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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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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寅年(186)
三年이라 春二月 江夏兵趙慈反하다
◑遣使하여 就拜張溫爲太尉하다
三公在外 始於溫하다
以宦者趙忠爲車騎將軍하다
帝使忠으로 論討黃巾之功하니 執金吾甄擧謂曰 傅南容 前在東軍 有功不侯하니 天下失望注+南容, 爕字.이라
今將軍 親當重任하니 宜進賢理屈하여 以副衆心注+進賢理屈, 謂進用賢人, 治理枉屈也.이니라
遣弟延하여 致殷勤於傅爕曰 南容 少答我常侍하면 萬户侯 不足得也니라
正色拒之曰 遇不遇 命也 有功不論 時也 傅爕 豈求私賞哉
愈恨이라이나 憚其名하여 不敢害하고 出爲漢陽太守하다
修南宮하고 하다
帝使繕修南宮玉堂注+南宮, 有玉堂殿.하고 鑄四銅人, 四鍾注+銅人列於蒼龍․玄武闕外, 鍾懸於雲臺及堂殿前.하고 又鑄天祿, 蝦蟇하여 轉水入宮注+天祿, 獸名. 通鑑 “又鑄天祿․蝦蟇, 吐水於平門外橋東, 轉水入宮.”하고
又作翻車, 渴烏하여 灑南北郊路하고 以爲可省百姓灑道之費注+翻車, 設機車以引水. 渴烏, 爲曲桶, 以氣引水上也.라하다
夏五月晦 日食하다
◑六月 荊州刺史討趙慈하여 斬之하다
◑冬十月 武陵蠻이어늘 郡兵 討破之하다
◑鮮卑寇幽, 幷하다
◑徵張溫還하다


병인년丙寅年(186)
나라 효령황제 중평孝靈皇帝 中平 3년이다. 봄 2월에 강하江夏의 병사인 조자趙慈가 반란을 일으켰다.
사자使者를 보내 현장에서 장온張溫을 제수하여 태위太尉로 삼았다.
삼공三公외지外地에 있는 것이 장온張溫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환관인 조충趙忠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삼았다.
】 황제가 조충趙忠으로 하여금 황건적黃巾賊을 토벌한 공을 논하게 하니, 집금오 견거執金吾 甄擧(견거)가 조충에게 이르기를 “부남용傅南容(부섭傅燮)이 예전에 동쪽으로 정벌하였을 적에 이 있었으나 로 봉하지 않으니, 천하天下가 실망하였습니다.注+남용南容부섭傅爕이다.
지금 장군이 친히 중한 임무를 담당하였으니, 마땅히 현자를 등용하고 억울한 일을 해결해서 여러 사람의 마음에 부응해야 합니다.”注+진현이굴進賢理屈”은 현인賢人을 등용하고 억울한 일을 해결하는 것을 이른다. 하였다.
조충이 아우 조연趙延을 보내 부섭에게 간곡한 뜻을 전달하기를 “남용南容이 조금만 우리 상시常侍(조충)의 뜻에 보답하면, 만호후萬户侯를 굳이 얻으려 할 것이 없다.” 하였다.
부섭이 정색하고 거절하며 말하기를 “때를 만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은 천명天命이요 이 있는데 을 논하지 않는 것은 시운時運이니, 내 어찌 사사로이 주는 을 구하겠는가.” 하였다.
이에 조충이 더욱 부섭을 미워하였으나 그의 명성을 두려워하여 감히 해치지는 못하고 한양태수漢陽太守로 내보냈다.
남궁南宮을 수리하고 동인銅人을 주조하였다.
】 황제가 남궁南宮옥당玉堂을 수리하고注+남궁南宮옥당전玉堂殿이 있었다. 네 개의 동인銅人과 네 개의 을 주조하게 하였으며注+동인銅人창룡蒼龍현무玄武 밖에 나열하고, 운대雲臺옥당전玉堂殿 앞에 매달았다., 또 천록天祿하마蝦蟇(찰머구리)를 주조하여 물을 돌려 궁중으로 끌어들이게 하였다.注+천록天祿은 짐승의 이름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또 천록天祿하마蝦蟇를 주조해서 평문平門 밖 다리 동쪽에 두어서 물을 뿜어내면 그 물을 돌려 궁중으로 들여보냈다.”고 하였다.
번차翻車갈오渴烏를 만들어서 남교南郊북교北郊의 길에 물을 뿌리게 하고는, 백성들이 길에 물을 뿌리는 비용을 줄이게 되었다고 하였다.注+번차翻車”는 기계가 달린 수레를 만들어 물을 끌어오게 한 것이고, “갈오渴烏”는 굽은 을 만들어 공기로 물을 끌어 올린 것이다.
】 여름 5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 6월에 형주자사荊州刺史조자趙慈를 토벌하여 참수하였다.
】 겨울 10월에 무릉武陵만족蠻族이 배반하자, 의 군대가 토벌하여 격파하였다.
선비鮮卑유주幽州병주幷州를 침략하였다.
장온張溫을 불러 돌아오게 하였다.


역주
역주1 鑄銅人 : “秦나라에서 金人을 주조하였으나 이를 쓰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어째서 썼는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를 알지 못함을 비난한 것이다. 秦나라는 한창 富强하였으니 심하게 사치한 것을 굳이 책망할 것이 없지만, 〈漢나라는 이때〉 황건적의 화가 거의 온 천하를 뒤덮고 있었는데 秦나라가 한 짓을 뒤따랐으니, 힘써야 할 바를 알지 못했다고 여겨서 여기에 써서 비난한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주조했다고 쓴 것이 여섯 번인데 銅人을 쓴 것이 세 번이니, 모두 비난한 것이다.[秦鑄金人 不書 此何以書 譏不知務也 秦方富强 奢侈之甚 不足責也 黃巾之禍 殆遍天下 而踵秦所爲 以是爲不知務 故書譏之 終綱目 書鑄六而書銅人者三 皆譏也]다” ≪書法≫
역주2 (王)[玉] : 저본에는 ‘王’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玉’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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