
輅曰 元凱輔舜하고 周公佐周 皆以和惠謙恭으로 享有多福注+左傳 “高陽氏有才子八人, 蒼舒‧隤敱‧檮戭‧大臨‧尨降‧庭堅‧仲容‧叔達, 齊聖廣淵, 明允篤誠, 天下之民, 謂之八凱. 高辛氏有才子八人, 伯奮‧仲堪‧叔獻‧季仲‧伯虎‧仲熊‧叔豹‧季狸, 忠肅共懿, 宣慈惠和, 天下之民, 謂之八元.”하니
今君侯位尊勢重이어늘 而懐德者鮮하고 畏威者衆하니 殆非小心求福之道
願君侯 裒多益寡하고 非禮不履然後 三公可至하며 靑蠅 可驅也注+裒, 取也. 裒多益寡, 言晏據權勢, 揆分爲多, 當思自減損也.리라하니
颺曰 此老生之常譚注+譚, 與談同.이로다 輅曰 老生者 見不生이요 常譚者 見不譚注+言必見其死也.이니라
輅舅聞之하고 責其言大切한대 曰 與死人語 何所畏邪 舅怒以爲狂이러라
選部郞劉陶 少有口辯하니 鄧颺之徒 以伊呂稱之注+陶, 曄之子也.러니
陶嘗謂傅玄曰 智者於群愚 如弄一丸於掌中이라 而仲尼不能得天下하니 何以爲聖이리오하다
玄曰 天下之變無常也이라 今見卿窮矣라하더니 至是하여 陶退居里舍하여 乃謝其言之過하다
輅之舅亦謂輅曰 爾前何以知何鄧之敗오하니
輅曰 鄧之行步하여는 觔不束骨하며 脈不制肉하고 起立傾倚하여 若無手足하니 此爲鬼躁
何之視候하여는 魂不守宅하며 血不華色하고 精爽煙浮하고 容若槁木하니 此爲鬼幽 二者皆非遐福之象也注+管輅之與何‧鄧言也, 其陳義近於古人. 至答其舅論何‧鄧之所以敗, 則相者之說耳, 何前後之相戾也.니라
晏性自喜하여 粉白不去手하고 行步顧影注+粉白不去手, 以自塗澤也. 致堂曰 “晏以貌自喜, 粉白不去手.”하며
尤好老莊書하여 與夏侯玄荀粲王弼之徒 競爲淸談하고 祖尙虛無하여 謂六經爲聖人之糟粕注+粲, 彧之子也. 糟, 酒滓也. 粕, 已漉粗麄糟也. 莊子曰 “桓公讀書於堂上, 輪扁斲輪於堂下, 釋椎鑿而上, 問桓公曰 ‘敢問公所讀者何言邪.’ 公曰 ‘聖人之言也.’ 曰 ‘聖人在乎.’ 公曰 ‘已死矣.’ 曰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粕已矣. 古之人與其不可傳者死矣.’”이라하니
由是 天下士大夫慕效之하여 遂成風流하여 不可復制注+淸談之禍始此.러라
○魏護軍夏侯霸來奔하다
霸爲曹爽所厚하니 以父淵死於蜀으로 常切齒有報仇之志하고蜀護軍하여 統屬征西注+屬征西將軍府所統.하니
征西將軍夏侯玄 霸之從子 爽外弟也注+曹氏, 夏侯氏之出也, 玄父尙又娶於曹氏, 故玄於爽爲外弟. 至是하여 司馬懿召玄詣京師하고 而以郭淮代之하니
霸素與淮不叶이라 恐禍及하여 遂來奔注+叶, 和同也.하다
姜維問之曰 懿旣得政하니 當復有征伐之志不注+不, 讀曰否. 霸曰 彼方營立家門하니 未遑外事어니와
有鍾士季者하니 其人雖少 若管朝政이면 吳蜀之憂也니라 士季者 鍾繇之子이니 尙書郞會也
三月 吳大司馬朱然하다
氣候分明하고 內行修潔하며 終日欽欽하여 若在戰場注+欽欽, 言使人樂進也.하고 臨急膽定 過絶於人이라
雖世無事 每朝夕嚴鼓注+嚴鼓, 疾擊鼓也.하여 兵在營者 咸行裝就隊하여
以此玩敵하여 使不知所備 故出輒有功注+雖不出兵, 而常爲行備, 敵人之覘者玩以爲常, 則不知所以備豫矣.이러니 爲大司馬하여 病卒하니 吳主權 爲之哀慟이러라
姜維 伐魏雍州하여 不克하다
維攻魏雍州하여 依麴山築二城하고 使句安李守之하고 聚羌胡質任하여 侵偪諸郡注+麴山, 蓋在羌中, 魏雍州西南界. 句, 音鉤, 又古候切, 句安, 姓名. 質, 音致.하니
魏郭淮使刺史陳泰進兵圍之하여 斷其運道及城外流水注+泰, 群之子也.하니
將士窘困하여 分糧聚雪하며 以引日月이어늘 維引軍救之하여 出自牛頭山하여 與泰相對注+牛頭山, 蓋在洮水之南, 以形名山.하니
泰勅諸軍하여 各堅壘勿與戰하고 遣使白淮하여 使趣牛頭截其還路注+趣, 七喩切.하니
淮從之하여 進軍洮水注+洮, 音滔. 水經注 “洮水, 出隴西臨洮縣, 北至枹罕東入河.”한대 維懼하여 遁走하니 安等降魏하다
冬十二月 魏卽拜王凌爲太尉注+卽拜者, 就壽春拜爲太尉.하다
凌以將軍으로 假節督揚州西하고 其甥令狐愚爲兗州刺史하여 屯平阿注+令, 力呈切. 令狐, 復姓. 晉志 “平阿縣, 屬淮南郡, 有塗山.”
甥舅竝典重兵하여 專淮南之任하니 陰謀以魏主制於彊臣하고 楚王彪有智勇이라하여 欲共立之하고 迎都許昌注+彪, 武帝子.이라
愚遣其將與楚王相聞이어늘 凌子廣 諫曰 凡擧大事 應本人情이라 曹爽驕奢하며 平叔虛華注+平叔, 何晏字.하고 丁畢鄧桓專競於世注+丁謐‧畢軌‧鄧颺‧桓範.하니
所存雖高 而事不下接注+言雖存心於高曠, 而不切事情, 與下不接也.하고 變易朝典하니 民莫之從이라
故同日斬戮하여 名士減半하되 而百姓不哀하니 失民故也
今司馬懿情雖難量이나 事未有逆하고 而擢用賢能하여 修先朝政令하고 副衆心所求注+賢能, 謂蔣濟‧高柔‧孫禮‧陳泰‧郭淮‧鄧艾等.하며
爽之所以爲惡者 彼莫不改하고 夙夜匪懈하여 以恤民爲先하고
父子兄弟竝握兵要하니 未易亡也라하다 凌不從이러니 會愚病卒하다
魏光祿大夫徐邈卒하다
盧欽曰注+欽, 毓之子也. 徐公志高行潔하고 才博氣猛하니
其施之也 高而不狷하고 潔而不介하며 博而守約하고 猛而能寛注+介, 耿介也.이니라
或問欽호되 徐公當武帝之時 人以爲通이러니 自爲涼州刺史還하니 人以爲介 何也오하니
欽曰 往者毛孝先崔季珪用事 貴淸素之士注+孝先, 玠字. 季珪, 琰字.하니 時皆變易車服하여 以求名이어늘 而徐公不改其常이라 故人以爲通이라
比來天下 奢靡相效어늘 而徐公雅尙自若注+比, 近也.하니 故前日之通 乃今日之介也 是世人無常이나 而徐公有常耳라하다


己巳年(249)
[] 나라(蜀漢) 後主 延熙 12년이다.
[] 魏主 曹芳 嘉平 원년이고, 나라 大帝 孫權 赤烏 12년이다.
[] 봄 정월에 나라 司馬懿曹爽何晏 등을 죽이고 그 집안을 멸족시켰다.
[] 曹爽이 교만하고 사치하며 법도가 없어서 음식과 의복이 乘輿(천자)에 견주었다. 또 사사로이 先帝(明帝)의 才人을 취하여 妓女歌人으로 삼고,
地下室을 만들어서 사방으로 창을 내어 비단으로 가려놓고서는 何晏 등과 그 속에서 진탕 술을 마시니,注+窟室”은 땅을 파서 地下室을 만든 것이다. 는 무늬 있는 비단이다. “綺疏四周”는 그 주위를 통하게 하여 창을 만들고 비단으로 덮어 가린 것을 말한다. 일설에 “‘綺疏’는 화려한 꽃문양을 새기는 것을 말한다.” 하였다. 동생 曹羲가 울면서 간언하였으나 조상은 따르지 않았다.
또 조상의 형제들이 자주 함께 나가 놀았는데, 司農 桓範이 말하기를 “〈형제분들이〉 모든 정무를 총괄하고 궁궐의 병사들을 관장하시니,
형제분들이 모두 함께 성을 나가서는 안 됩니다. 만약 성문을 닫을 일이 있게 되면 형제분들을 성안에 들일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注+(들이다)는 으로 읽는다.라고 하니, 조상이 말하기를 “누가 감히 그렇게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 예전에 淸河郡平原郡이 경계를 가지고 다투어 8년 동안 해결되지 않았다. 冀州刺史 孫禮天府에 있는 烈祖(明帝)가 平原王에 봉해졌을 때의 지도를 가지고 결정해주기를 청하였다.注+烈祖明帝니, 平原王에 봉해졌다. 땅을 구획하고 封國을 나누면 지도를 天府에 둔다. ≪周禮≫ 〈春官〉에 天府가 있는데, 鄭玄 에 이르기를 “〈天府는〉 祖廟寶藏을 관장하고, 또 賢能을 천거한 문서와 공적을 기록한 문서를 모두 天府에 보관한다.” 하였다.
曹爽이 청하군의 상소를 믿어서 “지도를 사용할 수 없다.”라고 하자, 손례가 상소하여 자신을 변론하였는데, 말이 꽤 강경하고도 간절하였다. 조상이 크게 노하여 손례가 원망했다고 탄핵하여 徒刑 5년형을 판결하였다.注+結刑五歲”는 다만 徒刑 5년형을 판결하고 노역은 시키지 않은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손례가 다시 幷州刺史가 되었는데, 司馬懿를 찾아가서 분한 기색이 있었지만 말이 없었다. 그러자 사마의가 말하였다. “幷州刺史가 된 것이 부족하다 여겨 그러는 것인가? 分界를 처리한 것이 마땅함을 잃어서 화가 난 것인가?”注+冀州는 여러 주들보다 크고 幷州는 멀리 변방 밖에 접해 있으므로 마음속에 원망을 품은 것이다. (분수)은 扶問이다.
손례가 말하였다. “제가 비록 덕이 없지만 어찌 이것을 마음에 두겠습니까. 본래 明公께서 나라 황실을 바르게 보필하시어, 明帝의 의탁함에 보답하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사직이 장차 위태로워서 천하가 흉흉하니, 이것이 기뻐하지 않는 까닭입니다.”注+(흉악하다)은 과 통용하여 쓰니, 許容이고, 또 上聲이다. 손례가 이어서 울면서 눈물을 흘리자, 사마의가 말하였다. “〈울음을〉 우선 그치라. 참을 수 없더라도 참아야 한다.”
[] 뒤에 李勝荊州刺史로 나갈 때에 司馬懿를 방문하여 인사를 하였다. 사마의가 두 명의 여종에게 시중을 들게 하였는데, 옷을 집자 옷이 떨어졌고,
입을 가리키면서 목이 마르다고 말하자 여종이 죽을 올렸는데, 사마의가 사발을 잡고 마시지 못하니, 죽이 흘러 가슴을 적셨다. 이승이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明公께서 옛날의 中風이 재발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럴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注+魏武帝(曹操)가 司馬懿를 불렀을 적에 사마의는 風痹(중풍의 일종)로 사양하였다. 그러므로 이승이 옛날의 풍비가 재발했다고 말한 것이다.
사마의는 목소리와 숨을 겨우 이어가면서 말하였다. “나이가 늙고 병으로 누워 있어서 죽음이 조석에 달려 있다. 幷州와 가까운 지역이니 이곳을 잘 대비하라. 또 아들 司馬師司馬昭를 부탁한다.”注+(이어지다)은 之欲이니, 〈“使聲氣纔屬”은〉 소리를 내고 기운을 부리는 것이 끊어지려 하면서도 겨우 이어지는 모습이다. 司馬懿가 일부러 이런 모습을 하여 쇠하고 늙어 쓸모가 없음을 보인 것이다.
이승이 말하였다. “외람되이 本州를 맡아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幷州가 아닙니다.”注+李勝南陽 사람이다. 그러므로 荊州本州라고 말한 것이다. 사마의가 다시 두서없이 말하였다. “그대가 막 幷州에 부임하였는가?” 이승이 말하였다. “외람되이 荊州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마의가 말하였다. “나이가 들고 마음이 어지러워 그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지금 本州를 맡게 되었다고 하니, 功勳을 잘 세우라.”
이승이 물러나와서 曹爽에게 고하였다. “司馬公이 시체처럼 누워서 가는 숨만 남아 있고 몸과 정신이 이미 분리되었으니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注+〈“尸居餘氣 形神已離”는〉 그의 몸과 정신이 이미 분리되어 오직 시체처럼 있으면서 가는 숨만 쉴 뿐임을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 조상 등이 다시 대비를 하지 않았다.
[] 이달에 魏主 曹芳高平陵을 배알하였는데, 曹爽이 동생 曹羲曹訓曹彦과 함께 모두 따라갔다.注+高平陵明帝이다. 孫盛이 말하기를 “高平陵洛城과 거리가 90리이다.” 하였다. (뒤따르다)은 才用이다.
司馬懿司馬師司馬昭와 함께 도모하여 皇太后詔令으로 모든 성문을 닫고 병사를 무장하고 武庫를 점거하였다.
司徒 高柔를 불러서 을 주어 大將軍의 일을 대행하게 하여 조상의 兵營을 점거하게 하고, 太僕 王觀에게 中領軍의 일을 대행하게 하여 조희의 兵營을 점거하게 하였다.
사마의가 魏主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대장군 조상은 선제의 顧命을 져버리고 국가의 법전을 어지럽히고 자신을 참람하게 황제에 견주고 권력을 독단하여 禁軍을 모두 장악하고 여러 관직의 요직에 모두 친한 자를 배치하고
궁궐 안의 宿衛를 자신의 사람으로 바꾸어서 至尊을 엿보고 을 이간질하니, 천하가 흉흉하여 사람들마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注+(용솟음치다)은 음이 이고, 또 上聲이다. “天下洶洶 人懷危懼”는 천하가 시끄럽고 요란함이 마치 물이 용솟음치는 것과 같으므로 사람들이 위태롭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이는 先帝께서 조령을 내려 폐하와 御牀에 올라오게 한 본뜻이 아닙니다.注+資治通鑑≫에는 이보다 위의 글에 “신이 옛날에 遼東에서 돌아왔을 때 先帝께서 조서를 내려 陛下, 秦王御牀에 올라오게 하고 신의 팔을 잡고서 매우 뒷날의 일을 염려하였습니다.” 하였다. 太尉 蔣濟 등이 모두 ‘조상이 군주를 무시하는 마음이 있으니, 그의 형제들이 금군을 맡아서 숙위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여 永寧宮(郭太后)에 상주하였는데,
황태후께서 에게 명령을 내려서 상주한 대로 시행하게 하셨습니다. 이 독단하여 주관자에게 명하여 ‘조상‧조희‧조훈의 관직과 병권을 파하니, 의 신분으로만 집으로 돌아가게 하라.
감히 車駕(황제)를 머물러 지체하게 하면 바로 군법으로 처리할 것이다.’라고 하고, 이 독단하여 병든 몸을 지탱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洛水浮橋에 주둔하여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注+은 독단한다는 뜻이다. 司馬懿가 비록 太后를 끼고 曹爽을 다스리면서 그의 상주에 스스로 독단했다는 말을 두 번이나 한 것은 천자가 조상의 처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力疾”은 병을 앓은 채 힘써서 일어나는 것이다. ≪水經注≫에 “洛城 남쪽으로 나가는 문 중에 서쪽의 제2문을 宣陽門이라고 하니 나라의 小苑門인데 閶闔門과 마주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洛水浮橋에 닿는다.” 하였다.
[] 曹爽司馬懿의 상주문을 보고서 다급해져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사마의가 조상과 친하고 신임을 받는 사람을 보내서 조상에게 유세하여 서둘러 죄를 자수하게 하였는데, 〈그가 조상에게〉 “오직 관직이 면직될 뿐이다.” 하였다.
사마의가 皇太后詔令으로 桓範을 부르자 환범이 詔令에 응하려고 하였는데, 그의 아들이 말하기를 “車駕(황제)가 밖에 있으니 〈폐하가 계신〉 남쪽으로 나가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환범이 마침내 성문 밖으로 빠져나가니, 사마의가 蔣濟에게 말하기를 “꾀주머니가 가버렸구나.”라고 하였다. 장제가 말하기를 “둔한 말은 말구유에 있는 콩을 좋아하니, 〈조상은 환범의 계책을〉 반드시 쓰지 못할 것입니다.”注+士限이니, 말구유라는 뜻이다. 콩은 말을 먹이기 위한 것이다. 〈“駑馬戀棧豆 必不能用也”는〉 曹爽妻子를 돌아보고 그리워하여 생각이 멀리 미치지 못하여 반드시 환범의 계책을 쓰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桓範曹爽에게 권하기를 천자를 모시고 許昌으로 가서 사방의 병사를 동원하여 자신을 돕게 하라 하였는데, 조상이 주저하고 결정하지 못하였다.
환범이 曹羲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일은 분명하니, 경은 무엇 하려고 독서하였는가. 지금 경의 집안이 〈망하면〉 貧賤을 구하고자 한들 다시 얻을 수 있겠는가.
또 어떤 한 사람을 인질로 잡은 匹夫라도 오히려 목숨을 보존하길 바라는데,注+(볼모)는 음이 이다. 경은 천자와 동행하고 있으니, 천하에 명령을 내리면 누가 감히 응하지 않겠는가.
지금 허창에 가는 것이 이틀 길에 불과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곡식인데, 大司農印章이 내 몸에 있다.”注+(다음)은 去聲이다. “中宿”은 다음 날 밤이다.
조희 형제가 따르지 않고 시간이 甲夜에서 五鼓(5경)에 이르자注+甲夜初夜이다. 에는 5경이 있는데, 1경을 甲夜(오후 8시)라고 하고, 2경을 乙夜(오후 10시)라고 하고, 3경을 丙夜(밤 12시)라고 하고, 4경을 丁夜(새벽 2시)라고 하고, 5경을 戊夜(새벽 4시)라고 한다. 조상이 칼을 땅에 던지며 말하기를 “나는 〈항복하여 관직과 권력을 잃을지언정〉 또한 부잣집 노인의 지위만은 잃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환범이 울면서 말하기를 “曹子丹(曹眞)은 아름다운 선비였는데, 돼지와 소 새끼 같은 너희 형제를 낳았구나. 오늘날 너희들에 연루되어 족멸될지 어찌 알았겠는가.”注+子丹曹眞이고, “佳人”은 아름다운 선비라는 말과 같다. (돼지)은 과 같다. 어린 돼지를 이라고 하고, 어린 소를 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 曹爽은 마침내 司馬懿가 상주한 것을 〈魏主에게〉 통보하고 조서를 내려서 자기의 관직을 면직하고, 御駕를 모시고 궁중으로 돌아갈 것을 청하였다. 조상 형제가 집으로 돌아가자 사마의가 관리와 병사를 동원하여 그들의 집을 포위하여 지키게 하였다.注+吏卒”은 洛陽令이 관장하는 관리와 병졸들이다.
有司가 상주하기를 “黃門 張當이 사사로이 才人(궁중 女官)을 뽑아 조상에게 주었으니, 간사한 짓을 했는지 의심이 됩니다.”라고 하여 장당을 잡아서 廷尉에게 회부하여 사실을 조사하게 하니,
供招에 “조상이 何晏, 鄧颺, 丁謐, 畢軌, 李勝 등과 함께 반역을 도모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조상, 曹羲 등을 체포하고 아울러 桓範, 張當과 함께 모두 三族을 멸하였다.
司馬懿가 曹爽을 모살하다司馬懿가 曹爽을 모살하다
[] 이보다 앞서 宗室 曹冏(조경)이 다음과 같이 上書하였다.注+少帝(曹芳)의 族祖이다. 俱永이다. “옛날에 반드시 同姓諸侯를 세워서 친족을 친애하는 뜻을 밝히고, 반드시 異姓諸侯를 세워 현인을 어질게 여기는 뜻을 밝혔으니, 친소를 함께 등용하였으므로, 그 사직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州牧郡守들은 모두 천 리가 넘는 땅을 소유하고 군대의 임무를 겸하고 있어서 혹 국가에 견줄 만한 이도 몇 명이고, 혹 형제가 함께 점거하고 있습니다.注+는 가까이 접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종실의 자제들은 이름만 있고 실제가 없는 땅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임금이면서 백성을 부리지 못하여 한 사람도 州牧郡守의 사이에 끼어들어서 그들을 서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으니,注+空虛”는 封國의 명칭은 있으나 실제로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君不使之民”은 제후왕이 백성의 위에 높이 있는 것을 막아서 백성을 신하로 삼아 부릴 수 없게 한 것을 말한 것이다. 은 가로막는다는 뜻이다. 은 섞인다는 뜻이다. 이는 줄기를 강화하고 가지를 약화시켜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방법이 아닙니다.注+京師는 줄기가 되고, 四方은 가지가 된다. 는 헤아린다는 뜻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백 개의 발을 가진 벌레는 죽음에 이르도록 쓰러지지 않는다.’라고 하니, 부축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注+馬蚿(노래기)은 백 개의 다리가 있다. (넘어지다)은 居良이다. 이 말이 매우 하찮으나, 큰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조경이 이 논의로 조상을 깨우치고자 하였으나, 조상은 이를 채용하지 못하였다.
[] 司馬懿가 성문을 닫았을 때에 曹爽司馬 魯芝가 변고를 듣고 진영의 기병을 거느리고 津門을 부수고 조상에게 달려갔다.注+營騎大將軍 진영의 기병이다. 津門洛城의 남쪽으로 나가는 문 중에 서쪽의 제1문으로, 또한 建城門이라고 한다.
조상이 印綬를 풀어 항복할 적에 主簿 楊綜이 그를 저지하면서 말하기를 “공께서는 天子를 모시고 權柄을 장악하고 있는데, 이를 버리고 東市로 가시겠습니까.”注+東市는 사람을 형벌하는 곳이다. 반드시 장차 東市에서 주벌을 당하게 될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有司가 노지와 양종을 체포하겠다고 아뢰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저들은 각각 그 주인을 위한 것이니 용서하라.”라고 하였다.
[] 魯芝가 성문을 나갈 때에 參軍 辛敞을 불러 함께 가려고 하였는데, 신창이 그의 누나 辛憲英과 의논하여 말하였다. “天子가 밖에 있는데 太傅(司馬懿)가 성문을 닫았습니다. 사람들이 앞으로 국가(황제)에 이롭지 못할 것이라고 하니, 일에 있어 이와 같이 되겠습니까?”注+(이와 같다)는 如此라는 말과 같다.
신헌영이 말하였다. “내가 헤아려보니, 태부가 曹爽만 주벌할 것이다.” 신창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태부의 일이 성공하겠습니까?” 신헌영이 말하였다. “성공하지 못할 리가 있겠느냐. 조상의 재주는 태부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注+는 가깝다는 뜻이다. 는 짝한다는 뜻이다.
신창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성을 나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신헌영이 말하였다. “직책을 지키는 것은 사람의 大義이다. 보통 사람이 환난에 있더라도 오히려 구휼하는데, 〈남을 위해〉 채찍을 잡고 직책을 담당하다가 그 직책을 버리면 상서롭지 못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또 남을 위하여 직책을 맡고 남을 위하여 죽음에 나가는 것은 친애를 받는 사람의 직임이니, 너의 무리를 따를 뿐이다.”注+春秋左氏傳襄公 25년에 晏平仲이 말하기를 “임금이 사직을 위해 죽으면 신하도 그를 위해 죽지만, 만약 임금이 자기 자신을 위해 죽으면 임금에게 사사롭게 총애를 받은 자가 아니면 누가 감히 함께 죽는 일을 감당하겠는가.” 하였다. 은 사사로이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는 친애를 받은 자는 그를 위해 人質이 될 수 있고, 총애를 받은 자는 그를 위해 죽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신창이 마침내 나갔는데, 일이 끝난 뒤에 탄복하여 말하였다. “내가 누나와 도모하지 않았다면 거의 대의를 잃을 뻔했구나.”
[] 이보다 앞서 曹爽王沈羊祜辟召하니, 왕침이 양호에게 명에 응할 것을 권하였다. 양호가 말하였다. “몸을 바쳐서 남을 섬기는 것이 또한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注+(쉬움)는 去聲이니, 〈“復何容易”는〉 쉽게 여겨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왕침이 마침내 출사하였는데, 조상이 패하게 되자 왕침이 조상의 故吏였다는 이유로 면직이 되었다. 왕침이 양호에게 말하였다. “나는 경이 전에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양호가 말하였다. “이 일은 애초에 생각이 미친 것이 아니다.”注+〈“非始慮所及也”는〉 처음 생각에 또한 조상이 이런 지경이 될 줄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일의 기미를 알았다는 명성을 받기를 원치 않음을 말한 것이다.
[] 曹爽從弟(사촌 아우) 曹文叔의 처 夏侯令女가 일찍 과부가 되어 자식이 없었다.注+夏侯文寧의 딸은 이름이 令女이다. 그 친정아버지가 하후영녀를 〈다시〉 시집보내려고 하자 하후영녀가 귀를 잘라 스스로 맹세하고 평소에 조상에게 의지하여 살았다.
夏侯令女가 귀를 자르다夏侯令女가 귀를 자르다
조상이 죽게 되자 하후영녀의 집안에서 글을 올려 혼인 관계를 끊고 강제로 하후영녀를 맞이하여 돌아가서 다시 시집을 보내려고 하였다. 하후영녀가 또 코를 자르니,
그 집안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하후영녀에게 말하였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가벼운 먼지가 약한 풀에 붙은 것과 같은데, 어찌하여 이처럼 스스로 고생을 하는가. 또 남편의 집안이 멸족하여 이미 없어졌는데, 이렇게 절개를 지키는 것은 누구를 위하려 하는 것인가.”注+烏貫이니, 놀라고 감탄한다는 뜻이다. (위하다)는 去聲이다.
하후영녀가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어진 자는 성쇠에 따라 절개를 고치지 않고, 의로운 자는 존망에 따라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曹氏가 이전에 성대할 때에도 절개를 오히려 끝까지 보존하고자 했는데, 하물며 지금은 쇠망하였으니 어찌 차마 버리겠습니까. 이는 금수와 같은 짓이니, 내가 어찌 하겠습니까.”
司馬懿가 그 소식을 듣고 하후영녀를 훌륭하게 여기고 그녀에게 養子를 들이고 양육해서 曹氏의 후사로 삼는 것을 허락하였다.
[] 何晏 등이 한창 정권을 쥐고 있을 때, 한 시대의 뛰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은 남들이 따라올 수가 없다고 여겨
일찍이 유명한 선비들을 품평하여 말하였다. “심원하기 때문에 천하 사람의 뜻을 통하니, 夏侯泰初(夏侯玄)가 바로 그 사람이다.注+泰初夏侯玄이다.
기미를 살피기 때문에 천하의 일을 이루니, 司馬子元(司馬師)이 바로 그 사람이다.注+子元司馬師이다.
[] 何晏平原 사람 管輅術數에 밝다는 소문을 듣고 청하여 함께 ≪周易≫을 논하였는데, 鄧颺이 자리에 있다가 관로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스스로 ≪주역≫을 잘 안다고 하면서 말이 ≪주역≫ 가운데의 말과 의리에 미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관로가 말하였다. “≪주역≫을 잘 아는 자는 ≪주역≫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안이 웃으며 그를 칭찬하여 말하였다. “말이 긴요하면서 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이어 관로에게 말하였다. “시험 삼아 나를 위하여 한 를 내어서 三公에 오를 수 있는지 알아보겠는가?”注+(위하다)는 去聲이다. 로 읽는다. 또 물었다. “연일 꿈속에 쉬파리 수십 마리가 나의 콧등에 모이니 어찌된 것인가?”
관로가 말하였다. “八元八凱임금을 보좌하고 周公나라 成王을 보좌할 적에 모두 溫和仁惠謙虛恭敬으로 하여 많은 복을 누렸습니다.注+春秋左氏傳文公 18년에 “高陽氏는 재주 있는 아들 여덟이 있으니, 蒼舒隤敱檮戭大臨尨降庭堅仲容叔達이다. 이들은 엄숙하고 슬기롭고 광대하고 심원하며 명철하고 진실하며 돈독하고 성실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八凱’라고 불렀다. 高辛氏는 재주 있는 아들 여덟이 있으니, 伯奮仲堪叔獻季仲伯虎仲熊叔豹季狸이다. 이들은 충성스럽고 엄숙하며 공손하고 미려하며 사려가 周密하고 인자하고 은혜롭고 온화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八元’이라고 불렀다.” 하였다.
지금 君侯는 지위가 높고 권력이 막중한데, 은덕으로 여기는 이는 적고 위엄을 두려워하는 이는 많으니, 아마도 조심해서 복을 구하는 도리가 아닌 듯합니다.
바라건대 君侯 가 아니면 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뒤에 三公에 이를 수 있을 것이며, 쉬파리를 몰아낼 수 있습니다.”注+는 취한다는 뜻이다. “裒多益寡”는 何晏이 권세를 쥐고 있으니 자기 분수를 헤아려보고 많다고 여기면 스스로 덜어낼 것을 생각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등양이 말하였다. “이런 말은 늙은 서생의 평범한 말이다.”注+(말하다)은 과 같다. 관로가 말하였다. “늙은 서생이 죽을 자를 볼 수 있고 注+〈“老生者……見不譚”은〉 반드시 그의 죽음을 볼 것임을 말한 것이다.
관로의 외삼촌이 그 말을 듣고 관로의 말이 너무 노골적이었다고 꾸짖자, 관로가 말하였다. “죽을 사람과 말을 하는 데에 어찌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외삼촌이 화를 내고 관로를 미치광이라고 여겼다.
[] 選部郞 劉陶가 젊어서 말재주가 좋았는데, 鄧颺의 무리들이 그를 칭송하기를 伊尹, 呂尙이라고 하였다.注+劉陶劉曄의 아들이다.
유도가 일찍이 傅玄에게 말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들을 마치 하나의 구슬을 손바닥 안에서 놀리듯이 한다. 仲尼(孔子)가 천하를 얻지 못하였으니, 어찌 聖人이라고 하겠는가.”
부현이 말하였다. “天下의 변화는 일정함이 없으니, 지금 경이 곤궁해질 것이 보인다.” 이때에 이르러 유도는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집에 살면서 자기 말의 잘못을 사과하였다.
[] 管輅의 외삼촌이 또한 관로에게 말하기를 “네가 전에 何晏鄧颺이 패배할 것을 어찌 알았느냐?”
관로가 말하였다. “등양이 걸을 때는 힘줄이 뼈를 잡아주지 못하고 혈맥이 살을 잡아주지 못하여 일어날 때 몸이 기울어 손발이 없는 듯했으니, 이를 鬼躁라 합니다.
하안이 문안했을 적에 이 몸을 떠난 듯하고, 혈색이 좋지 않고, 정신이 연기처럼 떠돌고, 용모가 마른 나무와 같았으니, 이를 鬼幽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큰 복을 받을 형상이 아닙니다.”注+管輅何晏鄧颺과 말을 할 적에는 그가 말하는 뜻이 古人에 가까웠다. 그런데 외삼촌에게 답하여 하안과 등양이 실패한 이유를 논한 것에 이르러서는 관상을 보는 자의 말이었을 뿐이니, 어찌 그리도 앞뒤가 서로 어긋나는가.
[] 何晏은 성품이 스스로를 사랑하여 흰 분을 손에서 놓지 않고 걸을 때에는 그림자를 돌아보았다.注+粉白不去手”는 스스로 化粧을 하는 것이다. 이 말하기를 “何晏은 자신의 용모를 사랑하여 흰 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였다.
老莊의 글을 더욱 좋아하여 夏侯玄荀粲王弼의 무리들과 경쟁적으로 淸談을 하고 虛無를 숭상하여 六經을 ‘聖人糟粕(찌꺼기)’이라고 하였다.注+荀粲荀彧의 아들이다. 는 술지게미이다. 은 거친 술지게미[]를 거른 것이다. ≪莊子≫ 〈天道〉에 말하기를 “桓公堂上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輪扁(수레바퀴를 만드는 사람)이 堂下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아두고 올라가 환공에게 묻기를 ‘감히 여쭈오니 공께서 읽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라고 하자, 환공이 말하기를 ‘聖人의 말이다.’라고 하였다. 윤편이 ‘성인이 살아 있습니까?’라고 하니, 환공이 말하기를 ‘이미 죽었다.’라고 하자, 윤편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임금께서 읽는 것은 古人糟粕일 뿐입니다. 고인은 전하지 못한 것과 함께 죽었습니다.’라고 하였다.”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천하의 大夫들이 사모하고 본받아서 마침내 流風을 이루어 다시 제재할 수 없었다.注+淸談의 재앙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 나라가 司馬懿丞相으로 삼고 을 더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 나라 護軍 夏侯霸가 〈나라(蜀漢)로〉 도망쳐왔다.
[] 夏侯霸曹爽에게 후한 대접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 夏侯淵에서 죽었으므로 항상 이를 갈면서 원수를 갚으려는 뜻이 있었고, 이 되어 에 예속되었다.注+〈“統屬征西”는〉 征西將軍府에 소속되어 통제를 받은 것이다.
征西將軍 夏侯玄은 하후패의 조카이고 조상의 이종 아우이다.注+曹氏夏侯氏에서 나왔는데, 夏侯玄의 아버지 夏侯尙이 또 조씨에게 장가를 갔다. 그러므로 하후연은 조상에게 이종 동생이 된다. 이때에 이르러 司馬懿가 하후현을 불러 京師로 오게 하고 郭淮를 하후현의 후임으로 삼았다.
하후패는 평소에 곽회와 마음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재앙이 미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蜀漢으로 도망쳐왔다.注+(화합하다)은 와 같다.
姜維가 그에게 묻기를 “사마의가 이미 정권을 얻었으니, 마땅히 다시 정벌할 뜻이 있겠는가?”注+로 읽는다.라고 하니, 하후패가 말하기를 “저 사람은 한창 가문을 세우고 있으니, 외부의 일에 관심을 둘 여가가 없습니다.
그러나 鍾士季라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비록 젊지만 만약 조정 일을 관장하게 된다면 蜀漢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종사계는 鍾繇의 아들이니, 尙書郞 鍾會이다.
[] 3월에 나라 大司馬 朱然하였다.
[] 朱然은 기색과 풍모가 밝고 지조와 품행이 고결하며, 전쟁터에 있는 것처럼 온 종일 사람을 잘 부렸으며,注+ 위급한 일에 임하면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남보다 뛰어났다.
비록 당시에 전쟁이 없어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경계를 알리는 북을 치고서注+嚴鼓”는 북을 빠르게 친다는 뜻이다. 병영에 있는 자들을 다 행장을 꾸려서 대오를 이루게 하였다.
이것으로 적군의 신경을 무디게 만들어서 적군에게 언제 방비해야 할지 모르게 하였다. 그러므로 출동할 때마다 번번이 공을 세웠다.注+비록 병사를 출동하지 않으나 항상 출동 준비를 하여 정탐하는 적군이 평상시처럼 익숙하게 여긴 것이니, 적군이 언제 방비해야 할지를 알지 못한 것이다. 大司馬가 되어 병이 들어 하니, 吳主 孫權이 주연을 위하여 애통해하였다.
[] 가을에 姜維나라 雍州를 공격해서 이기지 못하였다.
[] 姜維나라 雍州를 공격하여 麴山을 의지하여 두 개의 을 쌓고 句安李歆을 보내어 이곳을 지키게 하고 羌人胡人들의 인질을 잡고서 강족과 호족에게 여러 을 침범하게 하였다.注+麴山 지역에 있는데, 나라 雍州 서남쪽 경계이다. (갈고리)는 음이 이고, 또 古候이다. 句安은 성명이다. (인질)은 음이 이다.
나라 郭淮刺史 陳泰를 보내 병사들을 진격시켜 국산을 포위하여 운송하는 길과 성 밖에서 흘러드는 물을 끊었다.注+陳泰陳群의 아들이다.
성안 장병들이 곤궁해져 식량을 나누어 먹고 눈을 모아서 마시며 시일을 끌었는데, 강유가 군대를 이끌고 이들을 구원하여 牛頭山에서 나와 진태와 서로 대치하였다.注+牛頭山洮水의 남쪽에 있는데, 〈소머리의〉 모양으로 산의 이름을 지었다.
姜維가 牛頭山에서 크게 싸우다姜維가 牛頭山에서 크게 싸우다
진태가 여러 군대에 명령을 내려서 각각 보루를 굳게 지키고 상대하여 싸우지 말게 하고, 사자를 보내 곽회에게 보고하여 우두산으로 빨리 달려가게 하여 강유의 돌아가는 길을 끊게 하였다.注+(달려가다)는 七喩이다.
곽회가 이를 따라 洮水로 진군하자,注+는 음이 이다. ≪水經注≫에 “洮水隴西 臨洮縣에서 나와 북쪽으로 枹罕에 이르고 동쪽으로 흘러 황하에 들어간다.” 하였다. 강유가 두려워하여 달아나니, 구안 등이 나라에 항복하였다.
[] 겨울 12월에 나라가 현지에서 王凌을 제수하여 太尉로 삼았다.注+卽拜”는 〈使者가〉 壽春으로 나아가 太尉에 제수한 것이다.
[] 예전에 王凌將軍으로 假節을 받아 揚州의 서쪽을 감독하고 그의 甥姪 令狐愚兗州刺史가 되어 平阿에 주둔하였다.注+力呈이다. 令狐는 복성이다. ≪晉書≫ 〈地理志〉에 “平阿縣淮南郡에 소속되어 있으며 塗山이 있다.” 하였다.
생질과 외삼촌이 나란히 많은 병력을 관장하여 淮南의 직임을 전담하게 되자, 음밀하게 모의하기를 魏主가 강한 신하에게 통제를 받고 楚王 曹彪에게 지혜와 용기가 있다고 하여 함께 조표를 천자로 세우고 그를 맞이하여 許昌에 도읍을 하고자 하였다.注+楚王 曹彪武帝(曹操)의 아들이다.
영호우가 그의 부하 장수를 파견하여 초왕과 서로 소식을 통하였다. 왕릉의 아들 王廣이 다음과 같이 간언하였다. “무릇 큰일을 거행할 때에는 마땅히 人情을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曹爽은 교만하고 사치하였으며, 何平叔(何晏)은 겉으로만 화려하고,注+平叔何晏이다. 丁謐畢軌鄧颺桓範은 세상에서 오로지 명리만을 다투었습니다.注+〈“丁畢鄧桓”은〉 丁謐, 畢軌, 鄧颺, 桓範이다.
마음을 둔 것이 비록 고상하였지만 일이 아래와 이어지지 않았고注+〈“所存雖高 而事不下接”은〉 비록 높고 탁 트이는 데(淸談) 마음을 두었지만 일의 실정에 절실하지 않아 아래와 이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조정의 법을 바꾸었으니, 백성들 중에 따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같은 날 죽임을 당하여 名士가 반으로 줄었지만 백성들이 슬퍼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백성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비록 司馬懿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어려우나 일에 아직 반역의 조짐이 있지 않고 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을 발탁해 등용하여 이전 조정의 政策法令을 닦고 민심이 바라는 바에 부응하며,注+賢能”은 蔣濟高柔孫禮陳泰郭淮鄧艾 등을 말한다.
조상이 저지른 악행을 사마의가 고치지 않은 것이 없고,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아 백성을 구휼하는 것으로 급선무로 삼았습니다.
부자와 형제가 아울러 군사의 대권을 장악하고 있으니, 쉽게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릉이 따르지 않았는데, 마침 영호우가 병들어 하였다.
[] 나라 光祿大夫 徐邈하였다.
[] 盧欽注+盧毓의 아들이다. 徐邈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徐公은 뜻이 고상하며 행실이 깨끗하고 재주가 넓으며 기질이 용맹하였다.
그가 시행한 것은 고상하면서도 편협하지 않았고 깨끗하면서도 고집하지 않았으며 넓으면서도 지킴이 요약되었고, 용맹하면서도 관용을 베풀었다.”注+는 강직하면서 절조를 지킨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노흠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서공이 武帝(曹操) 때에는 사람들이 통달하였다고 말하였는데, 涼州刺史가 되었다가 서울로 오고 나서 사람들이 고집을 부린다고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노흠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전에 毛孝先(毛玠)과 崔季珪(崔琰)가 정권을 잡았을 때에 청렴하며 소박한 선비를 중시하니,注+孝先毛玠이다. 季珪崔琰이다. 당시에 모든 이들이 수레와 복식을 바꾸어 명성을 구하려고 하였으나 서공은 평소 행동을 바꾸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통달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근래에 천하가 사치하는 풍속을 서로 본받았는데 서공이 고상하여 태연자약하니,注+는 근래라는 뜻이다. 이전에는 통달했다고 여기고 지금은 고집을 부린다고 한 것이다. 이는 세상 사람들은 일정함이 없지만 서공은 일정함이 있어 그런 것이다.”


역주
역주1 魏司馬懿 殺曹爽 : “曹爽의 죄가 극심한데 ‘殺’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司馬懿를 미워한 것이니, 司馬氏의 위세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조상에게 죄가 없는 것인가. 조상 등에게 관직을 쓰지 않았으니, 조상에게 죄를 준 것이다.[爽罪甚矣 其書殺 何 惡懿也 司馬氏之威 始此矣 然則爽無罪歟 爽等不書官 所以罪之也]” ≪書法≫
“曹爽이 遺詔를 받아 政事를 보좌하여 신분이 大將軍이고 또 侍中 都督中外諸軍 錄尙書事를 겸직하였는데, 司馬懿가 조상을 죽이기를 마치 여우나 돼지를 죽이듯이 하였다. ≪資治通鑑綱目≫에서 또한 조상의 관직을 삭제하여 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조상이 법도 없이 교만과 사치를 부리고 참람히 乘輿(천자)에 견주었으며, 親黨을 많이 심고 조정의 권력을 독점하였으며, 술에 빠지고 음탐한 짓을 하고 浮薄한 인물을 믿고 등용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정사를 보좌하는 大臣이 할 일인가. 事變이 이미 드러났는데도 또다시 桓範의 계책을 쓰지 못하고 그 임금을 끼고서 자신의 죄를 면하고자 하고, 마침내 부잣집 늙은이가 되기를 놓치지 않으려 하였으니, 우매하고 그릇된 것이 이와 같았다. 이는 다만 여우와 돼지만도 못한 것이니, 어찌 귀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조상이 이미 죄가 있는데, 어찌하여 그가 〈죄를 받아〉 伏誅되었다는 글로 바로잡지 않고 사마의가 살해했다고 글을 썼는가. 사마의는 孤兒(曹芳)을 속이고 寡婦(太后)를 유약하게 여겨서 이미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다만 일로 인해 드러낸 것이니, 魏나라를 보좌하는 데에 반드시 충성을 한 것만은 아니므로 그 書法이 이와 같다. 先儒(文中子)께서 말하기를 ‘≪春秋≫는 王道에 있어서 마치 무게를 다는 저울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臣은 ≪資治通鑑綱目≫이 予奪(褒貶)에 있어서 역시 무게를 다는 저울이라고 생각하니, 어찌 사마의에게 후하게 하고 조상에게 박하게 한 것이겠는가.[曹爽受遺輔政 身爲大將軍 又加侍中都督中外諸軍錄尙書事 而司馬懿殺之 如斃狐豚 綱目亦削其官而不書 何哉 驕奢無度 僭擬乘輿 多置親黨 專擅朝權 縱酒宣淫 信用浮薄 此豈輔政大臣所當爲耶 及事變已形 又不能用桓範之謀 挾其主以自免 乃欲不失作富家翁 蠢繆若此 是特狐豚之不若耳 何足貴哉 然爽旣有罪 胡不正其伏誅之名而以懿殺爲文 蓋懿欺孤弱寡 已有無君之心 特因事而發 非必忠於佐魏 故其書法如此 先儒謂春秋之於王道 猶輕重之權衡 臣謂綱目之於予奪 亦輕重之權衡也 夫豈厚於懿而薄於爽哉]” ≪發明≫
역주2 假節 : 漢나라 말엽과 魏晉南北朝 시기에 지방의 軍政을 관장한 관리에게 종종 使持節, 持節, 假節이라는 칭호를 붙이기도 하였는바, 임시로 부절을 빌려주어 황제를 대리하여 군대를 통솔하고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使持節은 二千石 이하의 관리를 주살할 수 있고, 持節은 관직이 없는 사람을 죽일 수 있고, 假節은 軍令을 어긴 자를 죽일 수 있었다.(大庭脩, ≪秦漢法制史の硏究≫, 創文社, 1982)
역주3 兩宮 : 황제 曹芳과 郭太后를 말한다.
역주4 (選)[還] : 저본에는 ‘選’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還’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이는……것이다 : ≪後漢書≫ 〈董卓傳〉에 황제(獻帝)가 皇甫酈을 보내 李傕과 郭汜를 화해시킬 적에 황보력이 이각에게 말하기를 “郭多(郭汜)가 또 공경들을 겁박해 인질로 삼았으니, 하는 짓이 이와 같은데 그대가 진실로 그를 도우려고 하는가.[多又劫質公卿 所爲如是 而君苟欲左右之邪]”라고 하였다.
역주6 심원하기……못하였다 : ≪周易≫ 〈繫辭傳 上〉에 “易은 聖人이 깊음을 다하고 기미를 살피는 것이니, 깊기 때문에 天下의 뜻을 통하며, 기미를 살피기 때문에 천하의 일을 이루며, 神妙하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아도 빠르며 가지 않아도 이른다. 孔子가 말하기를 ‘易에 聖人의 道가 네 가지가 있다는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라 하였다.[夫易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 唯深也故 能通天下之志 唯幾也故 能成天下之務 唯神也故 不疾而速 不行而至 子曰 易有聖人之道四焉者 此之謂也]” 하였다. 何晏이 이 말을 인용하여 사람을 품평한 것이다.
역주7 많은……더해주고 : ‘裒多益寡’는 ≪周易≫ 謙卦 〈象傳〉의 “땅 가운데 산이 있는 것이 謙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서 많은 데에서 덜어서 적은 데에 주고 물건을 저울질하여 베푸는 것을 공평하게 한다.[地中有山 謙 君子以裒多益寡 稱物平施]”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역주8 평범한……있다 : 원문의 “見不譚”의 見(현)을 드러난다의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평범한 말 속에 말할 수 없는 의미가 드러난다.”고 해석한다.
역주9 致堂(胡寅) : 1098~1156. 宋나라 때 유학자로 致堂은 號이다. 胡安國의 養子이며 字는 明仲으로 宋 欽宗 원년(1126)에 秘書省校書郞으로 출사하였다. 楊時에게 배웠다. 저서로 ≪論語詳說≫, ≪讀史管見≫, ≪斐然集≫ 등이 있다.(≪宋史≫ 〈胡寅傳〉)
역주10 九錫 : 九錫은 고대에 天子가 제후와 대신에게 하사하는 아홉 가지의 물건으로, 첫째는 車馬, 둘째는 衣服, 셋째는 樂器, 넷째는 朱戶, 다섯째는 納陛(궁전의 기단부를 파서 처마 안으로 만든 계단), 여섯째는 虎賁(호위병), 일곱째는 鈇鉞, 여덟째는 弓, 아홉째는 秬鬯(검은 기장으로 빚은 鬱鬯酒)이다.
역주11 魏以……不受 : “‘以’라고 기록한 것은 어째서인가. 命이 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받지 않았다면 司馬懿 역시 예절을 조금 알았다고 할 수 있다. ≪資治通鑑綱目≫에서 ‘九錫’을 기록한 것은 열네 번이고(平帝 元始 5년(5)에 자세하다.), ‘加某九錫(누구에게 구석을 주다.)’를 기록한 것은 한 번이고(王莽), ‘以某加九錫而不受(누구에게 구석을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를 기록한 것은 두 번이고(司馬懿, 朱全忠) ‘自加(자신이 더했다.)’를 기록한 것은 아홉 번이고(曹操, 趙王倫, 桓玄, 蕭道成, 蕭衍, 陳霸先, 楊堅, 李淵, 王世充), ‘自加九錫而復辭(자신이 九錫을 더했다가 다시 사양하였다.)’를 기록한 것은 두 번이다.(司馬昭, 劉裕) 그러나 주전충은 불만스럽게 여겨 받지 않았으니, 또한 사마의에게 견줄 일이 아니다.[書以 何 命自上出也 不受則懿亦可謂稍知節矣 綱目書九錫十四(詳平帝元始五年) 書加某九錫者一(王莽) 書以某加九錫而不受者二(懿朱全忠) 書自加者九(曹操趙王倫桓玄蕭道成蕭衍陳霸先楊堅李淵王世充) 書自加九錫而復辭者二(司馬昭劉裕) 然全忠以不滿而不受 又非懿之比矣]” ≪書法≫
역주12 討蜀護軍 : 護軍의 명칭은 秦漢代부터 있었으며 특히 漢代에는 護軍將軍, 護軍都尉가 있었다. 後漢 말기 曹操가 丞相府에 護軍을 두어 武官의 선발과 금군을 관장하게 하였으며, 출정 시에 여러 장군을 감독하게 하였다. 建安 12년(207)에 中護軍으로 개칭하였으나 護軍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三國이 정립되면서 정벌을 목적으로 討蜀護軍, 征西護軍 등이 생겼으며 그 지위도 將軍으로 낮아졌다.
역주13 征西將軍府 : 魏나라 黃初 연간에 征東將軍, 征南將軍, 征西將軍, 征北將軍을 두었는데, 지위가 三公의 다음이었다. 정서장군은 長安에 주둔하면서 雍州와 涼州의 刺史를 통솔하였다. 蜀漢과 吳나라에도 똑같은 명칭의 관직이 있다.
역주14 (征)[討] : 저본에는 ‘征’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討’로 바로잡았다.
역주15 欽欽은……말한다 : “終日欽欽 若在戰場”에서 欽欽을 訓義와 다르게 ‘조심스러워한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전쟁터에 있는 것처럼 하루 종일 경건하였다.”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역주16 : 저본에 欽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歆으로 바로 잡았다.

자치통감강목(12) 책은 2021.01.0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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