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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7)

자치통감강목(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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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亥年(A.D.39)
기해년己亥年(A.D.39)
十五年이라 春正月 하다
나라 세조 광무황제世祖 光武皇帝 건무建武 15년이다. 봄 정월에 대사도 한흠大司徒 韓歆을 면직시켜 전리田里로 돌아가게 하니, 한흠이 자살하였다.
韓歆 好直言無隱하니 帝每不能容이라 於上前 證歲將饑凶호되 指天畫地하여 言甚剛切故
한흠韓歆이 직언을 좋아하여 숨기는 일이 없었는데, 황제가 매번 용납하지 못하였다. 한흠이 의 앞에서 연사年事가 작황이 좋지 않아 흉년이 될 것이라고 증거를 들어가며 설명하였는데,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그으면서 하는 말이 몹시 강직하고 간절하였다.
坐免歸田里러니 帝猶不釋하여 復遣使宣詔責之하니 歆及子嬰 皆自殺하다
이 일로 면직되어 전리田里로 돌아갔는데도, 황제가 노여움을 풀지 않고 다시 사자使者를 보내 조명詔命을 내려 책망하니, 한흠과 아들 한영韓嬰이 모두 자살하였다.
素有重名이러니 死非其罪하니 衆多不厭이라 帝乃追賜錢穀하여 以成禮葬之注+成禮, 具禮也, 言不以非命而降其葬禮.하다
한흠은 평소 중한 명망이 있었는데 죄가 아닌 것으로 죽으니, 사람들이 대부분 심복하지 못하였다. 이에 황제는 뒤늦게 돈과 곡식을 하사하여 를 갖추어 장례하게 하였다.注+성례成禮”는 예를 갖춤이니, 비명非命에 죽었다 하여 그 장례를 낮추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司馬公曰 切直之言 非人臣之利 乃國家之福이라 是以 人君 夙夜求之하여 唯懼弗得聞하나니
사마공司馬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간절하고 정직한 말은 인신人臣의 이로움이 아니라 바로 국가의 복이다. 이 때문에 인군人君이 밤낮으로 직언直言하는 신하를 구하여 행여 간언諫言을 듣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惜乎 以光武之世而韓歆用直諫死하니 豈不爲仁明之累哉
애석하다, 광무제光武帝의 세상에 한흠韓歆이 직간을 하다가 죽었으니, 어찌 인명仁明한 군주의 가 되지 않겠는가.”
有星孛于昴注+昴七星, 西方白虎七宿之一, 主兵刑, 又爲旄頭, 胡星也. 昴․畢間, 爲天街, 黃道之所經也.하다
패성孛星묘성昴星에 나타났다.注+7개의 묘성昴星서방 백호西方 白虎 7宿의 하나로 병형兵刑을 주관하는데, 또 모두旄頭라 하니 호성胡星이다. 묘성昴星필성畢星 사이를 천가天街라 하니, 황도黃道가 지난다.
◑以歐陽歙爲大司徒注+歐陽, 復姓.하다
구양흡歐陽歙대사도大司徒로 삼았다.注+구양歐陽복성復姓이다.
二月 徙邊郡吏民하여 避匈奴하다
】 2월에 변경에 있는 의 관리와 백성을 이주시켜 흉노匈奴를 피하게 하였다.
匈奴冦鈔日盛하니 州郡 不能禁이라 二月 遣吳漢하여 率馬成, 馬武等하여 北擊匈奴하고
흉노匈奴의 침략과 노략질이 날로 성해지니, 주군州郡이 막지를 못하였다. 2월에 오한吳漢을 보내 마성馬成마무馬武 등을 거느리고 가서 북쪽으로 흉노를 공격하게 하고,
徙雁門, 代郡, 上谷吏民六萬餘口하여 置居庸, 常山關以東하여 以避胡冦注+前書曰 “代郡有常山關. 上谷郡居庸縣, 有關.”하다
안문雁門, 대군代郡, 상곡上谷의 백성과 관리 6만여 명을 거용관居庸關상산관常山關 동쪽으로 이주시켜 흉노의 침략을 피하게 하였다.注+전한서前漢書≫에 하였다.
匈奴左部遂復轉居塞內어늘 朝廷 患之하여 增緣邊兵하여 郡數千人하다
흉노의 좌부左部가 마침내 다시 전전하여 새내塞內에 거주하였는데, 조정이 이를 염려해서 변방의 군대를 증가하여 마다 수천 명이 되었다.
夏四月 追諡兄縯爲齊武公하다
】 여름 4월에 황제의 형 유연劉縯추시追諡하여 제무공齊武公이라 하였다.
帝感縯功業不就하여 撫育二子章, 興하여 恩愛甚篤이러라
】 황제는 유연劉縯공업功業이 성취되지 못한 것을 서글퍼하여 그의 두 아들인 유장劉章유흥劉興을 어루만져 길러서 은애恩愛가 매우 돈독하였다.
以其少貴라하여 欲令親吏事하여 使章試守平陰令하고 興緱氏令이러니 其後 遷梁郡太守하고 遷弘農太守하다
황제는 이들이 어려서부터 귀하다 하여 관리의 일을 직접 맡기고자 해서 유장에게는 수평음령守平陰令시보試補하게 하고 유흥에게는 구지령緱氏令(구지령)을 제수하였다. 그 뒤에 유장은 양군태수梁郡太守로 승진하고 유흥은 홍농태수弘農太守로 승진하였다.
詔州郡하여 檢覈墾田戶口하다
주군州郡조령詔令을 내려 간전墾田호구戶口를 조사하게 하였다.
帝以天下墾田 多不以實自占하고 又戶口, 年紀互有增減이라하여 乃詔下州郡檢覈注+覈者, 考其實也.하다
】 황제는 천하의 개간한 전지田地의 면적이 사실대로 등록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또 호구戶口와 나이가 서로 증감이 있다 하여, 마침내 주군州郡조령詔令을 내려 그 실제를 조사하게 하였다.注+은 그 실제를 상고하는 것이다.
於是 刺史, 太守多爲詐巧하여 苟以度田爲名注+度, 徒洛切, 下同.하고 聚民田中하여 幷度廬屋, 里落하니 民遮道啼呼하며
이에 자사刺史태수太守들이 대부분 교묘하게 속임수를 써서 구차히 전지를 측량한다는 명목으로注+(헤아리다)은 도락徒洛이니 아래도 같다. 백성들을 전지 가운데에 모아놓고서 집과 취락을 함께 측량하게 하니, 백성들이 길을 가로막고 울부짖었다.
或優饒豪右하고 侵刻羸弱注+羸弱, 謂貧民下戶.이러라
또 혹자는 토호土豪들을 우대하고, 가난하고 힘이 없는 백성들을 침탈하기도 하였다.注+이약羸弱”은 가난하고 힘이 없는 백성을 이른다.
諸郡 各遣使奏事러니 帝見陳留吏牘上 有書 視之하니 云 潁川, 弘農 可問이요 河南, 南陽 不可問注+陳留吏, 陳留郡奏事之吏也. 牘, 木簡也. 書, 字也.이어늘
】 이때 여러 이 각각 사자使者를 보내 황제에게 일을 아뢰었는데, 황제가 진류陳留의 관리가 올린 목간 위에 글자가 있는 것을 보고 자세히 살펴보니, “영천潁川홍농弘農은 물을 수 있고, 하남河南남양南陽은 물을 수 없다.”注+진류리陳留吏”는 진류군陳留郡에서 일을 아뢰는 관리이다. 목간木簡이다. 는 글자이다.고 쓰여 있었다.
帝詰吏由趣한대 抵言於長壽街上得之注+由, 從也, 問是書之所從來也. 趣, 向也, 問是書之意其所向爲何如也. 一說 “趣, 讀曰促.” 抵言, 托辭也. 長壽街, 在雒陽城中.라하니 帝怒
황제가 아전에게 이 글을 얻게 된 동기와 뜻하는 바를 힐문하였으나 장수가長壽街에서 얻었다고 둘러대니注+는 따름이니 이 글을 어떻게 얻었는지[소종래所從來]를 물은 것이다. 는 향함이니 이 글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물은 것이다. 일설에 “(독촉하다)은 으로 읽는다.” 하였다. “저언抵言”은 칭탁하는 말이다. 장수가長壽街낙양성雒陽城 안에 있다., 황제가 노여워하였다.
東海公陽 年十二 在幄後라가 言曰 吏受郡勅하여 當欲以墾田相方耳注+勅, 敎也, 戒也. 相方, 謂求問其墾田之數以相比也.니이다
이때에 동해공 유양東海公 劉陽이 겨우 12살이었는데, 장막 뒤에 있다가 말하기를 “관리가 의 명령을 받고서 개간한 전지田地를 서로 비교하고자 한 것일 뿐입니다.”注+은 가르침이고 경계함이다. “상방相方”은 개간한 전지의 숫자를 찾아 물어서 서로 비교함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帝曰 卽如此 何故言河南, 南陽不可問 對曰 河南 帝城이라 多近臣하고 南陽 帝郷이라 多近親하니
황제가 말하기를 “만약 이와 같다면, 무슨 연고로 하남과 남양은 물을 수 없다고 말하였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하남은 황제의 도성이라서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가 많고 남양은 황제의 고향이라서 임금과 가까운 친족이 많으니,
田宅踰制 不可爲準이니이다 帝令虎賁將詰問吏한대 吏乃實首服 如東海公對注+虎賁將, 虎賁中郞將也. 首服, 謂自陳其非而服其罪也.
전지田地와 집이 제도를 넘는 것을 기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였다. 황제가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으로 하여금 관리에게 힐문하게 하자, 관리가 마침내 사실대로 자복하였는데 동해공의 대답과 같았다.注+호분장虎賁將”은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이다. “수복首服”은 스스로 자기 잘못을 아뢰어 죄를 자복함을 이른다.
猶是 益奇愛陽注+猶, 通作由.이러라 遣謁者하여 考實二千石長吏阿枉不平者注+阿諛枉曲也.하다
이 이로 말미암아 유양을 더욱 특별히 사랑하였다.注+(말미암다)는 와 통한다. 알자謁者를 보내 이천석二千石장리長吏(태수太守국상國相) 중에 아첨하고 불공정하여 공평하지 못한 자를 조사하게 하였다.注+〈“아왕阿枉”은〉 아첨하여 공정하지 못함이다.
冬十一月 大司徒歙 有罪하여 下獄死하다
】 겨울 11월에 대사도 구양흡大司徒 歐陽歙이 죄를 짓고 하옥되어 죽었다.
坐前爲汝南太守 度田不實하고 贓罪千萬하여 下獄하다
구양흡歐陽歙이 전에 여남태수汝南太守로 있을 적에 전지田地의 면적을 사실대로 조사하지 않고 천만 전千萬 錢의 장물을 받은 죄에 연루되어 하옥되었다.
世授尙書하여 八世爲博士注+自歐陽生傳伏生尙書, 至歙八世, 皆爲博士. 諸生守闕하여 爲歙求哀者千餘人이요 至有自髠剔者注+爲, 去聲. 剃髮曰髡, 盡及身毛曰剔, 言自爲刑人狀, 以示必獲罪也.러라
구양흡은 대대로 ≪상서尙書≫를 전수하여 8대가 박사博士를 지냈기 때문에注+구양생歐陽生복생伏生에게 ≪상서尙書≫를 전수한 뒤로 구양흡歐陽歙에 이르기까지 8대가 모두 박사博士를 지냈다., 대궐문을 지키면서 구양흡을 위하여 살려주기를 애원하는 유생儒生이 천여 명이었고, 심지어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전신의 털을 제거하는 자까지 있었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머리를 깎는 것을 이라 하고 몸의 털까지 모두 제거하는 것을 이라 하니, 스스로 형벌 받은 사람의 모습을 갖춰서 반드시 죄를 받을 뜻을 내보임을 말한 것이다.
平原禮震 年十七 求代歙死注+禮, 姓也.호되 帝竟不赦하니 死獄中하다
평원平原 사람 예진禮震은 나이가 17세로 구양흡을 대신하여 죽기를 바랐으나注+이다., 황제가 끝내 용서하지 않으니, 구양흡이 옥중에서 죽었다.
以戴涉爲大司徒하다
대섭戴涉대사도大司徒로 삼았다.
◯盧芳 復入居高柳注+杜佑曰 “雲州, 治雲中縣, 縣界, 有高柳城.”하다
노방盧芳이 다시 고류성高柳城에 들어와 거주하였다.注+두우杜佑가 말하기를 “운주雲州운중현雲中縣치소治所로 하는데, 의 경계에 고류성高柳城이 있다.” 하였다.
◯遣馬成하여 繕治障塞하고 以張堪爲漁陽太守하다
마성馬成을 보내 변방의 성보城堡[장새障塞]를 수선하게 하고, 장감張堪어양태수漁陽太守로 삼았다.
驃騎大將軍杜茂 坐使軍吏殺人하여하니 使揚武將軍馬成으로 代茂하여 繕治障塞하여 十里一堠하여 以備匈奴注+堠, 胡茂切, 記里堡也, 立之道旁.하다
표기대장군 두무驃騎大將軍 杜茂군관軍官을 시켜 사람을 죽인 죄에 연루되어 면직되니, 양무장군 마성揚武將軍 馬成으로 두무를 대신하여 장새障塞를 수리해서 10리마다 이정표[]를 세워 흉노匈奴를 대비하게 하였다.注+호무胡茂를 기록한 것이니, 길가에 세웠다.
使騎都尉張堪으로 領杜茂營이러니 擊破匈奴於高柳어늘 拜堪漁陽太守하니
기도위 장감騎都尉 張堪으로 하여금 두무의 진영을 거느리게 하였는데, 고류高柳에서 흉노匈奴를 격파하자, 장감을 어양태수漁陽太守로 제수하였다.
視事八年 匈奴不敢犯塞하고 勸民耕稼하여 以致殷富하니라
장감이 태수의 일을 본 지 8년 만에 흉노가 감히 변경을 침입하지 못하였고, 백성들에게 밭을 갈고 곡식을 심는 것을 권장하여 백성들이 많아지고 부유해졌다.
역주
역주1 免大司徒……歆自殺 : “韓歆이 죽은 것은 先儒들이 이미 논하였다. 그런데 지금 ≪資治通鑑綱目≫에서 ‘免’을 쓰고 ‘官’을 쓰고 ‘自殺’을 쓰면서 그 죄를 쓰지 않은 것을 보면, 한음이 온당한 죽음을 얻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上公의 존귀한 신분으로 죄 없이 책망을 당하고 直諫하다가 죽었으니, 낮은 관리로 벼슬하고 초야에서 출신한 자는 직언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君子가 깊이 光武帝를 위하여 매우 애석히 여긴 것이다.[韓歆之死 先儒旣已論之矣 今觀綱目書免 書官 書自殺而不書其罪 則歆不得其死 爲可知 夫以上公之尊 無罪見責 而以直諫死 則仕於下僚 出於草茅者 不可以有言矣 此君子所以深爲光武惜也]” ≪發明≫
역주2 代郡에……있다 : ≪前漢書≫ 〈地理志〉의 註에 이 내용이 보인다.
역주3 里堡 : 중국의 고대에 길가에 쌓은 土壇으로, 里程이나 分界를 기록한 것이다.

자치통감강목(7) 책은 2019.10.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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