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韓信이 首建大策하여 與高祖起漢中하여 定三秦하고
遂分兵以北하여 禽魏取代하고 仆趙脅燕하고 擊齊滅楚하니
觀其距蒯徹之說하고 迎高祖於陳하면 豈有反心哉리오
夫以盧綰王燕이어늘 而信乃爲列侯하니 豈非高祖亦有負於信哉리오
雖然
이나 信
이 滅齊不報而自王
하고 期共攻楚而不至
하니 當是之時
하여 高祖固有取信之心矣
로대 顧力不能耳
注+顧, 反視也. 反己而自視其力有所未能也.라
夫乘時而徼利者
는 市井之志也
요 酬功而報徳者
는 士君子之心也
注+案, 古者二十畝爲一井, 因爲市交易, 故稱市井. 然則本由井田之中交易爲市, 故國都之市, 亦因曰市井. 一說 “凡言市井者, 市, 交易之處, 井, 共汲之所, 故摠而言之也. 說者云 ‘因井而爲市.’ 其義非也.”니
信이 以市井之志로 利其身하고 而以士君子之心으로 望於人이 不亦難哉아
故
로 太史公
이 論之曰 假令信
이 學道謙讓
하여 不伐己功
하고 不矜其能
이면 則庶幾哉
라 於漢家勳
에 可以比周召太公之徒
하여 後世血食矣
注+血食, 言不乏祀. 祭者尙血腥, 曰血食也.어늘
不務出此하고 而天下已集에 乃謀畔逆하니 夷滅宗族이 不亦宜乎아하니라
目
[目] 사마온공司馬溫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혹〉 ‘한신韓信이 첫 번째로 큰 계책을 세워 고조高祖와 함께 한중漢中에서 일어나 삼진三秦을 평정하고,
군대를 나누어 북쪽으로 가서 위왕魏王을 사로잡고 대代나라를 점령하고 조趙나라를 쓰러뜨리고 연燕나라를 위협하였으며, 제齊나라를 공격하고 초楚나라를 멸망시켰으니,
한漢나라가 천하를 얻은 것은 대저 모두 한신의 공로이다.
그가 괴철蒯徹의 말을 거절하고 고조를 진陳 땅에서 맞이한 것을 보면 어찌 배반할 마음이 있었겠는가.
이것은 참으로 관직을 잃고 앙앙불악怏怏不樂하다가 마침내 패역悖逆에 빠지게 된 것이다.
〈옛날 고조와 한 마을에 살았던〉 노관盧綰 같은 사람도 연燕나라의 왕이 되었는데, 한신은 마침내 열후列侯가 되었으니, 어찌 고조 또한 한신을 저버린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한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한신이
제齊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고조高祖에게 보고하지 않고는 스스로 왕이 되었으며,
초楚나라를 함께 공격하기로 약속하고는 한신이 오지 않았으니, 이때에 고조가 진실로 한신을 잡으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되돌아봄에 힘이 부족하여 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注+고顧는 되돌아보는 것이다. 〈“고력불능顧力不能”은〉 자신을 되돌아봄에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점이 있음을 안 것이다.
그러나 천하가 이미 평정되고 나서는 한신이 다시 무엇을 믿겠는가.
대저 때를 틈타서 이익을 바라는 것은
시정배市井輩의 마음이고, 공로를 갚고 은덕에 보답하는 것은
사군자士君子의 마음이다.
注+살펴보건대, 옛날에 20묘畝가 1정井이었는데, 이로 인해 시장을 만들어 교역交易하였기 때문에 시정市井이라고 칭한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 정전井田 안의 교역하던 곳을 시장으로 삼은 것에서 연유하였기 때문에 국도國都의 시장도 시정市井이라고 한 것이다. 일설에 “무릇 시정市井이라고 한 것은, 시市는 교역交易하는 장소이고 정井은 함께 물을 긷는 곳이므로 총괄해서 말한 것인데, 말하는 자들이 ‘정井을 인하여 시장을 만든 것이다.’ 하니, 그 뜻이 잘못되었다.” 하였다.
한신이 시정배의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이롭게 하고 사군자의 마음을 남에게 바란다면, 이는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이 논하기를 ‘가령 한신이
도道를 배워 겸양해서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지 않았다면 거의
한漢나라의 공훈에 있어서
주周나라의
주공周公,
소공召公과
태공太公의 무리에 견주어져 후세에
혈식血食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注+혈식血食은 제사가 끊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제사 지낼 때에는 날고기를 숭상하기 때문에 혈식血食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를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마침내 반역을 도모하였으니, 종족宗族을 다 멸하게 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한 것이다.”
目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공功과 과過를 따져 상쇄해야 하니, 한신韓信의 공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陳 땅에서 고조高祖를 맞이한 예禮는 스스로 왕이 된 잘못을 속죄할 수 있고, 괴철蒯徹의 말을 거절한 뜻은 회합會合하여 항우項羽를 공격하기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한 죄를 면할 수 있다.
그러니 아직 배반할 계책을 세우지 않았다면 작은 나라의 후侯로 봉해주어야 하고, 역모逆謀가 이미 드러났더라도 그의 자손은 마땅히 용서해주었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하였다면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한신의 공功을 기억함과 한신의 죄를 토벌함에 있어 각각 그 도리를 다하여 저버림이 없었을 것이다.”
目
[目] 상上이 돌아와서 한신韓信이 괴철蒯徹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는 말을 듣고 조령詔令을 내려 괴철을 체포하게 하여 괴철이 잡혀왔다.
상上이 말하기를 “네가
회음후淮陰侯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가르쳤느냐?”
注+약若은 너라는 뜻이다. 하니,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사람(한신)이 신의 계책을 쓰지 않았으니, 만일 신의 계책을 썼더라면 폐하가 어떻게 그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上이 노하여 “저자를 삶아 죽여라.” 하니, 괴철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진秦나라가 그 사슴(
제위帝位)을 잃자, 천하 사람들이 함께 쫓아가서 재주가 높고 발이 빠른 자가 먼저 차지할 상황이었습니다.
注+사슴을 제위帝位로 비유하였다. 강태공姜太公의 《육도六韜》에 하였다.
그리고 이때를 당해서 신은 오직 한신만을 알았고 폐하를 알지 못했습니다.
또 천하에 폐하께서 하신 일을 하기를 원하는 자가 매우 많은데 스스로 돌이켜보아 힘이 부족해서 하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상上이 놓아주라고 하였다.
注+치置는 놓아준다는 말과 같고 또 용서해준다는 말이다.
目
“내가 듣건대, 왕자王者로는 주周나라 문왕文王보다 더 뛰어난 분이 없고 패자霸者로는 제齊나라 환공桓公보다 더 뛰어난 분이 없는데, 이들은 모두 현인賢人을 기다려 이름을 이루었다고 한다.
재주와 능력이 있는 천하의 현자賢者가 어찌 옛날 사람만 있고 지금 사람은 없겠는가?
병통은 인군이 그들과 사귀지 않는 데에 있으니, 그러면 선비들이 어디로부터 나올 수 있겠는가.
지금 나는 하늘의 신령스런 도움과 능력 있는 사대부들 덕분에 천하를 평정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이 나라가 장구하게 유지되어 대대로 종묘宗廟를 받들어 망하지 않고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다.
현인들이 이미 나와 함께 천하를 평정하였으니, 나와 함께 편안하게 이익을 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진
사대부士大夫로서 나와 함께 이익을 누리려는 자가 있으면
제후왕諸侯王과
군수郡守가 반드시 직접 가서 권유하여 수레에 태워
注+〈“필신권위지가必身勸爲之駕”는〉 반드시 자신이 몸소 가서 정성껏 권하고 직접 수레에 태워 보내는 것이다.상국부相國府에 보내며, 그런 사람이 있는데 말을 하지 않다가 적발되면
면직免職시키되,
注+“각면覺免”은 적발된 자는 면직免職시킴을 이른다. 나이가 많거나 병이 든 자는 보내지 말라.”
目
[目] 상上이 진희陳豨를 공격할 적에 양梁나라에서 군대를 징발하였는데, 양왕梁王(팽월彭越)이 병을 칭탁하고 장수를 시켜 군대를 거느리고 한단邯鄲에 가게 하니, 상上이 노하여 꾸짖었다.
그러자 양왕이 두려워하여 스스로 가서 사죄하려고 하니, 그의 장수 호첩扈輒이 말하기를 “가면 사로잡힐 것이니, 그대로 반란을 일으키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으나, 양왕이 듣지 않았다.
그런데 양梁나라의 태복太僕이 죄를 얻고 한漢나라로 도망가서 〈양왕이 호첩과〉 모반한다고 고발하였다.
이에 상上이 사자使者를 시켜 양왕을 기습하여 잡게 하였다.
그리고 그를
낙양洛陽에 가두고서
유사有司가
치죄治罪하니 모반한 형상이 이미 갖추어졌으므로 법대로 처리할 것을 청하였는데,
注+호첩扈輒이 팽월彭越에게 반란을 일으킬 것을 권했는데 팽월이 호첩을 죽이지 않았으니, 이것이 모반한 형상이 이미 갖추어진 것이다. 용서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아서
역마驛馬로
촉군蜀郡에 보내도록 하였다.
注+전傳(역마)은 주련柱戀의 절切이니, 역驛을 통해 번갈아가며 전달하는 것이다. 처處(처하다)는 창려昌呂의 절切이다.
정鄭 지방에 이르러 장안長安에서 오는 여후呂后를 만났는데, 양왕이 울면서 여후에게 자신의 무죄함을 하소연하였다.
여후가 그와 함께 낙양에 와서 상上에게 아뢰기를 “팽왕彭王(팽월)은 장사입니다.
이제 그를 촉군으로 옮기면 이는 스스로 후환을 남기는 것이니, 마침내 죽이는 것만 못합니다.
그래서 첩이 삼가 데리고 함께 왔습니다.” 하였다.
여후는 마침내
사인舍人을 시켜 팽월이 다시 모반하였다고 고발하게 하여 팽월의
삼족三族을 멸하고 팽월의 머리를 낙양에
효시梟示한 다음,
조령詔令을 내려
注+효梟(올빼미)는 효도하지 않는 새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일지日至(동지冬至와 하지夏至)에 올빼미를 잡아 사지를 찢어서 머리를 나무 위에 매달아 재앙을 막았으므로, 지금 머리를 매다는 것을 일러 효수梟首라 한다.” 하였다. 팽월의 시신을 거두어 살피는 자가 있으면 곧 체포하겠다고 하였다.
目
[目] 양梁나라의 대부大夫인 난포欒布가 제齊나라에 사신 갔다가 돌아와서 효시된 팽월彭越의 머리 아래에서 사신 갔던 일을 보고하고 제사를 지내며 곡하니, 관리가 그를 체포하여 보고하였다.
상上이 그를 삶아 죽이려고 하니, 난포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상上께서 팽성彭城에서 곤궁하시고 형양滎陽에서 패하였을 적에 팽왕彭王이 초楚나라 편을 들면 한漢나라가 격파되고, 한漢나라 편을 들면 초楚나라가 격파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해하垓下에서 모여 싸울 적에 팽왕이 없었다면 항왕項王(항우項羽)은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천하가 이미 평정되자 폐하께서 자잘한 사안을 가혹하게 처리하여 죽이시니, 신은 공신들이 모두 스스로 위태롭게 여길까 염려됩니다.
이제 팽왕이 이미 죽었으니, 신은 살아도 죽는 것만 못합니다.
이에 상上이 마침내 난포를 풀어주고 도위都尉로 임명하였다.
目
[目] 이때에
조령詔令을 내려 그를 세워
남월왕南粤王으로 삼고,
육가陸賈로 하여금 그가 있는 곳에 가서
옥새玉璽와
인수印綬를 주어 그와
부절符節를 나누어 가진 다음 사신을 서로 교환하게 하고,
백월百越 지역을 화합시켜
이산離散하지 않게 해서 남쪽 변경의 근심거리가 되지 않게 하도록 하였다.
注+즉卽은 나아간다는 뜻이니, 그가 있는 곳에 나아가서 그를 세우는 것이다.
육가가 도착하니,
조타趙佗가 북상투를 틀고 두 다리를 뻗어 키[
기箕] 모양을 하고서 거만하게 맞이하였다.
注+추魋(북상투)는 음이 추椎이고 결結(상투)은 결髻(결)로 읽는다. 추결椎髻(추결魋結)은 한 줌으로 묶은 상투의 모양이 망치[추椎]와 같은 것이다. 오랑캐의 풍속은 본래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는데, 조타趙佗도 오랑캐의 풍속에 동화되었으나 다만 머리털을 망치처럼 한 줌으로 묶은 것이다.
“
족하足下는
중국인中國人이어서 친척과 분묘가 모두
진정현眞定縣에 있습니다.
注+황제가 동원東垣을 개칭하여 진정眞定이라고 이름하였다.
그런데 지금
천성天性에 어긋나게
관대冠帶을 버린 채
注+부모의 나라를 배반하고 골육의 은혜를 무시하니 이것이 천성天性을 배반한 것이요, 머리털을 하나로 묶고서 만이蠻夷의 풍속을 따르니 이것이 관대冠帶를 버린 것이다. 작은
월越나라를 가지고
천자天子에게 대항하여 대등한 나라가 되려고 하니, 재앙이 장차 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注+형衡(저울대)은 수평을 취하고, 상하가 서로 버텨 낮추거나 굽히지 않는 것이 항抗이다. 일설에 “항抗은 마주 대한다는 뜻이고 형衡은 수레 멍에 위의 가로 댄 나무이니, ‘항형抗衡’은 멍에 위의 두 가로 댄 나무가 서로 버티어 어느 한쪽도 피하거나 내려가지 않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하였다.
진秦나라가 정사를 잘못하자 호걸들이 모두 함께 일어났지만 오직 한왕漢王만이 먼저 관중關中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항우項羽가 약속을 어기자 한왕이 그를 멸망시켜 5년 사이에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늘이 한 것입니다.
지금 왕이 천자께서 포악한 역적을 주살하는 것을 돕지 않자, 한漢나라의 장상將相들이 군대를 보내 왕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천자께서는 백성들이 다시 전쟁에 고생하게 될 것을 가련하게 여기시어 우선 이들을 만류하고, 나를 사신으로 파견하여 왕에게 옥새玉璽와 인수印綬를 주어 부절符節를 나누어 가진 다음 사신을 서로 교환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마땅히 교외에 나와 영접하고
북면北面하여 신하라고 일컬어야 하는데, 새로 만들어져 아직 다 완성되지도 않은
월越나라를 가지고 복종하지 않으려고 하니,
注+집集은 완성됨이다. “굴강屈彊”은 순순히 복종하지 않음을 이른다.한漢나라에서 이런 소식을 듣고는 왕의 조상 무덤을 파헤쳐 불태우고
종족宗族들을 다 죽인 다음 한 명의
편장偏將으로 하여금 10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월越나라를 정벌하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월越나라 사람들은 왕을 죽이고 한漢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손을 뒤집는 것처럼 쉽게 할 것입니다.”
目
[目] 유후는 병이 있었는데, 억지로 나와서 상上을 뵙고 말하기를 “신은 마땅히 따라가야 하지만 병이 심합니다.
초楚나라 사람들은 사납고 날래니, 원컨대 상上께서는 그들과 예봉을 다투지 마소서.” 하고, 따라서 상上을 설득하여 태자를 장군으로 삼아서 관중關中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다.
그러자 상上이 말하기를 “자방子房(장량張良)이 비록 병이 들었지만 억지로 누워서라도 태자를 가르치도록 하라.” 하였다.
이때에
숙손통叔孫通이 이미 〈
태자太子의〉
태부太傅가 되었으므로
유후留侯는
소부少傅의
직사職事를 행하고 있었는데,
注+옛날에는 세자世子에게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의〉 삼사三師와 〈소사少師‧소부少傅‧소보少保의〉 삼소三少가 있었는데, 한漢나라에 이르러서는 오직 태부太傅와 소부少傅만 있었다.관중關中의
거기車騎와
파촉巴蜀의
재관材官(능력 있는
무관武官), 그리고
중위中尉의 군사 3만 명을 징발하여
황태자皇太子를 호위하면서
패상霸上에 주둔하게 하였다.
注+재관材官은 능력이 있는 자이다.
目
[目] 경포黥布가 처음 반란할 적에 그 장수들에게 이르기를 “상上은 늙었고 전쟁을 싫어하니 반드시 오지 않을 것이고, 여러 장수 중에는 오직 회음후淮陰侯와 팽월彭越만이 두려운 상대인데 지금 모두 죽었으니, 나머지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하고 동쪽으로 가서 형荊나라를 공격하자 형왕荊王 유가劉賈가 도망가다가 죽었다.
이어
초楚나라를 공격하자,
초楚나라는 이들을 맞이하여
서현徐縣과
동현僮縣 사이에서 싸울 적에,
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임회군臨淮郡에 서현徐縣과 동현僮縣이 있다.” 하였으니, 아마도 초楚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경포黥布와 이 두 현縣 사이에서 싸운 듯하다.삼군三軍을 만들어서 서로 구원하며 기이한 속임수를 쓰고자 하였다.
注+군대를 셋으로 나눈 것은 서로 구원해서 기이한 속임수를 쓰고자 한 것이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경포는 용병用兵을 잘해서 백성들이 평소 그를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병법兵法에 ‘
제후諸侯들이 자기 지역에서 싸우는 것을
산지散地라고 한다.’
注+《손자병법孫子兵法》 에 “자기 지역에서 싸우는 것을 산지散地라 한다.” 하였는데, 그 주注에 “병졸들이 자기 집이 가까이 있어서 진격할 적에는 죽기를 각오하는 마음이 없고 후퇴할 적에는 돌아가 몸을 맡길 곳이 있다.”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별도로 삼군三軍을 만들었다가, 저들이 우리의 일군一軍을 패배시키면 나머지 군대들은 모두 달아날 것이니, 어떻게 서로 구원해줄 수 있겠습니까?” 하였으나 이 말을 듣지 않았는데, 과연 패하니, 경포가 마침내 군병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