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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文欽이 諸葛誕으로 하여금 포위를 뚫고 나가게 하였는데 이기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성안에 군량이 다 떨어져서 항복하는 자들이 날로 많아졌다.
문흠이 북방 출신 군사들을 다 내보내어 양식을 절약하고
吳나라 사람들과 굳게 지키려고 하니,
注+省(줄이다)은 所景의 切이니, 줄인다는 뜻이다. 제갈탄이 따르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다투고 원망을 하여 마침내 문흠을 죽였다.
문흠의 아들 文鴦이 성을 넘어서 魏나라에 귀순하니 軍吏가 문앙을 주살하자고 청하였다. 司馬昭가 말하기를 “문흠의 아들은 진실로 죽여야 하지만 지금 곤궁한 처지로 와서 귀순하고 또 성이 아직 함락되지 않았으니, 문앙을 죽이면 성안 적군의 인심을 굳게 해준다.”라고 하고,
문앙에게 수백 기병을 거느리고 성을 순시하도록 하고 외치게 하기를 “문흠의 아들도 오히려 죽임을 당하지 않았으니 그 나머지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라고 하였다. 또 表文을 올려 將軍으로 삼고 關內侯 작위를 하사하니, 壽春城 안의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사마소는 이를 이용하여 진군하여 승리하고 제갈탄을 참수하고는 그의 삼족을 멸하였다. 제갈탄의 휘하 수백 인이 모두 두 손을 맞잡고 줄을 서서 항복하지 않았는데,
한 사람씩 참수할 때마다 번번이 항복하게 하였으나 끝내 변치 않아 모두 죽음에 이르렀다.
吳나라 장군
于詮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임금에게 명을 받아 병사를 이끌고 사람들을 구원하러 왔다가 이미 승리하지 못했고 또 적에게 사로잡히는 것을 나는 하지 못하겠다.”라고 하고, 마침내 투구를 벗고 적진에 뛰어들어 죽었다.
注+冒는 저촉한다는 뜻이다. 陳(진을 치다)은 陣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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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綝이 그의 임금
孫亮이
親政을 할 적에 힐문한 것이 많은 것으로 인해 병을 핑계하여 조회를 드리지 않고 아우
孫據를 시켜 궁중에 들어가
宿衛하게 하고
孫恩,
孫幹,
孫闓(손개)로 여러 군영에 나누어 주둔하게 하여 자신을 튼튼하게 하였다.
注+孫恩, 孫幹, 孫闓는 孫綝의 세 아우 이름이다.
손량은 손침을 미워하여 은밀하게 全公主와 將軍 劉承과 함께 손침을 주살할 것을 모의하였다. 全皇后의 아버지 全尙은 衛將軍이었다.
손량은 전상의 아들
全紀로 하여금 전상에게 말하게 하기를 “
兵馬를 엄정하게 정비하라. 내가 마땅히
宿衛 병력을 이끌고
朱雀橋로 가겠다.”
注+橋는 朱雀橋를 말하니, 孫綝은 집을 주작교 남쪽에 설치하였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卿(전기)의 어머니에게 알리지 말라. 여인은 大事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손침의 손윗누이이기도 하다. 만나서 누설하게 되면 나를 잘못되게 하는 것이 작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전기가 조칙을 받들어 전상에게 고하니, 전상은 심모원려함이 없어서 그것을 전기의 어머니에게 고하니, 그녀는 사람을 보내어 몰래 손침에게 고하였다.
손침은 밤중에 전상을 습격하여 잡고 유승을 죽이고, 날이 밝을 즈음에 마침내 궁궐을 포위하였다.
손량은 크게 노하여 말에 올라 동개를 차고 활을 잡아 나가려고 하면서 말하기를
注+鞬(동개)은 居言의 切이니, 활과 화살을 넣는 기구이다. “나는
大皇帝(
孫權)의
適子로서 황위에 있은 지가 이미 5년이다. 누가 감히 따르지 않을 자가 있느냐.”라고 하였으나, 근신들이 함께 붙잡아 저지하여 나갈 수 없었다.
손침은
光祿勳 孟宗을 시켜서
太廟에 고하게 하여 손량을 폐위하여
會稽王으로 삼고 그 죄를 원근에 포고할 적에
注+班은 펼친다는 뜻이다. 告는 선고한다는 뜻이다. 尙書 桓彜(환이)가
署名을 하려고 하지 않자,
손침이 노하여 환이를 죽이고는 마침내
琅邪王 孫休를
會稽에서 맞이하고,
注+吳나라는 建興 원년(252)에 孫休는 丹陽으로 옮겼다가 이윽고 또 會稽로 옮겼다. 회계왕 손량을 보내어
封國으로 가게 하니, 손량은 이때 나이가 16세였다. 전상을 죽이고 전공주를
豫章으로 옮겼다.
目
[目] 孫綝은 孫休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궁중에 들어가 머물면서 백관을 불러 회의를 하려고 하니, 모두 떨면서 ‘네, 네.’ 하였는데,
選曹郞 虞汜(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注+虞汜는 虞翻의 아들이다. “
明公께서 황제를 폐하고 세우는 위엄을 전적으로 행하는 것은 진실로 위로
宗廟를 편안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琅邪王을 맞이함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궁중에 들어가려 하시니, 여러 사람이 듣고 의혹을 품을까 염려됩니다. 忠孝를 오래 보전하며 명예를 후세에 드날리는 방법이 아닙니다.”
손침이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쳤다. 10월에 손휴가 도착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璽符(옥새)를 바쳐 올렸는데 손휴는 세 번 사양한 뒤에야 받고 그날로 正殿에 나아가 大赦免令을 내리고 연호를 바꾸었다.
손침은
草莽의 신하라고 일컫고 궁궐에 나아가 인장, 인끈과 부절,
斧銊을 올리고서 현명한 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청하자
注+“草莽”은 草茅(草野)라는 말과 같다. 吳主 손휴가 그를 위로하여 타이르고
丞相 荊州牧으로 삼았다.
目
[目] 이보다 앞서 丹陽太守 李衡이 자주 일로써 孫休를 침해하였는데, 그 아내 習氏가 간언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손휴가 글을 올려 會稽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이형이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말을 따르지 않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魏나라로 도주하려 하니, 어떠한가.”
아내가 말하였다. “배반하고 도망가서 살기를 구하면 무슨 면목으로 中原 사람들을 보겠습니까. 琅邪王께서는 평소 선행을 좋아하고 명예를 흠모하였습니다. 장차 자신을 천하에 드러내려고 하시니 결국 사사로운 혐의로 그대를 죽이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감옥으로 가셔서
表文을 올려 과거의 잘못을 열거하여 공개적으로 죄를 받겠다고 청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당연히 우대를 받을 것이니 살아나는 것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注+逆은 맞이한다는 뜻이니, 〈“當逆見優饒”는〉 장차 그 관직을 더하여 우대해주는 것을 말한다.
이형이 그 말을 따르니 조칙을 내려서 郡으로 되돌아가게 하여 將軍 호칭을 더해주고 棨戟(고급 지방 관원의 의장용 창)을 주었다. 또 故 南陽王 孫和의 아들 孫皓를 봉하여 烏程侯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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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綝이 소고기와 술을 받들고
孫休에게 갔는데 손휴가 받지 않았다. 이를 가지고
張布에게 가서
注+孫綝은 張布가 吳主에게 신임을 받고 의지하는 바가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간 것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적에 원망하는 말을 하기를 “황제께서는 내가 아니면 즉위하지 못하셨는데, 지금 예물을 올려 거절을 당했다.
이는 일반 신하로 대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마땅히 다시 바꾸기를 도모해야 하겠다.”
注+上(올리다)은 時掌의 切이다.라고 하였다. 장포가 이를 손휴에게 고하였는데, 손휴가 앙심을 품었지만 변란이 있을까 우려하여 자주 포상을 더 내렸다.
어떤 이가 손침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고하자, 손휴가 그를 잡아다 손침에게 넘겼는데 손침이 그를 죽였다. 이로 말미암아 손침은 더욱 두려워하여 武昌으로 나가 주둔해 있겠다고 청하니, 손휴는 허락하고 모든 요청을 하나도 어김없이 해주었다.
將軍 魏邈이 손휴를 설득하기를 “손침이 지방에 있게 되면 반드시 변란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衛士가 또다시 손침이 반란하였다고 고하였다.
손휴가 토벌하려 하여 비밀리에 장포에게 묻자, 장포가 말하기를 “左將軍 丁奉이 비록 관부의 문서 작성은 잘하지 못하지만 계략이 남보다 뛰어나서 큰일을 결단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자, 정봉을 불러 계획을 물었다.
정봉이 말하기를 “
丞相(손침)의 형제와 파당들이 매우 번성하니, 갑자기 제압할 수 없습니다.
注+卒(갑자기)은 猝로 읽는다. 臘會(
臘祭日의 조정 모임)를 이용하여
陛兵을 써서 주살할 수 있습니다.”
注+“陛兵”은 殿陛(전각 계단)를 끼고 宿衛하는 병사이니, 이른바 “陛戟之士(전각 계단 곁에 戟을 잡고 서 있는 병사)”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