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14)

자치통감강목(14)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1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康皇帝建元元年이라
趙建武九年이라
春二月 髙句麗王釗 朝貢於燕하다
還其父屍하고 留母爲質이라가 數年而後 歸之하다
在武昌 數有妖恠하니 欲移鎮樂鄉注+樂鄕, 春秋國之地. 其城, 吳陸抗所築, 在江陵松滋縣東.이어늘 王述 與庾冰牋曰
樂鄉 去武昌千有餘里 數萬之衆 一旦移徙하면 興立城壁 公私勞擾 又江州當泝流供給이니 力役増倍
且武昌 實江東鎮戍之中이니 非但捍禦上流而已 緩急赴告 駿奔不難注+駿, 大也. 駿奔, 言皆奔走也.이리이다
若移樂鄉하여 遠在西陲하면 一朝江渚有虞 不相接救하리니 方嶽重將 固當居要害之地하여 爲内外形勢하여 使闚𨵦之心 不知所向이니이다
秦忌亡胡之讖하여 卒爲劉, 項之資하고 周惡檿弧之謡하여 而成褒姒之亂이라
是以 逹人, 君子 直道而行이요 禳避之道 皆所不取 正當擇人事之勝理 社稷之長計耳니이다 乃止하다
爲人 慷慨하고 喜功名하며 不尚浮華하다
琅邪内史桓温 彝之子也 尚南康公主하여 豪爽有風槪注+南康公主, 明帝女. 有風槪, 言其有風力氣槪.하니 與之友善하다
嘗薦於成帝曰 温 有英雄之才하니 願勿以常壻畜之하시고 宜委以方, 邵之任하시면 必有弘濟之勲注+方叔․邵虎, 周宣王用之以中興.이리이다
杜乂, 殷浩竝才名冠世注+冠, 古玩切.로되 獨弗之重也하고
此輩 宜束之髙閣하여 俟天下太平然後 徐議其任耳라하니라
浩累辭徵辟하고 屏居十年하니 時人 擬之管, 葛注+管․葛, 管仲․諸葛孔明也.이라
謝尚, 王濛 嘗伺其出處하여 以卜江左興亡注+尙, 鯤之子也.이러니 嘗相與省之하여 知浩有確然之志注+確然者, 守志堅固不移也.하고
旣退 相謂曰 深源 不起하니 當如蒼生何注+深源, 浩字.
請浩爲司馬한대 詔除侍中安西軍司注+軍司, 卽軍司馬.하니 浩不應이어늘
遺之書曰 王夷甫立名非真하여 雖云談道 實長華競注+非眞, 不實也, 立虛名耳. 長, 知兩切.이니 明德君子 遇會處際 寧可然乎아호되 浩猶不起注+遇會處際, 言遇風雲之會, 處功名之際也.하다
浩父羨 爲長沙相하여 在郡貪殘이라 庾冰 與翼書屬之한대 翼報曰
殷君驕豪 亦似由有佳兒注+佳兒, 謂浩也. 弟故小令物情容之注+翼, 冰弟也.어니와
大較江東之政 嫗煦豪彊하여 時有行法 輙施之寒劣注+較, 訖岳切, 大較, 猶言大略也. 樂曰 “天地訢合, 陰陽相得, 煦嫗覆育萬物.” 煦, 許具切. 嫗, 於具切. 氣曰煦, 體曰嫗. 煦物覆物者, 天之氣. 嫗物育物者, 地之體. 嫗煦豪彊者, 謂豪俠彊暴之人, 不加之刑法, 而反覆育之. 寒者, 衰冷無氣燄也, 劣者, 卑弱在人下也.이라 如往年偷石頭倉米一百萬斛 皆是豪將輩어늘 而殺倉監督하여 以塞責注+將, 卽亮切. 倉督監, 筦倉之官.하고
山遐爲餘姚長하여 爲官出豪彊所藏二千戸한대 而衆共驅之하여 令不得安席注+遐, 簡之子也. 餘姚縣, 屬會稽郡. 長, 知兩切. 爲, 去聲.하니 雖皆前宰惛謬 江東事去 寔此之由注+前宰, 指王導. 惛, 音昏, 謬, 靡幼切.
兄弟不幸하여 横陷此中하여 不能拔足於風塵之外하니 當共明目而治之注+橫, 戶孟切.
荆州所統二十餘郡 唯長沙最惡하니 惡而不黜이면 與殺督監者 復何異邪注+太康地志 “荊州統郡二十有二, 惠帝至元帝, 又立隨․新野․竟陵․新興․南河等郡.”
以滅胡取蜀으로 爲己任하여 遣使約燕, 하여 刻期大舉하니
朝議多以爲難이로되 唯冰意與之同이요 而桓温, 譙王無忌皆贊成之注+無忌, 丞之子也.러라
至是하여 詔議經略中原하니 欲悉衆北伐하여 表桓宣督諸軍하여 趣丹水하고
桓温爲前鋒小督하여 帥衆入臨淮注+丹水縣, 前漢屬弘農郡, 後漢屬南陽郡, 晉屬順陽郡.하고 竝發所統六州奴及車牛驢馬하니 百姓 嗟怨注+六州, 江․荊․司․雍․梁․益也.이러라
漢主壽卒하니 太子勢立하다
欲移鎮襄陽호되 恐朝廷不許하여 乃奏移鎮安陸注+安陸縣, 自漢以來, 屬江夏郡.하니 帝遣使譬止之한대
遂違詔北行하여 至夏口하여 復請鎮襄陽하니 時有衆四萬이라 詔加翼都督征討諸軍事하고 遣冰出鎮武昌하여 以爲繼援하고
徵充輔政하고 又徵褚裒하여 爲衛將軍하여 領中書令하다 裒以近戚畏嫌하여 尋復出督兗州하여 鎮金城注+金城, 在江乘之蒲洲.하다


[] 나라(동진東晉) 강황제康皇帝 건원建元 원년이다.
[] 나라(후조後趙) 태조太祖 석호石虎 건무建武 9년이다.
[] 봄 2월에 고구려왕 고소高釗나라(전연前燕)에 조공을 바쳤다.
[] 나라가 고소高釗의 아비의 시신을 돌려주고 어미를 억류하여 인질로 삼았다가 몇 년 뒤에 돌려보냈다.
[] 가을 7월에 〈나라(동진東晉)에서〉 조령을 내려 중원中原경략經略할 것을 의논하니, 유익庾翼이 표문을 올려서 양주자사梁州刺史 환선桓宣을 보내어 나라(후조後趙)를 공격하게 하였다.
[] 유익庾翼무창武昌에 있을 적에 자주 요망한 괴변이 있으니, 진영을 낙향樂鄉으로注+① 樂鄕은 春秋時代 鄀國의 땅이다. 그 城은 吳나라 陸抗이 축조한 것인데, 江陵의 松滋縣 동쪽에 있다. 옮기고자 하였다. 이에 왕술王述유빙庾冰에게 편지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낙향은 무창으로부터 거리가 천여 리가 넘습니다. 수만 명의 병력이 하루아침에 진영을 옮기면 장차 성벽을 일으켜 세울 적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피로하고 혼란할 것입니다. 게다가 강주江州에서는 마땅히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서 낙향에 물자를 공급하여야 하니, 백성들의 노역이 배로 증가할 것입니다.
또 무창은 실로 강동江東 지방의 진수鎭戍의 중심이므로 상류上流를 막아낼 수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유사시有事時에 달려가 급보急報를 알릴 적에 어려움 없이 빨리 달려갈注+② 駿은 큼이니, 駿奔은 사람들이 모두 분주히 달려감을 말한 것이다.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만약 낙향으로 옮겨서 멀리 서쪽 변방에 있게 되면 하루아침에 강변에 우려스러운 일이 있을 경우 서로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방악方嶽(한 방면)을 담당하는 중요한 장수將帥는 실로 마땅히 요해처要害處에 거하여 안팎으로 〈안전한〉 형세를 만들어서 적의 엿보는 마음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게 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이치를 통달한 사람과 군자는 정직한 방도로써 행하고 귀신에게 제사하여 를 피하는 방법은 모두 취하지 않은 것이니, 마땅히 인사人事에 알맞은 훌륭한 다스림과 사직社稷을 위하는 장구한 계책을 택하여야 합니다.” 유익이 이에 중지하였다.
[] 유익庾翼은 사람됨이 비분강개하고 공명功名을 좋아하였으며, 부화浮華함을 숭상하지 않았다.
낭야내사琅邪内史 환온桓温환이桓彝의 아들인데, 남강공주南康公主에게 장가들었다. 호걸스럽고 풍격과 기개가 있으니,注+① 南康公主는 明帝의 딸인데, 風槪가 있다는 것은 그에게 풍격과 기개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유익이 그와 벗이 되어 친하였다.
일찍이 성제成帝에게 그를 천거하기를 “환온은 영웅의 재주가 있으니, 원컨대 보통 사위로 대우하지 마시고 마땅히 방숙方叔소호邵虎注+② 方叔과 邵虎는 周나라 宣王 때 등용되어 나라를 중흥시킨 인물이다. 임무를 맡기시면 반드시 널리 구제救濟하는 공을 세울 것입니다.” 하였다.
이때 두예杜乂은호殷浩가 모두 재주와 명망이 세상에 으뜸이었으나,注+③ 冠(으뜸)은 古玩의 切이다. 유익은 홀로 이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말하기를
“이들은 마땅히 높은 집에 묶어두고서 천하가 태평해지기를 기다린 뒤에야 그 임무를 천천히 의논할 수 있다.” 하였다.
[] 은호殷浩가 여러 번 조정의 징벽徵辟을 사양하고 10년 동안 은거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관중管仲제갈공명諸葛孔明注+① 管과 葛은 管仲과 諸葛孔明이다. 견주었다.
사상謝尚注+② 謝尙은 謝鯤의 아들이다. 왕몽王濛은 일찍이 그의 출사出仕함과 은둔함을 엿보고서 강동江東이 흥할 것인가 망할 것인가를 점쳤는데, 일찍이 서로 함께 가서 은호가注+③ “確然”은 뜻을 지킴이 확고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다. 확고한 뜻이 있음을 살펴 알고서는
물러나와서 서로 말하기를 “심원深源注+④ 深源은 殷浩의 자이다. 출사하지 않으니, 창생蒼生을 장차 어찌하겠는가.” 하였다.
유익庾翼이 은호를 사마司馬로 삼을 것을 청하자, 조령을 내려 시중侍中 안서군사安西軍司注+⑤ 軍司는 바로 軍司馬이다. 제수하였는데, 은호가 응하지 않았다.
유익이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注+⑥ “非眞”은 진실하지 않음이니, 헛된 이름을 세웠을 뿐이다. 長(조장하다)은 知兩의 切이다. 밝은 덕이 있는 군자가 풍운風雲의 기회를 만나고 공명功名을 이룰 수 있는 때에 처하여注+⑦ 遇會處際는 풍운의 기회를 만나 공명을 이룰 수 있는 때에 처함을 말한 것이다. 어찌 그리한단 말인가.” 하였으나, 은호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 은호의 아버지 은선殷羨장사상長沙相이 되어서 에 있으면서 탐욕을 부리고 백성에게 잔악한 짓을 하였다. 유빙庾冰유익庾翼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를 부탁하자, 유익이 답서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은군殷君이 교만하고 방자함은 또한 아름다운 아들(은호殷浩)이注+① 아름다운 아들은 殷浩를 이른다.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러므로 아우인 제가注+② 庾翼은 庾冰의 아우이다. 여론으로 하여금 그를 조금 너그럽게 용서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체로 우리 강동江東정사政事호강豪强들이 방종放縱하도록 내버려두고 법령을 행할 때면 번번이 신분이 빈한하고 지위가 용렬한 자에게 시행합니다.注+③ 較는 訖岳의 切이니, “大較”는 大略이라는 말과 같다. ≪禮記≫ 〈樂記〉에 이르기를 “天地가 화합하여 陰과 陽이 서로 맞아서 만물을 따뜻하게 보살펴 덮어주고 기른다.” 하였다. 煦는 許具의 切이고, 嫗는 於具의 切이니, 기운을 따뜻하게 함을 煦라 하고, 몸으로 따뜻하게 함을 嫗라 한다. 만물을 따뜻하게 하여 만물을 덮어주는 것은 하늘의 氣이고, 만물을 따뜻하게 하여 만물을 기르는 것은 땅의 형체이다. “嫗煦豪彊”은 호협하고 강포한 사람들에게 형벌과 법을 가하지 않고, 도리어 덮어주고 길러줌을 말한 것이다. 寒은 쇠하고 차가워서 氣焰이 없는 것이고, 劣은 낮고 약하여 남의 아래에 있는 것이다. 예컨대 왕년에 석두창石頭倉의 쌀 1백만 을 훔친 자들은 모두 호족豪族장수將帥들이었는데, 창고를 감독하는 자를 죽여서 책임을 모면하였습니다.注+④ 將(장수)은 卽亮의 切이다. “倉督監”은 창고를 관리하는 관원이다.
그리고 산하山遐여요현餘姚縣이 되어서 국가를 위해 호강豪强들이 감추어놓았던 2천 호를 색출하였는데,注+⑤ 山遐는 山簡의 아들이다. 餘姚縣은 會稽郡에 속하였다. 長(우두머리)은 知兩의 切이다. 爲(위하다)는 去聲이다. 호강豪强한 무리들이 함께 그를 몰아내어 정무를 편안히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 모두는 비록 전임 재상이 정사에 어둡고 용렬하여 잘못한 것이나,注+⑥ “前宰”는 王導를 가리킨다. 惛(어둡다)은 음이 昏이고 謬(그릇되다)는 靡幼의 切이다. 강동의 정사가 잘못된 것은 참으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가 불행하여 횡액橫厄注+⑦ 橫(횡액)은 戶孟의 切이다. 걸려 이 가운데에 빠져서 풍진風塵의 밖으로 발을 빼내지 못하고 있으니, 마땅히 함께 눈을 밝게 뜨고서 다스려야 합니다.
형주荆州에서 관할하는 20여 가운데注+⑧ ≪太康地志≫에 “荊州가 22개 군을 통솔하였는데, 惠帝로부터 元帝에 이르기까지 또 隨, 新野, 竟陵, 新興, 南河 등의 郡을 세웠다.” 하였다. 오직 장사長沙가 가장 좋지 않으니, 좋지 않은데도 퇴출하지 않으면, 창고의 감독을 죽여 책임을 모면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유익庾翼은 오랑캐(후조後趙)를 멸망하고 지방(성한成漢)을 점령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아서 사신을 보내어 (전연前燕)과 (전량前涼)과 약속해서 기한을 정하여 크게 군대를 일으키려 하니,
조정의 의논은 대부분 어렵게 여겼으나, 오직 유빙庾氷의 뜻이 그와 같았고, 환온桓温초왕譙王 사마무기司馬無忌注+① 司馬無忌는 司馬丞의 아들이다. 모두 이에 찬성하였다.
[] 이때 이르러 조령을 내려 중원中原을 경략할 것을 의논하니, 유익庾翼이 병력을 총동원하여 북벌하고자 해서 표문을 올려 환선桓宣으로 하여금 여러 군대를 도독都督하여 단수丹水注+① 丹水縣은 前漢 때에는 弘農郡에 속하였고, 後漢 때에는 南陽郡에 속하였고, 晉나라 때에는 順陽郡에 속하였다. 달려가게 하고,
환온桓温전봉소독前鋒小督으로 삼아서 병력을 거느리고 임회臨淮로 쳐들어가고, 아울러 자기가 통솔하고 있는 6注+② 6州는 江州, 荊州, 司州, 雍州, 梁州, 益州이다. 노예와 수레, 소, 나귀, 말을 징발할 것을 주청하니, 백성들이 크게 원망하였다.
[] 한주漢主 이수李壽하니, 태자 이세李勢가 즉위하였다.
[] 유익庾翼이 진영을 양양襄陽으로 옮기니, 조령을 내려 유익을 도독정토군사都督征討軍事로 삼고 유빙庾冰도독형都督荆강등주군사江等州軍事로 삼고 하충何充을 불러 양주자사揚州刺史 녹상서사録尚書事로 삼았다.
[] 유익庾翼이 진영을 양양襄陽으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조정朝廷에서 허락하지 않을까 염려해서 마침내 상주上奏하여 진영을 안륙安陸으로注+① 安陸縣은 漢나라 이후로 江夏郡에 속하였다. 옮길 것을 청하자, 황제( 강제康帝)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타일러서 만류하였다.
유익이 마침내 조령을 어기고 북쪽으로 길을 떠나 하구夏口에 이르러서 다시 양양에 진주할 것을 청하였는데, 유익이 이때 4만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조령을 내려 유익에게 도독정토제군사都督征討諸軍事의 지위를 더해주고서 유빙庾冰을 파견하여 밖으로 나가 무창武昌에 진주하여 유익의 후원부대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하충何充을 불러 조정朝廷의 정사를 보좌하게 하고, 또 저부褚裒를 불러 위장군衛將軍으로 삼아서 중서령中書令을 겸하게 하였다. 저부는 자신이 가까운 인척이라 하여 혐의를 두려워해서 얼마 후 다시 밖으로 나가 연주兗州도독都督하여 금성金城注+② 金城은 江乘의 蒲洲에 있다. 진주하였다.


역주
역주1 詔議經略中原……桓宣伐趙 : “典午(司馬氏)가 남쪽으로 건너간 지가 어느덧 3紀가 지나 국운이 어려움이 많아서 멀리 經略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 石虎가 병력을 믿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여겨 遺民들을 도탄에 빠트렸다. 게다가 창을 옮겨 남쪽을 향해서 강동 지방을 병탄할 뜻이 있었는데, 晉나라가 능히 趙나라의 강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립할 바를 생각하니, 조정의 의논이 차츰차츰 흥기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조령을 내려서 중원을 경략할 것을 의논하게 하였으니, 비록 일거에 오랑캐를 소탕하여 평정하지는 못하였으나, 여기에서 또한 의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것을 들어 쓴 것은 중국을 높이고 정통을 보존하여 사람들에게 적을 이겨서 영토를 수복함을 잊지 않으려는 뜻을 보인 것이니, 그 후세에 남긴 가르침이 크다.[典午南渡 奄踰三紀 國步多艱 未遑遠略 今石虎阻兵安忍 塗炭遺民 方且移戈南向 志吞江表 晉能不畏其强 思所自立 朝議稍稍振起 至是 詔議經略中原 雖未能一舉盪定 然亦足覘其意向之所在矣 掲而書之 所以尊中國 存正統 示人以不忘克復之意 其垂訓也 大矣]” ≪發明≫
역주2 秦나라는……만들었고 : 秦나라 始皇帝 때에 圖讖書인 〈錄圖書〉에 “秦나라를 망칠 자는 호이다.[亡秦者胡也]” 하였다. 도참서에서 말한 胡는 시황의 아들인 胡亥를 가리킨 것인데, 시황은 북방의 오랑캐로 알고 그들을 방어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훗날 호해가 황제에 올라 천하를 어지럽히자 반란이 일어났으며, 項羽와 劉邦이 천하를 다투다가 결국 유방이 통일하여 漢나라를 세웠는바, 이러한 고사를 두고 한 말이다.(≪史記≫ 권6 〈秦始皇本紀〉, 권7 〈項羽本紀〉, 권8 〈高祖本紀〉)
역주3 周나라는……이루었습니다 : 周나라 宣王 때에 “산뽕나무 활과 箕草로 만든 활집이 실로 周나라를 망하게 한다.[檿弧箕服 實亡周國]”라는 동요가 유행하자, 선왕이 활과 활집을 팔러 다니는 부부를 잡아오도록 하였는데, 부부가 도망하였다. 부부가 도망하는 길에 여자아이를 주워 褒나라로 달아났는데, 훗날 幽王 때에 죄를 지은 어떤 褒人이 형벌을 면하려고 이 여자아이를 잡아 周나라에 바쳤다. 그녀가 바로 周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褒姒였는바, 이 고사를 두고 한 말이다.(≪史略≫ 권1 〈周〉)
역주4 (都)[鄀] : 저본에는 ‘都’로 되어 있으나, ≪水經注≫에 의거하여 ‘鄀’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王夷甫가……조장하였으니 : 夷甫는 晉나라 때 王衍(256~311)의 자이다. 재주와 용모가 뛰어나고 老子와 莊子의 玄談을 잘하였다. 이로 인하여 명성이 크게 드러나고 누차 현달한 관직을 역임하니, 조정의 관료뿐만 아니라 재야의 학자들까지도 그를 추앙하고 본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의 명망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아서 한 시대의 풍속을 부화하고 방탄함을 숭상하도록 조장하였는바, 이를 두고 한 말이다.(≪晉書≫ 권43 〈王衍列傳〉)
역주6 (訖)[記] : 저본에는 ‘訖’로 되어 있으나, ≪禮記≫ 〈樂記〉에 의거하여 ‘記’로 바로잡았다.
역주7 (梁)[涼] : 저본에는 ‘梁’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綱目≫(上海古籍出版社)에 의거하여 ‘涼’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庾翼移鎮襄陽……録尚書事 : “이때 庾翼이 다시 襄陽으로 진영을 옮길 것을 청하였는데, 청했다고 쓰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길을 떠난 뒤에 청했기 때문이다. 中原을 수복함은 ≪資治通鑑綱目≫에서 인정한 바이다. 그러나 조령을 어기고 감은 신하의 절개에 있어서 순종하지 않음이 된다. 이 때문에 먼저 진영을 옮김을 쓰고 뒤에 조령을 내려 都督을 삼음을 썼으니, 이는 넌지시 비난한 뜻을 보인 것이다. 중원을 經略하자는 의논이 이미 내려온 뒤로부터 桓宣과 庾翼이 각각 한 번 출동하였고, 桓溫이 세 번 출동하였고, 褚裒와 謝尚, 殷浩, 荀羨, 諸葛攸가 각각 두 번 출동하였고, 謝萬과 郗曇(치담)이 한 번 출동하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 공만 있고 죄가 없는 경우는 환온이 姚襄을 토벌한 것이고, 공도 있고 죄도 있는 경우는 환온이 漢나라(成漢)를 정벌하고 秦나라(前秦)를 정벌한 것이고, 공도 없고 죄도 없는 경우는 환온과 유익과 저부가 趙나라(前趙)를 정벌하고 순선과 치담이 燕나라(前燕)를 정벌한 것이고, 죄만 있고 공이 없는 경우는 謝尚이 壽春에 주둔하고 殷浩가 북벌하고 諸葛攸와 謝萬이 燕나라(前燕)를 정벌한 것이다.[於是 翼復請移鎮襄陽 則其不書請 何 行而後請也 開復中原 綱目所予也 然違詔而行 於臣節爲未順矣 是故 先書移鎮 後書詔以爲都督 所以微示譏焉 自經略之議旣下 桓宣庾翼各一出 桓温三出 褚裒謝尚殷浩荀羨諸葛攸各二出 謝萬郗曇一出 其間有功無罪者 桓温之討姚襄也 有功有罪者 桓温之伐漢伐秦也 無功無罪者 桓宣庾翼褚裒之伐趙 荀羨郗曇之伐燕也 有罪無功者 謝尚之屯壽春 殷浩之北伐 諸葛攸謝萬之伐燕也]” ≪書法≫
“庾翼이 襄陽으로 진영을 옮기려고 하자, 황제(晉 康帝)가 使者를 보내어 만류하였는데, 유익이 마침내 조령을 어기고 북쪽으로 갔으나, 끝내 그의 請願을 따랐다. 그렇다면 유익은 바로 황명을 거역하고 跋扈한 사람인데, ≪資治通鑑綱目≫에서 이것을 쓸 때 어찌하여 조금도 깎아내리는 말이 없었는가. 이때 晉나라가 江外(江南)로 遷都하여 중원이 옷깃을 왼쪽으로 하는 오랑캐의 습속에 빠져 있었는데, 조정에 있는 사람들이 구차히 편안하고 방자하게 행동하여 일찍이 원수와 오랑캐(後趙)를 몰아낼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유익만이 수복하려는 뜻이 있어서 능히 오랑캐를 멸망하고 蜀 지방(成漢)을 점령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이 때문에 앞에서는 조령을 내려서 중원을 경략함을 의논했다고 썼고 뒤이어 유익이 표문을 올려 桓宣을 파견하여 趙나라를 정벌할 것을 청했다고 썼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의 경우 위에서는 유익이 양양으로 진영을 옮겼다고 썼고 아래에서는 유익에게 조령을 내려 都督征討로 삼았다고 썼다. 이는 모두 유익을 인정하는 뜻을 보인 것이므로 조령을 어긴 잘못을 생략한 것이다. 이것을 밝게 안다면 신하된 자는 마땅히 殉國할 마음을 간직해야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마땅히 선조의 기업을 이어 나라를 회복할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공격하고 싸우기를 좋아하여 공을 이루는 것에 힘쓰는 자는 이와 다른 것이다.[庾翼欲移鎮襄陽 帝遣使止之 翼遂違詔北行 卒從其請 然則翼乃方命跋扈之人 綱目書之 何以略無貶詞 是時晉遷江表 中原淪於左衽 在朝諸人 宴安自肆 曽不以讐虜爲念 獨翼志在克復 能以滅胡取蜀爲己任 是以 前書詔議經略中原 繼書翼表遣桓宣伐趙 今此上書翼移鎮襄陽 下書詔翼都督征討 是皆示其予之之意 故略其違詔之失也 明乎此 則知爲臣者當以徇國爲心 爲國者當以紹復爲念 而好攻戰 務邀功者 與此異矣]” ≪發明≫

자치통감강목(14) 책은 2021.11.1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9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