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
효무황제孝武皇帝가 몸소
인의仁義를 행하고 위엄과 무력을 떨쳐 공덕이 거룩한데도
종묘악宗廟樂이 이에 부응하지 못하니, 짐은 매우 서글퍼하노라.
注+칭稱은 부응한다는 뜻이다.
열후列侯와 이천석二千石, 박사博士들과 의논하라.”
이에 여러 신하들이 모두 말하기를 “마땅히 조령詔令과 같이 하여야 합니다.”라고 하였으나,
하후승夏侯勝은 홀로 말하기를 “무제武帝가 비록 사방 오랑캐를 물리쳐 국경을 넓힌 공功이 있으나,
병사들을 많이 죽이고 백성들의 재력을 고갈시켰으며 사치함이 한도가 없어서 천하의 재정이 소진되어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못해서 백성들에게 덕택이 없으니, 〈
무제武帝를〉 위하여
종묘악宗廟樂을 세워서는 안 됩니다.”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하였다.
공경公卿들이 함께 하후승을 논박하여 “이것은
조령詔令이다.”
注+난難(힐난하다)은 내단乃旦의 절切이다.라고 하니, 하후승이 말하기를 “
조령詔令을 따를 수 없다.
신하의 의리는 마땅히 바른말을 하고 바른 의논을 해야 하니, 구차히 임금의 뜻에 아첨하고 명령에 순종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의논이 이미 내 입에서 나왔으니, 비록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이에 승상丞相과 어사御史가 탄핵하여 아뢰기를 “하후승이 조령詔令을 비난하고 선제先帝를 훼방하였으니 부도不道합니다.
또
승상丞相의
장사長史인
황패黃霸가 하후승에게 아부하여 이 일을 들어 탄핵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여, 모두 하옥하였다.
注+부도不道에서 구句를 뗀다.
目
[目] 처음에
오손烏孫의 〈
곤막昆莫에게 시집보낸
한漢나라의〉
공주公主가 죽자,
注+공주公主는 바로 강도왕江都王 유건劉建의 딸인 유세군劉細君이다.한漢나라에서는 다시
초왕楚王 유무劉戊의 손녀인
유해우劉解憂를 공주로 삼아서
잠취岑娶에게 시집보냈다.
잠취의 오랑캐 부인의 아들인
이미泥靡가 아직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잠취가 죽으려 할 적에 나라를 막내 숙부인
대록大祿의 아들
옹귀미翁歸靡에게 물려주면서 말하기를 “
이미泥靡가 크거든 그에게 나라를 돌려주라.”
注+대록大祿은 막내 숙부의 이름이다. 하였다.
옹귀미가 왕이 되자, 칭호를 비왕肥王이라 하고 다시 초楚나라 공주에게 장가들어 원귀미元貴靡를 낳았다.
공주公主와 오손烏孫의 국왕인 곤미昆彌가 모두 글을 올려 아뢰기를 “흉노匈奴가 또다시 병력을 크게 징발해서 오손을 침공하여 한漢나라와 통하는 길을 막아 끊고자 합니다.
곤미가 병력 5만을 출동하여 힘을 다해 흉노를 공격하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천자天子께서는 군대를 출동하여 구원해주소서.” 하였다.
이보다 앞서 흉노가 자주 한漢나라 변방을 침공하니, 한漢나라 또한 흉노를 토벌하고자 하였다.
가을에 군대를 크게 징발하여
전광명田廣明 등 다섯 장군과 16만 기병을 보내어서 길을 나누어 함께 출동하게 하고,
注+다섯 장군은 전광명田廣明, 범명우范明友, 한증韓增, 조충국趙充國, 전순田順이다.상혜常惠를
교위校尉로 삼아
절節을 가지고 오손의 군대를 감독하여 흉노를 함께 공격하게 하였다.
注+호護는 감독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