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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7)

자치통감강목(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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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元嘉十一年이요 魏延和三年이라
宋梁秦刺史蕭思話 討楊難當破之하다
難當以克漢中으로 告捷於魏러니 蕭思話至襄陽하여 遣司馬蕭承之爲前驅하니 承之緣道收兵하여 進據磝頭注+磝, 敖同音. 磝頭, 地名. 水經註 “漢水逕黃金南, 東流歷敖頭, 魏興安康縣治.”한대
楊難當焚掠漢中하여 引衆西還하고 留趙温守梁州하고 薛健據黄金山이어늘
思話遣陰平太守蕭坦하여 攻鐡城戍拔之注+黃金谷在興道縣, 山有黃金峭. 黃金谷有黃金戍, 傍山依峭, 險折七里. 水經註 “鐵城與黃金戍相對, 一城在山上, 一城在山下.”하고 臨川王義慶 遣將軍裴方明助承之하여 拔黄金戍하니
温棄州城이어늘 思話繼至하여 與承之共擊屢破之하다
魏及柔然和親하다
魏主以西海公主 妻柔然勅連可汗하고 又納其妹하여 爲夫人할새 遣潁川王提하여 逆之注+提, 道武之孫也.하다
宋復取漢中하다
楊難當遣其子和將兵하여 與蒲甲子等으로 共擊蕭承之하여 相拒四十餘日 圍承之數十重하여 短兵接하니注+句. 弓矢無所復施
氐悉衣犀甲하니 戈矛不能入注+犀甲, 以犀皮爲鎧也.이어늘 承之斷矟長數尺하여 以大斧椎之注+椎, 直追切, 擊也.하니 一矟 輒貫數人이라
氐不能當하여 走據大桃어늘 閏月 承之追擊하여 斬獲甚衆하고 悉收漢中故地하여 置戍於葭萌水注+水經註 “白水出臨洮縣西南西傾山, 東南流, 至葭萌縣北, 因謂之葭萌水.” 水有津關, 即所謂白水關也.하다
蕭思話徙鎭南鄭하고 甄法護坐賜死하다 難當奉表謝罪어늘 詔赦之하다
燕王弘 稱藩于魏하다
燕王遣高顒稱藩하여 請罪于魏하고 以季女充掖庭이어늘 魏主許之하고 徴其太子王仁入朝하다
燕王送魏使者于什門하고 還平城하니 什門在燕二十一年 不屈節이라
魏主下詔褒稱하여 以比蘇武하고 拜治書御史하고 策告宗廟하여 頒示天下하다
涼遣使奉表于宋하다
◯六月 하다
燕王不遣太子質魏어늘 散騎常侍劉滋 諫曰 昔 劉禪有重山之險하고 孫皓有長江之阻호되 皆爲晉擒注+重, 直龍切.하니 何則 彊弱之勢異也
今吾弱於吳蜀而魏彊於晉하니 不從其欲하면 將有危亡之禍하리니 願亟遣太子하고 而修政事하며 撫百姓하고 收離散하며 賑飢窮하고 勸農桑하며 省賦役하면 社稷 猶庶幾可保니이다
燕王怒殺之하다 魏主遣永昌王健等伐燕하여 收其禾稼하고 徙民而還하다
魏主擊山胡克之하다
七月 魏主命陽平王它督諸軍하여 擊山胡白龍於西河하고 而自引數十騎하여 登山臨視注+它, 道武之孫也. 山胡, 即稽胡, 一曰步落稽, 蓋匈奴別種, 劉元海五部之苗裔也. 或云 “山戎赤狄之後.” 自離石以西, 安定以東, 方七八百里, 居山谷間, 種落繁熾.하다
白龍伏壯士十餘處라가 掩擊之하니 魏主墜馬하여 幾爲所擒이어늘 内入行長陳建 以身扞之하고 大呼奮擊하여 殺胡數人하고 身被十餘瘡하니 魏主乃免注+行, 戶剛切. 長, 短兩切. 內入行長, 魏官也. 蓋選勇力之士, 入直禁中, 行長則其部帥也.하다
九月 大破胡衆하여 斬白龍하고 屠其城하다


宋나라 太祖 文帝 劉義隆 元嘉 11년이고, 北魏 世祖 太武帝 拓跋燾 延和 3년이다.
[綱] 봄에 宋나라 梁州․秦州刺史 蕭思話가 楊難當을 토벌하여 격파하였다.
[目] 楊難當이 漢中에서 승리하고서 승전보를 北魏에 보고하였다. 蕭思話가 襄陽에 도착하여 司馬 蕭承之를 보내 선봉으로 삼으니, 소승지가 길가에서 병사를 모아 진격하여 磝頭(오두)를注+① 磝는 敖와 음이 같다. 磝頭는 지명이다. ≪水經註≫에 “漢水는 黃金 남쪽을 지나고 동쪽으로 흘러 를 지나가니, 魏興 安康縣의 治所이다.”라고 하였다. 점거하였다.
양난당이 漢中을 불사르고 노략질하고서 무리를 이끌고 서쪽으로 돌아가면서 趙温을 남겨 梁州를 지키게 하고 薛健을 파견하여 黃金山을 점거하게 하였다.
소사화가 陰平太守 蕭坦을 보내어 鐡城戍를 공격하여 빼앗고注+② 黃金谷은 興道縣에 있고 산에는 黃金峭가 있다. 黃金谷에는 黃金戍가 있는데 산과 가파른 언덕에 의지하니, 험절한 곳이 7里이다. ≪水經註≫에 “鐵城은 黃金戍와 마주 대하고 있는데 한 城은 산 위에 있고 한 城은 산 아래에 있다.”라고 하였다., 臨川王 劉義慶이 將軍 裴方明을 파견하여 소승지를 도와 黃金戍를 빼앗았다.
조온이 梁州城을 버렸는데 소사화가 이어서 도착하여 소승지와 더불어 같이 〈조온 등을〉 공격하여 여러 차례 격파하였다.
[綱] 北魏가 柔然과 화친하였다.
[目] 魏主가 西海公主를 柔然 의 처로 삼게 하고, 또 칙련가한의 여동생을 받아들여 夫人으로 삼을 적에 潁川王 拓跋提를注+① 拓跋提는 道武帝(拓跋珪)의 손자이다. 파견하여 그를 맞이하게 하였다.
[綱] 宋나라가 다시 漢中을 취하였다.
[目] 楊難當이 그 아들 楊和를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려서 蒲甲子 등과 더불어 蕭承之를 함께 공격하여, 서로 대치하기를 40여 일 만에 소승지를 수십 겹으로 포위하여 짧은 무기로 접전하니注+① 여기서 句를 뗀다. 활과 화살은 다시 사용할 데가 없었다.
氐族은 모두 물소 가죽 갑옷을注+② 犀甲은 물소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다. 입어서 戈와 矛가 뚫고 들어가지 못하자, 소승지가 을 잘라서 몇 자 길이로 하여 큰 도끼로 矟을 때리니注+③ 椎는 直追의 切이니 친다는 뜻이다., 矟 하나에 번번이 몇 명을 꿰뚫었다.
[目] 氐族이 감당할 수가 없어서 달아나 大桃를 점거하니, 윤달(윤3월)에 蕭承之가 추격하여 氐族 병사를 斬獲한 것이 매우 많았고, 漢中의 옛 지역을 다 수복하여 葭萌水에 戍(營壘)를 설치하였다.注+① ≪水經註≫에 “白水는 臨洮縣 서남쪽 西傾山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葭萌縣 북쪽에 도달하니 그것으로 인해 葭萌水라 말한다.”라고 하였다. 가맹수에 津關(水陸 요충지에 설치한 關門)이 있는데, 바로 이른바 白水關이다.
蕭思話가 南鄭으로 옮겨 鎭守하고, 甄法護는 죄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했다. 楊難當이 표문을 올려 사죄하니, 宋主가 조서를 내려 그를 사면하였다.
[綱] 北燕王 馮弘이 北魏에게 藩國이라고 칭하였다.
[目] 北燕王이 高顒(고옹)을 보내 藩國이라고 일컬어서 北魏에 죄를 청하고 막내딸로 掖庭(後宮)을 채우겠다고 하였는데, 魏主가 이를 허락하고 太子 馮王仁을 불러 입조하게 하였다.
北燕王이 北魏의 사신 于什門을 전송하고 平城으로 돌려보냈다. 우십문은 北燕에 있은 지 21년 동안 절개를 굽히지 아니하였다.
魏主가 조서를 내려 칭찬하면서 漢나라 에 견주고 治書御史를 임명하고 策書로 宗廟에 고하여 천하에 반포하였다.
[綱] 北涼이 사신을 보내 宋나라에 表文을 올렸다.
[綱] 6월에 北魏 군사들이 北燕을 정벌하였다.
[目] 北燕王 馮弘이 太子를 北魏에 인질로 보내지 않자, 散騎常侍 劉滋가 다음과 같이 간언하였다. “옛날에 劉禪은 산이 겹겹이 둘러싼注+① 重(거듭하다)은 直龍의 切이다. 험고함이 있었고 孫皓는 長江의 험조함이 있었으나 모두 晉나라에 사로잡혔으니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이것은 강약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吳나라나 蜀나라보다 약하고 北魏는 晉나라보다 강하니 그들이 바라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危亡의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바라건대 빨리 태자를 보내고 政事를 닦으며 백성을 慰撫하고 흩어진 백성들을 거두며 굶주리고 궁핍한 자들을 구휼하고 농업과 잠업을 권하며 부역을 줄이신다면 社稷을 그래도 보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北燕王 화가 나서 유자를 죽였다. 魏主가 永昌王 拓跋健 등을 보내서 北燕을 정벌하여 벼와 곡식을 수확하고 백성을 이주시키고 돌아왔다.
[綱] 가을에 魏主가 山胡를 공격하여 승리하였다.
[目] 7월에 魏主가 陽平王 拓跋它에게 명하여 여러 군사를 감독하여 山胡 白龍을 西河에서 공격하도록 하고注+① 拓跋它는 道武帝(拓跋珪)의 손자이다. 山胡는 바로 稽胡인데 일설에는 步落稽라고 하며, 匈奴의 혈족으로 劉元海 五部의 후예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山戎․赤狄의 후예이다.”라고 하였다. 離石 서쪽으로부터 安定 동쪽까지 사방 7, 8백 리의 山谷 사이에 거주하여 종족 부락이 번성하였다. 자신이 수십 기병을 이끌고 산에 올라서 내려다보았다.
백룡이 壯士를 십여 곳에 매복하여 놓았다가 습격하니, 魏主가 낙마하여 거의 사로잡힐 상황이었는데 内入行長注+② 行(항렬)은 戶剛의 切이다. 長(우두머리)은 短兩의 切이다. 內入行長은 北魏의 관직이다. 대개 용감하고 힘 있는 병사를 선발하여 궁중에 들어와 숙직하게 하는데 行長은 그 부서의 우두머리이다. 陳建이 몸으로 막아서고 크게 소리를 치면서 떨쳐 공격하여 山胡 사람 몇 명을 죽이고 몸에 십여 군데 상처를 입었다. 魏主가 마침내 화를 면하였다.
9월에 北魏가 山胡 무리를 크게 격파하여 백룡의 목을 베고 그 城을 도륙하였다.


역주
역주1 敖頭 : 이 訓義는 ≪資治通鑑≫ 胡三省의 註를 인용한 것으로, 호삼성은 磝頭가 지명이란 증거로 ≪水經註≫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역주2 勅連可汗 : 瀚海(고비 사막)에 있는 柔然의 5대 可汗인 旭久閭吳提를 말한다.
역주3 : ≪顔氏家訓≫ 王利器의 註에 “矟은 槊과 쓰임이 같으며 ‘矛’이면서도 길이가 한 길 여덟 자이면 이를 ‘矟’이라 한다.” 하였다.
역주4 蘇武 : 字는 子卿으로 西漢의 大臣이다. 漢 武帝 때 왕명을 받들고 中郎將으로 匈奴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었다. 흉노가 위협과 회유를 하였으나 투항하지 않고 北海로 가서 양을 치고 살다가 19년 만에 돌아왔다.
역주5 魏人伐燕 : “北魏가 北燕을 침입하였으면 ‘攻(공격하다)’이라고 쓰는 것이 일상적인 말인데 여기서 ‘伐(토벌하다)’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北燕은 北魏의 藩國이기 때문이다. ≪資治通鑑綱目≫에서 한 글자로 판단함이 이와 같다.[魏加燕書攻 恒辭也 此其書伐 何 燕 魏藩矣 綱目一字之權衡如此哉]” ≪書法≫

자치통감강목(17) 책은 2021.11.0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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