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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8)

자치통감강목(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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齊永明四年이요 魏太和十年이라
◑齊討唐㝢之하여 平之하다
唐㝢之攻陷錢塘東陽하여 殺太守注+太守, 東陽太守.어늘 齊發禁兵擊斬之하고 乗勝縱掠이러니 軍還 軍主陳天福坐棄市하니
天福 齊主寵將也 旣伏誅 内外震肅이러라 遣使慰勞하고 遭賊郡縣하니 百姓被驅逼者 悉無所問하다
武都王楊後起卒하니 種人集始立注+集始, 文弘之子也.하다
◯魏置三長하고 定民戶籍하다
魏無鄕黨之法하고 唯立宗主督護하니 民多隠冒하여 三五十家始爲一戶注+冒, 覆也. 隱冒, 卽蔭附也. 内祕書令李沖上言注+祕書省在禁中, 故謂之內祕書令, 亦謂之中祕.호대
宜準古法하여 五家立隣長하고 五隣立里長하고 五里立黨長호되 取鄉人彊謹者爲之하여 隣長 復一夫하고 里長 二夫하고 黨長 三夫하여 三載無過 則升一等注+復, 除也. 復一夫, 謂除免其一夫徭役.하고
其民調 一夫一婦 帛一匹粟二石이니 大率十匹爲公調하고 二匹爲調外費하고 三匹爲百官俸하고 此外 復有雜調하고
八十 一子 不從役注+通鑑 “民年八十已上, 聽一子不從役.”하고 孤老貧病不能自存者 三長内迭養食之注+食, 音嗣.라하여늘
詔百官議하니 中書令鄭羲等皆以爲不可호되 太尉丕曰 此法若行이면 公私有益이어니와 但方秋校比 民必勞怨이니 請至冬遣使 於事爲宜니이다
沖曰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 若不因調時 民徒知立長校戶之勤이요 未見均傜省賦之益하여 心必生怨注+調時, 謂秋成徵收課調之時也.하리니 及今行之하여 令得其利 則差易矣리이다
太后從之 民始皆愁苦하고 豪彊者尤不願이러니 旣而課調省十餘倍하니 上下安之러라
三月 柔然遣使如魏하다
三月 柔然遣使如魏어늘 時勅勒叛柔然하니 柔然可汗 自將討之하여 追至西漠注+西漠者, 大漠之西偏也.이어늘
魏僕射穆亮 請乗虛擊之한대 高閭曰 秦漢之世 海内一統이라 故可遠征이어니 今南有吳冦하니 何可捨之하고 深入虜庭乎리오
魏主曰 兵者 凶器 聖人不得已而用之하니 先帝屢出征伐者 以有未賓之虜故也 今朕承太平之業하니 奈何無故動兵革乎아하고 厚禮其使者而歸之하다
夏四月 魏制五等公服注+五等, 朱․紫․緋․綠․靑. 公服, 朝廷之服.하다
朱衣玉珮大小組綬注+組綬者, 組織以成綬.
秋九月 魏作明堂辟雍하다
◯魏改中書學하여 爲國子學注+魏先置中書博士及中書學生, 今改曰國子學, 從晉制也.하다
◯魏分置州郡하다
凡三十八州 二十五在河南이요 十三在河北注+河南二十五州, 靑․南靑․兗․齊․濟․光․豫․洛․徐․東徐․雍․秦․南秦․梁․益․荊․涼․河․沙, 時又置華․陝․夏․岐․班․郢, 凡二十五. 河北十三州, 司․幷․肆․定․相․冀․幽․燕․營․平․安, 時又置瀛․汾, 凡十三.하다


나라 세조世祖 무제武帝 소색蕭賾 영명永明 4년이고, 북위北魏 고조高祖 효문제孝文帝 탁발굉拓跋宏 태화太和 10년이다.
[] 봄 정월 초하루에 위주魏主(탁발굉拓跋宏)가 조회를 하고 비로소 곤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썼다.
[] 나라가 당우지唐㝢之를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 당우지唐㝢之전당錢塘동양東陽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태수太守注+① 太守는 東陽太守이다. 죽이자. 나라가 금병禁兵을 징발하여 당우지를 공격하여 목을 베고 승세勝勢를 타고서 마음대로 노략질을 하였다. 군대가 돌아오자 군주軍主 진천복陳天福이 그 일에 연좌되어 목이 베여 저자에 걸렸다.
진천복은 제주齊主(소색蕭賾)가 총애하던 장군이었는데, 그가 죽임을 당하자 조정 안팎에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삼갔다. 사신을 보내어 노고를 위로하고 과 마주했던 군과 현까지 두루 다니게 하였으며, 백성들 가운데 내몰려 핍박을 받은 사람에게는 모두 책임을 묻지 않았다.
[] 무도왕武都王 양후기楊後起하니, 종족인 양집시楊集始注+① 楊集始는 楊文弘의 아들이다. 그 자리에 올랐다.
[] 북위北魏삼장三長을 설치하고 백성들의 호적을 정리하였다.
[] 북위北魏향당鄕黨에 대한 법제가 없이 백성들이 대부분 음부蔭附(호족에게 투탁함)하여注+① 冒는 덮는다는 뜻이며, “隱冒”는 바로 蔭附이다. 30에서 50가구를 비로소 1로 삼았다. 내비서령内祕書令注+② 祕書省이 궁중에 있기 때문에 內祕書令이라고 한 것이니, 中祕라고도 한다. 이충李沖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마땅히 옛날의 법을 기준으로 하여 5가구마다 인장隣長을 세우고, 5마다 이장里長을 세우고, 5마다 당장黨長을 세우되, 향인鄕人 중에 힘이 세고 신중한 사람을 뽑아서 맡기고, 인장隣長에게는 1의 부역, 이장里長에게는 2의 부역, 당장黨長에게는 3의 부역을 면제해주어注+③ 復은 면제해준다는 뜻이다. “復一夫”는 남자 1명에 해당하는 부역을 면제해주는 것을 말한다. 3년이 지나도록 과실이 없으면 한 등급 올려줍니다.
백성들의 調는 1와 1에 비단 1과 곡식 2으로 하니, 대체로 〈징수한 비단 중에〉 10필을 공조公調로 하고, 2필은 調 이외의 비용으로 삼으며, 3필은 백관의 봉록으로 삼으십시오. 이밖에 또 잡조雜調가 있습니다.
백성의 나이가 80세가 되면 1명의 아들은 부역을 면제해주고注+④ ≪資治通鑑≫에 “나이가 80세 이상인 백성은 아들 한명이 부역에 종사하지 않게 해준다.” 하였다., 외로운 처지로 연로하고 가난하며 병이 들어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는 사람은 삼장三長이 안에서 번갈아 그들을 돌보고 먹이도록 하십시오.”注+⑤ 食(먹이다)는 음이 嗣이다.
조서를 내려 백관들에게 의논하도록 하니, 중서령中書令 정희鄭羲 등이 모두 안 된다고 하였는데, 태위太尉 탁발비拓跋丕가 말하기를 “만약 이 법이 시행되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한창 가을이라 호구戶口를 따지고 비교하면 백성들이 반드시 힘들어하고 원망할 것이니, 겨울이 되고 나서 사자를 파견하는 것이 사리에 마땅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충이 말하기를 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調를 내는 시기를注+⑥ “調時”는 가을이 되어 수확을 하여 세금을 징수하는 때이다. 이용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다만 을 세워 호구 조사를 하는 수고로움만 알고, 요역이 고르게 되고 부세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여 반드시 원망을 품을 것이니, 지금 시행하여 그 이로움을 얻게 되면 비교적 쉽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풍태후馮太后가 그 말을 따르니, 처음에는 백성들이 모두 근심하고 고생이라 여겼고 호강豪彊들은 더욱 원하지 않았다. 그 후에 調를 부과하였는데, 세금이 10여 배나 줄어들자 위아래 사람들이 편안하게 생각하였다.
[] 3월에 유연柔然이 사자를 북위北魏에 보냈다.
[] 3월에 유연柔然이 사자를 북위北魏에 보냈는데, 당시 칙륵勅勒이 유연을 배반하자, 유연의 가한可汗이 직접 병사를 거느리고 토벌에 나서 추격하여 대막大漠 서쪽까지注+① “西漠”은 大漠의 서쪽 모퉁이이다. 이르렀다.
북위北魏복야僕射 목량穆亮이 빈틈을 타서 공격하자고 청하니, 고려高閭가 말하기를 “의 시기에는 천하가 통일되었기 때문에 멀리 가서 정벌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남쪽에는 지역의 오랑캐(나라)들이 있는데 어찌 이들을 놓아두고 오랑캐(유연) 지역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위주魏主(탁발굉拓跋宏)가 말하기를 “병사兵事란 흉기와 같아 성인聖人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사용한다고 하였다. 선제先帝께서 여러 차례 정벌을 나가신 것은 귀순하지 않은 오랑캐들이 있었던 까닭이다. 지금 짐은 태평한 제업帝業을 이어받았는데 어찌 아무런 이유 없이 군대를 움직일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유연의 사자를 후하게 예우하여 돌려보냈다.
[] 여름 4월에 북위北魏가 다섯 등급의 관복을注+① 다섯 등급은 朱色․紫色․緋色․綠色․靑色이다. 公服은 조정의 복식이다. 제정하였다.
[] 주의朱衣옥패玉珮와 크고 작은 짜서 만든 인끈이다.注+① “組綬”은 실을 짜서 인끈을 만든 것이다.
[] 가을 9월에 북위北魏명당明堂벽옹辟雍을 지었다.
[] 북위北魏중서학中書學국자학國子學으로 바꾸었다.注+① 北魏에서는 앞서 中書博士와 中書學生을 두었는데, 지금 바꾸어 國子學이라고 하였으니, 晉나라의 제도를 따른 것이다.
[] 북위北魏을 나누어 설치하였다.
[] 모두 38로 25하남河南에 있고, 13하북河北에 있었다.注+① 河南의 25주는 靑州․南靑州․兗州․齊州․濟州․光州․豫州․洛州․徐州․東徐州․雍州․秦州․南秦州․梁州․益州․荊州․涼州․河州․沙州와 당시에 또 華州․陝州․夏州․岐州․班州․郢州를 설치하여 모두 25주이다. 河北의 13州는 司州․幷州․肆州․定州․相州․冀州․幽州․燕州․營州․平州․安州에다 당시에 또 瀛州․汾州를 설치하여 모두 13주이다.


역주
역주1 春正月朔……始服袞冕 : “北魏 시대의 禮樂의 일을 ≪資治通鑑綱目≫에서는 처음에 늘 자세하게 기록하였으니, 이는 인정해준 것이다.[魏世禮樂之事 綱目於其始 毎詳書之 予之也]” ≪書法≫
역주2 宗主를……하였는데 : 宗主督護制를 말한 것으로, 이는 北魏 초기의 지방 기층조직이다. 5호16국 시기 중국 화북 지역이 혼란해지자 호족을 중심으로 자위하는 조직인 塢와 壁 등이 형성되면서 塢主와 壁主 등이 등장했는데, 대부분 宗族, 部曲, 의탁한 농민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의 우두머리인 宗主와 그에 종속된 가호 사이에 사적이 지배관계가 형성되었다. 北魏가 화북 지역을 통일하고서 宗主의 세력을 견제하면서도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주고 그를 통해 요역과 부세를 걷게 하였다. 이리하여 종주가 백성들을 감독하는 종주독호제가 형성되었다.
역주3 백성은……없다 : ≪論語≫ 〈泰伯〉에 나오는 말로, 이 大意는 우민정책이나 비밀 내지는 독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과 命令政敎로써 백성을 통솔하여 따라 오게 하는 것이다.

자치통감강목(18)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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