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아들과 소원하고 황후가 황제를 뵌 것이 드물었던 것이 첫 번째요,
총희寵姬(
구익부인鉤弋夫人)가 자식을 낳자 황후와 태자에 대한 사랑이 해이해진 것이 두 번째요, 태자의
관후寬厚함을 미워하고 간사한 신하들이 태자를 훼방하는데도 살피지 못한 것이 세 번째요,
강충江充의 재능을 좋아하여 그가
조趙나라를 망친 일을 잊은 것이 네 번째요, 태자를 위해 어진
사부師傅를 배치하지 않고 태자로 하여금 스스로 빈객들을 통하게 한 것이 다섯 번째요,
소문蘇文의 참소하는 말을 듣고도 사실을 조사하지 않은 것이 여섯 번째요,
방사方士와 여자 무당들을 풀어놓아 자유롭게 궁중에 출입하게 한 것이 일곱 번째요,
注+액掖은 궁중의 작은 문이다. 또
강충江充으로 하여금
무고巫蠱의
옥사獄事를 다스리게 한 것이 여덟 번째요, 좌우의 측근들이 모두 무고를 했다고 의심한 것이 아홉 번째요,
사자使者의
망언妄言을 믿고서 갑자기 군대를 내어 태자를 체포하여 목 베게 한 것이 열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