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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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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丑年(B.C. 212)
三十五年이라
除直道하다
使蒙恬으로 除直道注+除, 治也.하되 道九原抵雲陽하니
塹山堙谷 千八百里 數年不就注+道, 由也. 抵, 至也. 班志 “雲陽縣屬馮翊.” 塹, 七艶切, 阬也, 亦作壍. 堙, 音因, 塞也.하다
營朝宮할새 作前殿阿房하다
阿房宮 조영阿房宮 조영
始皇 以咸陽 人多하고 先王宮廷라하야 乃營朝宮渭南上林苑中호대
先作前殿阿房注+朝, 音潮. 阿, 曲也. 房, 房室之房, 言殿之四阿, 皆爲房也. 又大陵曰阿, 言其殿高若於阿上爲房也. 又阿, 近也. 房, 或作旁. 以其去咸陽近, 且號阿房. 又此以其形名宮也, 言其宮四阿房廣也. 又阿, 山曲也, 阿房乃舊地名, 宮成, 未更名而燬, 故天下只云阿房宮.하니 東西五百步 南北 五十丈이라
上可以坐萬人이요 下可以建五丈旗러라
周馳爲閣道호대 自殿下 直抵南山注+關中, 有南山‧北山. 自甘泉連延至巀嶭‧九嵕爲北山. 自終南‧太白連延至商嶺爲南山.하고 表山巓하야 以爲闕하고
複道渡渭하야屬之咸陽注+屬, 音燭, 連也.하다
隱宮徒刑者七十餘萬人이라 分作阿房驪山注+宮, 淫刑也. 男子割勢, 婦人幽閉, 次死之刑. 餘刑見於市朝, 宮刑, 一百日隱於蔭室養之乃可, 故曰隱宮. 徒, 奴役也. 徒刑者, 有罪旣加刑, 復罰作之也. 驪, 音離. 索隱 “驪山在雍州新豊縣南.”하니 關中 計宮三百이요 關外 四百餘注+秦地, 西有關, 東有函谷關, 南有武關, 北有臨晉關, 西南有散關. 秦居其中, 故謂之關中.러라
因徙三萬家驪邑하고 五萬家雲陽注+驪邑, 始皇之陵也. 漢自人君卽位, 卽治山陵, 及徙民, 置邑陵旁, 皆秦制也. 雲陽, 甘泉宮所在也.하다
盧生說始皇호대 爲微行하야 以辟惡鬼注+微行, 微隱行也. 辟, 音壁, 除也.하고 所居宮 毋令人知然後 不死之藥 殆可得也라하니
始皇 乃令咸陽旁二百里內 宮觀複道相連하고 帷帳鐘鼓美人 充之하야 各案署不移徙注+宮, 至尊所居之稱也. 觀, 音貫, 猶象魏闕也. 古者, 每門樹兩觀於其前, 所以標表宮門. 登之則可徧觀, 故謂之觀. 案, 按堵也. 署, 官府也.하고
所行幸 有言其處者注+天子車駕所至, 民臣以爲僥幸, 故曰幸.러니
嘗從梁山宮하야 望見丞相車騎衆注+句.하고 弗善也注+班志 “梁山宮在扶風好畤縣.” 弗善, 蓋忌其權盛.어늘
告丞相하니 丞相 損之한대
始皇 怒曰 此 中人 泄吾語로다하고 捕時在旁者하야 盡殺之하니
是後 莫知行之所在하야 群臣受決事者 悉於咸陽宮하더라
阬諸生四百六十餘人하고 使長子扶蘇 監蒙恬軍하다
侯生盧生 相與譏議始皇이라가 因亡去어늘
始皇 聞之하고 大怒曰 諸生 或爲妖言하야 以亂黔首라하고
使御史 案問之하니 諸生 傳相告引하야
乃自除犯禁者 四百六十餘人이어늘 皆阬之咸陽注+秦置御史, 掌討姦猾治大獄, 御史大夫統之. 傳, 柱戀切. 相告引者, 謂甲引乙, 乙復引丙也.한대
長子扶蘇諫曰 諸生 皆誦法孔子어늘 今以重法繩之하시니 臣恐天下不安注+誦法孔子, 誦孔子之言, 以爲法也. 繩, 彈治也.일까하노이다 始皇하야 使北監蒙恬軍於上郡하다


기축년(B.C. 212)
[綱] 나라 시황제始皇帝 35년이다.
직도直道를 닦았다.
[目] 몽념蒙恬으로 하여금 직도直道를 닦게 하였는데,注+는 닦는 것이다.구원九原을 경유하여 운양雲陽에까지 이르렀다.
산을 깎고 골짜기를 메운 것이 1,800리나 되어, 몇 년이 지나도록 완성하지 못하였다.注+는 경유하는 것이다. 는 이르는 것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운양현雲陽縣풍익馮翊에 속한다.”고 하였다. 칠염七艶인데, 구덩이를 말한다. 또한 으로도 쓴다. 은 음이 이니, 메우는 것이다.
[綱] 영건營建하여 전전前殿(정전正殿)인 아방궁阿房宮을 지었다.
[目] 시황始皇함양咸陽 지역이 사람은 많고 선왕이 지은 궁전은 작다고 하여, 조궁朝宮위남渭南 안에 지었다.
먼저 전전前殿아방궁阿房宮을 지으니,注+는 음이 이다. 는 모퉁이이다. 방실房室이라 할 때의 이다. 전각의 네 모퉁이를 모두 방으로 만든 것을 말한 것이다. 또 큰 언덕을 라고 하는데, 그 전각이 높아서 마치 언덕 위에 방을 만든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또 는 가까운 것이며, 은 혹 이라고 쓰인다. 그 궁이 함양咸陽과의 거리가 가까우므로 아방궁阿房宮이라고 한 것이다. 또 이것은 그 형태로 궁의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 궁의 네 모퉁이에 있는 방이 넓은 것을 말한다. 또 는 산굽이로, 아방은 바로 옛 지명인데, 궁이 이루어지고 나서 궁의 이름을 다시 짓기도 전에 불에 탔으므로, 천하 사람들이 단지 아방궁阿房宮이라고 이른 것이다. 동서의 길이가 500보이며, 남북의 길이가 50이었다.
위에는 1만 명이 앉을 수가 있었으며, 아래에는 5 높이의 깃발을 세울 수가 있었다.
주위에는 말이 달리는 를 만들었는데, 전각의 아래로부터 곧장 남산南山에 닿았으며,注+관중關中에는 남산南山북산北山이 있는데, 감천甘泉으로부터 연이어져서 찰알산巀嶭山에 이르는 것이 북산이 되고, 종남산終南山태백산太白山으로부터 연이어져서 에 이르는 것이 남산이 된다. 산꼭대기에는 궐루闕樓를 세워 표지로 삼았다.
또 구름다리를 만들어 위수渭水를 건너 함양咸陽과 연이어지게 하였다.注+은 음이 으로, 연이어지는 것이다.
을 받은 자 70만 명을 옮겨서 아방궁阿房宮을 나누어 만들게 하였는데,注+음형淫刑으로, 남자는 불까고 여자는 음부를 막는데, 사형의 다음가는 형벌이다. 다른 형벌은 저잣거리에서 행하나 궁형宮刑은 100일 동안을 음침한 방에 숨어서 요양해야 하므로, 은궁隱宮이라 하는 것이다. 는 노역형이다. 도형은 죄 지은 자에게 이미 형벌을 가하고서 다시 벌로 노역을 시키는 것이다. 는 음이 이다. 에 “여산驪山옹주雍州 신풍현新豊縣 남쪽에 있다.”고 하였다. 관중 지역에 있는 궁이 모두 300개였고, 관중 밖에 있는 궁궐이 400여 개였다.注+나라의 서쪽에는 이 있고, 동쪽에는 이 있고, 남쪽에는 무관武關이 있고, 북쪽에는 이 있고, 서남쪽에는 이 있는데, 나라가 그 안에 위치해 있다. 그러므로 관중關中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3만 가구를 여읍驪邑으로 옮기고 5만 가구를 운양雲陽으로 옮겼다.注+여읍驪邑 시황始皇의 능이다. 나라 때에는 임금이 즉위하면서부터 곧바로 산릉山陵을 만든 것과 백성들을 옮겨 능 곁에 고을을 둔 것은 모두 나라의 제도이다. 운양雲陽감천궁甘泉宮이 있는 곳이다.
[目] 노생盧生 시황始皇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미행微行을 하여 악귀를 물리치고,注+미행微行은 은미하게 가는 것이다. 은 음이 이며, 없애는 것이다. 거처하는 궁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한 뒤에야 불사약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진 시황이 이에 영을 내려 함양咸陽의 주위 200리 안에 있는 궁관宮觀복도複道로 서로 연결하고, 휘장과 종고鐘鼓와 미인들로 그곳을 채웠는데, 각각 부서별로 명단을 작성하여 안치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못하게 하였다.注+은 지존이 거처하는 곳의 칭호이다. 은 음이 이니, 을 형상한 것과 같은 것이다. 옛날에 모든 문마다 그 앞에는 두 개의 을 세워두었는데, 이는 궁문을 표시한 것이다. 거기에 올라가서 보면 사방을 두루 볼 수 있으므로 이라고 한 것이다. 은 안도하는 것이다. 는 관부이다.
또 자신이 행차를 하는 곳을 말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사형에 처했다.注+천자의 수레가 이르는 것을 백성과 신하들이 요행으로 여기므로 이라고 하는 것이다.
[目] 시황始皇이 일찍이 양산궁梁山宮에 있다가 승상의 수레와 말이 많은 것을 보고는注+여기서 를 뗀다. 언짢아하였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양산궁梁山宮부풍扶風호치현好畤縣에 있다.”고 하였다. “불선弗善(언짢게 여기다)”은 대개 그 권위가 성한 것을 꺼린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를 승상에게 고하니, 승상이 수레와 말의 숫자를 줄였다.
그러자 진 시황이 노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환관들이 나의 말을 누설한 것이다.”라고 하고는, 당시에 자신의 곁에 있던 환관을 잡아다가 모두 죽였다.
그런 뒤로는 진 시황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여, 여러 신하들 가운데 황제의 결재를 받아야 할 자들이 모두 함양궁咸陽宮에서 받았다.
[綱] 유생儒生들 460여 명을 구덩이에 파묻고, 장자長子부소扶蘇로 하여금 몽념蒙恬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다.
[目] 후생侯生노생盧生이 서로 더불어 시황始皇에 대해서 비난하는 의논을 하다가 도망쳤다.
진 시황이 그것을 듣고는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유생들이 혹 요언妖言을 하여 백성들을 어지럽힌다.”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어사御史로 하여금 잡아다가 조사하게 하자, 유생들이 서로가 서로를 끌고 들어가 고발하였다.
이에 금법을 범한 자들을 직접 제거한 것이 모두 460여 명이었는데, 이들을 모두 함양咸陽에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하였다.注+나라에서는 어사御史를 두어 간사하고 교활한 자를 토벌하고, 큰 옥사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어사대부御史大夫가 통솔하였다. (차례로 돌다)은 주련柱戀이다. “전상고인傳相告引(서로가 서로를 끌고 들어가 고발하다.)”은 갑이 을을 끌어들이고, 을이 다시 병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장자長子부소扶蘇가 간하기를 “유생들은 모두 공자孔子의 말을 외우고 이를 본받는 사람들인데, 지금 중한 법으로 처벌하시니, 신은 천하 사람들이 불안해할까 두렵습니다.”注+송법공자誦法孔子”는 공자孔子의 말을 외워 법으로 삼는 것이다. 은 탄핵하여 다스리는 것이다.라고 하자, 진 시황이 노하여 부소를 북쪽 변경으로 보내어 상군上郡에서 몽념蒙恬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다.
분서갱유焚書坑儒분서갱유焚書坑儒


역주
역주1 朝宮 : 황제가 조회를 받는 궁궐을 말한다.
역주2 上林苑 : 秦나라와 漢나라 때 長安에 있었던 황제의 정원 이름이다.
역주3 閣道 : 나무를 쌓아 올려서 시렁 모양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한 길을 말한다.
역주4 隱宮과 徒刑 : 隱宮은 宮刑이고, 徒刑은 노역형이다.
역주5 驪山 : 秦 始皇의 능을 말한다.
역주6 九嵕山(구종산) : 중국 長安 근교에 있는 명산으로, 이곳에 唐나라 太宗의 무덤인 昭陵이 있다.
역주7 商嶺 : 商山으로, 秦나라 말기에 혼란한 세상을 피하여 商山四皓가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역주8 史記索隱 : 唐나라 司馬貞이 지은 《史記》의 註釋書를 말한다.
역주9 隴關 : 大震關이라고도 한다.
역주10 函谷關 : 전국시대 때 秦나라가 설치한 관문으로 崤函이라고도 한다.
역주11 臨晉關 : 蕭關이라고도 한다.
역주12 散關 : 大散關이라고도 한다. 섬서와 사천 두 省 사이의 교통로에 해당하는 관계상, 군사적 요충지였다.
역주13 (龍)[隴] : 저본에는 ‘龍’으로 되어 있으나, 思政殿訓義 《資治通鑑》에 근거하여 ‘隴’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4 魏闕 : 임금이 사는 궁궐을 가리킨다. 임금이 사는 대궐의 문이 우뚝하니 높으므로 이렇게 이르는 것이다.
역주15 (專)[傳] : 저본에는 ‘專’으로 되어 있으나, 본문에 근거하여 ‘傳’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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