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魏人凡破南兗徐兗豫青冀六州에 殺掠不可勝計라 丁壯者即加斬截하고 嬰兒貫于槊上하여 盤舞以爲戲하니 所過郡縣이 赤地無餘라
春燕歸巢於林木하다 魏之士馬死傷亦過半이라 國人皆尤之하니라
宋主毎命將出師에 常授以成律交戰日時하니 是以將帥趑趄하고 莫敢自决하다
又江南白丁이 輕進易退하니 此其所以敗也라 自是邑里蕭條하고 元嘉之政衰矣라
詔降太尉義恭爲驃騎將軍하고 鎭軍將軍駿爲北中郎將하다
目
[目] 北魏 군사가 彭城을 지나갈 때에 宋나라 江夏王 劉義恭이 두려워 떨며 감히 공격하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고하기를 “오랑캐들이 우리의 백성 만여 명을 잡아가고 있는데 저녁에 응당 安王陂에서 유숙할 것입니다. 팽성과의 거리가 수십 리 정도이니, 지금 추격하면 모두 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자, 여러 장수들이 모두 가기를 청하였는데 유의공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음 날에 조정에서 파발로 보낸 사자가 도착하여 칙서를 내려 유의공에게 힘을 다하여 급히 추격하라고 하였는데, 北魏 군사들은 이미 멀리 달아났다. 유의공이 마침내 司馬 檀和之를 보내 蕭城으로 향하게 하였다. 北魏 사람들이 미리 이 소식을 듣고 잡아가던 사람들을 다 죽이고 떠났다.
目
[目] 北魏 군대가 南兗州․徐州․兗州(北兗州)․豫州․靑州․冀州 등 6주를 격파할 때에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은 것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장정들은 즉시 목을 베이고 어린이들이 창끝에 꿰어 춤을 추면서 노리개로 삼으니, 이들이 지나가는 郡縣마다 황무지로 변해 버리고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집이 사라져〉 봄에 제비가 돌아와서 숲속의 나무에 둥지를 틀었다. 죽고 부상을 당한 北魏의 군사와 말이 또한 절반을 넘었다. 北魏의 國人들이 모두 원망하는 말을 하였다.
宋主는 장수를 명하여 군대를 출동시킬 적에 항상 작전과 교전하는 시일을 말해주었다. 이 때문에 장수들이 주저하고 감히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였다.
또 江南의 白丁(兵籍에 없는 장정)들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하여〉 가볍게 나아가고 쉽게 물러나니, 이것이 宋나라 군대가 패한 원인이었다. 이로부터 宋나라의 마을이 텅 비었고, 元嘉의 정사가 쇠퇴하였다.
〈宋主가〉 조서를 내려 太尉 劉義恭을 강등시켜 驃騎將軍으로 삼고 鎭軍將軍 劉駿을 강등시켜 北中郎將으로 삼았다.
目
[目] 예전에 魏主가 彭城을 지나가면서 사람을 보내어 성안에 말을 전하기를 “양식이 다하여 우선 떠나니 보리가 익으면 다시 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보리가 익는〉 때가 되어 江夏王 劉義恭이 논의하여 보리를 베고 〈백성을〉 성안으로 들여보내 지키려 하였다.
參軍 王孝孫이 말하기를 “오랑캐는 다시 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우리 스스로 성을 보존할 수 있으니 만약 그들이 다시 온다하더라도 이 의논은 역시 성립할 수 없습니다.
백성들이 굶주린 날이 오래되어 바야흐로 봄철에는 들나물을 채취하여 자급할 수 있습니다. 일단 백성들을 성에 들여보내 모아서 지키면 굶어 죽는 사람이 바로 나올 것입니다. 백성들이 반드시 죽을 것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오랑캐가 만약 반드시 온다고 하면 그때 보리를 베어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長史 張暢이 말하기를 “王孝孫의 의견은 진실로 쓸
注+① 尋은 이치를 찾는다는 뜻이며, 쓴다는 뜻이다. 만합니다.”라고 하였다.
典籖 董元嗣가 나서서 말하기를 “王錄事(왕효손)의 의견은 바꿀 수 없습니다.”라고 하니, 别駕 王子夏가 말하기를 “이 논의는 진실로 그러합니다.”라고 하였다.
장창이 말하기를 “보리를 베고 백성을 이주시키는 것은 큰 의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지방의 안위는 일이 여기에 관계되어 있는데, 왕자하는 자신이 州端(別駕)이면서
注+② 親은 자신이라는 뜻이다. 州의 別駕는 여러 屬僚의 위에 있으므로 州端이라고 말한다. 일찍이 다른 의견이 없다가 동원사의 말을 듣고는 웃으면서 응답을 하여 측근들의 의견에 따르니, 어찌 君(유의강)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고, 왕효손에게 명하여 왕자하를 탄핵하도록 청하니
注+③ 録事參軍은 죄상을 규찰하고 탄핵하는 것을 담당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유의공이 마침내 논의를 중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