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八月에 準이 遂勒兵升殿하여 執粲殺之하고 劉氏男女를 無少長히 皆斬東市하고
發淵, 聰二陵하여 斬聰屍하고 焚其廟하고 自號大將軍, 漢天王하다
謂胡嵩曰 自古無胡人爲天子者
라 今以傳國璽付汝
하노니 還如晉家
注+洛陽之陷, 傳國璽遷於平陽. 如, 往也.하라
嵩이 不敢受어늘 準이 殺之하고 遣使告司州刺史李矩曰 劉淵은 屠各小醜로 矯稱天命하여 使二帝幽沒이라
輒率衆扶侍梓宮하노니 請以上聞하노라 矩馳表聞한대 詔遣太常韓胤等하여 奉迎梓宮하다
目
時에 詔群公, 卿, 士하여 各陳得失하니 御史中丞熊遠이 上疏하여 以爲胡賊猾夏하여 梓宮未返이어늘
而不能遣軍進討
하니 一失也
요 群官
이 不以讐賊未報爲恥
하고 務在調戲酒食而已
하니 二失也
注+諧謔以相調戲.요
選官用人에 不料實德하여 惟在白望하고 不求才幹하여 惟事請託하여
當官者 以治事爲俗吏하고 奉法爲苛刻하며 盡禮爲諂諛하고 從容爲高妙하며 放蕩爲達士하고 驕蹇爲簡雅하니 三失也니이다
世所惡者
는 陸沈泥滓
하고 時所善者
는 翶翔雲霄
注+陸沈, 謂無水而沈之.라
是以로 萬機未整하고 風俗僞薄하여 朝廷이 以從順爲善하고 相違見貶하니
安得朝有辨爭之臣하고 士無祿仕之志乎아 古之取士는 敷奏以言이러니
今
하니 甚違古義
注+此卽謂秀‧孝不試而署吏.니이다 又擧賢
이 不出世族
하고 用法
이 不及權貴
라
是以로 才不濟務하고 姦無所懲하니 若此道不改면 求以救亂이나 難矣리이다
目
[
目]
王이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백관들이 모두 황제를 모시고 나열하였다.
注+陪(모시다)는 音이 裴이니, “陪列”은 陪位(자리에 모시고 있다)라는 말과 같다. 황제가
王導에게
御牀으로 올라와 함께 앉으라고 명하자,
왕도가 굳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만약 太陽이 아래로 내려와 萬物과 함께 있으면, 蒼生들이 어떻게 우러러 그 빛을 쬘 수 있겠습니까.” 하니, 이에 명을 거뒀다.
황제는 즉위한 다음 大赦免令을 내리고 文官과 武官에게 두 등급의 품계를 더하였다. 황제는 吏屬들 중에 명함을 올려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을 권한 자들에게는 한 등급의 품계를 더하고,
백성 중에도 명함을 올려 권한 자들을 모두
吏屬으로 제수하고자 하였는데, 이에 해당하는 자가 모두 20여만 명이었다.
注+姓名을 써서 직접 연통하여 만나보기를 청하는 것을 刺라 하니, 秦나라와 漢나라 사이에서는 이것을 謁이라 하였다.
散騎常侍 熊遠이 말하기를 “폐하가 하늘의 뜻에 응하여 大統을 이으심에 온 천하가 귀의하여 떠받드니, 어찌 유독 가까운 자만 정이 중하고 먼 자는 정이 가볍겠습니까.
漢나라의
法에 따라 천하 사람들에게 두루 작위를 내리는 것만 못하니, 이렇게 하면 은혜가 두루 미치게 되고 또 조사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지고 교묘하게 속이는 단서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하였으나, 황제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注+漢나라는 惠帝가 황제의 지위를 이은 뒤로부터 백성들에게 1級을 하사하고 官秩이 있는 자는 근무한 年限에 따라 차등을 두어 작위를 하사하였다. 그 뒤에 여러 황제들은 처음 즉위하면 모두 백성들에게 작위 1급을 하사하였다.
目
[目] 司馬紹는 성품이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며 문장을 좋아하고 무예를 잘하였다. 그리고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선비들을 예우하고 남의 諫言을 포용하고 받아들였으며 庾亮, 溫嶠 등과 布衣之交를 맺었다.
유량은 풍격이 준엄하고 엄숙하며 老莊을 담론하기를 좋아하니, 황제(晉 元帝 司馬睿)가 그를 소중히 여겨서 그의 누이를 맞이하여 사마소의 妃로 삼고, 유량으로 하여금 東宮에서 侍講하게 하였다.
황제가 刑名家를 좋아하여 태자에게 ≪韓非子≫를 하사하였는데, 유량이 태자에게 諫하기를 “申不害와 韓非子는 각박하여 교화를 해치니, 태자의 聖心에 유념할 것이 못 됩니다.” 하자, 태자가 그 말을 받아들였다.
目
[目] 中常侍 王沈의 養女가 용모가 아름다우니, 漢主 劉聰이 그녀를 세워 左皇后로 삼았다.
王鑑과
中書監 崔懿之와
中書令 曹恂이
諫하기를 “설령
王沈의 아우의 딸이라 할지라도
宮刑을 받은 미천한 무리가
椒房(
后妃가 거처하는
宮室)을 더럽혀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그의 집의 여종이란 말입니까.”
注+“刑餘”는 宦者를 이른다. 醜는 무리이다. 하니,
유총이 크게 노하여 그들을 체포하여 참수하였다. 왕감 등이 형벌을 받을 적에, 왕침이 지팡이로 그들을 치며 말하기를 “못난 종놈들아, 다시 악행을 할 수 있겠는가?” 하니,
왕감이 눈을 부릅뜨고 꾸짖기를 “어린놈아, 大漢을 멸망시킬 자는 바로 쥐새끼 같은 너와 靳準일 것이다.” 하였다.
崔懿之가 근준에게 이르기를 “네 마음이 올빼미,
破獍(전설상의 흉악한 짐승)과 같으니, 반드시
漢나라의 큰 근심이 될 것이다. 네가 이미 남을 잡아먹었으니, 남 또한 마땅히 너를 잡아먹을 것이다.”
注+올빼미는 어미를 잡아먹고 破獍은 아비를 잡아먹는다. 파경은 〈살쾡이와 비슷한 맹수인〉 貙(추)와 같이 생겼는데, 범의 몸을 하고 있다. 身은 一本에는 眼(눈)으로 되어 있다. 하였다.
目
[目] 段匹磾는 평소 劉琨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애당초 그를 해칠 뜻이 없었다. 그리하여 유곤이 주둔지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려 하였는데, 그의 아우 段叔軍이 諫하자, 마침내 유곤을 억류하였다.
마침
代郡太守 辟閭嵩이 은밀히 단필제를 습격하려고 모의하다가 일이 누설되니, 단필제가 유곤을 체포하여 목을 매달아서 죽였다.
注+辟閭는 複姓이고, 嵩은 이름이다.
이에 유곤의
從事 盧諶 등이 유곤의 남은 병력을 거느리고
段末柸에게 귀의하였다. 조정에서는 단필제가 여전히 강성하다고 여겨서 그가
河朔 지역을 평정해주기를 기대하여, 끝내 유곤을 위해
를 행하지 않았다.
注+爲(위하다)는 去聲이다.
溫嶠가 표문을 올려서 아뢰기를 “유곤은 황실에 충성을 다하여 집안이 패망하고 몸이 죽었으니, 마땅히 표창하여 구휼해야 합니다.” 하였다.
몇 년 뒤에야 비로소 太尉를 더 추증하고 시호를 愍이라 하니, 이에 오랑캐와 晉나라 사람들이 모두 단필제를 따르지 않았다.
目
[目] 溫嶠가 建康에 가려 할 적에 그의 어머니 崔氏가 굳이 만류하니, 온교는 완강하게 뿌리치며 소매를 자르고 떠나갔다.
건강에 도착해서는 여러 번 돌아갈 것을 청하였으나, 조정에서 허락하지 않았는데, 마침 劉琨이 죽자, 그에게 散騎侍郞를 제수하였다.
온교는 어머니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으나 亂에 길이 막혀서 喪에 달려가지 못한 터라, 굳이 사양하면서 拜謝하지 않고 북쪽으로 돌아갈 것을 간청하였다.
이에 詔令을 내리기를 “지금 큰 역적을 梟首하지 못하였고 또 諸軍이 梓宮(晉 懷帝와 愍帝의 棺)을 받들어 맞이하려고 하나 여전히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대가 사사로운 환란 때문에
皇命을 따르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注+難(환란)은 去聲이다. 하였다. 이에 온교는 부득이 관직을 받고 배사하였다.
目
[目] 刁協은 성질이 강하고 사나워서 남들과 화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도, 侍中 劉隗와 함께 황제에게 총애와 신임을 받았다.
그는 당시의 병폐를 바로잡고자 하여 매번 군주를 높이고 아랫사람을 억눌러서 豪強들을 배격하고 저지하였으므로 王氏에게 미움을 받았다.
이에 왕씨는 여러 가혹하고 자질구레한 여러 정사는 모두 유외와 조협이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조협은 게다가 또 술주정을 하면서 公卿들을 공격하고 비방하니, 보는 자들이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目
[目] 8월에 靳準이 마침내 군대를 무장하고 궁전으로 올라가서 劉粲을 붙잡아 죽이고, 劉氏의 남녀를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동쪽 시장에서 참수하였다.
劉淵과 劉聰의 두 능을 발굴하여 유총의 시신을 목 베고 유씨의 사당을 불태우고는, 스스로 大將軍 漢天王이라 칭하였다.
근준은
胡嵩에게 이르기를 “예로부터 오랑캐 중에
天子가 된 자는 없다. 이제
傳國璽를 너에게 맡기노니,
晉나라에 가서 돌려주어라.”
注+洛陽이 함락될 때에 傳國璽를 平陽으로 옮겼다. 如는 감이다. 하였다.
호숭이 감히 받지 못하자, 근준은 그를 죽이고 사자를 보내어서 司州刺史 李矩에게 通告하기를 “劉淵은 屠各(흉노의 한 부족)의 미천한 무리로 天命을 사칭하여, 懷帝와 愍帝 두 황제로 하여금 사로잡혀 죽게 하였다.
내 곧바로 무리를 거느리고 梓宮을 받들어 모시게 할 것이니, 청컨대, 황제(晉 元帝)에게 보고하라.” 하였다. 이구가 말을 달려가서 표문을 올려 보고하자, 詔令을 내려서 太常 韓胤 등을 보내어 재궁을 받들어 맞이하게 하였다.
目
[目] 이때 여러 公, 卿과 士에게 詔令을 내려서 각각 정사의 잘잘못을 아뢰게 하니, 御史 中丞 熊遠이 다음과 같이 上疏하였다. “오랑캐들이 中夏를 어지럽혀서 梓宮이 아직 돌아오지 못하였는데도
군대를 보내어 나아가 토벌하지 못하니 이것이 첫 번째 잘못입니다. 여러 관원들이 원수인 적에게 보복하지 못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지 않고 해학과 술과 음식에만 힘쓰니 이것이 두 번째 잘못입니다.
注+〈“調戲”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서로 놀리고 희롱하는 것이다.
관리를 선발하여 인재를 등용할 적에 실제의 德行을 헤아리지 않고서 오직 虛名만 살피고 재간 있는 사람을 구하지 않고서 오직 청탁을 일삼습니다.
그리하여 관직을 담당한 자가 일을 제대로 다스리는 것을 俗吏라 하고, 법을 제대로 받드는 것을 가혹하고 각박하다 하고, 禮를 다하는 것을 아첨한다 하며, 열심히 일하지 않고 한가롭게 지내는 것을 高妙하다 하고, 구속을 받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통달한 선비라 하고, 교만하고 방자한 것을 간결하고 운치가 있다고 하니, 이것이 세 번째 잘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자는 물이 없는 곳에서도 진흙에 빠지고, 당시 사람들이 좋게 여기는 자는 창공에서 높이 비상합니다.
注+“陸沈”은 물이 없어도 빠짐을 이른다.
이 때문에 萬機가 정돈되지 못하고 風俗이 거짓되고 야박해져서, 조정에서는 순종하면 善하다 하고 뜻을 어기면 貶黜하니,
어찌 조정에 옳고 그름을 분변하고 다투는 신하가 있으며, 또 선비에게는 녹봉만을 얻기 위하여 벼슬하려는 뜻이 없겠습니까. 옛날에 선비를 취할 때에는 말로써 자신의 뜻을 펴서 아뢰게 하였는데,
지금은 시험을 치르지 않고 봉록을 받는 영광을 누리니, 옛 의리에 매우 위배됩니다.
注+“光祿不試”는 바로 秀才와 孝廉을 시험하지 않고 관리로 임명함을 말한 것이다. 또
賢良의 천거는
世族에서 벗어나지 않고, 법의 적용은 권력이 있고 귀한 사람에게는 미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선발된 인재가 사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간악한 자가 징계를 받지 않으니, 만약 이러한 방법을 고치지 않으면 亂을 바로잡기를 바라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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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靳準이 侍中 卜泰에게 황제가 사용하는 乘輿와 服御(복식‧거마‧기물)를 가지고 가서 石勒에게 화친을 청하게 하였는데, 석륵이 복태를 가두었다가 漢主 劉曜에게 보냈다.
유요가 복태에게 이르기를 “
先帝(
劉粲)의
末年에 실로 큰 인륜을 어지럽혔다.
注+先帝는 劉粲을 이른다. “亂倫(인륜을 어지럽혔다)”은 여러 어미를 간음한 일을 이른다. 司空(
靳準)이
伊尹과
霍光의 권한을 행하여
朕으로 하여금 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으니, 그
功이 매우 크다.
만약 속히 朕의 大駕를 맞이하면 내 마땅히 모든 정사를 그에게 맡길 터인데, 하물며 죽음을 면하는 것에 있어서랴.” 하였다. 복태가 돌아와 유요의 말을 전하였는데, 근준은 따르지 않았다.
將軍인
喬泰 등이 함께 근준을 죽이고
靳明을
君主로 추대하고는,
注+靳明은 靳準의 從弟이다. 복태를 보내어 6개의
傳國璽를 받들어 올리고
漢나라(
前趙)에 항복하였다.
石勒이 크게 노하고 진군하여 근명을 공격하니, 근명이 나와 싸우다가 대패하였다.
目
[目] 靳明이 여러 번 패하고는 사신을 보내어 漢나라(前趙)에 구원을 요청하자, 漢主 劉曜가 사람을 보내서 그를 맞이하게 하였다.
근명이 平陽의 남녀 1만 5천 명을 거느리고 漢나라로 달아나자, 劉曜가 靳氏의 남녀를 모두 생포하여 참수하였다.
石勒은 平陽의 宮室을 불태우고 劉淵과 劉粲의 두 능을 수리하고 유찬 이하 백여 명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하고는, 수비하는 군대를 배치하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